불멸의 지배자

40 이집트에 아직 비밀이 남아있을까

   영국의 고고학자 두 사람이 18왕조의 젊은 파라오인 투탕카멘의 무덤에 들어갔다. 왕의 무덤에 있는 보물창고가 파괴되었다. 거대한 황금사당이었던 이 방에는 많은 공예품이 있었지만 문이 없었다. 방의 입구에는 살이있는 듯한 아누비스, 자칼의 머리를 한 죽은 자의 신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현재는 박물관 유리안에 있는 이 자칼의 신은 은으로 만든 눈이 반짝이는 매우 강렬한 존재이다. 세차운동과 관련된 전설에 등장하는 개의 이미지, 개나 이리,자칼 등의 상징을 만든 자들이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오시리스가 있다.

   벨기에의 건축기사인 로버트 보발은 아무런 비밀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던 이집트의 기자가 하늘과 지상을 연결시켰다.

오리온 자리의 세 별이 일직선이 아닌것처럼, 기자의 세 피라미드도 그 배치가 동일하다. 오리온 자리의 세 별을 지상에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위치뿐만 아니라 상호위치와 빛나는 강도까지표시해놓았다. 큰 피라미드와 작은 피라미드는 오리온 자리의 별들의 빛나는 순서와 위치를 그대로 표현한다.

   웨스트라는 학자는 비에 맞아 침식을 겪은 스핑크스와 밸리신전을 말한다. 돌을 마모시킨 것은 분명 “비”다. 이 사막에 왠 비? 기원전 1만1천년에서 1만년 사이에 있었던 마지막 빙하기에 대량의 비가 내렸다. 아무리 공박을 하려해도 거기에 그렇게 새겨진 흔적을 어쩌겠는가? 최소한 1만년전에 이 건물들이 여기에 있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41 태양의 도시, 자칼의 방

 헬리오폴리스, 태양의 도시는 성서 속에 온(On)이라고 불렀고 이집트 언어로는 이누, 이누 메레트라고 불렀는데 “기둥”, “북쪽의 기둥”을 의미한다. 매우 신성한 장소이며 기이한 9명의 태양과 별들의 신들과 관계가 있다. 센우스레트 1세가 오벨리스크를 세웠을 때 이미 오래된 역사를 가진 땅이었다.

 최초의 때에 우주는 어둡고 물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태양신 라는 자신의 화신으로 아툼을 창조했다. 이 불멸의 신은 신성한 자손을 창조했는데 공기와 건조의 남신 슈와 습기의 여신 테프누트였다. 이들이 성인이 되어 자손을 만드니 땅의 신 게브와 하늘의 여신 누트였다. 게브와 누트는 오시리스와 이시스, 세트와 네프티스를 만들었고 헬리오폴리스의 9신이 탄생했다.

 태초로부터 전해온 강력한 힘을 가진 신성한 물체가 있었는데, 이름하여 벤벤이라고 했다. 이 물체는 거칠게 잘라낸 돌 기둥 위에 얹혀있었다. 벤벤은 피라미드처럼 생겼다고 기억하고 있지만 잃어버렸고, 오벨리스크의 원형에 영향을 미쳤다. 이 불가사의한 돌은 신화에 나오는 성스러운 새 베누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베누가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것은 우주의 큰 주기, 세계의 붕괴나 재생과 관계있다고 믿었다.

 

 아툼과 비라코차, 지상을 멸망시킨 홍수가 끝난 뒤에 처음 얼굴을 내민 이 신들, 케찰코아틀, 오시리스, 이 비슷한 이미지들은 단순한 우연일까?

 대 피라미드에서 남쪽 16킬로미터 지점에 조세르왕의 6단짜리 계단식 피라미드가 사막의 끝에 우뚝 솟은 채 주위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 위압적인 피라미드는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거대한 석조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그 곁에 있는 우나스왕의 피라미드 벽에는 바닥에서 천장에 이르기까지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 텍스트가 새겨져있다. 이곳을 발견했던 이집트인 현장감독이 호박색 눈빛을 가진 자칼 한 마리가 인도한대로 따라가 발견했다고 전해지는 이 상형문자들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와 이미 잊혀진 아주 오래된 과거를 연결하는 마지막으로 남겨진 길이다.

 주문같은 말들과 함께 적혀있는, “태고의 인류가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고 생각되는”것들이 압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인상을 풍기는 이 문자들...

  

42 시대착오와 수수께끼

 우나스 왕의 방에 있는 회색벽, 여기에 적힌 글씨를 피라미드 텍스트라고 부른다. 이미 언어가 사라진 이 글들에서는 영원의 생명을 몇 번씩 되풀이해 강조한다.

“왕이시여, 위대한 별이 되고 위대한 오리온과 동료가 되어 오리온과 함께 여행하소서...동쪽 하늘에서 떠올라 예정된 계절에 신생하시고 예정된 시간에 젊음을 되찾으소서...”

 그런데 여기에 기묘한 장치들이 나온다. 예를 들면 파라오가 영원한 장소를 찾아서 별 속으로 여행을 떠날 때 사용하는 이상한 도구와 부속품 같은 것들이다. 하늘에 있는 철판으로부터 아래로 늘어진 줄 사닥다리, 왕을 싣고 불꽃을 뿜으며 날아가도록 해주는 무엇, 날고 착륙할 수 있는 나룻배...

  몇 번이고 철이라는 금속이 나오는데 이집트에서 철은 휘귀한 금속이었다. 피라미드 시대에는 운석 이외의 형태를 알지 못했다. 하늘의 철판이나 철 왕좌, 철 지팡이, 철 뼈에 쓴 철이라는 말은 고대 이집트어로 브자, 즉 하늘의 금속, 신성한 금속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또 여기에는 세차운동과 대격변을 암시하는 신화가 있다. 태양신 라가 그의 지배에 반항하는 인류를 사자의 머리를 한 여신 세크메트를 이용해 멸절시킨다. 무서운 파괴 중에 라는 몇 몇 인류를 구했다. 라는 인류에게서 손을 떼기로 하고 암소로 변한 하늘의 여신 누트의 등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암소가 현기증을 일으키며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들인 슈를 누트의 밑으로 보내 하늘의 기둥을 지키도록 한다.

  암소의 네 다리는 세차운동에 따른 연대의 단락을 표시하며 극축과 분지경선, 춘분/추분/하지/동지를 나타낸다. 여신 세크메트가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기원전 1만970년부터 기원전 8810년의 사자자리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시리우스에 관계된 것이다. 이집트인은 이 별을 이시스와 연관시키고 있다.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여동생이며 아내이고 호루스의 어머니다. 피라미드 텍스트가 말하는 이중의 존재가 바로 두개의 별로 구성된 시리우스 별이다. 그런데 작은 별은 크기가 작아 육안으로 볼 수 없다. 천체망원경이 있어야 시리우스 B가 시리우스 A를 돌고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양신은 어둡고 공기도 없는 우주공간을 몇 백만년의 배를 타고 여행한다. 몇 천만년의 세월도 나온다. 시리우스가 태양과 동일한 곳에서 떠오르는 주기를 시리우스 주기라고 하며 365.25인데 이를 피라미드 텍스트에서는 시리우스를 “새해의 이름”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왜 이런 문장들을 5왕조에서 갑자기 사용하다가, 6왕조 후기에서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을까? 베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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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신이 만들었다.

 마문의 동굴이라고 현재 대 피라미드로 들어가는 주요입구는 일부러 만든 것이다. 난폭하게 두드려 부셔서 만든 인공동굴인 셈이다. 이렇게 어려운 난폭을 저지를 정도로 피라미드는 인간을 유혹한다. 행콕 아저씨는 이것을 “유인”이라고 부른다. 정말 왕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무덤이 세세토록 보존되길 원한다면, 비밀스러운 곳에 보존하지, 이렇게 거대한 걸 만들고 사람들을 멀리서부터 오라고 광고를 한단 말인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매료시키는 것이 건축자들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마문이 만난 통로는 26도의 각도로 놓여진 통로였는데 화강암 마개로 막아놓아서 기필코 여길 뚫고 가게 유인하고 있다. 26도는 피라미드 경사각인 52도의 절반이다. 대피라미드의 원래높이인 146.73미터와 밑면 둘레인 921.46미터는 각각 지구의 반지름과 둘레에 비율이 일치한다. 바로 2π다. 이 숫자를 나타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경사각을 52도로 한 것이다. 이 각도 말고는 높이와 밑면 둘레의 비율이 2π가 안된다.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에 있는 태양의 피라미드도 높이와 밑면 둘레의 비율이 4π다. 의도적으로 원주율을 사용한 것이다.

 통로를 오르자 천장의 높이가 60센티미터가 안되는 곳이 나타난다. 이 거대한 건축물에 이런 통로는 무슨 이유일까. 이것은 두뇌게임이 아닐까? 통로를 다 올라가자 대회랑에 도달한다. 여기서 아래로 가면 여왕의 방이고 위로 가면 왕의 방이다. 여왕의 방에서는 미닫이 문이 설치된, 외부와 통하는 조그마한 환기구멍이 발견되었다. 환기구멍이라면 왜 닫아두었을까? 퀴즈가 아닐까? 행콕아저씨는 계속 이렇게 생각한다.

