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사람들의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아마도 태초에 먼저 말이 있었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문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말과 글을 배워가는 과정을 보면, 인류 역사에 문자가 발생하고 진화해온 과정을 상상해볼 수도 있겠다. 추측컨대, 문자는 아마도 먼저 그림문자의 단계를 거쳐 점차 추상화되고 소리의 변화와 결합하는 가운데 글자로서 완성되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본래 음양일체로 두 개의 문자가 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한글만이 우리의 글이며, 한자(漢字)는 중국의 글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표의문자인 한자(漢字)는 원래 한자(韓字)이며, 표음문자인 정음(正音)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두개의 문자 가운데 하나였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옥편(玉篇)을 불사르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는 문자만으로도 능히 모든 사물을 기록할지니 앞으로는 쉽고 간단한 문자로 천하에 통용되도록 하리라.”하시고 “장차 우리나라 말과 글을 세계 사람이 배워 가리라.”하시니라. (道典 5:11) 

한자에 담긴 우리 역사 
 
한자(漢字)란 한(漢)나라의 글자라는 뜻이다. 이는 한나라 때에 이르러 해서라는 모양으로 완성된 글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한자는 한족이 처음 만든 문자는 아니다. 한자의 원형은 우리 동방족(동이족東夷族)이 창제한 것이다. 
 
한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큰 틀에서 볼 때, 한자는 처음에 그림문자에서 출발하였을 것이다. 한자의 기원을 흔히 갑골문에서 찾는다. 갑골문이란 거북이나 소의 뼈에 새겨진 문자를 통칭하여 이르는 말로, 정사를 판단하기 위해 점을 칠 때 사용한 것이라 한다. 중국의 고대 은 왕조(BC 1600~BC 1122, 상商나라)의 도성이었던 유적지 은허에서 다량 출토되어 은허문자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고고학적 발굴 결과 이 갑골문이 처음 출현한 곳은 서요하 상류로 확인되었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5,500년 전의 것으로서, 이곳이 동방족의 주요 활동무대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갑골 점복은 처음에는 소 어깨뼈나 발굽뼈로 했으나 은나라 때부터는 거북 등뼈도 사용하였다. 이때 문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오늘날 많은 역사학자들은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라는 자료를 제시한다. 나아가 갑골문 속에는 우리 민족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좬삼일신고좭 좬참전계경좭 좬천부경좭은 우리 삼성조 시대의 신교문화를 전해준 3대 경전에 속한다. 그런데 이 천부경이 갑골로 쓰여진 것이 발견되었다. 더구나 고려말 충신의 유품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농은 민안부는 고려말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 도은 이숭인, 수은 김충한과 더불어 6은으로 불린 충신으로서, 조선을 연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대하여 두문동(杜門同)에 은거한 72현 중의 한 사람이었다(도전 두문동 성수공사 5:328~9, 11:389 참조). 또 좬환단고기좭 좧태백일사좩에는 목은 이색 등이 천부경을 주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농은 민안부는 목은의 친구였으며 따라서 천부경을 이해하고 공유한 사람이었으리라고 짐작된다. 
 
갑골문의 모사본으로 알려진 이 천부경 글자는 지금까지 발견된 갑골문에는 없는 글자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따라서 해독이 불가능한 글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은허에서 발견된 갑골문보다 더 오래된 것이 아니냐는 진단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자의 뿌리는 배달국 태고문자 
 
그런데 은나라가 갑골문을 사용하고 있을 때, 단군조선에서는 전문(篆文)이라 하여 약칭 단전(檀篆)이라고 불리는 문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문자들이 당시 사용된 토기에서 속속 발견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자들이 최초에 창조된 것은 언제일까? 
지금까지 동북아지역에서 갑골문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대 금문(金文: 고대 청동기, 토기, 갑골에 새겨진 원시 한자와 각화문을 통칭하여 일컫는 말)이 발견되었으며 여기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문화적 자취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갑골문이 은나라 때에 국한된 것이라면, 그림문자로 출발한 금문은 어쩌면 전자(篆字)에 비견되는, 전서(篆書)의 원형이었으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최초의 금문연구서인 『금문신고(金文新攷)』(낙빈기, 산서인민출판사, 1987년)의 저자인 낙빈기(駱賓基)는 금문의 해석을 통해 신농과 황제 등 삼황오제시대를 역사적으로 증명하였으며, 더욱이 이것이 동이족의 역사와 문화였음을 고증하였다. 이런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중국내에서는 금서(禁書)로 분류돼 왔었다. 
 
기록에 전하는 중국 고대문자의 시조는 5500년 전 동이족 태호 복희씨라는 설과 4700년 전 창힐이라는 설이 남아있다.
 
역(易)철학의 시조인 태호 복희씨는 배달국 제5대 환웅천왕의 막내아들이다. 복희씨는 중원으로 이주하여 동아시아문명을 실질적으로 개벽한 문명의 개조이며 한자의 뿌리가 되는 육서(六書)의 원리를 만들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역사기록 의하면 그는 용봉(龍鳳)을 토템으로 하여 관명을 지었다고 하며 새로 만든 문자를 용서(龍書)라고 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후대 황제 헌원 때 ‘창힐’이라는 인물이 새 발자국 모양을 따서 조적서(鳥跡書)를 만들었는다고 하며, 현재 그의 고향 섬서성 백수현 사관촌에 그 비석이 남아있다. 즉 복희씨의 용서와 창힐의 조적서 등이 후대에 갑골문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춘추전국시대 이후 진(秦)시황(BC221~210)이 중국대륙을 통일하면서 문자를 통일하고, 이를 고대문자와 구분하여 소전(小篆)이라 칭했으며(앞에 밝을 명明자 참조), 다시 한대(BC140~ )에 이르러 한자(漢字,예서)로 굳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최초의 한자연구서이자 사전격인 고전 『설문해자(說文解字)』(BC100, 9353자)가 정리되어 나온다. 
 
그러면 복희, 창힐시대에 동방 배달에는 어떤 문자가 사용된 것일까? 배달국 문자를 만든 인물은 초대 환웅천황 때 신지(神誌) 혁덕으로 전해온다. 그는 사슴발자국을 보고 처음 문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녹도글자가 경남 남해군 양하리 금산 중턱바위에 있다. 환단고기 대변설에 이르기를, “남해현 낭하리에 계곡 바위 위에 신시의 고각(古刻)이 있다. 그 글에 환웅천황께서 사냥 나왔다가 제를 삼신께 드린다고 했다”고 전한다. 
 
이것이 후대에 더 세련된 모습으로 발전된 바, 이것이 1942년에 <영변>지와 구한말 백두용(白斗鏞) 편, 『해동역대명가필보(海東歷代名家筆譜)』에 실린 신지 전자(篆字)다. 배달국에서 만들어져 고조선시대까지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창성조적서비(鳥跡書碑)의 창힐문자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좬환단고기좭 좥삼성기좦에 의하면 창힐은 배달국 제14대 치우천황 때 문물을 배워갔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갑골문과 금문에 널리 전해오는 전자(篆字)는 기실 배달국의 녹도문이 전해져 여러 가지로 수정, 변형되어온 것으로 확인되는 것이다.
 
한자의 변천과정을 보면, 우리 것이 먼저고 우리가 중국을 가르친 스승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아사아문명의 뿌리가 한민족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아직도 모든 문물이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처럼 가르치는 교육의 현장을 다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시속에 중국을 대국(大國)이라 이르나 조선이 오랫동안 중국을 섬긴 것이 은혜가 되어 소중화(小中華)가 장차 대중화(大中華)로 바뀌어 대국의 칭호가 조선으로 옮겨 오게 되리니 그런 언습(言習)을 버릴지어다. (道典 5:118: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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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O 과학자, 중국 조류 인플루엔자 실제 사망자수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을 수도
- 국영 베트남통신(VNA), 11.25 현재 조류 인플루엔자 19개 지역 확산
 
 
증산 상제님께서는 약 100여 년 전 천지공사를 집행할 당시 이런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내가 천지공사를 맡아봄으로부터 이 땅의 모든 큰 겁재를 물리쳤으나, 오직 병겁만은 그대로 두고 너희들에게 의통을 붙여 주리라. (道典 7:33:6∼7)
 
장차 십 리 길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한 때가 오느니라. 지기(至氣)가 돌 때에는 세상 사람들이 콩나물처럼 쓰러지리니, 때가 되어 괴병(怪病)이 온 천하를 휩쓸면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눈만 스르르 감고 넘어가느니라. 그 때가 되면 시렁 위에 있는 약 내려 먹을 틈도 없느니라. (道典 2:45:3∼6)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조류독감 뉴스는 상제님 말씀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 현대문명과 전염병
현대인들은 도시문명의 혜택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다. 농촌 등에 흩어져 살던 많은 사람들이 지난 수십년 동안 도시로, 도시로 모여들었다. 인구가 밀집되다보니 중앙통제식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고, 신속한 이동을 위해 도로망과 교통수단 등을 개발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인류가 발전시켜온 이런 현대문명의 구조가 과거 어느 때 보다도 전염병의 위험을 증대시키고 있다. 밀집된 인구, 신속한 교통수단, 물류이동의 급증은 전염병의 신속한 확산을 부채질하는 더없이 좋은 토양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 일례로 2003년 말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SARS) 바이러스는, 외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홍콩의 한 호텔을 경유하여 불과 며칠만에 비행기에 실려 여러나라로 퍼져나갔다. 그리하여 단 한달만에 전세계 32개국으로 확산되어 삽시간에 8000여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그중 10% 정도가 사망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사스는 단지 리허설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사스의 발병 사례는 앞으로 있을 대규모 전염병의 서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조류 인플루엔자, 가금류에서 인간에게로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의 위험성은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약 125명이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었고 그 중 76명 정도가 사망했다. 치사율로는 자그마치 50퍼센트가 넘는다. 
 
세계보건기구(WHO) 소속의 저명한 한 과학자는 조류 인플루엔자(AI)로 숨진 중국인은 11월 25일 현재 3명으로 공식 집계됐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 실제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밝혔다고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NS)가 보도했다. 이 잡지는 다시로 마사토 박사(도쿄 국립 전염병연구소 바이러스담당 소장)의 말을 인용, “중국에서 조류 인플루엔자로 사망한 사람은 실제 300명 정도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국영 베트남통신(VNA) 등 현지언론은 11월 26일 보건 소식통을 인용해 25일 오후 현재 조류 인플루엔자가 19개 지역으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조류 인플루엔자 사태는 전국 64개 시·도 가운데 30% 가량 확산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베트남 남부 중심지인 호찌민 시측은 조류 인플루엔자 주바이러스인 H5N1의 매개원으로 알려진 조류의 차단을 위해 모이에 독극물을 투입하는 방법으로 비둘기 등을 도살처분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가금류에만 치명적이라고 알려졌던 조류 인플루엔자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며, 아시아 여러나라에서 인간에게 감염된 사례가 속속 알려지면서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여러 전문가들도 조류 인플루엔자의 세계적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사실 오래 전부터 세계 유수의 과학자들은 치명적인 전염병의 확산을 강력하게 경고해왔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사스에 이은 그 중의 또다른 사례일 뿐이다. 앞으로 사스나 조류 인플루엔자보다 더욱 강력한 전염병이 얼마든지 창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구적인 전염병의 창궐은 결코 피할 수 없으며, 다만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 가공할 위협, 바이러스-X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염병의 위험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지금까지 인류가 자연의 위협을 하나하나 극복해왔듯 질병도 점차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1958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조슈아 리더버그(Joshua Lederberg) 박사는 “인류는 진화라는 거대한 계획 속에서 생존하도록 예정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의학자 프랭크 라이언 박사는 『VIRUS-X』(1997, 영문판)라는 저서를 통해 괴질병이 인류 앞에 닥칠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태양도 먼 미래에는 붉은 빛을 내면서 대폭발을 일으킬 것이고 지구도 맹렬히 불타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앞서 인류는 우주적인 다른 변화나 지구 변화 혹은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아마게돈 같은 환경적인 파국이라는 대재앙을 통해 전멸할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바이러스에 의한 역병의 위협은, 핵폭탄 위협에 의한 아마게돈 전쟁의 위협만큼이나, 우리 인류의 생활과 사상, 행동방식을 변화시키고 말 것이다.” 프랭크 라이언 박사는 인류를 멸종시킬 만큼 가공할 위력을 지닌 괴질 바이러스를 ‘VIRUS-X’(멸종이라는 단어의 영자 eXtinction의 X자를 땄다)라고 이름했다. 그리고 치사율과 전파력이 높은 바이러스X의 하나로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포함시켜 주목을 끌었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재빠른 유전자 변이를 통해 적응력이 높고, 치사율이 높으며, 사람에게 전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보건의학계, 개벽상황 예견
지난 세기에도 수많은 전염병이 인류사에 새롭게 등장했다. 가령 100% 치사율에 가까운 에이즈나 에볼라 바이러스만 하더라도 인류가 전염병 앞에 얼마나 무력한가를 절감케 해줬다. 
 
