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부모와 한마음이 되는 길 2 용서容恕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다 
-달라이 라마의 『용서』#}

선천 세상의 상극相克 섭리 속에서 삶을 영위해오고 있는 우리는 많은 실수와 잘못들을 저지르며 살아가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인간의 몸과 마음에는 수많은 원寃과 한恨의 상처들이 남게 됩니다. 하지만 바야흐로 우주 계절변화의 시운은 봄여름의 상극시대를 마감하고 가을 우주의 상생相生문명이 열리는 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상생을 인류 생활문화의 중요한 덕목으로 삼고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상생의 새 문화를 열고 천지부모와 한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아야 하고 더불어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명과 신명간의 잘못을 용서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잘못을 용서하면서 진정으로 호생好生의 덕을 이루는 상생의 문화를 열어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용서容恕에 대한 깊은 뜻을 알아보겠습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너희들은 남 용서하기를 힘쓰라. 한량없는 덕이 있느니라. 원수를 풀어 은인과 같이 사랑하면 덕이 되어 복을 이루느니라.”(도전8:36) 하셨습니다. 

내가 남을 용서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사는 궁극의 목적은 성통공완性通功完, 즉 우주의 조화주 삼신이 부여한 대광명의 본래 성품을 깨닫고 그 공덕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본성에 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의식과 집단무의식에 있는 기억들을 지워야 하는데 그 실천방법이 감사와 용서입니다. 감사와 용서를 생활화하여 천지부모님의 뜻을 이루는 큰 일꾼이 되길 기원합니다. (감사는 8월호 참조) 

제로 상태로 돌아가자


이 책의 요지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것이 가능한 ‘제로 상태’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제로 상태에서는 어떤 생각도, 말도, 행동도, 기억도, 고정관념도, 믿음도,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다. ‘호오포노포노’의 정의는 이랬다. 

“호오포노포노Ho’oponopono는 우리 내부의 유독한 에너지를 방출해서 신성한 생각과 말, 업적, 행동이 효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간단히 말해 호오포노포노는 ‘바로잡다’ 혹은 ‘오류를 수정하다’를 뜻한다. 고대 하와이인들에 의하면 오류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들로 얼룩진 생각들에서 비롯된다. 호오포노포노는 불균형과 질병을 유발하는 이런 고통스러운 생각들, 즉 오류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방법이다. 한마디로 호오포노포노는 문제해결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우리 내면, 즉 마음속에서 이루어진다.” 

심리치료사가 호오포노포노 치유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제일 먼저 밟아야 할 단계는 주체성을 가지고 그의 마음을 근원과 연결하는 일이다. 그 근원은 흔히 사랑 혹은 신神이라는 말로 불린다. 근원과 접속한 뒤 문제를 일으키는 내부의 잘못된 생각들을 바로잡아 달라고 사랑에 호소한다. 우선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환자를 위해서. 이런 호소의 과정은 심리치료사가 참회하고 용서를 비는 과정이다. 

호오포노포노 훈련은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정체성과 매순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재충전하는 과정을 가르친다. 이 훈련의 밑바탕에는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책임이다! 호오포노포노는 문제를 시련이 아닌 기회로 본다. 문제는 과거에 대한 기억들이 재생된 것뿐이다. 우리는 문제를 사랑의 눈으로 보고 달리 행동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인생을 사는 두 가지 길: 기억이냐 영감이냐


기억記憶들이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때 나에겐 선택권이 있습니다. 그것들에 얽매인 채로 지내거나, 그것들을 변화시키고 풀어내 달라고 신성神性에 호소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내 마음을 최초의 제로zero 상태, 즉 공空의 상태,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재충전할 수 있습니다. 내가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나는 신성이 나를 창조할 당시의 바로 그 상태, 곧 신성한 자아가 됩니다. 
내 무의식은 제로 상태에 있을 때 시간도 공간도 죽음도 초월해서 무한해집니다. 기억이 지시를 내릴 때는 시간과 장소, 골칫거리들, 불확실성, 혼돈, 생각, 대처, 관리 등에 집착하게 됩니다. 기억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은 신성과의 연계는 물론이고 명료한 마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호오포노포노의 가장 큰 목표는 자아를 재충전해서 신성에서 비롯한 지혜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래의 리듬을 재구축했을 때 제로의 문이 열리고 영혼은 영감靈感으로 충만해집니다. 

“인생을 사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기억으로 사느냐, 영감으로 사느냐. 기억은 쉼 없이 재생되는 오래된 프로그램입니다. 반면 영감은 신이 여러분에게 주는 메시지이죠. 여러분은 영감을 받으며 살고 싶을 겁니다. 신의 목소리를 듣고 영감을 얻는 유일한 길은 모든 기억을 청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해야 하는 일은 정화淨化입니다.” 

기억이 없고 정체성이 없는 제로 상태에서는 한계 또한 있을 수 없다. 오로지 신성만 존재할 뿐, 신성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살면서 어쩌다가 무한한 상태에 도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흔히 ‘기억’이라 불리는 쓰레기더미 속에 파묻혀 삶을 보낸다. 

“신성으로부터 나온 영감과 무의식 속에 축적된 기억. 전자는 새로운 것이고 후자는 묵은 것이죠. 제로는 당신과 신성이 거하는 곳이자, 부와 건강과 평화라는 모든 축복이 흘러나오는 원천입니다.” 

기억은 사고다. 반면 영감은 허용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기억에 기반을 두고 살아가지만 무의식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의 마음속에 신성의 메시지가 내려온다. 하지만 기억들이 움직이고 있다면(실제로 기억들은 거의 언제나 움직이고 있다) 영감에 따라 행동하기는커녕 영감 자체를 아예 느끼지 못한다. 결국 신성의 말은 한마디도 수용되지 못한다. 머릿속을 가득 메운 소음 때문에 정작 그것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신성으로 우리에게 오는 영감과 달리 기억은 인류의 집단무의식 속의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타인의 내부에서 감지하는 순간 그들과 공유하고 있는 것들이다. 우리의 과제는 그 기억들을 모두 청소해서 영감이 흐를 수 있는 공空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회복의 문을 열어주는 용서


휴 렌 박사는 뭔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밖’이 아니라 ‘안’에서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핵심은 전적인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원망할 사람은 없다. 모든 게 내 책임이니까. 휴 렌 박사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정화 방법은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고맙습니다이다. 

“호오포노포노를 행하면 신성이 고통스러운 생각을 중화하거나 정화합니다. 단지 그것들과 나를 연결하는 에너지를 중화하는 것이죠. 즉 호오포노포노의 첫 단계는 에너지의 정화입니다. 에너지를 정화하면 경이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 에너지가 중화될 뿐 아니라 해방되면서 새로운 기초가 만들어집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공이라고 부릅니다.” 

다음은 호오포노포노의 창시자인 모르나의 기도문이다. (모르나 날라마크 시메오나 Morrnah Nalamaku Simeona, 1913~1992, 하와이의 인간문화재 치료사)

아버지와 어머니, 자식이 하나로 존재하는 신성한 창조주여… 
만일 내가, 내 가족이, 내 피붙이가, 내 조상이 당신과 당신 가족, 피붙이, 조상에게 태초부터 현재까지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상처를 주었다면 부디 용서를 바랍니다…. 모든 암울한 기억과 장애물, 에너지, 불안들을 씻어내고, 정화하고, 해방하여 이 원치 않는 에너지들을 순결한 빛으로 변형하소서…. 이제 됐습니다. 