  대회랑도 수수께끼로 가득찬 곳이긴 마찬가지다. 지구상에 건설된 돌 건축물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무거운 건축물의 상부 2/3의 중량을 지금도 지탱하고 있다. 평평한 곳에서 올리기 힘든 것을 26도 각도로 46미터 길이로 지어놓는다. 완벽하게 잘라서 촘촘하게 붙여놓아 도저히 접합부분을 확인할 수 없다. 대칭성과 비율, 거대한 장치의 내부에 다다른듯한 느낌, 하늘의 문을 크게 열고 길을 만들어 파라오가 신의 친구다 되도록 했다는 전승은 이렇게 엄청난 장치를 만들 이유로는 불충분하다. 거기다 여기는 얼마나 오래된 곳인가. 신석기를 방금 통과한 사람들이 이곳을 지었단 말인가!

 

38 대화식 3차원 게임

 대회랑의 꼭대기에 도착하자 일부러 벽을 뚫어놓은 첫번째 방이 보인다. 왕의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1.06미터다. 대기실에 들어가면 갑자기 천장은 3.65미터다. 여기에 내리닫이 문이 있었다고 추정하지만 이렇게 좁은 장소에 석판을 끼우는 일은 힘들다. 이 좁은 통로에서 3,40명이 해야할 일을 몇 명이 할 수는 없다. 왕의 방 중앙에 오면 직육면체의 방이 느껴진다. 바닥에는 열 다섯장의 두터운 화강암판이 깔려있고 벽은 거대한 100개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돌 하나는 70톤이며 5단으로 쌓았다. 그 안에 놓여진 석관의 용적에 비해 바깥쪽 용적은 정확히 두배이다. 이것도 일종의 수학게임이다. 이 석관을 만들려면 다이아몬드를 사용했을 거라는 추정이 든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다이아몬드는 희귀했다. 석관 속을 어떻게 파냈는지는 더욱 의문이다. 엄청난 압력의 드릴과 다이아몬드의 강도여야만 가능한 가공기술의 결정판이다.

 더군다나 돌을 파서 만든 꽃병과 항아리, 쟁반에 새긴 글자에 이르면, 이건불가능하다. 이런 기술은 현재까지 우리 인류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최고급 텅스텐 카바이드 용구를 사용해도 불가능하다. 행콕아저씨는 허탈한지 석관 속에 누워서 소리를 질러본다 공명이 울리며 석관을 진동시킨다. 일본인 관광객이 그를 발견하고 놀란 듯 쳐다본다.

  이 방은 피라미드를 절반으로 나누는 단에 만들어놓았고 이 지점에서 수평으로 자르면 수평면은 그 면적이 피라미드 밑변면적의 꼭 절반이다. 이 위치에서는 각에서 각으로의 대각선 길이가 피라미드의 밑변 길이와 같다. 수평면의 폭은

피라미드 밑변의 대각선 길이의 절반이다. 그들은 600만개의 돌을 이용해 방과 환기구멍과 통로를 원하는대로 만들어놓았다. 그 대칭과 방위와 각도는 완벽하다. 뿐만아니라 여러 가지 많은 장치를 할 여유조차 가지고 있었다.   

 

39 시작되는 곳

 대 피라미드의 남동쪽 모서리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 바위를 깎아 우묵해진 거기에 스핑크스가 있다. 높이 20미터, 길이 73미터, 머리의 폭이 4미터가 넘는 스핑크스는 세계 최대의 그리고 가장 유명한 석상일 것이다. 스핑크스로부터 남쪽으로 15미터 떨어진 곳에  카프레 왕의 밸리신전이라고 부르는 신전이 있다. 아마 카프레왕의 시기보다 훨씬 전에 지었을 이 신전에서 카프레왕의 비문이 나오자 카프레왕이 건설했다고 말이 오가기 시작했다. 이집트에서는 선대에 지어진 건축물을 도용한 사례가 매우 흔하다.

 밸리신전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구석구석까지 예외없이 거대한 석회암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돌의 대부분은 길이가 5.4미터, 폭이 3미터, 높이가 2.4미터인데 큰 것은 길이가 9미터, 폭이 3.6미터 높이가 3미터가 되는 200톤짜리도 있다. 70톤의 무게가 나가는 돌을 대피라미드에 있는 왕의 방까지 운반했는데, 70톤은 소형차 100대분량의 무게다. 이상하지 않은가?

   돌들은 마추픽추나 샤크샤우아만의 건축물처럼 다양한 각도로 조각그림처럼 짜맞추어놓았다. 또, 이 신전은 2단계에 걸쳐 지었는데, 첫번째 단계에 지은 것은 대부분 현존하고 있고 200톤의 거대한 석회암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돌의 표면에는 다듬은 화강암을 접합했는데 석회암이 매우 닳아있어서 거기에 맞추어 화강암을 덧씌운 것을 볼 수 있다. 석회암이 매우 오래되고 풍진에 시달린 탓이다.

 카프레 왕이 이 신전을 지었다고 주장하는 이집트학자들은 이 건물이 파라오의 장례에 필요한 세정과 신생의식의 장소로 설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비문은 남아있지 않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비문은 오히려 카프레왕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인벤토리 비석에 따르면 이 신전은 훨씬 오래전의 것이고 스핑크스도 무척이나 오래된 태고의 것이다. 비문에 따르면 밸리신전은 오시리스의 집이다.

 6층건물 정도의 높이인 스핑크스는 완전히 정동을 향하고 있다. 머리는 인간이고 몸은 사자인 이 조각상은 그래서, 춘분과 추분에는 떠오르는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본다. 몸은 석회암을 깎아 만들었는데 스핑크스의 머리와 목은 단단한 바위 산을 깎아 만든 것이다. 주위에 폭 5미터, 깊이 7.6미터의 가늘고 긴 홈이 있어서 독립된 석상으로 건설했음을 알려준다.

 스핑크스는 현재도, 방치해두면 모래에 파묻힌다. 과거에도 계속 그래왔다. 1929년에도 목까지 모래에 파묻힌 것을 이집트 고고학청이 복원시켰다. 이렇게 모래에 쉽게 묻힐 것을 왜 여기다 만들었을까? 스핑크스를 만들 당시의 기후과 현재의 기후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닐까? 사하라사막은 1만년∼1만5천년 전에는 매우 습기가 많은, 풍요로운 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혹시 케냐나 탄자니아의 푸른 초원같은 곳에 이런 석상을 지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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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의 초대

33 방위

 행콕 아저씨는 기자 대피라미드를 올라간다. 시간은 새벽, 경비원들에게 많은 뇌물을 주고야 가능했다. 피라미드는 동서남북이 거의 완벽하게 정동정남정북정서를 향하고 있다. 0.015%라는 이 오차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1% 정도는 육안으로 식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동서남북 변의 길이도 거의 같은데 오차가 1% 이하이다. 아마도 건설자들은 동서남북 방위를 정확히 해야했던 강렬한 의지를 가졌을 것이다. 이것은 모서리의 각도 90%에 이르면 대단한 정밀도를 자랑한다. 현대의 최고수준과 동일한 건축기술이다. 어떤 기록도 전해지지 않는 건축의 금자탑이다.

 남면에는 배를 넣을 수 있는 듯한 갱이 뚫려있다. 여기에는 광학조사 결과 길이 30미터의 대형 목조선을 넣을 수 있는 크기이다. 다른 갱에서는 1950년에 43미터 정도의 큰 배를 발견했다. 삼나무로 만든 이 배는 4500년이 지났다는 지금도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배가 원양항해에 적합하도록 설계했고 나일강의 잔물결에는 별 소용이 없는 높은 뱃머리를 가지고있다고 말한다.

 

34 불멸의 저택

 행콕 아저씨는 203단을 쌓인, 한단의 평균높이가 68센티미터인 기자 대피라미드를 올라간다. 단의 높이는 차이가 커서 이 평균은 의미가 없다. 무릎만한 것에서 가슴높이까지, 또 발판의 높이도 매우 차이가 나서 바위산을 오르는 듯하다. 어떤 돌은 무게가 10톤에서 15톤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런 거대한 돌들을 채석장에서 다듬어 절단하고, 공중으로 30미터 이상 들어올려 짜맞추어야 했다. 이집트 학자들은 20년동안 10만명이 투입되었다고 하지만, 이걸 그대로 인정한다면, 1시간에 31개의 돌을 배치해야한다. 만약 농사짓는 시간을 빼고 1년에 3개월만 일해야한다면 1분에 4개, 1시간에 240개를 쌓아야하는 분량이다.  이런 프로젝트라면 면밀한 계획과 기민한 연락수송체계, 전기간 무사고 작업이어야한다. 경사각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죄다 글러 버린다.