 전문가들은 조류 인플루엔자의 확산 역시 ‘피할 수 없는 적’처럼 인류에게 다가오고 있다고 확언한다. 하지만 전세계 250여개 나라로 구성된 지구촌은 아직 만족할 만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불안해하고 있다.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유전자 배열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진 스페인 독감의 경우, 1918년 당시 4000∼5000만명의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사망한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희생된 것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 바이러스는 유전자 변이를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 면역체계의 대응은 바이러스 변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백신 개발 또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때문에 몇몇 의학자들은 전염병에 의한 인류의 절멸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보건의학계는 이미 개벽상황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 병(病)으로 병(病)을 씻어 내야
그러면 왜 이런 전염병이 창궐하는가? 그 이유를 100여년 전 증산 상제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성도가 “세상에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는 말이 있고, 또 병란(兵亂)도 아니고 기근(饑饉)도 아닌데 시체가 길에 쌓인다는 말이 있사오니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선천의 모든 악업(惡業)과 신명들의 원한과 보복이 천하의 병을 빚어내어 괴질이 되느니라. 
 
봄과 여름에는 큰 병이 없다가 가을에 접어드는 환절기(換節期)가 되면 봄여름의 죄업에 대한 인과응보가 큰 병세(病勢)를 불러일으키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천지대운이 이제서야 큰 가을의 때를 맞이하였느니라. 
 
천지의 만물 농사가 가을 운수를 맞이하여, 선천의 모든 악업이 추운(秋運) 아래에서 큰 병을 일으키고 천하의 큰 난리를 빚어내는 것이니, 큰 난리가 있은 뒤에 큰 병이 일어나서 전 세계를 휩쓸게 되면 피할 방도가 없고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7:38:1∼6)
 
이 말씀과 같이, 괴질병이란 천지의 상극질서 하에서 누적된 모든 반생명적인, 파괴적인 요인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대폭발을 하는 것이다. 상제님은 조류 인플루엔자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궁극의 괴병이 창궐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 괴질이 인류사에 부정적 영향만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앞으로 있을 대괴병으로 선천문명의 모든 상극적 요소를 걷어내고 묵은 기운을 뿌리 뽑는다고 말씀하셨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병겁이 휩쓸면 자리를 말아 치우는 줄초상을 치른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병겁으로 사람을 솎아야 사(私)가 없다.” 하시니라. (道典 7:38:7∼8)
 
앞으로 좋은 세상이 오려면 병으로 병을 씻어 내야 한다. (道典 2:139:8)
 
즉 큰 괴병은 인류의 새문명을 여는 과정에서 맞이하는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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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인플루엔자의 변이과정  
 
 
당초 과학자들은 철새에서 유래한 조류 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또는 Bird flu) 바이러스가 오리, 닭 같은 가금류에만 전염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97년 이후 홍콩과 아시아 등지에서 사람에게 감염돼 7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바이러스는 철새, 오리, 닭, 돼지, 인간으로 전파되면서 새로운 숙주에 침투할 때마다 유전자가 재조합돼 변종이 생겼다. 학자들에 의하면 1998년부터 2001년 사이, 아시아 전역에 퍼진 바이러스가 17회 이상의 유전자 재조합 과정을 거치면서 치명적인 변종이 나왔다고 한다. 2003년 1월 베트남과 태국에서‘Z 바이러스’출현, 2004년초 더욱 치명적인‘Z+ 바이러스’등장으로 아시아에서만 1억 2000만 마리의 닭을 폐사시켰다. 
 
기존의 바이러스는 생물체 내에서만 살 수 있지만, Z+ 바이러스는 죽은 동물의 고기나 닭똥에서도 생존하는 전례없는 특징을 지녔다는 것. 그런데 근래에는 포유동물인 돼지와 인간에게까지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이 확인되었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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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근대 역사에서 식을 줄 모르는 뜨거운 담론, 갑오동학혁명! 그 중심에 한 인물이 우뚝 서있다. 1871년 동서 문화가 본격적으로 하나 되고 개벽의 시운으로 성큼성큼 다가서는 위난을 맞아 역사적 인물이자, 우주의 주재자로서 조선에 강세한 강증산(姜甑山, 1871~1909) 상제님!
상제님은 갑오동학혁명을 새 역사의 문을 연 세계사적 사건으로 그 위상을 새롭게 밝혀 주셨다. 이 글에서는 갑오동학혁명으로 촉발된 제국주의 전쟁의 역사가 어떻게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사상초유의 대전란을 야기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상제님 천지공사의 참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갑오동학혁명과 청일전쟁
19세기말, 조선은 내우외환의 위난에 직면하였다. 안으로는 관료사회의 부패와 부의 독점이 뚜렷해졌고, 밖으로는 일본·청 등 2류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경제적 수탈이 가중되었다. 이러한 때 전명숙(全明淑, 1854~1895) 장군은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건지겠다는 대의를 갖고 갑오(1894)년에 분연히 일어섰다. 바야흐로 제국주의 종말의 서막이자, 역사의 대지진으로서의 ‘갑오동학혁명’이 발발한 것이다.
 
전명숙은 만고의 명장이니라. 벼슬 없는 가난한 선비로 일어나 천하의 난을 동(動)케 한 자는 만고에 오직 전명숙 한 사람뿐이니라. (道典 4:11)
전명숙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2:31:4)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3:31:5)
 
갑오동학혁명은 청·일 양국군의 조선출병을 불러왔다. 이 때 일본은 청국에게 조선의 내정개혁을 함께 할 것을 제의한다. 하지만 청국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결국 일본은 7월 23일, 경복궁을 불법 강점함으로써 조선에 친일내각을 수립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는 25일, 일본군은 풍도(인천 부근) 앞바다의 청국 함대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청일전쟁의 불을 당겼다. 육전에서는 성환전투를 전후로 일본군이 연승하였다. 이후 9월 들어 평양전투, 황해해전 등에서 청군이 계속 패함으로써 전쟁의 향방은 완전히 일본 쪽으로 기울고 만다. 
 
결국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은 1895년 4월 17일, 일본과 ‘시모노세키조약’에 합의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상실하고 만다.
 
청일전쟁에서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일본이 서양 열강의 개입을 크게 우려했다는 점이다. 11월 10일자 일본군의 ‘출군훈령’(出軍訓令)을 보면, “비도를 동북으로부터 서남 즉 전라도 방면으로 구축하는 데 힘쓰도록 할 것, 만일 비도 등이 강원·함경 방면 즉 러시아 국경 근처로 도망하는 경우에는 뒤탈이 생길 염려가 적지 않으므로, 엄밀히 예방하도록 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일본이 서양 열강, 특히 러시아의 개입을 얼마나 경계했는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아무튼 일본군은 청일전쟁의 승기를 몰아 동학군을 학살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전명숙 장군을 중심으로 한 동학군은 결국 신무기를 갖춘 일본군에 의해 집단적인 학살을 당하고 말았다.
 
러시아의 패배와 동아시아 정세변화
청일전쟁의 승리로 랴오둥(요동) 반도를 얻는 듯했던 일본 전국은 애국주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일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통해 만주와 조선에 지배권을 강화하던 러시아의 압력에 직면한다. 당시 제정 러시아의 실세인 재무장관 비테(Vitte, Sergei Yulievich, 1849~1915)는 일본의 랴오둥 반도의 점령이 러시아의 철도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뤼순항 점령은 전 조선은 물론, 중국의 황제를 일본의 천황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크게 우려하였다. 그리하여 러시아는 프랑스, 독일과 더불어 ‘동양의 평화를 위해’ 랴오둥 반도를 청국에 되돌려 줄 것을 일본에 권고하였다.

 
개항 초기, 서양 열강과 전쟁을 벌인 바 있는 일본으로서는 이들 세 나라와 전쟁을 하여 승산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은 타이완을 얻었지만 랴오둥 반도를 상실하는 치욕을 맛본다. 한마디로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삼국간섭’은 일본의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을 크게 고양시켰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타이완 식민통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형 제국주의 세력권을 형성하였다. 특히 남중국과 동남아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한 것은 청일전쟁의 큰 수확이었다. 한편 일본은 청국의 배상금을 모두 신무기 개발 등 군비증강에 투자함으로써, 러시아와의 숙명의 한판 승부를 착실히 준비해 나갔다. 
 
일본은 1904년 2월 8일, 인천과 뤼순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러·일 전쟁을 일으켰다. 랴오둥의 전략적 요충지인 뤼순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자 전쟁은 일본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1905년 3월, 펑텐의 대전투에서 승리한 일본은 5월 28일, 쓰시마 해전에서도 승리함으로써 유럽의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세계열강들의 예상을 깨고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하자, 세계는 경악하였다. 러시아의 패배는 러시아 부르주아지의 허약성과 제국의 무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저임금과 기아의 고통에 신음하던 노동자·민중의 분노가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폭발하였다. 전쟁 중에 발생한 ‘제1차 러시아혁명’은 러시아의 실상을 낱낱이 폭로한 사건이었다.
 
일본은 미국의 중재로 러시아와의 ‘포츠머스 강화회의’를 통해 조선의 지배권을 확고히 함은 물론, 뤼순·다롄을 포함한 랴오둥 반도와 사할린의 남쪽 절반을 차지하였다. 만주침략의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좌절을 뜻함과 동시에 일본과 미국의 갈등을 예고하는 서막이었다.
 
 
유럽의 화약고 ‘발칸 반도’
러일전쟁에서의 러시아의 패배는, 유럽의 힘의 균형 상태에 균열을 일으켰다. 러시아의 후진성과 허약함이 드러나면서, 독일은 팽창정책에 대한 자신감을 한층 더 가질 수 있었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파업이 수그러들자 노동자·민중에 대한 차르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차르는 군대를 이용하여 혁명의 지도자들을 탄압하였다. 소비에트 의장 트로츠키를 비롯한 혁명 지도자들이 유형에 처해지거나 살해되었다. 1905년 혁명이 끝난 후, 스톨리핀(Pyotr Arkad’evich Stolypin, 1862~1911)은 혁명을 탄압하는 한편 자유주의적 개혁을 폭넓게 실시한다. 특히 1861년 농노해방 이후 농지자금대여법, 농민들의 토지소유를 허가하는 새로운 토지법을 제정함으로써 농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고자 했다. 사회주의 정당들이 의회에 진출하자 스톨리핀은 의회를 해산시켰다. 이와 같은 조치는 혁명세력을 크게 긴장시켰다. 하지만 스톨리핀이 1911년 암살당함에 따라 차르 정부는 개혁을 지속시키지 못한 채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이러한 때, 누구도 대전쟁이 발발하리라고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발칸 반도에서 벌어졌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다. 1차 대전의 격발지인 발칸 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라 불렸다. 발칸 반도는 인종·민족·종교 등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말미암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유럽의 두 강대국 독일과 러시아의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가 갈등의 두 축을 형성하였다. 1908년 오스만 제국에 혁명이 일어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강제 합병하였다. 결국 슬라브주의 국가인 불가리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그리스가 ‘발칸 동맹’을 결성함으로써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이 발발한다. 오스만 제국은 패배하였고, 이들 국가들에게 많은 영토를 빼앗겼다. 헌데 불가리아가 너무 많은 영토를 획득했다고 판단한 발칸 동맹국들은 곧 오스만 제국과 힘을 합쳐 불가리아를 공격한다. 이것이 바로 제2차 발칸 전쟁(1913년)이다. 불가리아는 전쟁에서 패배한 후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접근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말미암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세르비아의 전쟁은 독일과 러시아의 전쟁으로 이어져 세계대전을 야기하였다. 