용서를 구함으로써 치유의 길을 튼다는 것이 모르나와 휴 렌 박사의 생각이었다. 우리의 행복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의 결핍’이었다. 용서는 회복의 문을 열어주었다.

『마음의 힘』 중에서



원망을 품는 일은 우리가 용서할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의 마음으로부터 고립될 위험을 무릅쓰는 셈이다. 증오하는 느낌은 마음속 사랑과 지혜가 자유롭게 흐르지 못하게 한다. 내면에 있는 무궁무진한 사랑의 원천에 접속하면 상대를 용서하고 방해물을 허물어 다시 사랑과 연민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용서하지 않으면 원한에 속박되어 안달하게 된다. 

앙심은 과거의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기억보다 더 힘들게 우리를 몰아친다. 적의는 물컵에 든 독을 자신의 목구멍에 들이부으며 그것으로 상대방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구나 살면서 여러 차례 심한 상처를 입고, 소외당하고, 배신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심지어 누군가가 특별히 용서를 구할 때도 그 사람을 용서할 마음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이처럼 용서는 어려운 일이다. 

용서는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나 이제 와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이 한 짓을 잊지는 않았으나 상황이 달랐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바람을 미래지향적인 희망으로 바꿔 더는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용서는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보는 것이다. 자동차의 앞 유리가 백미러보다 훨씬 더 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용서는 평생 누군가에게 원한을 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문제다. 남은 생애 동안 누군가를 미워해야 한다면 정말로 다시는 행복해지지 못한다. 그래서 용서가 그토록 중요하다. 우리는 용서할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상대를 내게 피해를 준 사람으로 바라보는 대신 내가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 

용서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행동이 아니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이다. 자신의 행복과 신체 건강을 위한 일이다. 사랑과 지혜가 다시 자유롭게 흐를 수 있도록 마음을 오가는 모든 길에서 장애물을 제거하려는 과정이다. 진실로 누군가를 용서하면 원한에 가득 차 있던 감정들이 무거운 짐처럼 어깨에서 스르르 떨어져나갈 것이다. 내면에서 사랑을 느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맑은 상태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마시 시모프 (Marci Shimoff,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이유 없이 행복하라》의 저자) 
용서는 누군가에 행동을 눈감아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를 정확히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용서는 그저 우리가 붙들고 있는 에너지 덩어리, 우리가 지고 있는 그 원망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을 뜻한다. 

마이클 벡위스 (Micheal Bernard Beckwith, 아가페국제영혼센타 설립자) 
누군가를 용서하면 영혼에서 독소가 풀려날 뿐만 아니라 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빛으로 가득한 존재의 차원을 발견하게 된다. 그 세계를 설명할 적절한 말도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용서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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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데일리 티칭, 마음의 힘


시크릿 데일리 티칭 소원을 이루어주는 시크릿 습관 365

저자 론다 번 | 역자 이민영 | 살림 | 2015.01.01 | 13,800원 
2007년, 론다 번의 《시크릿》 열풍이 일어났다. 《시크릿》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원하는 것을 그저 구하고, 믿고, 받는 것이다. 꿈을 이루는 과정을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시크릿 데일리 티칭』은 그러한 열풍을 이어 ‘시크릿’을 ‘습관’으로 만들어주는 방법을 소개한다. 책의 모든 페이지에는 365일 당신의 삶을 바꿔놓을 지혜와 통찰력이 수록되어 있다. 

마음의 힘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찾아서)

저자 바티스트 드 파프 | 역자 문신원 | 토네이도 | 2014.10.25 | 15,000원
이 책은 영적이면서도 과학적인 통찰력으로 마음이, 단순한 신체기관인 심장 그 이상이라는 매력적인 증거를 흥미진진하게 제시한다. 마음은 이성을 훌쩍 뛰어넘는 지성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돈과 건강, 인간관계 그리고 성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까지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마음의 힘에 눈을 뜨고 늘 깨어 있는 마음을 유지한다면 직관과 의지, 감사, 용서 그리고 사랑과 같은 마음의 특별한 힘들을 효율적으로 가동할 수 있다.


증산도를 신앙하는 사람이라면 진리의 가르침에 따라 늘 감사感謝하고 보은報恩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먼저 진리의 원천이자 도맥이신 대자연 천지일월 부모님과 대조신大祖神이신 상제님과 태모님, 그리고 태사부님과 사부님께 감사의 예를 올립니다. 나아가 멀게는 100년 도운사의 순도자 선령신들께, 가깝게는 선배 신앙인에게 감사를 올리는 일을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나를 이 세상에 내어 주시고 성장시켜 주신 부모님과 아울러 성숙의 진리 증산도를 만나도록 인도해주신 조상 선령님들께도 항상 감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감사는 신앙의 실천방법이요 신앙 자체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천지신명께 감사를 올릴 때 그 순간 무한한 축복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는 것은 모든 깨달은 이들이 도달한 결론입니다. 내 영혼은 물론, 육신의 세포 하나하나한테도 우리가 감사할 수 있다면, 이는 사람의 영靈과 육肉을 더욱 강건하게 하고 성숙한 깨달음의 길로 다가서게 할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감사를 실천함으로써 천지조화성령의 은혜를 더욱 크게 내려 받고 천지부모와 한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보은문화를 여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필자는 감사하기에 대해 무한한 영감을 전해주는 도서 『시크릿 데일리 티칭』과 『마음의 힘』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저도 이 책의 저자 ‘론다 번Rhonda Byrne’(『더 시크릿』, 『시크릿 데일리 티칭』의 저자)과 ‘바티스트 드 파프Baptist De Pape’(『마음의 힘』의 저자) 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시크릿 데일리 티칭



●당신은 오늘 자연에 감사했는가? 
만약 지속적으로 제공되는 자연이 없었다면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은 당신이 숨쉴 수 있게 무한한 공기를 주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물을 만들어준다. 태양이 제공하는 삶의 생산력이 없다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다. 이처럼 대가 없이 주기만 하는 자연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천년 전 고대의 지혜는 우리에게 감사에 대한 진리를 말해준다. 모든 종교가 감사에 관해 설명한다. 모든 현인과 구원자는 그들의 말씀에서 감사에 관해 설명한다. 우리의 위대한 선조는 감사를 느끼는 방법을 보여주고 그러한 예시는 우리 역사에서 재조명된다. 아인슈타인이 매일 수백 번씩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한 것만 봐도 감사의 중요성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당신은 삶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될 것이다. 삶을 편하게 해준 모든 사람들의 업적과 발명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될 것이다. 오늘 아침에 샤워했는가? 전기를 사용했는가? 직장에 어떻게 도착했는가? 차, 기차, 버스 또는 걸어서? 커피를 사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휴대폰으로 전화하거나, 엘리베이터를 탔는가? 당신은 매일 아주 많은 발명품을 사용한다. 당신은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가 아니면 감사하며 사용하는가? 우리는 정말 축복 받았다, 진정으로.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라. 당신이 누웠던 침대, 머리 위 지붕, 발 아래에 카펫, 수돗물, 비누, 샤워기, 칫솔, 옷, 신발, 음식을 보관해주는 냉장고, 당신이 운전하는 차, 직업, 친구들에게 감사하라. 당신이 필요한 것을 쉽게 살 수 있는 상점(가게), 레스토랑, 편의시설, 서비스 그리고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전자제품에 감사하라. 당신이 읽는 잡지와 책에도 감사하라. 당신이 앉는 의자, 당신이 걷는 길에게도 감사하라. 날씨, 태양, 하늘, 새들, 나무, 풀밭, 비 그리고 꽃에 감사하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단어와 열정적인 감정이 만나면, 삶은 상상 이상으로 좋아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영혼 없이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아무 감흥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 마음에 진심을 담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 똑같은 말이라도 진정성이 담긴 감사는 즉시 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진정성을 담을 때 그 말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당신에게 도움이 되도록 끌어당김의 법칙을 사용하려면 아주 쉬운 이 방법을 참고하라. 매일 밤 자기 전에, 그 날의 좋았던 순간을 마음속으로 회상하고, 그 순간에 대하여 진정성을 담은 감사를 표현하라. 다음 날에도 그렇게 생각하라. 세상이 놀랄 만하고 즐거움과 사랑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하면, 좋은 일들이 당신에게 일어날 것이다. 삶에서 최고의 날이 될 것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기 전에, 원하는 것을 다시 한번 외치고 당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라. 