 이 난관을 극복하는 가설로는 축대를 쌓아 돌을 굴러올렸다는 설이 있는데 만약 돌을 굴릴 경사로를 만들었다면 피라미드 본체의 3배여야만 했을 것이다. 이걸 벽돌과 흙으로 만들 수는 없다. 경사로에 사용한 돌과 흙의 무게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또다른 주장은 나선형 경사로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돌을 끌어올렸다는 것인데, 이건 정말 불가능하다. 네모난 돌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147미터 꼭대기로 운반한다는 건..

 그럼에도 피라미드 건축자들은 수평과 좌우대칭, 방위의 정밀성을 유지한다. 거기에 원주율 2π를 적용해 길이를 계산한 것이다. 230만개의 석회암과 화강암으로 만든, 예전에는 8만 9000제곱미터에 걸쳐 반사경과 같은 외벽이 입혀있던 피라미드. 1301년의 대지진으로 이 외피를 모두 벗겨가 버렸지만, 남아있던 석회암 외피는 그 접합부위가 너무 정교해서 돌과 돌사이에 면도날 하나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시멘트로 붙여놓았던 것이다. 모든 것이 불가능하게 보이는 이 피라미드의 건축자에 대해 이집트학의 시조인 샹폴리옹은 키가 30미터정도는 되는 거인일 것이라고 말했다던가...

 

35 단순히 왕의 무덤에 지나지 않을까?

 대피라미드를 내려온 행콕 아저씨는 의기양양하게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로 향한다. 물론 뇌물을 안주었던 서면 경비원에게 50불을 주고서다.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 이 세명의 왕이 기자의 피라미드를 지었다고 알려져있다. 이건 피라미드가 지어졌다는 시기로부터 2000년이 지난 후 헤로도토스가 적어놓은 문헌에 따른 사실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유럽의 탐험대가 1818년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내부를 발견했을 때, 그 방은 텅 비어있었다.

  화강암 석관이 있었지만 그 속도 비어있었다. 학자들은 이미 도굴당한 뒤라고 말한다. 멘카우레 피라미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뼈도 발견되었지만, 초기 기독교시대의 것으로 밝혀졌다. 만든지 2500년 후의 일인 셈이다. 누군가 시신과 유물을 훔쳐갔다는 설명이지만, 최초에 쿠푸왕의 피라미드의 내실로 들어가는 통로를 발견했을 때, 그곳은 현무암으로 견고하게 막혀있었다. 하는 수 없이 우회로를 만들어 들어가야했다. 도굴은 불가능했다. 들어가보니 보물은 커녕이고 석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진설명: 카프레왕 석관

이곳말고도 물론 통로는 있다.

수갱이 있는데 이것은 이미 로마시대에 발견한 흔적이 있다. 이곳은 지하의 방과 통하고 있지만 위쪽에 위치한 왕의 방은 꽉 막혀있었던 셈이다. 이 수갱으로 도굴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겠지만, 그것도 간단하지 않다. 45미터 정도 내려가면 자갈로 꽉 막혀있어 전진할 수 없고 어떤 곳은 수직인 지점도 있어서 목숨을 걸고 들어가더라도 아주 조그만 보물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는 투탕카멘의 왕들의 무덤과는 달리 왕의 무덤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비문하나 없고, 장식하나 없으며, 새겨진 글자하나 없다. 글자가 있긴 있는데, 뒤에 누군가가 새겨넣은흔적이 있는 문법에 맞지 않는 조잡한 글자가 아주 구석진,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곳에 있다.

사진설명: 쿠푸왕이 석관

이게 말이나 될 소린가. 학자들은 쿠푸왕이 이 피라미드를 짓지 않았다는 인벤토리 비석의 글씨는 용케 무시하면서 이 글자를 이유로 여기가 쿠푸왕의 무덤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대피라미드 동쪽에 있는 보조건물중 하나라고 이 비문은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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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오시리스 숫자

대부분의 고고학자는 세차운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고대신화와 신, 신전의 배치에 관한 결론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햄릿의 맷돌”의 저자들은 말한다. 한편 셀러스라는 학자는 최근 오시리스 신화에서 몇 개의 중요한 암호화 숫자를발견했다.

- 지축의 세차운동에 따라 춘분의 일출위치가 황도의 별자리를 따라 1도 이동하는데 필요한 시간.
- 태양이 황도대의 별자리 한 개(합계 30도)를 지나는데 필요한 시간
- 태양이 황도대의 별자리 두 개(합계 60도)를 지나는데 필요한 시간
- 대복귀가 일어나는데 필요한 시간. 즉 세차운동의 1주기.(합계 360도)

셀러스가 제시한 숫자는 360,72,30,12다. 이 숫자들은 대부분이 여러 등장인물의 삶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온다. 곳곳에서 간단한 암산을 하게 만들거나 숫자에 주의를 갖게 만드는 말을 썼다.

- 12 : 황도대에 있는 별자리수
- 30 : 황도대의 각각의 별자리가 황도를 따라 점유하고 있는 각도
- 72 : 태양이 세차운동에 의해 황도를 딸라 1도 이동하는데 필요한 햇수
- 360 : 황도 전체 각도
- 72×30=2160 : 태양이 황도를 따라 30도 이동하는데 필요한 햇수. 즉 12 별자리 가운데 하나를 통과하는데 필요한 햇수
- 2160×12(또는 360×72)=25920 : 세차운동의 1주기에 걸리는 햇수. 대복귀,그레이트 이어의 햇수.
- 36 : 태양이 세차운동에 의해 황도를 따라 0.5도 이동하는데 필요한 햇수.
- 4320 : 태양이 세차운동에 따라 60도(황도대의 별자리 둘)를 이동하는데 필요한 햇수

이 숫자들은 기분나쁠 정도로 계속 나타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숫자는 72이다. 72는 36을 더해서 108이 된다. 또 108에 100을 곱해서 1만800이 되거나 108을 2로 나누어 54가 되기도 하고 54에 10을 곱해서 540으로 나타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숫자는 2160이다. 때때로 10을 곱하기도 하고 2를 곱해 4320, 43200, 4320000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무한히 계속된다.

이 숫자를 신화에 의도적으로 삽입해서 썼을까? 황도를 따라 1도를 움직이는 시간은 현대과학이 측정하기에 71.6년이다. 기원전 2세기의 히파르코스는 78.26년으로 계산했다. 오시리스 신화의 72년이 더 정확한 셈이다. 2160이라는 숫자도 히파르코스는 2400년이나 2347.8년으로 계산했다. 오늘날의 계산으로 2148년이다. 황도대를 일주하는 대주기도 오시리스의 계산으로 하면 144년의 차이 밖에 생기지 않는다. 이야기에 소숫점을 넣을 수는 없었을 것이고 정수라면 정말 정확한 수자를 넣은 셈이다.

북구 신화에 나오는 이리와 싸우는 전사의 수는 43만 2천명이다. 대변동을 기록한 중국의 장서 숫자는 4320권이다. 홍수가 일어나기 전 수메르를 지배한 왕이 43만2천년동안 군림하고 있었고 창조에서 대 재해가 일어나기까지의 기간이 216만년이다. 마야족과 아메리카 인디오의 신화에도 4320은 수없이 등장한다.

인도의 불의 제단에는 1만800개의 벽돌이 있다. 비시누신이 꿈을 꾸는 시간은 432000년이다. 싱가포르에서 삼합회에 가입하려면 1.80달러의 배수를 단계별로 지불해야한다. 108과 36, 72는 끊임없이 중국의 설화에 출현한다. 인도의 푸라나에는 네 개의 땅의 시대, “유가”가 존재한다. 네 유가를 합하면 1만2천년의 성년의 길이에 해당한다. 인간의 1년은 신의 하루와 같고 신의 1년은 인간의 260년이다. 그래서 신의 칼리유가 1200년은 인간의 기간으로 432000년이다.

이 숫자들과 신화에 등장하는 유사한 이야기들은 과연 그저 이야기일뿐일까? 아니면 세차운동과 관계있는 고도의 비유와 상징일까? 항상 등장하는 개의 모습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검은개 무스티의 이야기는 신화로 남아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이야기들에 숨은 정교한 연관과 디자인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32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하는 말

고대의 많은 신화들이 대재해를 눈 앞에서 본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인류는 마지막 빙하시대에서 살아남았다. 홍수와 혹독한 추위, 대규모의 화산활동과 파괴적인 지진은 기원전 1만5천년부터 기원전8000년 사이에 일어난 급격한 빙하의 용해와 대변동에 뿌리를 두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대홍수의 신화 속에서 지성을 가진 존재가 드러난다는 것은 매우 기묘한 일이다. 불가사의한 신과 초인들은 인류를 구하고 문명을 전한다. 피부색이 하얗고 수염을 기른 사람,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안데스의 비라코차, 멕시코의 케찰코아틀은 신화를 매개로 우리에게 무언가 교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메세지를 남기려고 했다면 그것을 문서로 남기진 않았을까? 만약 문서가 파괴된다면 어쩔 것인가? 언어를 망각해버린다면 어쩔 것인가? 그렇다면 신화는 문서보다 불리하지만 더 오랜 기간을 전승시킬 수 있다. 그 속에 보편적인 언어를 담는다면?