‘러시아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
1차 대전은 ‘산업전’이자 ‘총력전’으로, ‘대량살상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린 충격적 사건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 열강의 힘을 약화시키는 한편, 일본·미국 등의 새로운 강자를 역사에 등장시켰다. 그리고 러시아 제국에게는 재앙을 안겨주었다. 독일군의 공격에 서부공업지대를 상실한 러시아는, 물자부족으로 인한 노동자·농민의 불만에 직면하였다. 더군다나 빈농의 아들들인 병사들의 불만은 혁명의 실질적 토대가 되었다.
 
독일과 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1917년 2월 22일, 빵을 요구하던 부녀자들의 시위가 ‘제2차 혁명’의 불씨를 지폈다. 사회주의 세력과 병사들이 이 시위에 가담함으로써 ‘제2차 혁명’이 발발한다. 2월 혁명으로 말미암아 임시정부가 들어섰고, 10월 무장봉기로 레닌과 볼셰비키는 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제2차 러시아혁명’(레닌 주도의 볼셰비키혁명)은 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의 대안으로서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즉 갑오동학혁명으로 촉발된 제국주의 전쟁은 러시아혁명(1917년)으로 이어져 ‘서양제국주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역사의 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러시아혁명’과 ‘혁명정권’의 수립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증오했던 제국주의 국가를 모델로 삼지 않더라도 근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이상을 품게 되었다. 한마디로 러시아 혁명정권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민족해방의 방법과 가능성을 새롭게 제기하였다.
 
러시아 혁명정부는 곧 독일과 강화를 성사시켰다. 이는 국내질서를 안정시키고 혁명을 추진하고자 하는 뜻을 품고 있었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미국이 참전하자 전세는 연합국 측으로 급격히 기운다. 1918년 8월 8일, 영국·프랑스·미국의 20개 사단은 아미앵 근방의 독일군 진지를 공격하였고, 이내 독일군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연합군은 전진을 계속했고, 독일군의 패배가 가시화됐다. 9월 30일 불가리아가 휴전협정에 조인했고, 이탈리아의 공격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휴전에 조인함으로써 제국은 해체되었다. 이에 따라 독일은 패전에 따른 위기가 찾아왔다. 11월 초 킬 지역의 해군 반란은 혁명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결국 11월 10일 빌헬름 2세가 네델란드로 망명함으로써 제국은 붕괴된다. 1918년 11월, 새롭게 수립된 공화국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1차 대전이 종식되었다.
 
민족자결권 : ‘인권’의 문제

 
1차 대전이 끝난 후 일어난 3.1(1919년)운동을 이야기 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의 ‘민족자결주의’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러시아혁명과도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필자는 ‘러시아혁명’을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바라볼 때만이, 20세기 역사를 올바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혁명으로 탄생한 레닌의 사회주의 정권은 무병합·무배상에 입각한 민주적 강화회담, 비밀외교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특히 러시아 혁명정부는 소수민족에 대한 자결권을 인정하여, 자국의 지배하에 있던 폴란드· 핀란드· 발트 3국의 독립을 배려하는 혁명적 조치를 단행한다. 
 
한마디로 ‘러시아혁명’은 약소민족에게 새로운 희망의 새싹이자 민족해방운동의 분수령이 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바로 이러한 ‘러시아 사회주의혁명’의 도전에 대한 응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혁명 러시아의 수반,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1924)의 견해를 수용하였다. 또한 국제연맹이 약소민족의 권리를 점진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파리 강화회의 이후 윌슨의 ‘민족자결원칙’에 따라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등이 새롭게 독립을 이루었다. 이는 ‘러시아혁명’이 유럽에 미친 순기능이라 할 수 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미국의 이익과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기득권 유지라는 측면에서 분명한 한계성을 지닌다.9)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당시 ‘민족자결권’이 ‘인권’의 문제로서 국제사회에 크게 이슈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상제님 ‘애기판 도수’를 관통하는 핵심주제라 할 수 있다. 
 
‘약자’의 자율적 삶이 보장되는 ‘우주조화정치’를 열망한다
상제님은, 1차 대전 공사를 통해 동양을 집어삼키려는 서양 열강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그리하여 1차 대전을 통해 일본은 산동성의 독일 조차지를 확보하는 등, 한층 더 강력한 제국주의의 길로 들어선다. 결국 일본의 침략열은 2차 대전으로 이어지는데, 2차 대전은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힘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창조적 파괴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갑오동학혁명과 1차 대전의 공사정신은 과연 무엇인가?
 
 애기판 전쟁도수의 참뜻은, 먼저 상제님의 세계일가통일공사가 인사로 현실화되어 ‘국제연맹’이 결성되었다는 면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국제연맹은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한 ‘전 지구적인 협의·의결 기구의 맹아’로서 국제연합의 모태가 된다. 
 
 갑오동학혁명과 1차 대전, 즉 ‘애기판 도수’를 통해 상제님이 인류에게 가르쳐 주고자 한 역사정신은 과연 무엇일까? 한마디로 약자(사회적 약자, 약소민족 등)의 자율적 삶을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영구평화의 길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공사라 말할 수 있다. 약자를 배려하며 공생하는 길만이 평화의 원동력임을 보여주고 계신다.
 
 
 앞세상에는 족속에 따라 나라를 세우리라. (道典 5:332) 
 천하를 공평하게 하려는 생각을 가져야 신명의 감화를 받고 모든 일에 성공이 있느니라. (8:93) 
 
 
 
 <참고도서>
 임영태 저, 『인류이야기 현대편 1』, 아이필드, 2004년
 크리스 월리스, 정성묵 옮김, 『대통령의 위기』, 이가서, 2005년
 미셸린 이샤이 저, 조효제 옮김, 『세계인권사상사』, 도서출판 길, 2006년
 배기찬,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 위즈덤하우스, 2005년
 나카츠카 아키라 저, 박맹수 옮김,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푸른역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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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지 136년이 지났다. 하나님이 우주일년(12만 9,600년)에 단 한번 인간세상으로 행차하시는 그 절대적 시간대를 맞추기 위하여, 천상(신명계)에서는 매우 엄정하고 분주한 준비를 거쳤음을 우리는 『도전道典』을 통하여 살필 수 있다. 

후천 가을의 금화교역하는 시운(時運)을 맞추어 하원갑(下元甲) 신미(辛未)년에 탄강하신 시간대를 보면 경오(庚午) 9월 19일에서 신미(辛未) 9월 19일까지가 384일의 황극수(皇極數)이며, 이는 정확히 13달〔354일(태음력 1년)+30일〕의 잉태기간과 일치한다. 또 어천하실 때 천지신명들이 도열한 가운데 ○○신장이 손바닥에 무엇을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탁 쳐보더니 신장들을 향하여 “아직도 시간이 멀었구나.” 하는 장면. 나○○ 신장을 찾으시는데 다른 신장이 대신 시각(時刻)을 알리다가 혼나는 광경 등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신도(神道)와 인사(人事)가 집행되는 엄정함을 보여주고 있다. 
 
상제님의 탄강과 어천 때에 뻗친 7일간 영롱한 상서기운도 모두 이를 주관하는 신명계의 봉명 모습임은 말할 것도 없다. 9년 천지공사의 도수를 맞추는 예식은 더욱 엄정하리라 생각된다. 후천이 되어 이 모든 것을 도술영상으로 재구성하여 인류가 더불어 감상할 때 받을 감동을 상상하면 벌써 가슴이 벅차오른다.
 
상제님께서 인간세상에서 행하신 희생과 봉사와 대속의 천지공사로 인하여 세상은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주무실 곳이 마땅치 않아 ‘초빈 나래를 떠들고 호연을 누이고 널 반대편에서’ 주무셨다는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설명이 부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100여년 시간의 간격만큼 문화적인 차이가 벌어져, 말뜻도 많이 변천하였으며 또 상제님 말씀을 바로 알아듣는 사람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도전 3편 253장을 보면,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만일 세상에서 나를 성인이라 하면 너희들이 천신할까”라고…. 상제님께서는 1900년대 초엽 당시의 전라도 언어로 말씀을 하셨는데, 여기서 ‘천신’이란 무슨 의미일까? 


 
나는 광인으로 행세하리라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뒤 어느 날, 당신님을 가장 오래 모셨던 김형렬 성도는 “세상에서 우리 선생님은 광인(狂人)이라는 말만 들으셨고, 우리는 미친 사람을 따라다니다가 결국 김(金)씨 문중을 망쳤다는 소리를 들으니, 이제 당신께서 어천하신 이후로 이것이 제일 원통하니 어찌 살꼬.”라고 울면서 탄식하였다(道典 10편 81장). 가식 없는 이 독백(獨白)에서처럼 인간세상에서 상제님의 참모습을 제대로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상제님에 대한 세평(世評)은 그저 ‘광인(狂人)’일 뿐이었다. 
 
기성사회가 철저하게 배타하는 가운데 상제님은 천지공사에 꼭 필요한 성도만을 골라 쓰셨다. 김형렬 성도는 천지공사장의 식주인이자 여러 구릿골 김씨들을 도문에 인도한 장본인인 만큼, 상제님의 고통이 김형렬 성도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로 고민하는 그에게 상제님께서는 “세상이 너무도 악(惡)하구나. 이 시대를 지내려면 남에게 폭을 잡히지 않아야 하느니라. 너는 광(狂)이 되지 못하니 농판으로 행세하라. 나는 광인으로 행세하리라.”라는 처세법을 내려주셨다(道典 2편 149장). 당신님이 오시지 아니면 안 되는, 한계까지 간 세상에서 천지공사를 집행하시기 위해서 당신님께서 택하신 방법이 ‘폭잡히지 않는 완전자유인의 처세’였다. 
 
 
 
박공우 성도식 해법
한편 상제님을 따르던 일단의 성도들에게 이것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문제였다. 태인지역 유지출신이자 상당히 부유하였던 최창조 성도 같은 분은 동네술집에서 “강탈망인지 강삿갓인지 그 강미치광이 따라다니지 말고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술이나 받아 주면 고맙다는 소리나 듣지.” 하는 야유와 더불어 “병신 뒷다리 같은 놈들, 참말로 미친놈들은 저놈들이라.” 하면서 자신을 조롱하는 소리에 그만 흥분하고 말았다. 
 
그는 혼자서 어찌할 수 없어, 성도들이 모여있는 자리로 돌아와 그 모욕을 털어놓아 박공우 성도의 심지에 불을 댕겼다. 정읍, 고창 등 다섯 고을의 장날이면 그 날의 모든 안녕질서를 담당하는 장치기꾼 박공우 성도가 그와 같은 발언을 전해 듣고 가만히 있었을 리 만무하다. 즉시 장작더미로 가 몽둥이 한 개를 집어들고 목표지점을 향하여 전진 앞으로 하던 박공우 성도를 불러 멈춘 것은 잠자코 듣고 계시던 상제님이셨다. 그렇다고 곧바로 되돌아올 그가 아니었다. “공우야, 너는 오늘 나와 남이 되려느냐” 하는 상제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박공우 성도는 돌아와 무릎을 꿇었다(道典 3편 253장).
 
 
 


내가 미쳤다 하기에 너희가 나를 원 없이 따른다
박공우 성도는 글을 쓸 줄 모르는 무식(無識)이었다. 길바닥에서 터득한 일상 언어 외에 그가 제대로 아는 것은 동학신도로서 외운 수운가사 뿐이었다. 그가 상제님을 처음 따르게 된 계기도 가슴속에 품고 있던 수운가사의 한 구절이 전광석화처럼 뇌리를 때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여러 성도들의 두 눈이 모두 상제님과 그 앞에 꿇어 엎드린 박공우에 집중되는 이 긴장된 순간에, 공우를 일으키며 성도들에게 던지시는 상제님의 음성은 박공우 성도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수운가사의 한 구절로부터 시작되었다. 