●삶을 빠르게 변화시키려면, 당신의 에너지에 감사를 활용하라. 당신의 에너지를 감사로 바꿀 때 삶에서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재빨리 무언가를 바꾸려면 변화할 때까지 매일 100가지씩 감사한 일을 적으라. 그리고 감사를 ‘느끼라.’ 감사의 말을 전하는 그 느낌이 바로 당신의 힘이다. 

●인생을 완벽하게 바꾸는 데 작용하는 가장 불가사의한 단어가 있다. 당신의 입에서 이 단어가 나오는 순간, 행복과 즐거움이 찾아올 것이다. 이 단어는 당신의 인생에 기적을 가져다주고 부정적인 성향을 없애주며, 모든 것에서 풍요로움을 가져다준다. 이 단어가 진실하고 완전하게 표현됐을 때 우주의 모든 힘은 당신에게 모든 것을 가져다줄 것이다. 당신과 행복 그리고 미래 사이에는 이 단어가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삶의 모든 부분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를 느끼는 것을 잊어버린다. 감사하는 마음 없이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활용한다 해도 그 어떤 것도 성취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를 느끼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당신은 불쾌한 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당신의 주파수를 감사함에 맞추고 상황을 주도하라. 


●더 행복하고 좋아지려면 세상의 진리가 삶 안으로 들어가게 하라. 주변을 돌아보고 지금 이곳에 있는 좋은 것에 감사하라.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것과 주변의 아름다운 것을 찾아보라. 불만은 삶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불만은 현재를 만들 뿐이다. 하지만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는 더 행복하고 나은 미래를 당신에게 가져다준다. 당신은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는다. 

●어떤 것에 감사를 느끼는 것, 감탄하는 것 그리고 애착을 느끼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애착은 약간의 두려움(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이거나 애착을 느끼는 것을 갖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감사와 감탄은 순수한 사랑의 표현이다. 당신이 원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애착은 멀리 던져버리고 감사한 마음과 감탄만 가지라. 만약 당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지 못할까봐, 또는 당신이 가진 무엇인가를 잃을까봐 두려워한다면 그때 애착의 감정이 일어난다. 애착을 없애기 위해서는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스스로 감사하고 감탄하라. 

●감사는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쉽고도 강력한 방법 중 하나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감사하게 된다면, 당신이 어디에 있든 관계없이 당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과 당신이 하는 모든 행동을 자석처럼 끌어당길 것이다. 사실상 감사 없이는 아무것도 바뀔 수 없다. 당신의 삶은 당신이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을 느끼는 만큼 바뀐다. 만약 감사하는 마음이 작다면 당신의 삶에는 작은 변화만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면 당신의 삶에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 있다.


●모든 것에 감사하라. 그러면 당신 안에 거대한 욕망의 불꽃이 일어날 것이다. 그 열정의 불꽃은 당신을 더 강하고 더 결단력 있게 만들 것이고, 그로 인해 당신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당신이 오늘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적어도 한 가지씩은 감사의 말을 하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다면 더 좋다. 하루를 시작할 때 당신의 기분이 어떠한지 살펴보라. 하루를 마칠 때 당신의 기분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느껴보라. 일주일 중 하루를 감사의 날로 정하고 거르지 말고 매주 실행해보라. 그리고 당신의 삶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라!

●진심으로 느끼지 못하는 감사는 단지 ‘말’에 불과하다. 당신이 감사의 힘을 진실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마음속 깊이 그 감사를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감사의 강력한 힘이다. 

●더 많이 더 깊이 감사를 연습하라. 당신이 더 깊게, 진심으로 감사할수록 당신이 가는 곳마다 더 많은 행복이 찾아오리라. 매일 매순간 감사를 연습하면 당신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라. 

●단 하루라도 좋은 일을 찾는 일, 당신 안의 좋은 감정을 찾는 일, 기도, 감사, 축복 없이 보내지 말라. 삶에서 그것을 이루라. 그러면 삶은 완전히 경이로운 일로 채워질 것이다. 

●만약 당신이 비판적인 사람이라면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만약 당신이 비난하거나 불평하거나 긴장하거나 조급하거나 나쁜 기분에 휩싸여 있다면 그 역시 당신은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감사는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당신이 누릴 삶과 변화가 사소한 것들 때문에 방해받고 있지 않는가? 

●만일 단점을 가진 가족과 갈등을 겪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감사한 점을 적어보라. 그리고 그 감사함을 갖게 한 그들에게도 감사해야 함을 기억하라. 이 역시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이기 때문이다. 감사에 모든 힘을 집중하다보면 주변의 부정적인 면을 줄이는 동시에 당신의 삶에 긍정적인 사람을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자신을 감사의 주파수에 놓아두라. 끌어당김의 법칙은 당신 주변을 긍정적인 사람들로 둘러싸게 할 것이다. 

●아름다운 감사의 마음이 가득하면 당신은 베풀기를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을 당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면 당신은 감사하게 될 것이고 당신은 하루에 베풀 기회가 많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당신은 항상 기쁨, 사랑, 물질, 감사, 칭찬, 친절을 베풀 것이다. 당신은 직장에서, 인간관계 그리고 낯선 사람에게까지 최선을 다해 베풀 것이다. 당신은 진정한 감사의 순간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베푸는 자’가 될 테니 말이다. 참된 감사를 아는 사람은 결코 다른 곳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감사를 느끼는 모든 것을 적어보면, 당신은 더욱 감사하게 되고 놀라움의 나날은 계속될 것이다. 기운은 더욱 강해져 살아있음에 기쁨을 느낄 것이며 가는 곳마다 즐거움을 전할 것이다. 또한 만나는 사람들마다 긍정적인 기운을 주게 될 것이다. 만약 그러한 삶을 산다면 원하는 모든 것은 당신이 요청하기 전에 올 것이다. 

●감사의 힘과 마법을 이해하려면 직접 경험해봐야 한다. 왜 매일 100가지의 감사한 일을 찾으려 하지 않는가? 만약 당신이 매일 감사를 실행한다면 감사가 당신의 천성이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당신의 삶에 있어 가장 위대한 시크릿 중 하나를 알려줄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를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다른 어떤 것도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은 요청하기 전에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감사의 힘이다. 
마음의 힘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
감사하기는 마음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또 하나의 부분이다. 마음과 연결되어 살아가노라면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우러날 것이므로. 