그 영원의 언어는 바로 수학이다. 지구의 형태와 크기, 지리적인 위치는 앞으로 몇 만년이 지나도 유효할 것이다. 또다른 수학언어는 시간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1만년 후에도 72,2160,4320,25920과 같은 세차운동의 숫자들은 변하지 않는다. 별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준이면 이 숫자를 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자, 우리가 그들의 숫자를 풀고있지 않은가!

세차운동의 주기는 빙하시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수와 불과 얼음의 대재해가 황도에 커다란 원을 그리는 하늘의 육중한 움직임과 인과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것들은 황도경사와 공전궤도의 이심률, 지축의 세차운동과 연관이 있고 이것을 이용하면 빙하시대의 시작을 예측할수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이다.

빙하시대를 맞으려면,

① 지구가 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상태, 즉 최대의 이심률인 상태여야한다. 이때 지구는 평소보다 몇 백만 킬로미터 정도 태양에서멀어진다.

② 지축과 북극, 남극의 위치가 평소보다 수직에 가까운 최소의 황도경사 상태여야 한다.

③ 세차운동의 긴 주기가 계속되는 동안 지구가 태양에서 가장 먼 지점에 이르면 비교적 추운 여름이 된다. 이대는 겨울에 형성된 얼음이 다음 여름동안 녹지 않는 조건이 갖추어진다.

공전궤도의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지구가 태양에너지를 받는 양과 강도는 시대와 경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것이 빙하시대를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다. 고대신화의 작성자들은 이 무서운 위험을 경고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은 세계적인 대재해의 고통을 천천히 회전하는 하늘의 맷돌과 복잡하게 연관짓고 있다.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지 어떨지는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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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기계

28 하늘의 기계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훌륭한 야금기술을 남긴 이 고대의 지성인들은 그들의 언어를 일상적인 언어로 남기기보다는 신화의 뒷편에 남기려하지 않았을까? 만약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면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행성이 일렬로 늘어설때, 이유없이 단파 무선 주파수가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이미 기원전 3세기의 칼데아의 역사가가 설명한 것이다. 오는 2000년 5월에 그런 일이 발생한다.  마야문명이 예언한 제 5태양의 종말일에는 행성이 특이한 구조를 이룬다. 4만5천2백년동안 단 한 번 일어나는 구조다. 이렇게 일렬로 늘어서서 잡아당기면 안그래도 원심력 때문에 적도부근이 불룩한 타원형인 지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팽이를 돌려본 적이 있는가? 팽이가 방해를 받지 않고 돌아가는 동안 팽이는 똑바로 서있다. 팽이의 축이 수직에서 벗어나는 순간 원래의 방향과는 거꾸로 천천히 움직이는 회전이 발생한다. 이 회전이 세차운동이며 축이 향하는 방향을바꾼다. 이렇게 세차운동은 영원히 계속된다. 이 운동은 매우 정확해서 기원전 3000년의 북극성이 용자리의 알파별이었고 그리스 시대에는 작은곰자리의 베타별이었으며 1만4천년에는 직녀성이 될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정리해보자.
  - 지구는 수직에서 23.5도 기울어져있으면서 4만1천년에 걸쳐 1.5도의 가감이 생긴다
  - 지축의 세차운동 1주기를 끝내는데에 2만5천7백7십6년이 걸린다
  - 계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공전궤도상의 여러 지점이 태양광선에 닿는 각도이다

 

29 고대 암호 속의 첫번째 실마리

 

  지구 공전궤도를 바깥쪽으로 확대해서 천구상에 커다란 원을 그린 것을 황도라고 부른다. 황도를 둘러싸고 남북으로 약 7도의 폭으로 확대된 별띠가 있는데 이것이 황도대의 12별자리다. 양, 황소, 쌍둥이, 게, 사자, 처녀, 천칭, 전갈, 궁수, 염소, 물병, 물고기자리가 그것이고 황도를 감싸는 이 별자리들의 간격은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지구가 공전을 하면 12성좌 중 하나를 밤에 볼 수 있다. 1년내내 태양은 지구의 관찰자와 황도대 12성좌 중 하나 사이에 존재한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태양이 뜨는 동쪽 하늘을 살펴보면 별자리가 반드시 보인다.

 고대인들은 1년동안 네 개의 방위점(춘분, 하지, 추분, 동지)을 정했고, 방위점과 황도대의 별자리와의 연관을 중요한 것으로 간주했다. 특히 춘분날 아침에 태양이 떠오를 때 그곳에 보이는 별자리는 지축의 세차운동 때문에 변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이들은 매우 천천히 도는 주기에 따라 황도대의 각 별자리가 순서대로 여기에 온다는 것도 알고있었다. 이 주기는 거의 2200년 정도다. 2000년동안 매년 춘분이면 태양이 물고기자리에 떠올랐다.

 “히파르코스는 그리스의 천문학자, 수학자로 세차운동을 발견했다. 끈기있는 관측의 결과이며 예리한 이성으로 이룩한 일이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있는 이 주목할만한 발견은 오히려 더 오래전에 발견한 정보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토록 오래된 신화들은 공통적인 이야기와 수치를 제시하는데,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108, 9×13같은 수치들은 베다와 앙코르와트, 바빌론, 북구의 발할라, 헤라클레이토스의 불길한 발언 속에 나타난다. 신들의 죽음과 재생, 지구와 하늘이 그 둘레를 도는 거대한 나무들, 소용돌이, 우유와 크림을 휘저어서 버터를 만는 기계, 송곳 들. 이런 이야기들은 천체의 움직임과 관계가 깊은 비유들이며 토속신앙이나 숭배와는 무관한 것들이다.

 그리스인들이 문명의 무대에 등장했을 때 이미 몇 세기 분량의 먼지가 위대한 고대의 유적에 얹혀있었다. 유적가운데 몇 개는 이미 해독 불가능한 전통적인 의식과 신화와 옛날 이야기에 남아있었다. 암호화된 과학의 흔적이 그 이야기에 묻혀있다면?

 

30 우주의 나무와 신의 맷돌

 산티나 교수와 폰 테헨드 교수는 “햄릿의 맷돌”이라는 책 속에서 많은 증거를 제시하며 고대신화 가운데 몇개가 세차운동의 복잡한 기술적 자료를 전달할 수단으로 준비되었다고 말한다. 1969년에 출판한 이 책에 대해 아무런 반향이 없었던 것은 전문가들도 알기 어렵고 일반인들은 더더욱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고대신화 속에서 세차운동의 메세지를 되풀이해서 전하고 있는데, 이 신화들 속에 드러나는 중요한 이미지와 상징의 하나인 “하늘의 혼란”이 세계적인 대변동을 다룬 고대 전승 속에서도 묘사되어 있다. 이런 대변동은 자연스럽게 생길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 속에 그것과는 거리가 먼 세차운동의 주제가 삽입되어 있다.

 북구의 신화에는 “500개의 문과 40개의 문이 발할라의 벽에 있을 것이다. 800명의 전사가 각각의 문에서 나와서 이리와의 싸움에 나선다.”라고 말한다. 이 숫자를 그대로 세어보자. 540×800=432,000이다. 이런 숫자는 우연히 들어간 것이 아니다.

 산티나와 데헨트가 우연히 발견한 고대의 메세지의 기본적인 이미지는 빛나는 돔인 천구를 거대하고 복잡한 기계로 바꾸면 쉽게 드러난다. 그 다음에는 물레방아 바퀴와 휘저어 섞는 기구, 소용돌이, 손으로 돌리는 맷돌처럼 이 기계를 영원히 계속 돌리는 이미지가 나타난다. 12성좌가 바뀔 때마다 하늘의 거대한 매카니즘이 거대한 기어를 움직이는 듯하다. 고대의 과학적 언어에서 이그드라실은 물레방아의 굴대처럼 세계의 축을 표현하고 있다. 이 축은 바깥으로 뻗어나가 천구의 북반구 북극에 다다른다.

 축에 매달려 있는 두개의 교차하는 큰 원이 테두리를 이루고 있다는 견해는 고대인의 우주에 대한 구상리라기 보다 암호이며, 천문학적 사실인 세차운동을 비유한 것이다. 이런 증거는 여러 전승과 신화에서 나타난다. 중앙 아메리카의 전승에서 하늘을 받치는 네 기둥 역할을 한 바카브라는 신은 춘분, 추분, 하지, 동지 때 떠오르는 네 개의 별자리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들은 대홍수가 일어나자 자리를 버리고 도망가버렸다고 전한다.

 맷돌이라는 비유도 그 중 하나다. 이런 비유들에서 쇠로 만든 버팀대는 천구의 좌표를 나타내고 세계의 햇수의 틀을 표현한다. 거대한 소용돌이도 고대의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오딧세이나 인도양과 태평양의 다른 문화에서도 나타난다. 맷돌과 소용돌이는 그만큼 전세계 공통적이다.