 
“수운가사에 이르기를 ‘여광여취 저 양반을 따르기만 따를진대 만단설화(萬端說話)1) 한 연후에 소원성취 하련마는 못 만나서 한탄일세.’라 하였나니, 내가 미쳤다 하기에 너희가 나를 원 없이 따르게 되지, 만일 세상에서 나를 성인이라 하면 너희들이 천신할까. 모르는 가운데 정성이 깊지, 알고 난 뒤의 정성이야 누군들 못하겠냐. 깊이깊이 생각해 보라.” (道典 3편 253장 16∼18절)
 
이때 상제님은 ‘천신할까’라는 낯선 단어를 쓰고 계신다. 토박이 전라도말로 그 말뜻은 ‘차지할까’, ‘구경할 수 있을까’, ‘몫이 있을까’의 의미다. ‘나(상제님)’를 세상에서 성인(聖人)이라고 받들면, 과연 너희들이 차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신다. 온 천하가 상제님의 본래 모습을 안다면, 우리가 상제님 앞에 다가갈 수 있는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천신(薦新)’이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철따라 새로 난 과실이나 농산물을 먼저 신위(神位)에 올리는 일’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 의미로는 ‘처음으로 또는 오랜만에 차례가 돌아와 얻을 수 있게 됨’이라고 밝히고 있다. 앞의 ‘천신할까’를 요새말로 바꾸어보면 ‘(너희에게) 차례가 가겠느냐’의 뜻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천신이라는 말은 어원을 파고 해석하여도 절묘하게 통하는 의미를 음미할 수 있다.

 
 
 


지금은 곧은 낚시의 계절
어찌 그때만 그러리요. 이는 상제님 재세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극히 높으신 호천금궐의 백보좌에서 내려와 더없이 낮은 자리에 머무셨던 상제님처럼, 당신님을 대행하시는 인사의 지도자 분들 역시 아직 진리의 위격(位格)에 부합하는 예(禮)를 받지 못하고 계시다. 
 
태모님께서는 이러한 지도자의 삶에 대하여 한마디로 ‘천부지(天不知)·인부지(人不知)·신부지(神不知)’로 규정해 주셨다. 하늘도, 인간도, 신명도 알지 못하는 상제님 천지공사의 도수를 집행하시는 삶을 사신다는 뜻이리라. 그러면서 ‘궁팔십 달팔십(窮八十 達八十)’의 강태공을 예를 들어 말씀해주셨다. 
 
천하경략의 웅지를 품고 있으면서도 때가 이르기 전까지 단지 낚시대에 그 뜻을 실어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 인물. 만일 명리(名利)에 뜻이 있었다면 반드시 미끼를 걸었을 것이다. 미끼도 없고 바늘도 굽지 않았기에 걸려들 까닭이 없는 곧은낚시. 이것이 강태공 도수이다. 인고의 세월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 도수. 때를 못 참고 뛰쳐나간 강태공 아내의 애절한 이야기가 성황당 전설에 남아있던가! 
 

 
 
 
 
모르는 가운데 정성이 깊다
이제 바야흐로 세상사람들이 상제님을 찾아 도문으로 들어오는 시운(時運)이 도래하였다. 천지의 주인이 결정되는 상씨름 시국이 북한의 핵실험과 더불어 그 문턱을 넘은 것이다. 그럴수록 무신(1908)년 어느 날, 상제님께서 박공우 성도에게 화두(話頭)로 던지신 ‘너희가 천신할까’ 하신 소중한 말씀이 자꾸만 떠오른다. 모르는 가운데 정성들일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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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제님을 신앙하는 일꾼들에게 8·15 광복은 아주 특별하다.
 우리 한민족이 8·15 광복을 맞기까지, 그리고 앞으로 세계의 주인으로 우뚝서기까지 
 그 이면에는 천리(天理)와 신도(神道)를 바탕으로 
 역사전개의 이정표를 짜신 증산 상제님의 숨결, 천지공사의 비밀이 숨어 있다.
 
 
국립묘지에서 만난 겨레의 얼
국립 대전 현충원의 호국관에 가보라. 거기 중키에 낯설지 않은 얼굴로 서있는 독립군 장교와 독립군 사병의 밀랍인형을 만날 수 있다. 아주 빛 바랜 낡은 군복 차림새이다. 장교는 그런 대로 때깔나는 운동화 모양의 군화를 착용하고 있다. 
 
그러나 사병은 감발에 새끼줄로 대 여섯 번 발을 돌려 엮은 것이 전부다. 보기에 민망하여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운동화라도 신겨주고 싶은 심정이다. 
 
험한 산을 오르내려야 하고, 추운 곳에서 야영을 하기 일쑤였을 독립군들. 군인의 기본 장비인 군화가 저러할진댄 나머지를 더 논하여 무엇할까? 거기서, 100년 전 우리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본다. 
 
그때, 후줄근한 군복차림 속에서도 매섭게 빛나던 두 눈동자로 그들은 오늘의 우리를 보았을까? 그런 거룩하고 숭고한 충혼(忠魂)이 있었기에 오늘의 조국광복이 성취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상제님을 알지 못하면
사람들은 쉽게 역사의 섭리를 입에 담지만,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역사의 섭리를 주재하시는 상제님이 동방의 조선 땅에 오셨음을 알지 못한다. 저 고난의 시대에 상제님이 우리 곁에 계셨다. 
 
상제님께서는 오늘의 우리 민족에게 인류구원의 큰 사명(使命)을 내리시려고, 우리 조선을 일본에 넘기는 공사(公事, 역사가 전개되어 가는 이정표·설계도)를 보시고 충혼들을 단련시키셨다. 때문에 과거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막중한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일꾼들을 길러내는 과정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사명을 자각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마디마디마다 역사전개의 이정표를 정해 놓으신 상제님의 숨결, 천지공사의 내용을 살펴보아야 한다.
 
상제님은 우주의 지존(至尊)이기 이전에 한국사람들과 아주 친밀한 분이다. 당신님은 우리 민족에게 후천선경을 건설하는 크나큰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 조선 땅에 오셨다. 20세기가 시작된 1901년부터 9년 동안 이 땅에서 이 땅의 백성들과 호흡하시며 천지공사를 보셨다.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대한민국’ 국호(國號)도 상제님께서 친히 지어 주신 이름이다. 
 
그전에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대(大) 자(字)’를 붙일 수 없었지 않은가? ‘대한민국(大韓民國)’이란 세계가 일가(一家)되었을 때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도주국(道主國)이며, 종주국(宗主國)을 의미한다. 
 
 
일본을 큰 일꾼으로 내세우다
상제님이 이 땅에 계시며 천지공사 보실 당시 조선의 형편은 어떠하였던가? 1904년부터 살펴본다 하여도, 러·일전쟁의 전장(戰場)으로 일본군이 인천에 상륙하는 것을 **로, 나라의 외교권을 넘겨준 강압적인 을사보호조약(1905년), 일제 통감부 설치(1906년), 1907년의 군대해산, 사법권·경찰권 이양으로, 사실상은 조선의 국권이 완전히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상제님께서 짜신 세운공사의 프로그램에 따라서 전개된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일본을 일꾼으로 내세워 쓴다고 하셨다.
 
하루는 한 성도가 일본 사람을 ‘왜놈’이라 부르니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일해 주러 온 사람들을 그렇게 험하게 말하면 어떻게 일을 제대로 하리오. 일 보는 사람이니 왜놈이라 부르지 말고 ‘일본 사람’이라 부르라. 일인(日人)은 일꾼이라. 나의 일을 하나니 큰 머슴이 될 것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5:22:4~6)
 
상제님께서 우리나라를 해방시키는 내용을 찾아보면, “일본은 깔담살이 머슴이요, 미국은 중머슴이요.”라는 말씀과 “깔담살이 머슴이 들어가면 중머슴이 나와서 일하고….” 하신 말씀이 있다 (道典 5:22:8 9).
 
상제님은 일본과 미국을 ‘머슴’이라고 부르셨다. 머슴은 주인(主人)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혹자는 어떻게 증산 상제님께서 우리나라를 외국에 의탁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지만, 이는 당시 조선이 얼마나 무능력하고 부패할 대로 부패했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소치이다. 
 
상제님은 아예 지도에서 영영 사라질 민족에게 생맥(生脈)을 붙이고, 금강역사(金剛力士)로 되살아나는 아주 특별한 시술을 행하셨다. 그리고 채 기운이 미흡하여 주인노릇을 하기 힘든 ‘어린 도령(道令)’이 힘이 붙을 때까지, 일본과 미국이라는 두 나라가 조선의 뒤를 돌보도록 ‘아주 특별한 기운’을 붙이셨다. 
 
그러면 ‘깔담살이 머슴’은 무엇을 뜻하는가? 지금은 쓰지 않는 ‘꼴머슴’의 사투리다. 사전에는 ‘땔나무나 꼴을 베는 일을 하는 어린 사내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자로만 보면, 아주 정감 넘치고 때론 겸연쩍은 표정의 구릿빛 얼굴이 다가온다. 그러나 과연 일제 치하가 그렇게 녹녹했던가? 
 
일본 사람이 서방 백호 기운을 띠고 왔나니 숙호충비(宿虎衝鼻)하면 상해를 받느니라. 범은 건드리면 해를 끼치고 건드리지 않으면 해를 끼치지 않으며, 또 범이 새끼 친 곳은 그 부근 동리까지 보호하나니 사사로운 일로 그들을 너무 거스르지 말라. 이것이 곧 피난하는 길이니라. 동방의 청룡(靑龍)기운이 동(動)하면 백호는 물러가느니라. (道典 5:285:5 8)
 
 
“중국으로부터 보은신이 넘어오리라”
1910년 한일합방이 되면서 조선은 완전히 해체되고 말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한 파멸을 맞이한 것이다. 그 형극의 상황에서 우국지사들의 충정(衷情)이 터져나왔으나, 일본의 압제가 워낙 심해 국내에서는 독립운동을 일으킬 수 없었다. 까닭에 만주와 상해가 그들이 활동하는 주 무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을 지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되었다. 
 
한편 조선 왕조 500년 동안 막대한 영향을 끼치던 중국은 어떠하였는가? 1908년 10월 26일(음), 상제님께서 청나라 광서제(1871∼1908)에 응기(應氣)되어 있던 황극신(皇極神 : 세계역사를 움직이는 천자신)을 우리나라에 옮겨오는 천지공사를 보시자, 광서제는 죽고 만다. 광서제의 사인(死因)은 세간에서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로부터 중국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상제님께서는 그 달에 ‘한국과 중국’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대단히 중요한 ‘보은신 넘어오는 공사’를 보시고, 다음해(1909년)에 어천하신다. 사실 그 다음해부터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는 총독부 시절이 시작된다.
 
순망즉치한(唇亡則齒寒)이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나니 중국 인민이 부흥하여야 우리도 이어서 부흥하게 되리라. 중국이 오랫동안 조선의 조공을 받아 왔으니 이 뒤로 25년 만이면 중국으로부터 보은신(報恩神)이 넘어오리라. (道典 5:322:17~18)
 
중국으로부터 보은신이 넘어온다는 이 말씀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공사를 집행하신 때는 1908년, 그로부터 약 25년 후의 시대상황을 살펴보자. 
 
1931년 9월 18일 만주전쟁이 일어난다. 일본은 만주를 무력 침공하여 만주 전역을 손아귀에 넣었으나 중국은 힘이 부족하여 어찌할 수 없었다. 상제님이 공사로 집행하신 일·청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다음 말씀을 보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결국 하나의 귀결점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차 일청전쟁이 두 번 일어나리니 첫 번째에는 청국이 패하고 말 것이요, 두 번째 일어나는 싸움이 10년을 가리니 그 끝에 일본은 패하여 쫓겨 들어가고 호병(胡兵)이 침노하리라. 그러나 한강 이남은 범치 못하리라. (道典 5:405:1~2)
 
1932년 1월 28일, 중국 침략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하여 일본군은 10만 병력과 100대의 비행기로 상해(上海)를 공격하여 점령해버린다. 중국은 중앙군인 제5군을 상해 방어에 투입하여 19로 군에 협동하여 총 30만 명이 1개월 간의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결국 일본군이 상해를 수중에 넣고 만다. 이것이 소위 상해사변이다. 
 