●닐 도널드 월쉬Neale Donald Walsch
감사하기는 모든 것을 바꾸는 태도다. 이런 이유로 감사하기를 진정으로 강력하게 사용하길 원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난 뒤가 아니라 그 전에 감사하라고 일러주고 싶다.

●마시 시모프Marci Shimoff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뇌를 촬영한 사진을 보면 실제로 뇌활동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활발하며, 더 지적이고 창의적으로 변모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 자주 감사하고 더 많은 사람을 용서할 때 우리의 지성은 발전한다.

●하워드 마틴Howard Martin
아주아주 간단하다. 더 많은 것에 감사할수록 더 많은 것을 얻는다. 고마움은 마음과 관련한 느낌이다. 감사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마음의 지성에 접근해야 한다. 특히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다. 삶이 힘겨울 때 감사할 만한 무언가를 찾으면 아주 빨리 에너지를 옮기기 시작하여 골치 아픈 문제를 넘어서고 금세 기운을 차리며 다른 차원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다보면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뤼디거 샤헤Ruediger Schache 
감사하는 마음, 인정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은 신께 사랑을 보내는 일, 우주 밖으로 사랑을 보내는 일과 같다. 감사는 마음을 여는 일이다.

●스스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라. 그러면 삶은 더 크고 긍정적인 차원으로 옮겨갈 것이다. 감사할 만한 일을 더욱 잘 인식하고, 아름다우며 사랑할 만한 일을 삶에 더 많이 받아들이기 위해 감사일기를 써보라. 매일 감사한 일을 적어도 다섯 가지씩 적어보는 것으로 시작하라. 감사히 여기는 마음을 규칙적으로 기록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하고 그 행복이 더 오래 지속된다. 감사일기를 꾸준히 쓰는 일은 어떤 치료법이나 항우울제보다 효과적이다. 감사하기의 두 번째 단계는 실연을 당하거나 직장을 잃는 등 크게 낙담한 일, 사랑하는 이의 죽음처럼 크나큰 슬픔이나 비극적인 일 앞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새로운 삶을 위한 길을 열어준다. 질병, 장애, 혹은 끔찍한 상실과 같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나쁜 일과 마주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새로운 이해, 새로운 연결 그리고 새로운 관계가 찾아온다. (정리 이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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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학과 영성의 시대(Belonging to the Universe)

 

프리초프 카프라 & D. 슈타인들-라스트 & 토마스 매터스

범양사 출판부/ 김재희 옮김

 

신과학과 종교의 만남

미국 캘리포니아 빅서 해안에 󰡐에설런 연구소󰡑가 있다. 여기는 새로운 사고방식이나 새로운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곳이다. 이 책에 기록한 대화도 에설런 연구소에서 진행되었다. 신과학의 기수로 알려진 프리초프 카프라와 두 명의 신학자가 만났다.

프리초프 카프라는 빈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았으며, 유럽과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고에너지 물리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기도 했다. 저서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신과학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탁월한 지혜,생명의 그물이 있다.

신학자인 슈타인들-라스트는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사 신부로 흙일을 즐겨하는 명상시인이며, 토마스 매터스는 역사학도 출신의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사이다.

이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학과 종교의 패러다임의 전환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지금 지구는 환경파괴와 자연 재난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대대적인 변혁의 진통을 겪고 있다. 이 책에서 대화를 나누는 세 사람은 과학과 종교의 두 가지 틀 사이에서 나타나는 유사점을 발견하면서 지금 어떤 패러다임이 세상에 대두하고 있는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과학(science)󰡑이란, 물질로 된 세계의 체계적인 지식을 말한다. 이전에는 이것을 자연철학이라 불렀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과학이 자연을 정복하고 마음대로 제어하는 것인 양 인식되어 기술(technology)과 거의 같은 뜻으로 혼동하고 있다. 그러나 신과학 운동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제어한다는 생각은 과학에서 없애야 할 시대적인 착오라고 규탄하고 있다.

종교는 영적 체험이 체계화된 것이다. 그래서 영성이 없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또한 영성은 종교적인 체험이 일상생활에 젖어드는 양식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종교에는 이러한 영성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이런 영성의 결핍을 절박하게 깨닫고 있다.

과학과 종교는 우리의 경험에 대한 지성적 성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과학이 나무의 잎에 해당한다면 종교는 나무의 뿌리에 해당한다. 그리고 과학의 어떠한 이론이나 원리가 모든 자연현상을 밝힐 수 없듯이, 현재의 종교 또한 신비의 모든 의미를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다.

오늘날 과학이라는 이름의 거대 사업은 엄청나게 왜곡되어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연구비로 운영되는 프로젝트 안에서만 연구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연구비를 지급하는 기관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고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신과학에 대한 연구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연구비의 대부분은 국방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어떤 종류의 연구에 치중되고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과학정신 자체가 뒤틀어져, 어이없는 목적을 위해 엄청난 수의 과학자들이 그들의 능력을 소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패러다임은 이제 인류의 새로운 통찰에 의해 사정없이 도전을 받고 있다. 지구에 대한 새로운 경각심은 과학자들에게 환경에 대한 책임 의식을 점검하도록 다그치고 있다. 유럽의 녹색운동이 그 대표적인 모습이다.

신학은 이미 19세기 중엽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을 느껴왔다. 현재 서구인들 대다수는 교회가 각자의 삶에 대한 의미를 깨우쳐 준다거나 종교적인 체험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상당수가 교회로 나가는 이유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현재의 교회에는 영혼의 안식은 커녕 철저한 세속주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지구의 한 살림

오늘날 부상하고 있는 세계관은 생태론식 관점이다. 생태론식 관점이란 단지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더 큰 전체의 틀 속에서 보는 것이다. 과학의 울타리를 벗어나 마지막 심연에 도달하면 종교적 깨우침과 맞닿는다. 마지막 심연의 차원에서 마주치는 생태론식 깨우침이란,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근본적으로는 모두 연결되며 상호 의존적이라는 것이다.

생태론식 세계관을 과학 쪽에서 잘 정리해 놓은 것이 시스템이론이다. 생태론식의 개념에서 생명체는 모두 더 큰 생명체안에 포함된다. 여기서 가장 큰 시스템이 바로 지구이다. 모든 것이 결국은 지구의 한살림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의학은 몸과 마음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이 두 가지 측면을 동일한 현상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시켜야 한다. 경제학은 더 이상 생태계 문제를 빼놓고 발전만을 생각할 수 없다. 또 환경파괴나 인구폭발, 기아, 핵전쟁의 위협 등의 문제도 각기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문제는 함께 얽혀있는 그물 관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시 생명의 가치를 알고 생명을 살리는 쪽으로 변화해야 하는 절박한 시점에 있는 것이다.

 

온 인류는 한가족

사고방식과 가치기준도 상극에서 상생으로, 이성에서 직관으로, 분석에서 종합으로, 경쟁에서 협조로, 인간관계도 지배와 종속에서 상호 동반자의 관계로 바뀌어 가고 있다. , 모두가 더 큰 생명체 안에 포함되어 통합되어 가고 있다.