 개가 등장하는 경향도 의도적인 것이다. 체로키족의 개가 달리는 길(은하수), 핀란드신화의 쿨레르보가 데리고 다닌 검은 개 무스티, 오딧세이가 돌아올 때 처음 그를 알아본 개, 삼손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우 등은 길을 여는 개를 형상화한다. 오리온이 개를 기르는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리온이 기르던 개가 바로 시리우스 별자리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리우스를 개로 여겼고 오리온 자리를 오시리스신과 연관시켰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오시리스의 강력한 신화와 친숙한 틀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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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지구의 긴 겨울에 태어난 인류

 역사라는 것은 인류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시대를 의미하며 그 기간동안 인류전체가 한꺼번에 파멸의 위기에 직면한 적은 없다. 그러나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도 그랬을까? 우리 선조들은 절멸당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종말론적인 신화의 무대는 바로 그런 시대가 아닐까?

 40만년 전에는 이야기를 만들거나 신화를 만들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출현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확실히, 원시적인 종족은 40만년전에서 10만년 전 사이에 존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가 인류와 유인원이 구분되는 시기다. 우리와 똑같은 인류는 11만  5천년이거나 5만년 전에 출현했을 것이다. 대재해를 인류가 경험했다면 지각 대변동은 적어도 11만 5천년 전에, 더 가능성이 높게는 5만년 전에 일어났다는 말이다.

 이 시점에서 지질학과 인류학이 부합된다. 마지막 빙하기가 시작된 시기와 진전된 시기가 문명화된 인류가 발생하고 급격하게 증가한 시기와 중첩되기 때문이다. 서로를 잘 모르는 이 두 학문이 그 사실을 미리 짰을리도 없다. 마지막 빙하기가 11만 5천년 전에 나타나고 그 이후로 만년설은 확대와 축소를 되풀이 했다. 만년설이 가장 빠르게 퍼진 것은 6만년 전에서 1만 7천년 사이다. 빙하의 전성기가 1만 5천년경이며 1만 3천년부터는 불투명한 이유로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기원전 8천년경에 위스콘신 빙하기는 완전히 끝난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대두한 것은 지질적으로나 기후적으로나 길고 거친 시기였다. 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어떠했을 것이라는 추측에 앞서서, 우리는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이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우리와 완전히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들은 거칠고 황량한 시대에 몇 번이나 절멸의 위기에 처했을까?

 

27 지표는 암흑으로 뒤덮이고 검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빙하시대에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게 무서운 힘이 덮쳐왔다. 그 힘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당시의 다른 큰 동물들이 받은 피해의 증거로 알수 있다. 빙하시대에 아메리카에 살던 많은 포유동물들이 멸종했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빙하시기의 마지막 7000년 기간인 기원전 1만5천년에서 기원전 8천년 사이에 멸종했다. 이유나 원인은 뒤로 하고 이 시기에 멸종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찰스 다윈은 이 혼란이 지구의 구조 전체를 흔들어놓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신대륙에서는 70여종의 대형 포유동물이 멸종했다. 코끼리, 맘모스도 여기에 속한다. 약 4000만마리 이상의 동물이 죽었다. 그런데 집중적으로 죽은 것은 기원전 1만 1천년에서 기원전 9천년 사이다. 이 전의 30만년동안 20여종만 멸종했다는 사실을 보면, 기원전 1만5천년에서 기원전 8천년 사이에 떼죽음을 당했음을 알 수 있다.

 알래스카와 시베리아 북방은 기원전 1만3천년부터 기원전 1만1천년 사이에 대혼란에 빠진 듯하다. 북극권의 가장자리는 대규모 천재지변의 흔적이 남아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물들의 유체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엄청나게 많은 맘모스는 상아가 완벽하고 살이 붙어있어서, 지금도 개들의 먹이로 쓸 수 있다. 알래스카의 페어뱅크스의 레스토랑에서는 맘모스 스테이크를 메뉴로 내놓고 있다. 엄청난 힘이 이런 파국을 초래했을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동물이 알래스카에 살았을까? 송곳니가 발달한 호랑이, 낙타, 말, 코뿔소, 당나귀, 사슴, 사자, 족제비 등의 동물이 발견되었다. 이 정도면 동물의 왕국 수준이다. 아마 지금과는 완전히 환경이 달랐을 것이다.

  다양한 층에서 당시의 상태로 얼어있는 석기가 나왔다. 동물상도 있었다. 인류는 알래스카에 살고 있었다. 몇 톤씩이나 되는 동물들은 누가 그런 흔적도 없는데,찢어지고 끊어진 채 한 곳으로 날려와 뒤엉켜 여기에 쌓였고 검은 진흙이 덮이고 얼어붙었다. 시베리아도 마찬가지다. 로마시대부터 지금까지 10년마다 4만개의 상아를 파냈다. 코뿔소와 영양, 말, 들소, 호랑이 등이 발견되는데 온난한 기후가 아니면 살 수 없는 동물들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동물의 유체가 더 증가한다는 것이다. 거기다 동물들의 뱃 속에서 발견된 식물들, 풀, 초롱꽃, 미나리아재비, 사초, 야생콩은 이 추운지방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동물들이 원래 얼음이 뒤덮힌 땅에 살았던 것이 아니고 죽었을 때 얼음으로 뒤덮였다는 설명이 유일하게 논리적이다. 그런데 세계의 다른 지역이 마지막 빙하시기를 끝내려고 했던 시기에 왜 낙원이었던 죽음의 겨울을 맞이한 것일까?

  끔찍한 규모의 화산폭발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거의 모든 진흙 속에 화산재가 퇴적되어 있는데 이것은 위스콘신 빙하기가 쇠퇴하는 중에 화산분화가 다발한 증거로, 로스엔젤레스, 캘리포니아, 오리건, 콜로라도, 더 나아가서는 중앙 아메리카, 남 아메리카, 북대서양, 아시아, 일본에서도 있었다.

 1883년의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은 3만6천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4827킬로미터에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진원지에서는 해일이 발생해 파도가 30미터를 넘었고 증기선은 수 킬로 내륙으로 파도를 타고 날아갔다. 18세제곱 킬로미터의 바위와 재, 먼지가 날려 지구의 하늘은 2년동안 눈에 보일 정도로 어두웠으며 석양은 매우 붉었다. 지구의 평균기온은 크게 떨어졌다. 연속된 폭발이었다면 신화에 나온대로 하늘이 검어지고 태양과 달이 사라질만 한 것이다.

 대격변이 있고난 세계 각 지역은 빙하에서 벗어났지만, 그 전까지  전혀 얼음이 없던 알래스카, 시베리아는 지금과 같은 기후로 변했다. 당시의 해면은 지금보다 121미터 정도 낮았다. 그런데 엄청난 분량의 만년설이 갑자기 녹기 시작했다. 해면은 상승하고 대륙과 대륙을 연결하던 섬들이 사라졌다. 산꼭대기와 동굴로 도망가던 동물과 사람은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이 대홍수는 세계 전역에 큰 타격을 주었는데 몇 백년 후에 완전히 물이 빠졌다. 이 세계적인 사건들은 곳곳에 신화와 전승으로 남아 지질학적 발견을 증언하고 있다. 과연 우리의 상상력이 기발한 생각을 만들어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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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불가사의

24 꿈의 메아리

태고로부터 전승되어온 몇 개의 위대한 신화는 인류가 세계적인 대변동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서로 관계가 없을 듯한 문명들의 신화가 이렇게 비슷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메르의 길가메시는 거대하고 끔찍한 대홍수로 사라진 시대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그는 대홍수때 살아남아 인류를 존속시킨 대가로 불사의 몸을 얻은 우투나피시팀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다. 아주 오래 전에는 신들도 땅에 살았단다, 공기의 신 아누, 하늘의 주신 엔릴, 전쟁과 사랑의 신 이슈타르, 인류의 친구이며 보호자인 에아...

그림설명: 길가메시 서사시 점토판

신들은 엄청나게 늘어난 사람들과 그들의 싸움질을 보기 싫어 인류를 멸망시키려한다. 에아는 우투나피시팀을 가엽게 여겨 배를 만들고 살아있는 종자를 배에 실으라고 한다. 홍수가 일어났다. 바람과 물과 어두움, 신들조차 무서워했다. 그 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거의 같다. 중요한 것은 마치 본 듯이 생생히 이 파멸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일한 이야기를 멕시코에서도 볼 수 있다. 4태양의 종말이 바로 그것이다. 아즈텍인들은 두 사람만 살아남았다고 전한다. 거대한 배를 만들어 산꼭대기에 도착한 그들은 땅으로 내려와 많은 아이들을 낳았는데, 아이들은 비둘기가 나무 위에 앉아서 말을 알려줄 때까지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말은 각각 달라서 아이들은 서로 이해할 수 없었다.