이는 4억 중국 인민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립도 경각을 다투게 되었다. 만주는 독립군의 전투기지이며, 상해는 임시정부의 소재지 아닌가. 매달 월세를 걱정해야 하는 궁핍한 재정 형편과 배고픈 일부 애국지사들의 이탈로 당시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보은신이 넘어온 계기? : 윤봉길 의거에 감동한 장제스
이 때 4억 중국인은 물론 전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백범 김구(1876∼1949)가 편성한 특공대 한인애국단의 윤봉길(1908∼1932)이 상해 점령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 상하이 일본인 거류민 단장 등 수뇌 7명을 모두 섬멸한 것이다. 이날은 일왕의 생일이었다.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1887∼1975) 총통은 이에 감동하여 각지를 순회하면서 “고려청년 윤봉길은 중국군 100만 명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었다” 하고 격찬하였다. 그동안 한국 독립운동에 대하여 별 호의를 보이지 않던 장제스는 그 이후 완전히 태도를 바꿔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김구-장제스 비밀회동을 갖게 되었고, 백범의 한국 독립군 장교훈련 요청에 장제스는 쾌히 응낙하였다. 이에 중국군관학교 뤄양(洛陽)분교에 한국군 장교반이 개설되기도 하였다. 
 
 
카이로 회담에서 유일하게 완전독립을 보장받은 한국
1943년 3월 27일 영국의 윈스턴 처칠(1874∼1965)은 전후(戰後) 식민지 독립이 인도의 독립을 고취할 것을 우려하여 외교장관을 미국으로 보냈다. 그리고 종전(終戰) 후 한국의 완전 독립을 승인하지 않고 신탁통치를 한다는 데 합의를 하였다. 이를 알게 된 백범과 임시정부는 경악하여 전 역량을 동원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최근 발견된 중국측 자료 ‘총재접견한국영수회담기요(總裁接見韓國領袖會談紀要)’에 의하면, 카이로회담을 앞두고 1943년 7월 26일 장제스는 백범의 요청에 의해 백범 등 한국 요인 6명을 비밀리에 공관으로 초빙했다. 이 자리에서 백범은 종전 후 한국의 완전 독립과 국제 공동 관리의 신탁통치 반대를 주장하며, 이를 중국 측에서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장제스는 “영국과 미국은 국제공동관리 논조를 확실히 갖고 있으므로, 장래 쟁집(爭執)이 반드시 매우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내부의 정성 통일과 공작 표현이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 측은 힘써 싸우겠다.”고 약속했다(필자주. 동아일보 2007. 6. 9. ‘신용하 교수의 다시 보는 한국역사’에서 인용).
 
1943년 11월 27일 미국 영국 중국의 연합국 수뇌들이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태평양전쟁 종식 후, 일본에 대한 처리문제로 회담을 열었다. 이때 장제스의 제안으로 한국 독립의 약속이 선언서에 포함되었다. 원래는 미국에 의하여 미·영·중 삼국에 의한 신탁통치안이 발의될 계획이었다고 한다. 
 
특히 영국의 처칠 수상은 식민지 인도의 독립을 고취할 것을 염려하여 한국 독립 문제의 논의 자체를 반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장제스의 기습 제안과 이에 반대하는 처칠을 루즈벨트가 중재하여 마침내 백범의 뜻이 관철된 것이다. 한국 독립의 시기에 대하여 처음에 루스벨트는 ‘적당한 때에(at the proper moment)’로 고쳤던 것을 처칠이 ‘적절한 과정에서(in due course)’라는 표현으로 재차 교정하여 카이로 선언에 채택되었다(홉킨스가 루즈벨트에게 제출한 정책 건의서에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at the earliest possible moment)’로 되어 있었다). 
 
⑤〈특별조항〉 한국의 미래에 대하여 언급하고 독립을 보장하는 국제적 합의를 하였다.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 아래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적절한 과정에 따라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줄 것이다.”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 - 카이로 선언의 내용 중에서
 
 
인도의 독립운동 지도자 네루(1889∼1964)는 왜 한국 독립만 보장되고 인도는 무시되었는가를 통탄하였다고 한다. 어찌 인도뿐이리오. 2차 대전 이후에 독립운동을 전개한 100여 식민지 국가 중 카이로 회담에서 독립을 보장받은 나라는 한국뿐이다. 
 
이런 시대상황으로 볼 때, 윤봉길 의사, 중국의 장제스 총통 그리고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주석 등이, 도전 5편 322장의 공사 말씀을 인사(人事)로 성사(成事)시켜, 중국으로부터 보은신을 조선으로 넘어오게 한 주요 인물들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회문산에서 보신 오선위기 진주(眞主) 공사
다시 상제님의 공사로 돌아가 보자. 카이로 선언의 결과를 연상케 하는 공사 내용이 1907년 가을 순창 회문산 아래 농바우에서 집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일본을 도와 잠시 천하통일(天下統一)의 기운과 일월대명(日月大明)의 기운을 붙여 주어 천하에 역사를 하게 하리라. 그러나 그들에게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어질 인(仁) 자라. 만일 어질 인 자까지 붙여 주면 천하는 다 저희들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어질 인 자는 너희들에게 붙여 주리니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어질 인 자는 뺏기지 말라.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요 저희들은 곧 너희들의 일꾼이니라. 모든 일을 분명하게 잘하여 주고 갈 때는 품삯도 못 받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접이나 후하게 하라.” 하시니라. 
이어서 양지에 천하시비신순창운회(天下是非神淳昌運回)라 쓰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공사의 결정으로 인하여 천하의 모든 약소민족도 조선과 같이 제 나라 일은 제가 주장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道典 5:177:6~13)

 
 
이 공사의 이름은 바로 ‘오선위기 진주공사’이다. 오선위기는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형국의 혈’로 순창 회문산에 있다. 다섯 신선이란 구체적으로는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과 같은 강대국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주(眞主)는 참 주인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어질 인(仁)자는 주인(主人)의 마음이다.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은 (천지의) 주인(主人)되는 동방의 조선이 대국의 칭호를 회복하고 당당히 ‘대한민국’으로 거듭나는 과정인 것이다. 상제님의 천지공사가 아니고는 세계사에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은 품삯도 못 받고 가는 일꾼
이제 깔담살이 머슴이 물러가는 시기에 대한 내용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공사를 보신 때는 1906년 2월. 서울 남산에 통감부(왜성대)가 설치되고 이등통감이 부임한 그 시기다. 상제님께서 친히 서울 남대문에 왕림하셔서 중요한 공사를 보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일본은 나의 일을 해 주고 품삯도 받지 못하고 가는 일꾼이니라. 세간에서 칠월 보름을 백중(百中)이라 하나니 백중백중(百中百中)이라 일백 가지 일이 모두 적중하리라. (道典 5:125:9~11)
 
위 말씀은 백중(百中)에 핵심내용이 다 들어있다. 백중은 도교(道敎) 절기로 보면 옥황상제님께 인간의 죄를 고하는 날(元) 가운데 중원(中元)이며, 불교 절기로는 목련존자가 지옥에 있는 자기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 제를 올렸던 우란분절이며, 우리 민속에서는 모내기를 마친 머슴을 하루 쉬게 해주는 ‘호미씻기날’ 등 여러 의미가 있다.
 
그 중에서 상제님은 ‘머슴이 일손을 놓고 쉬게 하는’ 우리 민속 풍습을 공사정신으로 취하셨다. 곧 깔담살이 머슴이 그 임무를 다하게 될 것임을 풍류적으로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전통적으로 ‘호미씻기날’에는 두둑히 용돈을 줘서 보내지만 상제님의 머슴에게는 품삯을 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상제님께서는 그 선언의 장소로 어디를 선택하셨는가?
 
 
병오(丙午, 1906)년 상제님께서 경복궁 앞에 벽력표(霹靂表)를 묻으신 뒤에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모두 흩어져 돌아가라. 10년 뒤에 다시 만나리라. 10년도 10년이요, 20년도 10년이요, 30년도 10년이니라.” 하시거늘 한 성도가 “40년은 10년이 아닙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40년도 10년이야 되지만 넘지는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5:132:1∼3) 
 
이는 1945년 해방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머슴이 주인을 능멸하려 그 사랑채(경복궁) 바로 앞에 그보다 더 큰 집을 짓고 내려다보게 될 것을 내다보면서 상제님은 일본에게 정확히 40년(1906∼1945) 동안만의 조선 강점을 허락하고 계신다. 
 
저 300년 전 임진왜란 때, 조선 전토를 유린하며 자신만만하던 저들. 그러나 끝내 통치를 해보지 못하여 큰 한(恨)을 안은 채 풀지 못하고 있다는 일본의 도술신명(道術神明)들에게 마치 대문(大門) 키를 내주는 것과 같은 해원 예식을 보고 계신다.
 
 
진정한 광복의 날은 언제인가
그러나 상제님이 강조하신 ‘백중백중’, ‘칠월보름’ 등은 ‘깔담살이 머슴’에게 해당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상제님께서 ‘일제로부터 해방되는 날짜(七月七夕)’는 다른 공사를 통해서 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의 『도전』 5편 125장 말씀은 얼핏 해방공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공사는 단순히 ‘일본으로부터의 해방’만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을유(乙酉, 1945) 광복(光復)은 상제님의 공사정신으로 보면 사실은 ‘꼴머슴’과 ‘중머슴’의 업무교대에 지나지 않는다. 
 
백중백중은 그야말로 대명천하(大明天下)에 ‘주인(主人)’이 나서는 날이다. 꼴머슴이 일하다가 쉬는 날짜가 정해져 있듯, 중머슴 역시 천지에서 일하라고 허락해준 제한된 시간이 있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다 천지공사에서 결정된 그대로 전개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육자회담도 바쁘고, 함께 뛰는 우리 도생(道生)들도 더욱 바쁘다. 백중 백중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상제님 말씀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천지법임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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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문방(生門方)부터 알아 두라. 사문(死門)은 입구멍이요, 생문(生門)은 똥구멍이니라. (道典 11:62:2)
* 불사약은 밥이요 불로초는 채소니라. (道典 9:14:2)


밥



최고의 양질 칼로리는 ‘밥’ 
칼로리(열량)에도 질이 있다. 몸에 좋은 칼로리가 있는가 하면 나쁜 칼로리도 있다. 인체를 자동차에 비유할 때 칼로리는 휘발유에 해당한다. 문제는 칼로리가 몸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식품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가장 이상적인 칼로리는 밥이다. 밥과 같은 녹말은 바로 흡수가 되지 않아서 분해가 필요한 다당류(多糖類)이다. 위장에서 소화되어 혈액 중에 흡수될 때까지 2∼3시간에 걸쳐 서서히 칼로리를 내놓는다. 많은 이들이 밥을 푸대접하지만 과식만 피한다면 밥만큼 좋은 칼로리 식품도 없다.
 
밥보다 질이 떨어지는 칼로리 식품이 설탕으로 대표되는 단당류다. 단당류는 췌장을 비롯한 인체에 많은 부담을 준다. 먹자마자 바로 칼로리가 공급되기 때문이다. 갑자기 혈당이 올라가므로 췌장에서 혈당을 낮추기 위해 인슐린이란 호르몬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중앙일보, 3.25) 
 
 
건강을 위한 식사조절과 운동요법
식사방법으로는 소식(小食)을 원칙으로, 아침은 적당히, 점심은 배불리, 저녁은 조금만 먹는 것이 좋다. 특히 식사 후 바로 눕지 말고, 매 식사 후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운동할 것을 권한다. 운동은 속보가 간편하면서 효과가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지를 빨리 걷거나 계단 오르내리기를 20∼30분 정도 하면 좋다. 약간 땀이 나면서 심장 박동이 가볍게 느껴질 정도가 적당하다. 
 
 갱년기 장애 극복을 위한 음식과 차
 ■ 두부와 된장국·청국장을 즐겨 먹는다.
 ■ 콩 식품·콩 보충제를 먹으면 에스트로겐 결핍으로 인한 갱년기 장애를 줄일 수 있다.
 ■ 혈(血)을 보강해주는 당귀차를 즐겨 먹는다.
 ■ 피를 맑게 하고 심장기능을 보강하며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녹차와 대추차를 먹는다.
 ■ 에스트로겐 유사물질이 들어있는 칡뿌리를 먹는다.
 ■ 중년이후에는 특히 생강차를 즐겨 마신다. 생강은 몸 안의 독소를 제거해주고 위장을 따뜻하게 해준다.