신학에서는 구원에 대한 패러다임도 달라지고 있다. 사회적인 의미와 동떨어진 개인의 구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을 보면 적선을 해라였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은 현상의 배후에 깔린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한다. , 인간은 절대자와 하나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다른 이들과도 하나라는 것이다. 종교가 같건 다르건 궁극적으로는 온 인류가 한 가족이다. 따라서 구원에 대해서도 보다 공동체적인 이해와 사회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여러 종교의 공통적인 깨우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처와 예수도 두 분의 시대적 상황이 다를 뿐, 그들의 가르침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 절대자를 찾는 여러 길을 하나로 잇는 깨우침에 주목하고 있다. 지금까지 종교는 너무나 오랜 세월을 말로는 평화를 위치면서도 세상에 분규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었다. 이제는 종교를 넘어서 진정으로 모든 것이 하나로 일치해야 한다.

이외에도 문명 전환의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중 두드러지는 것이 세상이 여성주의 시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 통신 등으로 세계가 한결 더 좁아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카프라는 이 시대의 복합적인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학문과 문화 전반에서 급변하는 상황에 걸맞는 새로운 사고방식과 패러다임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대세에 눈을 떠야 한다

새로운 시대를 눈앞에 둔 현 시점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은 인류가 생존하느냐, 못 하느냐가 달려 있는 중대한 문제이다. 기존의 가치관과 관념의 알을 깨고 나와 새로운 시대에 등장하는 새로운 문화에 눈을 떠야 한다. 중세 시대처럼 신() 제일주의로 가는 것도 아니고, 현대 문명처럼 물질 만능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각 종교와 과학과 문화 전반을 통일하는 하나의 진리가 역사의 새 무대에 등장하는 것이다.

지금 이 지구는 개벽의 문을 향해, 그리고 그 뒤에 열릴 새시대를 향해 거대한 몸부림을 치며 나아가고 있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아직도 낡은 사고의 틀을 깨지 못 한다면 생사양도에서 스스로 죽음을 길을 자체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知天下之勢者有天下之生氣하고

지천하지세자 유천하지생기

暗天下之勢者有天下之死氣니라

암천하지세자 유천하지사기

천하의 대세를 알고 있는 자는 살 기운이 붙어 있고, 천하의 대세에 눈 못 뜨는 자에게는 천하의 죽을 기운밖에는 없느니라.

(道典 5:2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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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나라, 카자흐스탄


일제 식민사학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오늘날의 대한민국, 그 혼란 속에서도 환단고기의 대중화를 통해 많은 이들이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로 하고 있다. 수많은 학자들의 노력 끝에 잊혀져 있던 과거가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는 이 시기, 연방주의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한 연구자의 노고가 책으로 발간되었다. 환단고기를 뒷받침하는 많은 현실적 자료들이 있어 몇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카자흐스탄은 단군의 나라?


얼핏 우리와 전혀 무관한 지역처럼 보이는 이 생소한 이름, 카자흐스탄. 이 나라가 우리 민족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카자흐족, 몽골족, 중앙아시아의 민족들, 동유럽과 러시아에 있는 수많은 민족들이 우리와 역사적으로 같은 피를 통해 이어져 있다고 한다. 단순히 아니라고 부정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증거들, 과연 이 주장은 사실일까? 

저자는 조선, 주스라는 말은 유라시아 전체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말한다. 카자흐족은 주스, 몽골에서는 주잔, 헝가리에서는 구스라고 불리운다.

주잔, 주스, 구스라고 칭해지는 민족은 화백이라는 만방일치제도, 탱그리라는 단군사상, 샤머니즘 등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알고 보면 환웅과 단군은 우리만의 역사가 아니었다. 중앙아시아는 물론 저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역사의 모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환국이 단일국가가 아니라 연방국가였음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책의 내용은 12장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눈에 띄는 내용을 알아보자. 

홍수설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한 홍수 기록은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수메르의 지오수드라,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쉬 서사시,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홍수설화. 카자흐스탄의 설화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홍수로 세상이 물에 잠겨 7달, 7일, 7시간이 지난 후에 한 배가 카주구르트 산에 도착했다(해발 1,768미터, 카자흐스탄의 투르키스탄 지역에 위치). 선지자 누흐는 텡그리에게 헤엄쳐 가면서 홍수에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과 동물들을 구원해 달라고 빌었다. 

홍수가 끝난 후 사람들은 새들을 날려 보내서 마른땅이 있는지를 확인했는데, 제비가 녹색 잔가지를 물고 돌아왔다. 이때부터 제비는 카자흐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새가 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카주구르트 산에 배를 정박하고 거기서 살기 시작했다


여기에 나오는 선지자 누흐는 기독교에 등장하는 노아와 동일인물이다. 중동지방과 중앙아시아식 발음이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슬람에서도 누흐로 호칭하며 이야기는 구약성경과 동일하다. 따라서 누흐와 노아가 동일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홍수설화는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중앙아시아에는 〈탱그리 신앙을 바탕으로 한 누흐의 방주〉 전설과 〈이슬람신앙을 바탕으로 한 누흐의 방주〉 전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고대 알타이 투르크 민족이 자연재해로부터 살아남았던 사실을 구전한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실제로 수메르인과 카자흐인의 언어, 문화, 외모는 상당히 비슷해 카자흐족은 고대 수메르인에서 갈라져 나온 민족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카자흐족의 홍수설화가 수메르 홍수설화와 비슷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카자흐스탄의 누흐와 수메르의 지오수드라, 바빌로니아의 우트나피쉬팀의 방주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파미르 고원에 남아 있는 환국/고조선의 흔적


티벳, 파미르 고원은 알타이 투르크 민족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민족의 시원 또한 티벳지역과 가까운 곳이다.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지명들 역시 이러한 가능성을 크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탕구라산-탱그리 산, 현대 한국식 한자로 다시 표기하면 단군산
한단-한 탱그리, 한단군 
숙센-숙신, 조선 
비루-부여
푸루-부여 
우스-위슨, 오손 
장당-장당경, 고조선의 수도명 중 하나 
허티엔-에덴, 성경의 에덴동산


한민족의 발원지로 추정되는 티벳, 파미르 지역에서 단군산이나 조선, 부여 등의 명칭이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아시아 전체를 어우르는 환국의 거대한 세력권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의 에덴동산이 여기에 등장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허티엔의 경우 현지에서는 이덴으로 발음한다. 보통 에덴동산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수메르어와 고대 카자흐어에서 에덴은 ‘동산’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참고로 티벳 고산지대 서쪽지역은 사과의 아버지, 사과의 원산지라는 의미를 가진 알마티가 위치하고 있다. 저자는 성경에서 말하는 에덴을 신장 위구르 자치주에 있는 이덴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누대를 이어온 신화시대를 현실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홍수설화나 에덴동산처럼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알타이-투르크 민족의 시원지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구약성경이 시원종교였던 텡그리교, 단군교의 내용을 많이 차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고대 투르크인들 사이에 전하는 전설을 보면 구약성경에 나오는 천지창조, 홍수설화, 바벨탑전설, 인간의 창조 등 수많은 내용이 일치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환국의 정신은 그렇게 면면히 세계로 펼쳐져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던 것이다. 비록 그 모습은 바뀌었지만 본질은 그대로 간직한 채. 

쿤모왕 신화는 금와왕 신화?