중앙 아메리카의 메초아카네섹스 족의 전승은 창세기와 메소포타미아의 그것과 너무나 같다. 테스카틸포카라는 신은 테스피의 가족을 큰 배에 태워 살려주며 동물과 종자를 배에 실었고 배는 산의 정상에 도달한다. 테스피는 상륙해도 좋을지를 알아보기 위해 콘도르를 날려보낸다. 콘도르는 돌아오지 않고 다른 새를 날려보냈는데 오직 벌새만 잎 달린 가지르 물고 돌아왔다. 다시 인구가 번성하고 땅위에 넘쳤다.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의 마야족도 위대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남아 인류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한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며 그 형태가 비슷하다. 북 아메리카도 마찬가지다. 신화 속에 남아있는 인류의 대홍수 기억은 어디까지 퍼져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500편 이상의 홍수전설이 있고 86편을 조사한 리처드 안드레 박사는 62편이 메소포타미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판단한다. 중국과 말레이, 라오스와 태국, 버마의 카렌족, 베트남, 오세아니아에도 홍수의 전설은 있다.

그리스 신화는 시대별로 종족을 설명한다. 황금종족은 신처럼 살았다, 잠을 너무많이 잤기 때문에 죽었고 제우스의 명령으로 지구바닥에 가라앉았다. 은의 종족과 동의 종족, 영웅의 종족에 이어 철의 종족이 나타나는데 바로 현생인류다. 흥미있는 것은 동의 종족인데, 그들은 거인의 힘과 강한 다리에 강한 손을 가졌고 프로메테우스라는 거인족이 인간에게 불을 주는 잘못을 저질러 제우스가 사멸시켰다. 신들이 지상을 단 한 번에 휩쓸어버린 방법은 홍수였다.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인 데우칼리온은 피라를 아내로 맞이했고 피라는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의 딸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데우칼리온에게 나무 상자를 만들어 그 속에 필요한 것을 모두 넣고 피신하라고 이른다. 홍수가 끝나고 이들이 제우스에게 제물을 바치자 제우스는 돌을 던지라고 한다.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자가 피라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된다.

인도에도 비슈누신이 마누에게 비슷한 일을 한다. 이집트에서는 세티 1세의 묘에서 사나운 홍수로 불화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멸망시킨 달의 신 토트의 이야기가 나온다. 호피족의 신화는 매우 명쾌하다. “최초의 세계는 인류의 잘못으로 하늘과 지하에서 나온 불이 모든 것을 태워서 파괴되었다. 두번째 세계는 지구의 축이 뒤집혀서 모두가 얼음으로 뒤덮였다. 세번째는 세계적인 홍수로 끝났다. 현재는 네번째 세계다. 이 시대의 운명은 사람들이 창조주의 계획대로 행동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결정된다”

25 종말론의 다양한 가면

이슬람교에 귀의하기 전의 이란에 살았던 아베스타 계 아리안 인도 호피족과 비슷한 것을 믿고있다. 최초의 시대데 살았던 사람들은 순수하고 죄가 없었으며 키가 컸고 장수를 누렸다. 그 시대가 끝날 무렵 악마가 성스러운 신 아후라 마즈다에게 싸움을 걸어 재난이 잇따른다. 제 2시대는 악마가 실패한다. 제 3시대는 선과 악이 균형을 이루었다. 제 4시대, 현재는 악이 승리하기 시작했다.

흥미있는 것은, 제 1시대의 종말에 있었던 재난이 홍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악마인 안그라 마이뉴가 습격해오자 겨울이 열 달로 늘어나고 여름이 두 달로 줄었다. 모든 것이 얼음에 파묻혔다. 아후라마즈다는 이마라는 사람에게 지하저장소를 지어 짐승과 불꽃을 들고 들어가라고 한다. 물을 흐르게 하고 푸른풀을 자라게 하고 여기서 살아남으라고 한다. 하늘의 1/3이 악마의 지배에 들어가고얼음이 지표를 뒤덮은 재해였다.

신의 경고와 함께 세상이 무너지고 소수의 사람이 구제되는 이야기는 세계 각지에 존재하고 있다. 혹독한 추위와 깊은 암흑, 인류를 줄이기 위한 방편, 배고픔과 고통, 식인, 죽음... 또는 홍수와 구름, 어둠과 함께 사라진 해와 달... 행성은 궤도를 바꾸고 태양과 달과 별은 움직임을 바꾼다. 땅은 갈라지고 풀은 마르며 나무는 연기를 내뿜고 바위는 가루로 변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다양한 형태의 설화와 전승과 상징적 이야기들로 전세계적인 분포를 보이며 남아있다.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의 튜튼족은 다른 문화보다 태고의 기억이 신화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고대의 음유시인과 현인들의 노래들에 실린 이야기들은 학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동쪽에 있는 먼 삼림에서 나이를 먹은 거인이 어린 이리를 불러들였다. 이리들 중 한 마리가 태양을 쫓아가 손에 넣으려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매년 이리는 강해지고 마침내 태양에 도달했다. 태양은 줄어들어 피로 물든 것처럼 붉어졌다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 그 후 끔찍한 겨울이 닥쳤다. 전쟁이 일어나고 인간은 이리처럼 변해 서로를 죽였다. 세계는 공허한 나락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던 중 신들이 묶어놓았던 큰 괴물이리가 쇠사슬을 끊고 도망쳤다. 이 괴물 펜리르가 몸부림을 치자 세계가 격렬하게 움직였다. 산들은 무너져내리고 정상에서 기슭까지 갈라졌다. 신에게 버림받은 인간은 땅 위에서 한꺼번에 사라졌다. 별은 하늘에서 표류하다가 땅 사이로 떨어졌다. 갈라진 틈에서 불이 나오고 증기로 가득찼다. 모든 생물과 생명이 사라졌다.

그 다음에는 모든 강과 바닷물이 넘쳐 홍수가 일어났다. 파도와 파도가 맞부딪치고 육지는 바다 속에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런 재해 속에서도 물푸레 나무 이그드라실 안에 숨어있던 사람들은 죽음을 면하고 다시 시작하는 시대의 시조가 되었다. 서서히 육지가 파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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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세계의 종말을 계산하는 컴퓨터

  마야인들은 자신들의 지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있었다. 케찰코아틀이 창조한 최초의 인간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천리안을 가지고 축지법을 쓰며 하늘의 천장 네 모서리와 지구의 둥근 표면도 조사했다는 이 ‘재규어’들이다. 이 종족을 질투한 다른 힘 센 신은 “우리의 창조물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좋지 않다. 다알고 다 본다면 그들도 신이 되지 않겠는가?”며 그들이 지구의 일부분만 보도록,눈에 안개를 불어넣어 시야를 가렸다. 최초의 인간들은 지혜와 지식을 빼앗겼다.

 에덴동산의 이야기와 흡사한 이 이야기는 물론 정복자들이 도착하기 이전부터 간직해온 전승이다. 지구를 조사하고 하늘을 조사했다는 최초의 인간들과 아담은 다른 존재일까? 치밀하고 창의적이며 세련되고 정확한 역법을 바탕으로 고도의 수학적 계산을 이용한 마야의 위대한 천체관측도 그냥 우연일까?

 우스운 것은 이런 천체도를 그릴 능력이 있었던 마야인들이 바퀴하나 발명하지 못했을까, 영원한 세월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현하려는 업적을 남기면서 물려쌓는 천장대신 아치형 천장의 원리는 발견하지 못했을까, 백만단위는 헤아리면서 옥수수 한자루 계량하는 방법은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이 모순은 뛰어난 문명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그들은 올멕에게서 역법체계를 가져왔다. 그러나 올멕은 누구로부터?

 마야력에 따르면 1태양년은 365.2420일로 0.0002일의 오차만 난다. 달의 공전주기도 29.528395일로 29.530588로 계산한 최신과학에 뒤지지 않는다. 월식과 일식을 계산하는 표, 0의 개념, 자릿수를 이용한 수의 표현방식 등 근대 수학의 발견을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처럼 마야인도 금성이 새벽별이자 저녁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구에서 보았을 때 금성이 같은 장소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584일을 근사치로 계산하고 있었다. 이 샛별의 회합주기를 성년(촐킨)이라고 불렀는데, 오차수정방법까지 있었으며 6000년 동안 단 하루가 차이나는 역법이었다. 왜 이런 정밀도가 필요했을까?

 그들은 긴 기간을 계산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었고 대주기에 따라 세상이 파멸과 재창조를 거듭한다는 믿음을 표현했다. 그들에 따르면 현재의 대우주는 기원전 3114년 8월 13일에 해당하는 4아하우 8쿰쿠의 암흑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대주기는 2012년 12월 23일인 4아하우 3칸킨에서 끝난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그들은, 시간은 사람들의 생명과 문명에 관계없이 주기와 함께 영속한다고 믿었다.

 서구인들의 대부분이 세계가 기원전 4004년에 창조되었다는 어셔 대주교의 견해를 파기한 것이 200년전의 일이다. 마야는 몇 백만년이라는 숫자를 가볍게 다르면서 벌써 오래전에 이런 믿음을 숫자로 나타내고 있었다. 도대체 실용적이지 않은 이 숫자는 무엇에 필요했던 것일까?

 

22 신들의 도시

 중앙 아메리카 대부분의 전설은 세계의 제 4시대가 겪은 비참한 최후를 전한다. 대홍수가 일어난 후에 하늘에서는 태양이 사라지고 불길한 암흑이 뒤덮혔다. 누군가가 성스러운 불꽃 속으로 몸을 던져야 태양이 생길 것이라고 신들이 외치자 두 명의 신이 뛰어들었다. 한 명은 불꽃의 중앙에 타올랐고 다른 신은 불꽃의 가장자리에서 천천히 타올랐다. 그러자 태양이 서서히 떠올랐다.