먹는 소금이 위험하다
사람이 먹으면 안되는 맹독성 성분이 중국에서 수입해 오는 천일염과 가공염에 첨가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겉으로는 국산천일염으로 표시돼 있지만 실제 내용물은 중국산 소금을 들여와서 부대를 바꿔치기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같은 소금이라도 중국산은 염도와 질이 달라서 김장을 담그기에도 부적합하다고 한다. 단속에도 불구하고 이런 속임수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값싼 공업용 수입천일염이 식염원료로 사용되고 있는데다 한국산 소금값이 크게 비싸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수입소금 특히 중국산 소금에는 청산가리의 일종으로 알려진 포타슘페로시안나이드쪹가 첨가물로 섞여 있다. 
 
(KBS1 취재파일, 7.27) 
분쇄염을 만들 때 소금이 쉽게 굳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첨가하는 고결방지제로, 식품에는 절대 사용해선 안 되는 치명적인 독성물질로 알려져 있다.

 
‘청산가리 개고기’ 경보 
말복을 며칠 앞두고 중국 저장(浙江)성 일대에서 청산가리가 든 개고기가 다량 적발돼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저장성 위생청 린잉 처장은 “최근 1주일 동안 성 전체에 대규모 조사를 실시, 청산가리가 든 개고기 14.7톤을 적발, 압수했다”고 말했다. 개고기에서 청산가리가 검출된 것은 농촌 토종개들을 때려잡기가 쉽지 않아 청산가리로 독살하기 때문. 
 
성 위생감독소 진(金)모 소장은 “지난해 말에도 독극물이 든 개고기 수톤을 적발, 압수했다”고 말했다. 중국에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가 있는 동북지방을 중심으로 개고기가 식용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가격이 저렴해 한국에도 일부 밀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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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반을 잃게 되지만,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건강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돈도 명예도 사랑도 건강을 잃게 되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처럼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가장 근본이요 전부라 할 수 있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윤택하게 하여 최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건강에 대한 최고급 정보와 생활 속에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관리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에는 ‘인간은 왜 병이 드는가’와 ‘건강을 회복하는 길’을 알아 본다.


*자기 몸 관리를 잘하는 자만이 치정(致政)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느니라.

*몸 관리를 잘 해야 의욕이 생기고 일하는 밑천이 된다.

*정(精)이 충만해야 신명이 열리고 정의롭고 배짱이 나오느리라.

*자기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성뿐이니라.

-증산도 안운산 종도사님 말씀-


인간은 왜 병드는가? 
*大病도 出於無道하고 小病도 出於無道하느니라.

병도 무도에서 비롯하고 작은 병도 무도에서 생기느니라.(도전道典 5:347:5)

자연에서 멀어지면 병이 생기고 자연과 가까워지면 병이 치유된다.

서양의학에서는 ‘우리 몸에서 생명을 지탱하는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이 무너져 병이 생긴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인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자기조절능력이 장애를 일으켜 인체 내부의 균형이 깨어진 상태에 이르게 되면 병이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너진 균형을 바로잡을 때 병도 치유된다고 보고 있다. 반면 동양의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우선 병(病)이란 글자의 어원은 병화(丙火)가 병들어 기댈 녁(疒)자에 들어가 있는 모양으로, 화기가 수기의 응결로 감금당한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이는 병이란 우리 몸에서 화기(火氣)의 근원인 수기(水氣)가 부족하게 되어 수화의 균형이 깨지면서 생기는 고통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병이란 우리 몸에서 ’화기가 위로 올라와 수기가 고갈되거나 응결되어 생기는 고통‘이므로, 몸의 수기와 화기가 조화를 이룰 때 병이 치유된다는 것이다.

또한 동양의학에서는 예로부터 마음의 평안이 깨지면서 분노와 근심이 생기고, 생활이 자연질서를 벗어나면서 병이 생긴다고 보았다.


질병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 정수고갈

인간의 몸에서 가장 소중한 세 가지 보배(三寶)가 정기신(精氣神)인데, 이 가운데 정이 고갈되고 무너졌을 때 병이 생긴다고 한다. 이 정이 바로 신장(腎臟)의 정수(精水), 수기다. 정, 신장의 수기는 뇌와 오장육부, 근육과 24척추 속에 있는 골수 등 인간의 생명을 주관한다. 정수는 생명의 동력원으로 노화를 막고 모든 병마를 물리칠 수 있는 저항력(면역력)이다. 정수가 말라가면서 노화현상이 일어나고 모든 병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동양의학에서는 정(精)을 천지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 한다. 정을 잘 간직하고 축적하면 인간은 모든 병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질병의 원인은 첫 번째가 정수 모손에서 생겨난다고 한다. 두 번째는 분노와 우울 등 간경울체로 오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마음을 과로하여 신경쇠약으로 비위가 엉겨 위장질환이 다음을 차지한다. 그리고 나머지 대개는 기혈허약의 허손증이다.


내 몸에서 가장 소중한 보배, 정(精)

“인간의 精은 대우주 생명의 핵이다!"

'내가 이 한 말씀을 깨닫기 위해 이제까지 살아왔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이야말로 후천 5만년 선매숭자 문화, 조화선경 문화를 여는 인간 생명개벽의 제1강령이라 확신했다. (『개벽실제상황』, 안경전)


인간 생명을 지속시키는 동력원은 신장의 수기인 정精이다. 우주가 진화해 온 역사의 전 과정이 내 몸의 정에 맺혀 있다. 따라서 정에 대한 순수 생명의식이 올바르고 강렬해야 한다. 천지생명의 열매이자 핵인 내 몸을 어떻게 잘 관리해서 대자연과 하나가 되느냐 하는 것이 수행공부와 인생공부의 핵심과제이다.

상제님께서는 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를 잘 닦는 자는 그 정혼(精魂)이 굳게 뭉쳐서 죽어서 천상에 올라가 영원히 흩어지지 아니하나 도를 닦지 않는 자는 정혼이 흩어져서 연기와 같이 사라지느니라. (道典 9:76:1~2)


건강을 회복하는 길

*병이란 제 믿음과 정성으로 낫느니라. (道典 9:107:9)

* 大病之藥은 安心安身이요

대병지약 안심안신

小病之藥은 四物湯八十貼이라.

소병지약 사물탕팔십첩

대병을 고치는 약은 마음과 몸을 편히 하는 데 있고

작은 병의 약은 사물탕 팔십 첩이니라. (道典 5:347:3)

大病도 出於無道하고 小病도 出於無道하니

대병 출어무도 소병 출어무도

得其有道면 則大病도 勿藥自效하고 小病도 勿藥自效니라

득기유도 즉대병 물약자효 소병 물약자효

큰 병도 무도에서 비롯하고

작은 병도 무도에서 생기나니

도를 얻으면 큰 병도 약 없이 스스로 낫고

작은 병도 약 없이 스스로 낫느니라.

(道典 5:3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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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소중한 우리의 정기를 더럽히고 파괴하는 반(反) 생명 문화의 요소가 너무도 많다. 물론 현대문명이 인간에게 물질의 풍요로움을 누리게 하는 등 긍정적이고 밝은 면도 많지만 생존환경을 오염시켜 우리의 몸과 마음에 온갖 질병을 가져다주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도색(桃色)문화이다.

케이블TV를 비롯한 여러 방송 매체에서 여과없이 방영하는 각종 음란물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정신불구자로 만들고,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타락의 길로 유혹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대인은 생명의 기반인 정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데다 갖가지 환경호르몬과 발암물질 등에 노출됨으로써 끊임없이 질병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문명사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병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첫째로 생각과 생활 방식을 과감하게 바꾸고 자연의 생명법칙에 순응하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신(靈神)을 대자연과 하나 되게 하여 정을 축적해야 한다.

둘째는 지금의 퇴폐문화를 멀리하고 수행을 통해 정기를 축장하여 내 몸의 하늘인 머리로 끌어올리는 생활을 습관화해야 한다. 그리고 내 마음이 천지와 한마음이 되고 내 몸이 천지와 같은 법신(法身)으로 거듭 태어나도록 생활문화를 본질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셋째로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나의 심법을 개벽하여 ‘진리의식으로 충만한 참 마음’, 우주의 생명의식을 도심주로 삼는 대인의 삶을 살아야 후천의 신인류로 거듭날 수 있겠다.


건강 회복의 결론, 정기축장

*죽고 살기는 쉬우니 몸에 있는 정기(精氣)를 흩으면 죽고 모으면 사느니라. (道典 10:45:9)

*세상을 떠나기는 극히 쉬운 일이니라. 몸에 있는 정기를 흩으면 불티 사라지듯 하느니라. (道典 10:5:2~3)


정기를 함부로 쏟아내는 것은 (命)을 재촉하여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수행을 통해 정기를 축장하여 내 몸의 하늘인 머리 위로 정(精)을 명화(明化)하여, 신화(神化)시켜야 가을개벽기에 새 생명의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다음 연재물에서는 인간의 생명구조와 생명의 조화세계로 들어가는 길, 수행에 대해서 알아본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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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세상을 여는 인존 문화, 증산도

道紀 136년 2월 15일, 수원 인계도장

[말씀요약] 이 우주는 천존(天尊) 문화, 지존(地尊) 문화, 인존(人尊) 문화로 둥글어 간다. 봄에 내서 여름철에 기르는 것은 가을에 열매기 하나 맺기 위한 과정이다. 그래서 천지에서 가을철이 되면 천존 문화, 지존 문화, 즉 봄에 물건을 내서 여름철에 기른 그 진액을 전부 뽑아 모아서 열매, 결실, 알캥이를 맺는다. 인존 문화는 가을에 와서만 개창이 된다. 다시 말하면 그게 결실 문화, 알캥이 문화다. 증산도는 인존 문화가 되기 때문에 천지의 열매요, 우주의 결실이요, 하늘땅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면 인존 문화의 틀이 뭐냐? 그것은 신도(神道), 신명(神明) 문화다. 상제님 말씀에 “추지기(秋之氣)는 신야(神也)라.” 가을의 기는 신이다. 기가 바로 신이다. 

나는 천리(天理)와 지리(地理)와 인사(人事)를 통했기 때문에 이 하늘땅이 열려서 어떻게 둥글어 가고, 어떻게 매듭짓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걸 찾다보니까 상제님을 찾았고, 상제님밖에 신앙할 수가 없어서 상제님을 신앙한다. 지금은 천존 문화도 지났고 지존 문화 시대도 지났고 인존 문화가 나오는 때이기 때문이다.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인존 문화를 건설하셨다.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인존 문화로만, 다시 말해서 신도 문화로써만 이 개벽을 극복하고 결실을 할 수가 있다. 상제님 문화는 인존 문화요, 인존 문화는 신도 문화다. 다시 말해서 천지공사가 인존 문화요, 신도 문화다. 상제님의 천지공사, 인존 문화에서 이 세상이 둥글어 갈 프로그램, 시간표, 이정표를 짜신 것이 이화(理化)작용으로, 그 틀 그대로만 둥글어 간다. 

우리 신도들은 전만고후만고(前萬古後萬古)에 찾으려야 찾을 수도 없는 천지의 열매, 천지의 결실, 천지의 알캥이 문화를 만난 대복가들이다.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전부가 다 앞으로 혈식천추 도덕군자가 될 사람들이다. 천지의 열매이니 그럴 수밖에 없잖은가. 하지만 천지의 열매는 노력한 것만큼 주어진다. 상제님 말씀처럼 천지에 공 쌓는 것보다 더 큰 공이 없다. 증산도는 천지의 대역자다. 천지에서 한 일을 증산도에서 인존 문화로 매듭을 지어준다. 우리 증산도 신도들의 지상사명(至上使命), 아주 지극히 높은, 그 이상 더 할 수 없는 사명이 뭐냐 하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전 인류를 위해서, 상제님 진리를 세상 사람에게 많이 전해 주는 것이다. 상제님은 “한고조는 마상에서 득천하 했으나 너희들은 앉아서 천하를 받는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홍보, 포교 하나를 제대로 못 한다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류문화의 모태가 우리 문화다. 우리나라 주역을 바탕으로 해서 이 세계 문화가 열렸다. 우리나라 역사 문화는 전부 다 증산도에서 틀켜쥐고 있고 우주변화원리도 여기서 틀켜쥐고 있다. 천지공사, 인존 문화도 여기서 가지고 있고. 그게 후천 오만 년 세상 문화다. 그러니 정신들 바짝 차리고, 이번 이 목을 절대로 놓치지 마라. 이것은 하늘에서 주는 좋은 기회다. 조상의 음덕으로 누구도 모르는 좋은 자리, 상제님 진리권에 들어왔으니 그런 줄들을 알고 최선을 다 해 보자.