-카자흐족의 일부인 위슨족의 건국신화는 한국의 금와왕 신화와 너무나도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신화에서는 단순히 동부여의 해부루왕이 늙도록 자식이 없어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기도한 후 행차 도중에 바위 사이에서 금와왕을 발견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위슨족의 신화는 내용의 동일성 뿐만 아니라 왕이 바위 사이에 있게 된 이유까지도 설명하고 있어 우리나라 금와왕 신화의 잃어버린 퍼즐일 가능성이 높다. 명칭과 사료, 관련자료를 종합해보면 위슨족의 쿤모왕 전설은 동부여의 금와왕 전설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쿤모왕과 금와왕, 발음이 비슷하다. 
-투르크 역사책에는 그 의미가 태양왕을 뜻한다고 적혀 있는데 해모수, 해부루, 금와왕은 모두 태양을 의미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학계에서 말하는 동부여의 위치는 두만강 상류지역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중국의 서쪽끝 파미르 고원일대에서 우리와 비슷한 건국신화가 발견되는 것일까? 여기서 감추어진 역사의 연결고리가 드러난다. 

사기 대완열전편-서역민족 오손(위슨)은 퉁구그계 애신 씨족이다. 
금사, 백관지-애신을 아선으로 칭함 
만주원류고-아선을 오신으로 칭함 


이렇게 부족명이 제각각이 된 것은 정확한 발음표기를 하기 어려운 한자를 이용해 민족명을 남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슨, 오손, 애신, 아선은 동일존재를 여러 형태로 적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역사책 기록에 의하면 오손족이 거주했던 지역은 만주와 산동반도 지역. 금와왕 전설이 만주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퍼지게 된 이유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의 위슨족은 중국문헌에 나오는 오손족이며 이들은 월지, 여진족과도 관계가 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여진족과 한민족이 실은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청나라의 만주원류고를 보면 이들은 자신의 고향과 조상이 신라, 고려에서 왔음을 명시하고 있다. 

금나라의 시조는 함보이다, 초창기에 고려에서 왔다. 당시 이미 60여세의 나이였다. 그의 형 하고내호불은 고려에 남기로 했으며 함보에게 말하길, “후세에 자손들이 서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여기에 머물겠다.” -금사 본기 제1편 세기 중 

하나하나 이어지는 역사의 연결고리, 본서를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쾌감 중의 하나이다. 이런 것이 스펙타클한 대하 역사드라마 아니겠는가? 내친 김에 한걸음 더 나아가 보자. 

실크로드 시대가 열리고 있다

본서는 카자흐스탄 카즈그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정민 박사가 집필한 책. 우리나라의 고대사와 유라시아지역 국가들의 고대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 뒤 오랜 연구 끝에 내놓은 결과물이다. 

핵심은 연방주의다. 연방주의가 필요한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거대한 역사줄기 속에 한국과 중앙아시아, 자신들의 역사도 포함됐다는 인식이 쌓여야 경제공동체로서 원활히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주변국가와 충돌하고 상처를 주는 일을 반복한다면 새롭게 펼쳐질 신 실크로드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에는 역사공부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은 국제관계의 변화에 따라 경제적 이득까지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유라시아 전체를 바라보고 백년지대계를 세울 수 있는 역사적 철학! 이것이 있어야 비로소 한국은 강대국이 된다.” 김정민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조선과 흉노는 같은 국가


환단고기와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조선이 실은 흉노임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 나온다. 조선이 연나라, 제나라와 전쟁을 한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과 싸웠다고 표기하지 않고 북융, 산융, 흉노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사기, 희공 25년, 북융이 제나라를 침공하자 정나라에서 태자 홀을 보내 제나라를 도왔다 
-제나라 환공 23년, 산융이 연나라를 정벌하자 연나라는 제나라에 위급함을 알려왔다. 제나라 환공은 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마침내 산융을 쳐서 고죽까지 이른 다음 돌아왔다. 
-44년 산융이 연나라를 치자 연은 제나라에 위급함을 알려왔다. 제 환공이 북쪽으로 산융을 치자 산융은 도망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기록을 보자. 

-무오 50년, 단제께서 언파불합 장군을 보내 해상의 웅습을 평정하였다, 갑술 66년 단제께서 조을을 보내 곧바로 연나라의 도읍을 돌파하고 제나라 군사와 임치의 남쪽 교외에서 싸우고 승리를 알려왔다. [단군세기] 
-무진 52년 단제께서 병력을 보내 수유의 군대와 함께 연나라를 정벌케 하였다. 이에 연나라가 제나라의 위급함을 알리자 제나라가 대거 고죽에 쳐들어왔는데 우리의 복병에 걸려 전세가 불리해지자 화해를 구걸하고 물러갔다. [단군세기] 


이 기록으로 보아 흉노와 조선은 같은 나라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사기의 기록을 보면 흉노족을 북융, 산융, 흉노로 부르고 있는데 여기에서 공통음가는 융 또는 흉이다. 중앙아시아에서는 ‘군’이라고 부른다. 군은 해를 뜻하는 쿤과 어원이 같은 단어로 태양을 의미한다. 흉, 군, 쿤, 칸, 한은 모두 태양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이유는 태양숭배를 하던 탱그리, 즉 단군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통은 오늘날 카자흐스탄의 수도인 아스타나에 대형 거탑으로 이어진다. 두 손으로 태양을 받치고 있는 거대한 제단, 나라 한이라는 글자가 거대하게 일어서 있다. 이는 역사를 통해 이어져온 천손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거탑의 형식으로 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리 / 한승민>

김정민 카자흐국립대학 국제관계학 박사. 현재 몽골국립대학 국제관계학 박사과정 수료 중. 연방주의적 시각으로 세계사와 조선상고사를 전달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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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전염병의 대란이 주기적으로 있어 왔다. 수 많은 사람의 생사가 엇갈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토대 위에 새로운 문명을 열었다.

머지않아 인류가 지금 앓고 있는 질병을 넘어 이름도 원인도 전혀 알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질병대란이 몰려온다.

우리 시대 최고의 화두는 부도 명예도 권력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생존(Survival)이다. 지금은 인간 삶의 터전인 하늘과 땅도 병들었다. 인류에게 닥칠 괴질병의 대 역습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바이러스 변종이 무섭게 이뤄지고 있다. 공기로 전염이 가능한 인간 독감의 창궐은 오직 시간 문제일 뿐이다." -고 이종욱 WHO 사무총장-

"21세기는 계속되는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과 위기 상황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인류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은 핵 위협을 없애기 위한 노력만큼이나 힘들 것이다." -프랭크 라이언 의학박사-

"전 세계에 이상한 병이 돌지만 아무도 치료약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정확한 치료법이란 신의 손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미타르 타라빅 영능력자-

"인간이 독감에 대해 점점 오만해지는 동안 이 질병 뒤에 숨은 새로운 전염병이 지금 이 순간에도 파괴력을 모으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나 콜라타 '독감' 저자-

"뛰어난 의원은 병자가 죽고 사는 것을 안다"는 말이 있다. 예로부터 질병은 인간이 생명 질서에서 벗어남으로써 생기는 것이라 했다. 질병은 곧 자연과 우주의 변화 법칙과 직접 연관이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주장대로 머지않아 지구에 큰 병란이 닥쳐와 정치, 경제, 종교 등 모든 삶의 영역이 송두리째 무너진다. 그렇다면 '앞으로 올 병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며,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이 물음에 해답을 찾아야 한다.