 이 시기에 태어난 것이 케찰코아틀, 비라코차와 쌍둥이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한,턱수염을 기른 백인형상이다. 안데스에서 비라코차의 도시가 티아우아나코였다면 중앙 아메리카에서 케찰코아틀의 도시는 제 5의 태양이 생긴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이었다.

 케찰코아틀의 피라미드와 태양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가 죽은자의 길을 따라 나란히 서있다. 이 길은 동북쪽으로 기울져 15도 30분 정도로 향하고 있는데, 천문학자들 중에는 이 각도가 이 길을 건설할 당시의 플레이아데스 성단의 방향을 맞춘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이 길이 은하수라는 주장도 있다.

 

  발굴당시 태고의 신전을 파고들어가자 6단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피라미드가  나왔는데 높이 22미터, 토대는 2만5천 제곱미터였다. 거대한 뱀의 머리 조각이 케찰코아틀을 상징한다. 죽은 자의 길 주위에 서있는 주요 건축물 사이에는 복잡한 연관이 있다고 판단된다. 마치 태양계를 정확히 축소한 듯하다. 케찰코아틀 신전을 태양으로 치면 죽은 자의 길을 따라 서 있는 건축물들은 정확히 생성과 소행성의 궤도를 반영하고 있다. 과연 우연일까?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가 오리온자리를 그려놓았다는 주장과 비교해보면 여기의 천체도도 마찬가지로 불가사의다. 왕이 죽어 신이 된다는 이 신전은 기자 피라미드의 종교적 역할과 거의 비슷하다. 기자와 마찬가지로 세 개의 피라미드가 서있고 길을 따라 배치했다. 세번째 피라미드는 의식적으로 어긋나게 배치한 것도 기자와 같다.

 아즈텍인들이 지은 이름인 ‘죽은 자의 길’은 지진 전문학자가 이 길이 걷는길이 아니라 물 웅덩이였윽 것이라는 추측을 하면서 잘못지은 이름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높은 벽이 가로막은 이 길에 물이 찼다면 타지마할보다 더 장대했을 것이다. 운하와 수로시스템이 현재는 16킬로 떨어졌지만 고대에는 가까웠을 텍스코 호수까지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무엇을 위해 만든 것일까? 지진학자들 말대로 지진을 예측하기 위한거라면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진 사람들이었음은 틀림없다.

 

23 태양과 달과 죽은 자의 길

 1906년 태양의 피라미드를 조사했을 때 피라미드 상부에서 운모로 이루어진 두꺼운 층을 발견했다. 운모는 시장가치가 있어서 발견되자마자 매각한 것이다. 최근에 테오티우아칸의 다른 장소에서도 운모를 발견했는데 이 운모의 신전은 태양의 피라미드 서면에서 남쪽으로 300미터 쯤 떨어진 곳에 있는 파티오 건축물 중의 하나다. 27제곱미터의 넓이에 2층으로 이루어져 바싹 붙은 운모층의 성분은 브라질에서만 생산되는 종류의 것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바닥재로 쓰지 않는 운모를 바닥 아래 숨긴 것도 괴이하다. 현대과학에서 운모는 축전기나 전기의 절연체, 내화물로 쓴다. 고속 중성자에 대해 부전도성이 있어서 핵반응을 감속시키는 감속재로 사용한다.

 춘분과 추분에 태양광선이 피라미드 북쪽에서 내리쬐면 한낮에 완벽한 직선 그림자가 서면 아랫단에 생긴다. 완벽한 그림자가 사라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66.6초다. 이 피라미드를 만든 이후로, 그리고 앞으로도 무너질 때까지 피라미드는 정확한 시계기능을 계속할 것이다. 부패한 독재자와 그 하수인이 피라미드의 겉을 파괴하고 조각상을 파괴했다. 엄청난 훼손에도 불구하고 건설자들이 계획했던 기능은 아직 그대로인 셈이다.

 피라미드의 중요한 기하학적 요소는 지상에서 정상까지의 높이와 밑면 둘레다. 기자와 태양의 피라미드 모두가 파이값을 적용해 설계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수학적으로 정밀한 이 값을 우연히 사용했을리는 없다. 고도의 수학지식을 사용했을 뿐만아니라 이집트와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같은 목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3차원의 피라미드를 이용해 구체라는 개념을 표현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태양의 피라미드에서는 훼손되지 않은 지하도를 발견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배수로였다. 복잡한 배수시스템으로 보아 물이 매우 풍부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데스의 아카파나 피라미드 역시 물에 둘러싸여 있다. 테오티우아칸을 건설한 문명은 의식적으로 복잡한 정보를 부호화해서 내구성이 강한 유적에 수학적 언어로 남겨두었다는 강한 인상을 받는다. 수학적 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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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도시1

19 저승의로의 모험, 별로의 여행

  제3자 가설은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두 문명이 태고에 살았던 선조들로부터 동일한 두 문명의 유산을 계승했다고 가정한다. 두 문명이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차이가 나는 것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이 이론은 도대체 태고의 문명이 어디에 있었고 어떤 특징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만약 멕시코의 문명도 이 태고문명의 영향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멕시코도 이집트나 슈메르와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집트와 슈메르는 역사적으로 계속 교류가 있었으므로 단절된 멕시코는 좀더 고립성향이 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것이 나타난다면?

 이집트인들은 이상하게도 난쟁이를 특별히 좋아하고 숭배했다. 이것은 올멕도 마찬가지다. 이집트인과 올멕인들은 난쟁이가 신들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집트 초기왕조의 헬리오폴리스에서는 전지전능한 아홉 신이 숭배를 받았다. 아즈텍과 마야인들은 전능한 아홉 명의 신을 믿고있었다. 별로 환생하는 케찰코아틀의 신앙은 죽은 왕이 별로 다시 태어난다는 이집트의 종교관과 비슷하다. ‘사자의 서’는 어떤가? 중앙 아메리카인들은 저승이 9층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죽은 사람은 4년동안 저승의 9층을 여행하면서 곤란과 위험을 극복한다고 믿었다. 야수가 심장을 먹어버리는 저승의 7층과 이집트인들이 믿었던, 심장과 깃털을 저울에 올려놓고 균형이 깨지면 그 심장을 야수가 먹어버리는 심판의 장소는 다른 것일까?

 이집트의 파라오는 저승세계를 거치지 않고 막바로 별로 태어날 수 있는 의식을 거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 “입을 연다”는 의식이다. 고대 중미의 “제물”이라는 말은 “입을 연다”는 의미다. 슈메르에 오안네스가 있다면 마야에는 우아나라는 “물 속에 집을 가진 자”가 등장한다. 창조신과 거대한 괴물의 대결, 탐욕스러운 여신, 이 비슷한 전승과 폭력의 형태는 과연 우연일까?

 몬테알반의 유적에는 수십 개에 달하는 비속에 백인과 흑인의 모습을 함께 조각했다. 다른 조각과 비석에 보았던 강렬한 자부심과는 달리, 여기서 그들은 모두 벌거벗고 웅크리며, 거세당하고, 손발을 뻗고 누워있다. 전쟁에서 포로가 된 죄수들의 시체? 전쟁의 희생자에 인디오는 하나도 없고 백인과 흑인만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멕시코에서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를 가졌던 몬테알반 사람들은 트레스 사포테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선과 점으로 계산하는 수학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경이로운 역법도 사용했는데 이것을 올멕이 도입하고 마야가 계승했다. 이 역법이 나타내는 세계 종말일은 2012년 12월 23일이다.

 

20 최초의 인간들의 아이들

치아파스 주의 팔렝케에서 행콕 아저씨는 마야의 비명이 있는 신전 북동쪽 아래에 앉아 정글이 암흑 속으로 잠겨들고 있는 북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신전은 세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있고 높이 30미터의 9단 건축물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위에 서있다. 오른 쪽으로는 궁전이 보이는데 피라미드 형식의 넓은 직사각형 토대가 있고 주위에 4층 탑이 서있다.

 신전 중앙에 있는 방에는 괴물과 인간의 얼굴, 그림문자들을 조각해놓았는데 그림문자와 음성을 나타내는 상징이 혼합적으로 구성된 비명은 아직 완전하게 해독하지 못했다. 가파른 내부 계단을 내려가면 둥근 천장의 좁은 방이 있다. 벽에는 저승세계 아홉 지배자들의 모습을 부조해놓았고 석관 안에는 20개의 비취로 만들어진 가면이 두개골 전면에 덮여 있었다. 발판이 넓은 이 석관은 이집트의 것과 닮았는데, 이집트의 것이 나무로 만들어 세워두는 것이었다면, 세울 수도 없는 이석관의 발쪽을 이렇게 넓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석관의 뚜껑에는 지금껏 단정히 깎은 머리에 꽉끼는 커프스를 손발목에 달고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레버와 조종장치를 조작하고 있는 남자가 나타난다. 의자옆의 판자에 대갈 못과 튜브, 기계부품처럼 보이는 것이 있어 기계장치처럼 보인다. 석관 속에서 발견한 작은 비취 조각상은 긴 외투를 걸치고 턱수염을 기른 늙은 백인상이다.