천존, 지존, 인존 문화로 돌아간다

오늘 이 시간은 내가 증산도를 창시한 증산도 종도사라는 위치를 한 걸음 떠나서, 객관적으로 진리의 사도로서 진리를 말해 줄 테니 들어 보아라. 

이 우주가 어떻게 되어져 있느냐 하면 천존(天尊) 문화, 지존(地尊) 문화, 인존(人尊) 문화로 둥글어 간다. 

천지가 동결(凍結), 얼어붙었다가 봄이 되면 천지가 열린다. 하늘땅이 열리면 하늘에서 더운 기운을 발사를 한다. 양기(陽氣)를 발사하는 것이다. 

지금 입춘이 지났으니 내일 모레부터는 훈훈해진다. 아, 세상 말이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리고~.’ 그러지 않는가. 봄기운이 온다. 그렇게 하늘에서 봄기운인 양기를 내려주면 땅에서 그걸 받는다. 그래서 초목에서부터 미물곤충, 날아다니는 새, 기어 다니는 짐승, 사람에 이르기까지 만유의 생명체가 생겨난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렇게 하늘땅이 열려서 더운 기운을 발사하면 천존 문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다음 땅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더운 양기를 받아 만유의 생명체를 낳아 키워준다. 그건 지존 문화라고 한다. 맞지?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으면 자꾸 질문을 해라. 내가 손으로 만져보는 것처럼 자세히 일러 줄 테니까. 그렇게 천존 문화를 거쳐서 지존 문화로, 땅에서 양기를 받아 모두 다 잘 키워 준다. 

그런데 사람이라 하는 것은 음양오행 기운을 전부 다 타고 나서 기거좌와(起居坐臥), 일어나고, 앉고, 서고, 뻗고, 뒹굴고, 뭐 그 재주로 별짓을 다 하지 않는가. 그래서 사람은 만유의 생명체 중에 가장 영특하고 만유의 생명체를 지배할 수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역사와 더불어 문화를 창조를 한다. 

기존의 역사 문화

하늘땅이 열려서 사람이 생겨나 손자, 증손자, 고손자를 낳았다. 그렇게 해서 백년 전 할아버지가 한 백년 후에 보니까 수백 명씩 자손을 두었다. 그러니 역사와 더불어 세상을 묶어야 한다. 쉬웁게 말을 해서 땅이 있으면 사람이 있어야 되고, 땅과 사람이 있으면 국가가 있어야 한다. 원시시대에 씨족, 부족이 있었다는 것 잘 알지 않는가. 

그렇게 해서 역사가 자꾸 창조, 형성이 됐는데 그 기존 역사 문화가 어떻게 됐느냐? 수행 문화라 하면 대표적으로 불교에서 백년도 수행하고 2백년도 수행하고 3백년, 천년 수행을 했다. 그러고서 그 문화에서 나오는 말이 ‘공즉시색(空卽是色)이요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생사가 일여(生死一如)다.’라고 했다. 

또 한 보짝에서는 윤리관 같은 것이 나왔다. 유교의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이런 걸 바탕으로 해서 정치가들이 정치도 하고. 또 한쪽에서는 죽어서 천당에 간다는 내세관 같은 게 나왔다. 참 별스런 역사 문화가 나왔다. 

그런데 2천년 전, 3천년 전에 그 역사 문화가 이 세상에 나오고서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다. 

가을에는 인존 문화로 결실된다

천지라 하는 것은 자꾸 주이부시(周而復始)해서 봄 간 다음에 여름이 오고, 여름 간 다음에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난 다음에는 겨울이 온다. 겨울이 되면 대우주 천체권이 전부가 다 동결돼서 일체 생물이 멸망당하는데 그때 가서는 아무것도 없다. 무슨 종교고, 사람이고, 들짐승이고, 날아다니는 새고, 아무것도 없이 하늘땅만 남는다.

그러고서 다시 또 하늘땅이 열리면 작년도, 10년 전도, 만년 전도, 현재도, 10년 후도, 명년도 똑같이 개미 쳇바퀴 돌 듯 만유의 생명체가 주이부시해서 자꾸 빙글빙글 돌아간다. 

이게 우주변화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내가 증산도를 만들어놓고 상제님 진리를 바탕으로 해서 우주변화원리를 교육을 했는데, 10년 신앙한 사람은 10년을 듣고, 자기네들도 백 번 천 번을 뇌까렸다. 

지금은 천존 문화도 지나고 지존 문화도 지나고, 바로 이때가 되면 인존 문화라는 것이 나온다. 다시 말하거니와 천존 문화로 하늘에서 온화한 기운을 땅에 쏟으면 땅에서는 그 기운을 받아서 만유의 생명체를 내서 키운다. 그게 바로 지존 문화다. 그러니까 쉬웁게 말하면 남자가 기운을 쏟아주면 여자가 받아서 아기를 낳아 키우는 거와 같다. 그걸 음양오행원리라 한다.

그런데 이 종도사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과 같이 봄에 내서 여름철에 기르는 것은 가을에 열매기 하나 맺기 위한 과정이다. 만일 가을에 열매 하나를 맺지 못한다고 할 것 같으면 봄여름이라 하는 것은 있어야 한 푼어치도 필요치 않은 과정이다. 내가 수천, 수만 번을 얘기했다. 

그래서 천지에서 가을철이 되면 천존 문화, 지존 문화, 즉 봄에 물건을 내서 여름철에 기른 그 진액을 전부 뽑아 모아서 열매, 결실, 알캥이를 맺는다. 

그러면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지어서 가을철에 사람을 죽이는 인간개벽을 하는데 누가 와서 무엇으로 어떻게 하느냐? 그게 바로 인존 문화다. 

인존 문화는 가을에 와서만 개창이 된다. 다시 말하면 그게 결실 문화, 알캥이 문화다. 종도사가 가끔 인존 문화를 강조하는데, 증산도는 인존 문화가 되기 때문에 천지의 열매요, 우주의 결실이요, 하늘땅을 담는 그릇이다. 참 인존 문화가 거창하지 않은가. 

인존 문화는 신도 문화

그러면 인존 문화의 틀이 뭐냐?
“내가 인존 문화 너에게 묻거니와 네 정체가 뭐냐?” 답왈 “신도(神道) 문화다.” 귀신 신 자, 길 도 자. 신도, 신명(神明) 문화다. 

봄여름 문화라 하는 것은 유형의 문화요, 물질문화이고 가을겨울 문화는 무형의 문화, 형상이 없는 문화다. 상제님 말씀에 “추지기(秋之氣)는 신야(神也)라.” 가을의 기는 신이다. 기가 바로 신이다. 

저 시골 개울을 가서 보면 봄여름에는 물이 아주 부~연하다. 누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그렇다. 그런데 가을철에 가서 개울물을 볼 것 같으면 깊이가 한 길쯤 돼도 아주 유리알처럼 말쑥하니, 그 밑에 낙엽 떨어진 것까지 보인다. 춘하와 추동이라는 것은 그렇게 되어져 있다. 

헌데 가을개벽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인존 문화를 아는 사람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역사를 부정하는 학자들

아까 종정이 여러 차례 우리 신도들 교육하는 것을 나도 같이 공유를 해서 들었는데, 이 세상이 어떻게 됐냐 하면 우선 역사학자들이 제 역사를 부정을 한다. 

내 얘기를 아주 똑똑히 들어 보아라. 

형상을 본떠서 만든 글자를 상형(象形)문자라고 한다. 한문자라는 게 상형문자 아닌가. 달 월(月) 자는 달처럼 그렸고, 고기 어(魚) 자는 고기처럼 그렸다. 형상 상 자, 형상 형 자, 상형문자인데, 그러면 그 글자를 만든 사람이 있잖은가. 그걸 누가 처음 그렸냐 하면 5천여년 전에 창힐(倉頡)이라는 사람이 그려냈다. 그렇게 증거가 있다.

그러고 내가 노냥 말하지만 주역을 누가 만들었느냐 하면 5,500년 전에 우리 한민족의 조상인 태호복희씨가 처음 시획팔괘(始劃八卦)라, 비로소 팔괘를 그었다. 아니 주역은 어지간한 사람들이 다 알지 않는가. 자, 일건천(一乾天), 이태택(二兌澤), 삼리화(三離火), 사진뢰(四震雷), 오손풍(五巽風), 육감수(六坎水), 칠간산(七艮山), 팔곤지(八坤地). 무극(無極)이 생태극(生太極)하고, 태극(太極)이 생양의(生兩儀)하고, 양의(兩儀)가 생사상(生四象)하고, 사상(四象)이 생팔괘(生八卦)하고, 팔괘가 8·8은 64, 64괘를 만들었다. 음양오행원리, 그건 누가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가 없잖은가. 그걸 약해서 말하자면 1, 3, 5, 7, 9는 양(陽)이요 2, 4, 6, 8, 10은 음(陰)이라. 1, 3, 5, 7, 9는 기수(奇數)요 2, 4, 6, 8, 10은 우수(偶數)다. 아, 그걸 누가 부정하나? 이 세상 문명의 틀, 밑뿌리가 그것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문화인들이 하는 작태(作態)가, 지을 작(作) 자, 태도 태(態) 자, 그 행위 자체가 잘못 됐다. 인류역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자는 제 성(姓)도 부정하는 자다. 글자를 누가 만들었나? 글자가 나온 지가 벌써 5천여년 전이고, 우리 조상 태호복희씨가 5,700년 전에 주역을 썼고, 그게 어떻게 거짓말이 될 수 있나. 또 그게 중국에서부터 시작을 했다? 그것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또 우리나라 역사를 평론한다는 사람들이 “단군은 신화다. 우리나라 역사는 2,100년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것도 말 안 되는 소리인데 지금 시간이 없으니 약하기로 하고.

여기서 내가 하나 더 덧붙이고 싶은 게 뭐냐 하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역사 교육을 제대로 시키도록 다스려야 한다.

인류역사를 통해서 역사 교육을 안 시킬 것 같으면 그 나라는 망하는 것이다. 역사 교육 안 시키는 것은 사람을 낳아 놓고서 성을 안 가르쳐 주는 것하고 같다. 혈통을 전해주기 위해서도 성은 알려 줘야 될 것 아닌가. 아니, 역사적인 한민족으로 태어났는데 한민족의 혼, 한민족의 역사는 최소한 가르쳐야 될 것 아닌가. 

이 나라가 역사를 안 가르치는 나라다. 지금 우리나라 실정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상제님 신앙밖에 할 수 없는 이유

나는 상제님밖에 신앙할 수가 없어서 상제님을 신앙을 한다. 나는 천리(天理)를 통했고 지리(地理)를 통했다. 또 나는 인사(人事)를 통했기 때문에 이 하늘땅이 열려서 어떻게 둥글어 가고, 어떻게 매듭짓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걸 찾다보니까 상제님을 찾았고, 또 우리 아버지가 상제님 신앙을 했다. 내가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동적으로 상제님을 신앙했다. 

헌데 아무리 우리 조상에서 신앙을 했다 하더라도 상제님 진리가 삐꿀어졌다면 나는 신앙을 안 한다. 내 조상이 무슨 부처를 믿었다든지, 예수를 믿었다든지, 모하멧을 믿었다든지 그러면 난 신앙을 안 한다. 지금은 천존 문화도 지났고 지존 문화 시대도 지났고 인존 문화가 나오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존 문화권에서도 1,300여년 전에 불가에서 진표 같은 분이 와서 한 소식을 전해줬다. 그게 원력(願力)의 결정체다. 원할 원 자, 힘 력 자. 여러 천년을 통해서 수억만 신도들이 빌고, 닦고, 찾은 원력이 뭉치고 또 뭉친 결정체로서 진표 같은 분이 나와서 미륵불을 세우게 됐다. 또 기독교에서도 예수가 아버지 하나님을 찾았고, 리치 신부가 아주 결정타로 천상의 하나님께 직접 등장을 해서 “우리 능력으로는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상제님께서 직접 인간 세상에 임어하셔서 세상을 좀 구해주셔야겠습니다.” 하고 하소연을 했다. 상제님 말씀이 “내가 그래서 할 수 없이 오게 됐다.”고 하셨잖은가. 