-생존의 비밀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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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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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p21

(이 책의 저자인 카프라 본인의 신비체험이 기록돼 있다. 아마 이 책을 쓰게 된 영감을 강력하게 받은 체험이라 생각된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5년전 한가지 아름다운 체험에서 비롯되었다. 늦여름의 어느 날 하오, 나는 해변에 앉아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 숨결의 리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돌연 깨달았다. 한 사람의 물리학도로서 나는 내 주위의 모래와 바위와 물과 공기가 진동하는 분자와 원자로 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다른 입자들을 창조 또는 파괴하는 부단한 상호작용을 거듭하는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나는 또한 지구의 대기는 마치 소나기와도 같은 우주선의 폭격을 끊임없이 받고 있으며 고 에너지 입자들이 대기층을 통과할 때 수많은 충돌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고에너지 물리학 연구를 통해서 나는 이런 모든 문제에 이미 친숙해 있었지만 바로 그 순간까지 그것을 단지 그래프나 도표, 수리론을 통해서만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해변에 앉았을 때 나의 이전 경험들이 싱싱한 생기를 띠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수많은 입자들이 창조와 파괴의 율동적인 맥박을 되풀이하면서 외계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에너지의 폭포를 ‘보았던 것이다’ ; 나는 또한 원소들의 원자와 내 신체의 원자들이 에너지의 우주적 춤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 나는 그 리듬을 느꼈고, 그 소리를 ‘들었으며’, 그리고 그 순간 그것이 바로 힌두 교도들이 숭배하는 춤의 신인 시바의 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개벽이다 책초판 서문

그러던 차에 작년(壬戌年, 1982) 대구 강연회에 갔다가 부산에 직장을 두고 있던 마산의 한 신도를 처음으로 만나, 그의 간곡한 부탁으로 다음날 부산까지 가게 되었다. 함께 도담(道談)을 나누다가 바다가 보이는 태종대(太宗臺)에 이르러 유달리 맑게 갠 푸른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받으며 배를 탔다.

배가 파도를 가를 때마다 밀려왔다 부서지는 물결을 보면서, 나는 지나온 인생에 얼룩진 잔 그림자들이, 거세게 요동치는 대양의 일렁거림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굵게 주름진 파도의 모습은 세계인의 고뇌하는 얼굴이었고, 시원스런 바닷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무지개빛 물보라는 세상의 묵은 정신을 후려치는 혹독한 시련의 채찍인양 보였다. 지난 5년간의 세월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고난의 연속이었다.

오륙도를 돌아오는 선상에서 나는 구도(求道)의 과정에서 자주 체험하였던, 신비한 천지의 물의 조화기운이 눈부시도록 현란하게 춤추는 모습을 그날따라 유달리 묘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이러한 인생의 지워지지 않는 추억 속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였다. 첫대면이었지만 그가 나에게 거듭 청하였던 권유의 목소리가 귓전에 몰려왔다. ‘오늘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는 인류의 종말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명한 책자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종정님이 한번 정리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 자신이 세상에 이름이 나돌아다니는 것을 대단히 싫어하는 성미인 데다, 당시에는 책을 쓸 시간적 틈도 없었기에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던 밤길에 ‘우주와 세계문명의 개벽에 대한 수수께끼’를 정리하여 먼저 도장(道場)에서 체계적으로 교육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깨닫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목차를 써보았다. 이때 나에게 진한 영감을 준 것은 이날 밤하늘을 가득 메운 아름다운 달빛이었다.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은 이것이 개벽이다 책의 동서양의 정수의 만남이라는 영감의 일부분을 미리 보여준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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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동학사상으로 남북대립 극복해야"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1/10/0200000000AKR20141110154800005.HTML?input=1195m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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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학자들이 주역속에 우주에도 사계절이 있다는 원리를 이해한 소강절을 흠모했었군ㅋ

조선유학과 소강절 철학, 곽신환 지음, 예문서원, 416쪽, 32,000원
조선 유학자들은 500년 내내 주자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가슴 한 켠에는 康節邵雍(1011~1077)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었다. 학술로는 주자학을 표방하면서도 삶의 양상은 소강절을 닮고자 했다. 그가 보여 준 안락의 철학과, 선천역학을 통해 드러나는 본원세계의 장대함에 매혹됐기 때문이다. 조선 유학자들은 소강절이 남긴『이천격양집』,『 황극경세서』를 통해 그의 삶과 학문을 좇았다. 이 책에서는 소강절의 생애와 학문에 대해 소개하고, 조선 유학자들이 이해한 강절학의 양상을 안락론, 선천론, 경세론, 후천개벽론 등으로 구분해 살폈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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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와 제帝

도道와 제帝의 관계에는 인류의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우주만물의 근원인 도道와 도道의 주재자主宰者인 상제上帝와 하나가 되어 이 세상을 태고의 황금시절로 되돌릴 수 있는 단서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도와 도의 주재자는 이 땅위에서 인간이 우주적 이상세계를 실현할 수 있는 근원적 구심점이다.

이 책은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도道와 제帝의 관계가 어떤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겪어왔고, 그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지상에 이상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도와 도의 주재자, 양자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Chapter 1 왜 도道와 제帝가 문제인가

도道와 제帝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해명한 것은 증산도이다.

증산도에서 도道는 유불선의 동도東道와 서도西道를 초월하면서도 동시에 포함하여 동서문화를 하나로 융합하려는 무극대도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증산도에서 제帝는 천상에서 우주만물을 통치하는 주재자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으로 지상에 강세한 인존상제라는 이중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노자에서 증산도에 이르는 도와 제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서구 현대신학이 봉착한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과 발상의 전환을 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도와 제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인간을 포함한 천지만물을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현대문명을 그 뿌리에서부터 반성하여 온 생명이 독자적 자유와 공동체적 화해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이상적 꿈의 문명인 조화선경을 여는 데 결정적인 계기와 원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와 제의 관계를 문제로 제기하는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Chapter 2 도가道家의 도道와 제帝

도道는 동아시아 철학의 핵심개념이다. 동아시아 철학의 주류를 이루는 도교와 유교와 불교는 각기 길을 달리하기는 했지만, 모두 도道를 그 중심사상으로 삼고 있는 측면에서는 같은 길을 걸었다. 제帝는 동아시아 신학의 중심개념이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우주만물의 주재자를 뜻하는 것은‘ 제’ 또는‘ 상제’이다.

①노자

고대중국의 도道와 주재자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길을 개척한 것은 노자이다. 노자는 고대의 신화사유를 바탕으로 도道를 제시하고, 기존의 전통적 지고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한다. 『노자』 「4장」에 도와 제의 관계에 대한 다음과 같은 논술이 있다.

도는 텅 비어 있으니,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 듯하도다. 깊구나! 만물의 근원 같도다. …… 그윽하도다! 있는 것 같구나. 내 누구의 자식인지 알지 못하노니, 아마도 상제보다 앞서는 듯하도다.

노자에서 도와 제의 관계는 우주만물의 자연성과 지고신의 주재성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노자는 제帝를 비롯한 모든 사물이 도道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노자가 우주만물의 궁극적 주재자로 설정되던 제帝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자는 그 당시의 인격적 주재자의 실재성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우주 만물의 존재근원인 도道를 제시함으로써 우주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역동적 과정을 이전보다 더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단지, 아쉬운 점은 노자가 도와 제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②장자

장자는 노자와 마찬가지로 도의 모순과 역설의 특성에 주목하여 도를 ‘형체 아닌 형체’(불형지형不形之形)를 지닌 것으로 규정한다. 장자는 「대종사」에서 도와 제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릇 도는 실정이 있고 미더움이 있으나 함이 없고 형체가 없으니, 전할 수는 있으나 받을 수 없고 체득할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다. 스스로 밑둥이 되고 뿌리가 되어 하늘과 땅이 있기 이전에 예로부터 본래 존재하는 것이다. 귀신과 제를 신묘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생겨나게 한다.