  팔렝케에서 북쪽으로 700킬로미터 떨어진 욱스말의 피라미드는 옛부터 마술사의 피라미드나 난장이의 피라미드라고 불러왔다. 난쟁이들이 하룻만에 피라미드를 지었다는 마야의 전설에 따른 것이다. 피리만 불면 돌이 움직였다는 이 전승은 안데스의 “트럼펫과 허공으로 날아다니는 돌” 전승과 거의 같다. 돌을 공중으로 띄워 옮기는 전승은 이집트에도 있다. 여기에 새겨지 모자이크 모양에는 십자가 모양이 자주 나타난다. 십자군 병사들이 즐겨 사용한 끝이 넓은 십자가와 성 안드레이 십자가 형태도 있다. 라벤타의 올멕조각 ‘뱀속의 남자’에도 두 개의 안드레 십자가가 있었다. 턱수염을 기른 남자, 뱀,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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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달린 뱀2

16 뱀의 성지

   행콕아저씨는 올멕문명의 중심지인 베라크루스로 향한다. 기원전 2천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올멕문화는 아즈텍보다 1500년 전에 존재하고 있었다. 고무산지에 살았던 이 사람들의 이름은 올멕의 말뜻대로 ‘고무사람들’이다. 아즈텍인들은 올멕인이 만든 도구를 신성하게 여겨 신전에 보물로 두었다. 코아트사코알코스라는 지역에서는 현재 석유가 쏟아져나오는 바람에 고고학상으로 중요한 유적이 많이 파괴되고 있다. 코아트사코알코스라는 말의 뜻은 ‘뱀의 성지’다. 케찰코아틀이 처음으로 상륙한 곳이라고 전해온다.  

 역시 올멕문화 지역인 산티아고 툭스툴라에는 3미터가 넘는 조각상이 있는데, 헬멧을 쓴 아프리카인이다. 확실히 흑인의 풍모이며 빙하시대 후반인 기원전 1만5천년 경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사람들 중에 흑인들도 있다는 증거다.

 

  사포테스라는 곳에서는 스털링이라는 사람이 역법비석을 발견했는데 이것을 자세하게 조사해보자 마야보다 더 빨랐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야에서 발견한 가장 오래된 연대가 228년이었는데 여기서 발견한 비석에는 같은 마야와 같은 표기법으로 기원전 32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히려 올멕이 마야의 어머니문명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서도 흑인이 헬멧을 꽉 끼게 쓴 높이 2미터, 둘게 6미터, 무게 10톤의 조각을 발견했다. 거대한 현무암 덩어리는 세밀하고 명확했으며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또하나의 충격적인 발견은 작은 바퀴가 달린 장난감이었다. 스페인이 들어올 때까지 바퀴를 몰랐다는 아메리카 문명에서 바퀴달린 장난감을 출토한 것이다. 바퀴를 장난감에만 쓰지는 않았겠지...  

 

17 올멕의 수수께끼

   산 로렌소는 올멕의 땅인 동시에 케찰코아틀의 전설에 나오는 뱀의 성지이기도 하다. 고고학자들은 올멕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올멕은 중요한 문명을 건설하고 거창한 공사를 시행했으며 거대한 바위를 조각해서 운반했다. 그런데 산 로렌소에서 올멕문화가 발전했다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산 로렌소만이 아니라 신대륙 어디에서도 올멕의 문화가 발전하는 단계를 보여주는 유품은 찾을 수 없었다. 흑인의 머리를 조각한 사람들은 어디서 왔는지를 전혀 알수 없다.

 여기에는 스무개가 넘는 저수지가 있고 이것들을 현무암으로 만든 수로로 연결해놓았다. 이 정교한 수문과 수로망의 목적을 고고학자들은 모르겠다고 말한다. 특수하게 배치한 무덤에서는 60개 이상의 귀중한 조각상과 공예품을 발견했는데 비취로 만든 악기와 자은 조각상도 있다. 조각상이 묻혀있는 상황도 수수께끼고 조각상의 연대를 추정하는 것도 곤란하다. 최소한 기원전 1200년 이전에 만들어졌을 이 작품들은 신비한 힘은 느끼게 한다.

 산 로렌소에서 150킬로미터 떨어진 타바스코 주의 비야에르모사로 가는 길에는 트레스 사포테스가 있는데 올멕은 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전 1100년 사이에 이곳에 정착해서 기원전 400년까지 산 것으로 추정한다. 기원전 400년경에 갑자기 도시건설을 중단하고 건축물은 파괴되며 머리 조각상이 특이한 무덤에 매장당한다. 라벤타의 무덤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엄밀하게 만든 것으로 어떤 장소에서는 약 5000세제곱미터의 흙을 파네고 구덩이를 만들었다. 바닥에는 뱀 무늬의 블록을 깔고 다시 흙을 덮기도 했다.

 라벤타의 중요한 유적인 피라미드는 남쪽 끝에 있는데 하늘에서 보면 원형이지만 실제로는 원추형이고 벽 면에 10개의 수직고랑이 있다. 높이는 30미터이고 지름은 60미터 정도로 체적은 거의 9만 세제곱 미터다. 나머지 유적은 북쪽에서 서쪽으로 8도 만큼 기울어진 방향의 직선상에 위치하고 있고 이 축을 중심으로 몇 개의 작은 피라미드, 광장, 대지, 언덕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전체 넓이는 4.8미터이다.

 사회조직, 의식, 신앙, 인종 등 그 어떤 것도 알려지지 않은 올멕족은 멕시코 연안의 습도가 높아 뼈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다. 머리 조각상은 올멕의 것이겠지만 이 건축물들은 올멕이 아니라 그 전에 만든 것을 물려받은 것일 수도 있다. 일종의 문화로 전승한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올멕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석유채굴시 발굴한 부조는 ‘뱀속의 남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머리에 장식을 하고 향낭을 손에 들고 깃털 달린 뱀에 둘러싸인 올멕인의 모습이라고 한다. 남자는 오른 손에 작은 양동이 모양의 물건을 들고있고 왼손은 레버를 당기는 듯하다. 머리 장식은 기묘한데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머리 장식 위에는 조작판과 같은것에 두개의 X형 십자가를 새겨놓았다. 깃털달린 뱀은 케찰코아틀의 상징이지만 여기서는 굉장히 개성적인 모습을 보인다. 경직되고 구조적이어서 기계의 일부로 보일 정도다.

 어떤 조각상은 넓은 코와 두꺼운 입술을 가지고 있고 입술은 약간 열려있어서 마치 이집트 스핑크스를 연상하게 한다. 여러 인종의 다른 특징을 종합해서 창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런 조각상은 한 인물을 모델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올멕의 조각상은 흑인계에 속하는 인종을 묘사한 것이다.

이 아프리카인든 3000년전에 중앙아메리카에 있었을 것이다. 기계속에 있는 인간, 흑인머리 조각상...

 

 18 눈길을 끄는 이방인

  라 벤타에서 발견한 또다른 비석에는 키가 큰 두 사람이 대면하는 장면을 조각했는데 한 사람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한 사람의 얼굴은 온전하다. 분명히 백인 남자이며 높은 코에 길고 풍부한 수염을 가지고 있다. 올멕인이 중요시 했던 이 두사람의 만남은 무엇일까? 이 비석을 넣기 위해 만든 엄청나게 큰 방호 울타리기둥을 보면 보통 일은 아니다. 고고학자들의 말대로 이 백인은 페니키아인들이고 흑인조각상은 그들이 서아프리카에서 붙잡은 노예였을까? 그러나 세계 곳곳에 수공작품이라는 독특한 족적을 남긴 페니키아인이 올멕 유적에는 왜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올멕에는 뿌리가 없다.

   제 3자 가설이 맞는 것일까? 보통 인류사회는 무슨 일이든 시간에 따라 진보해가는데 고대 이집트 문명이나 올멕 문명은 갑자기 모든 사회형태를 지니고 출현했다. 원시에서 고도로 발전한 사회로의 이행기간이 너무 짧아서 역사라고 볼수가 없다. 수백 수천년이 걸려야할 기술적 진화가 거의 하룻밤만에 일어나고 그 사이의 과정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이들은 문명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 아닐까? 신석기에서 갑자기 조직화된 왕조시대로 돌입하고, 문자가 등장하고 거대한 건축물이 들어서고 예술과 공예가 믿기 힘든 수준에 다다르는, 이 사건의 배경은 없다. 발전의 토대가 없는 것이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가 같은 신을 섬기는 것을 보면 일리가 있다. 그들에게 문명을 전해준 사람들이 아메리카에는 오지 않았을까? 이집트와 수메르에서 대성공을 거둔 이들이 멕시코나 페루에서는 심각한 좌절을 맞아 급격하게 몰락한 것은 아닐까? 이 조각상들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전의 것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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