장자에서 도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의 궁극적 존재근원이다. 도는 우주만물뿐만 아니라 귀신과 상제의 존재근거이기도 하다. 귀신과 상제도 도의 통일적 작용 속에서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장자는 우주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주재하는 존재로 제帝와 제가 머무는 곳인 ‘제향帝鄕’을 제시한다. 그는 「천지」에서 “천 년을 살다가 세상이 싫어지면 세속을 떠나 올라가 신선이 되어 저 흰구름을 타고 제향에 올라갑니다.”라고 한다.

Chapter 3 도교道敎에서 도道와 제帝

도가철학을 계승, 발전시켜 그것을 종교화한 도교철학은 자연학과 신학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첫째, 도교는 도가의 자연철학과 공부론을 하나의 구조체계로 융합한 양생론을 전개한다. 우주만물의 존재근원 및 생성과 변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도道와 기氣의 사유방식을 공부론과 연결시켜 우주만물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 최고의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 도道는 모든 생명의 존재근거이고, 기氣는 온갖 생명의 근원적 힘이다. 도교의 수련은 이 도와 기에 근거한다.

둘째, 도교는 도와 기를 종교화 또는 신격화하여 비인격적인 존재인 도道와 기氣, 그리고 인격신인 제帝가 삼위일체성을 지닌 것으로 파악한다. 도교의 지고신은 도와 기를 온전하게 발현하고 주재하는 최고신이다. 도교의 신 계보는 도道와 기氣가 발현된 완성도에 따라 설정된 위계체계이기 때문에 최고신은 도와 기의 조화작용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하는 신을 말한다.

남북조시기에 이르러 도교의 새로운 신 개념이 출현한다. ‘옥황玉皇’이 바로 그것이다. 옥玉은 본래 정미하거나 진귀하다는 뜻이다. 고대 사람들은 아주 아름다운 것을 옥으로 형용하였다. 옥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몸을 보호하는 ‘호신부護身符’의 역할을 하고, 신과 소통하기 위해 바치는 제물이었으며, 세계의 기운을 조화롭게 다스려야 하는 왕권을 상징하는 신물神物이기도 했다.

Chapter 4 동학의 도道와 제帝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조선 후기에 들어 도道와 제帝의 관계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열려는 시도가 줄기차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김일부의 역학과 최수운의 동학이 바로 그것이다.

수운과 비교하여 볼 때, 일부는 상대적으로 상제를 인격적인 존재로 선명하게 부각하지 않고 있는듯이 보인다. 그것은 일부가 상제를 ‘천지무궁화무옹’,‘ 화옹’,‘ 화화옹’,‘ 보화일천화옹’ 등으로 호칭하여 상제의 특성을 주로 천지조화를 주재하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수운은 동양의 유불선과 서양의 천주학을 하나로 융합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천주와 천주의 가르침에 있다. 수운이 유불선의 하나인 선도를 포함하는 그 근거는 천주에 있다. 즉 자연조화의 존재근거를 이루는 ‘천주조화’이다. 수운이 보기에 모든 자연조화에는 그 조화를 주관하는 조화주 상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불교와 유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불교의 해탈과 유교의 도덕은 모두 천주의 가르침에 근거할 때, 비로소 온전할 수 있다.

수운에 따르면, 천지만물의 자연변화를 가능케 하는 그 바탕에는 모든 변화를 주관하는 조화주의 주재성이 전제되어 있다. 모든 변화는 ‘천주조화’의 자취가 온 천하에 뚜렷하게 드러난 것이다.

천주가 우주변화를 주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천지이법에 근거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전제군주처럼 자신의 의지와 주관에 따라 마음대로 주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수운에서 모든 변화는 결국 ‘천주조화’의 주재성과 통치성에 근거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Chapter 5 증산도에서 도道와 제帝

증산도는 “동방에서는 우주 삼계(천지인天地人)의 생명의 근원과 그 변화의 길을 일러 도道라 하고, 이 도의‘ 주재자 하느님’을 제帝 또는 상제上帝라 불러”(『도전』 1:4) 왔다고 하여, 도道와 제帝의 관계를 문제로 설정한다.

증산도에서 무극대도無極大道와 일기一氣(지기至氣)와 상제는 매우 밀접한 연관관계를 이루고 있다. 조화주 증산상제님은 조화의 도인 무극대도를 바탕으로 신도를 주재하면서 우주생명을 주재하고 통치한다. 증산상제님은 인간사회의 문명질서를 포함한 우주만물의 자연질서를 주관하는 무극대도의 주재자인 옥황상제를 말한다. 증산상제님은 우주만물을 ‘무위이화無爲以化’로 주재한다. ‘천지공사天地公事’가 바로 그것이다. 천지공사란 삼계대권의 조화권능을 지닌 우주생명의 조화주가 우주만물의 자연질서와 인간사회의 문명질서를 동시에 전환시키려는 새 조화문명의 설계도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때, 천지공사는 조화공사라고 부를 수 있다.

증산도에서 도道는 천지조화의 존재근거인 무극대도이고, 제帝는 천지조화의 도인 무극대도에 의거하여 우주만물을 주재하는 조화권능을 지닌 조화주이다. 증산도에서 도道와 제帝는 삼위일체적 연관관계를 이룬다. 증산도는 삼자의 관계를 통해 자연과 문명이 새롭게 소통될 수 있는 새 생명의 다리를 놓음으로써 인류의 영원한 꿈인 신천지를 열려고 한다.

Chapter 6 대도문화大道文化와 상제문화上帝文化의 복원을 위하여

한민족의 삼신상제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천天과 제帝의 관계뿐만 아니라, 도道와 제帝의 관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보여준 것은 증산도이다. 동학의 제가 천상의 주인인 옥황상제로 설정되고 있는 반면 증산도의 제는 동학의 제와 비교하여 볼 때 여러 가지 다양한 호칭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증산도는 불교에 대한 논점이 뚜렷하지 않는 동학과는 달리 조선 민중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는 미륵불교까지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도道와 제帝의 문제는 결국 제帝의 문제이다. 제의 인식은 결국 우주의 본질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로 귀결된다. 제의 인식의 문제는 자신의 공부 정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인 것이다.

“너희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만 하여도 반도통은 되었느니라” (도전 3:18:3)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열리고 깨달음을 얻어야 비로소 통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道와 제帝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 가는 정도正道일 것이다. (정리/장광주)




<차례>
들어가는 말
Chapter 1 왜 도道와 제帝가 문제인가
Chapter 2 도가道家의 도道와 제帝
1) 노자
2) 장자
Chapter 3 도교道敎에서 도道와 제帝
1) 도교의 기원과 전개
2) 초기도교에서 도와 태상노군
3) 수당 도교에서 도와 삼청존신
4) 송대도교에서 도와 옥황상제
Chapter 4 동학의 도道와 제帝
1) 무극대도
2) 상제
3) 지기至氣
4) 도道와 기氣와 제帝
Chapter 5 증산도에서 도道와 제帝
1) 무극대도
2) 옥황상제
3) 지기至氣와 일기一氣
4) 도道와 기氣와 제帝
Chapter 6 대도문화와 상제문화의 복원을 위
하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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