리치 신부가 상제님의 비서다. 리치는 자기의 능력으로는 인류를 구제할 아무런 방법이 없기 때문에 상제님을 모시고서 자기 소원을 달성하는 수밖에 없다. 또 상제님은 리치 신부를 더불고 심부름을 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묶어서 리치 신부가 비서다. 

인존 문화의 틀, 천지공사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인존 문화를 건설하셨다.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인존 문화로만, 다시 말해서 신도 문화로써만 이 개벽을 극복할 수가 있다. 

지나간 세상 살벌과 투쟁, 그 원한의 역사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좋은 사람도 있었고, 그른 사람도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처럼 대어(大魚)는 중어식(中魚食)하고 중어(中魚)는 소어식(小魚食)하고 약육강식(弱肉强食) 우승열패(優勝劣敗), 그게 자연현상이다. 잡아먹어야 살 수 있으니 아무런 방법이 없잖은가. 

상제님은 그 자연현상에서 발생한 원신(寃神)과 역신(逆神)을 전부 다 걷어 모아 천지공사라는 인존 문화의 틀을 짜셨다. 지금 이 세상은 상제님이 천지공사 틀 속에서 프로그램 시간표 이정표를 짠 그대로만 둥글어 간다. 허나 이걸 누가 아는가. 

이번에는 이 상제님의 인존 문화, 천지공사 문화를 모를 것 같으면 하늘을 쓰고 도리질을 하는 사람도, 지구를 다 틀켜쥐고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다 소용이 없다. 

내가 늘 교육을 해서 잘 알아들을 테지만, 목극토(木克土) 금극목(金克木), 목물 무기가 나오고, 금속무기가 나오고, 그리고 화극금(火克金)으로 불무기, 핵무기까지 나왔다. 이제는 수극화(水克火)다. 수라 하는 것은 북방 1·6수 현무(玄武)다. 그게 신도 문화 아닌가. 이 천지의 정의, 이법, 법칙을 뉘라서 어떻게 하겠는가? 지구상에 인간 군상(群像)이 수백 억, 천 억, 만 억이 산다 하더라도 그 개체가 천지이법에 의해서 생겨났을 뿐이지 사람이 무슨 능력이 있나? 하늘에다 대고 주먹질을 한다 해도 소용이 있는가? 하늘보고서 ‘네, 이놈의 하늘!’ 한들 소용이 있는가? 그건 만용이고, 천지를 모욕하면 죽는 수밖에 없다.

아까 어떤 신도가 그랬다. 이번에는 모르면 죽는다고. 이번에는 모르면 죽는다. 

상제님 문화는 인존 문화요, 인존 문화는 신도 문화다. 다시 말해서 천지공사가 인존 문화요, 신도 문화다. 천지공사 내용 이념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로 묶어서 통치하신 통치기구다. 상제님의 천지공사, 인존 문화에서 이 세상이 둥글어 갈 프로그램, 시간표, 이정표를 짜신 것이 이화(理化)작용으로, 그 틀 그대로만 둥글어 간다. 억만 분지 일 프로도 어김이 없다. 

내가 지금 여든다섯 살이다. 어려서부터 상제님 진리를 내가 알았다. 이 세상은 증산 상제님이 천지공사에서 이미 틀을 짜놓으신 그대로만 둥글어 가지 억만 분지 일 프로도 조금도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는 바둑판

이 세상은 상제님이 난장판 공사를 붙여놓으셨다. 난장판은 애기판, 총각판, 상씨름판으로 둥글어 가는 것이다. 1차 대전, 2차 대전, 3차 대전으로! 남북 상씨름판인 삼팔선은 우리나라만의 삼팔선이 아니라 지구의 삼팔선이다. 

우리나라는 또 바둑판과 같이 생겼다. 참 이상하다. 내가 지리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저 함경도 평안도 이런 데를 다니면서 보면 우리나라 고을이 360 고을이다. 고을이 이뤄진 데를 가 보면 전부 집을 청룡, 백호로 지어 놓았다. 360 고을이 집을 다 그렇게 지었다. 우리나라가 지정학상으로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래서 이 대우주 천체권이 형성될 때부터 ‘세상은 이렇게 둥글어 가거라.’ 하고 대자연섭리가 그렇게 되어져 있다. 이 세상 이치를 알고 보면 재미가 아주 다래다래하다. 

우리 증산도의 서적을 볼 거 같으면 이 지구가 전부 우리나라를 위해서 생겼다. 이 과학 문명 세상에 어떻게 거짓말을 하나. 보아라, 그렇게 안 생겼나. 억만 분지 일 프로도 틀림이 없다. 

이 지구상에 그것을 아는 사람도 없다. 그건 다만 이 증산도 종도사만 아는 것이다. 

증산도 신앙의 축복

내가 이제 객관이라는 것을 떠나서 증산도 종도사 위치로 돌아와 말해 주겠다. 우리 신도들은 전만고후만고(前萬古後萬古)에 찾으려야 찾을 수도 없는 천지의 열매, 천지의 결실, 천지의 알캥이 문화를 만난 대복가들이다.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전부가 다 앞으로 혈식천추 도덕군자가 될 사람들이다. 천지의 열매이니 그럴 수밖에 없잖은가. 

헌데 그렇다고 해서 천지의 열매가 그냥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만사라 하는 것은 노력한 것만큼 주어지는 노력의 대가다. 알아듣기 쉬웁게 말해서 성과급. 천지는 에누리도 없다. 

상제님이 “공은 천지에 쌓는 것보다 더 큰 공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천지에 공 쌓는 것보다 더 큰 공이 없다. 

이 세상에는 상제님 사업밖에 할 게 없다. 왜? 이번에 천지에서 다 죽여 버리기 때문이다. 천지에서 결실하는 것은 인존 문화로만 하는 것이다. 인존 문화로 결실하는 것, 그것 좀 연구해 보아라. 못 알아들었어도 종도사를 자꾸 쫓아다니며 이렇게 듣고 저렇게 듣고 하다 보면 이회집중(理會集中)해서 알아진다. 

그 인존 문화가 천지에서 농사지은 것을 전부 다 매듭을 짓는다. 천지의 대역자(代役者)라고 하는 게 그 말이다. 증산도는 천지의 대역자다. 천지에서 한 일을 증산도에서 인존 문화로 매듭을 지어준다. 알아들을 것 같지? (보은) 

우리 신도들은 과연 억만고의 대복가들이다. 천지에서 죽이는데 어떻게 살아남을 재주가 있나. 그래서 내가 “한민족으로 태어난 것만 해도 천지에서 선택된 사람이다.”라고도 해봤고, 또 한민족 중에서도 증산도 신도가 됐다고 하면 그건 더 말할 것도 없이 선택된 대복가라고도 한다. 지구를 다 차지했으면 뭘 하나? 

차마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못 하지 이번에는 다 죽는다. 천지에서 죽이는데 무슨 수가 있나? 아니, 가을철에 상설(霜雪)기운이 와서 냅다 다 죽이는데 풀 한 포기 사는 것 보았는가? 천지의 틀이 그렇게 돼 있다. 봄에는 물건을 내고 가을철에는 죽여 버린다. 내가 알기 쉬웁게 말해 주는 것이다. 

증산도 신도들의 지상사명

상제님의 말씀이 “천지에서 십리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이는 때라도 씨종자는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하셨다. 누가, 어떤 특정인이 무슨 무기로 죽이고 전쟁을 해서 죽이는 게 아니다. 천지에서 다 죽인다. 어떻게 죽이느냐? 십리, 4킬로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여 버린다. 전멸시킨다. 허나 ‘그러는 때라도 너희들이 나를 잘 믿어서 내 천지공사 이법으로, 이 인존 문화, 이 신도 문화로 내가 시키는 대로 해서 너희도 살고 씨종자라도 추리면 아니 좋겠느냐?’ 하는 말씀이다. 

다시 또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고도 하셨다. 천하창생이란 60억, 70억 인구를 말한다. ‘천하창생의 생사, 죽고 사는 것이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 너희들이 잘 하면 많이 살릴 수 있고 잘못하면 너희들도 못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사실 종교 문화에서 죽는다는 말을 자꾸 할 수 없다. 그저 종교 문화라 하는 것은 도덕적이고 인자하고 다 좋게 살고, 그래야 되지 않는가. 그러나 이 가을 문화, 인존 문화는 그 틀 자체가 매듭이 그렇게 되어져 있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증산도 신도들의 지상사명(至上使命), 그냥 사명이 아니고 지극할 지(至) 자, 위 상(上) 자, 아주 지극히 높은, 그 이상 더 할 수 없는 사명이 뭐냐 하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전 인류를 위해서, 상제님 진리를 세상 사람에게 많이 전해 주는 것이다.

기존 기독교에서도 고무신 세 켤레가 닳아 떨어져야 신도 하나를 포교한다고 했다. 포교라는 게 그렇게 극히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지 말든지 포교를 많이 해라. 다시 말하면 세상을 위해 봉사를 하라는 것이다. 지나간 세상의 성자들도 다 봉사한 사람들이다. 

오선위기의 틀로 흘러가는 육자회담

상제님 진리가 지금 오선위기(五仙圍碁)가 육자회담이 되지 않았는가. 지금 육선위기다. 어째서 그러냐? 나라가 조선 하나였는데 지금은 남북이 갈렸으니 주인이 둘이 됐다. 그래서 숫자 하나가 더 보태졌다. 그래 오자회담이 육자회담이 됐다. 

지구의 화약고가 어디에 있냐 하면 요 남한 북한의 중간인 삼팔선에 있다. 야, 참 과연 참하나님의 조화다. 상제님 재주가 기막히지 않는가. 상제님이 그렇게만 만들어 놓으셨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보아라. 상제님은 재주가 그런 분이다. 

그렇게 해서 병란(病亂)으로 매듭을 짓는다.

병란! 이게 우리 신도들로 하여금 공짜로 따먹으라고 그렇게 만들어놓으신 것이다. 도박하는 사람들, 난 도박도 모르는데 그게 바로 갑오 잡는 것이다. 

그 말씀을 다시 말하면 “한고조는 마상에서 득천하 했으나 너희들은 앉아서 천하를 받는다.”고 하셨다. 유방과 항우는 세상을 따 먹으려고 서로 죽기 살기로 전쟁을 했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앉아서 천하를 얻는다. 가만히 앉아서 밥상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좋은가. 

헌데 그 홍보나 하라는 것도 못 한다면 그건 욕심쟁이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홍보, 포교를 재미로 해라. 그 재미가 어떤가? 

개인 사업을 할 때도 발분망식(發憤忘食)이라. 정성을 발해서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는 말이다. 한참 사업을 열광적으로 하다 보면 ‘아이고, 나 점심도 안 먹고서 일했어.’ 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상제님 사업도 발분망식으로 정성을 다 바쳐서 해라. 상제님 사업한다고 누가 잡아가는 사람도 없다. 국시(國是)와 헌정(憲政) 질서에 배치되지 않는 한 범법자로 잡아가지 않는다. 아, 강증산을 잡아 가겠나. 강증산 믿는 사람들이 강증산 진리가 그렇게 돼서 ‘개벽, 개벽!’ 하는 것인데, 그런다고 누가 잡아 가겠나?

하늘에서 주는 좋은 기회

그러고 인류문화의 모태문화가 우리 문화다. 우리나라 주역을 바탕으로 해서 이 세계 문화가 열렸다. 

그렇건만 우리나라는 지금 역사가 단절됐으니 언어도단 아닌가. 국가가 있고, 민족이 있는데 역사가 단절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는가. 하니까 최소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우리나라 민족의 혼을 지키는 증산도 하나쯤은 있어야 될 것 아닌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사에 굶주리고 앞으로 오는 세상이 어떻게 되는 것도 모른다. 그것을 아는 데가 여기 증산도밖에 없다. 상제님의 천지공사 내용 이념, 인존 문화, 신도 문화를 아는 데가 여기밖에 더 있는가. 또 진리의 핵인 우주변화원리, 하늘땅이 둥글어 가는 이치를 아는 데도 여기밖에 없다. 

우리나라 역사 문화도 전부 다 증산도에서 틀켜쥐고 있고 우주변화원리도 여기서 틀켜쥐고 있다. 천지공사, 인존 문화도 여기서 가지고 있고. 그게 후천 오만년 세상 문화다. 

그러니 정신들 바짝 차리고, 이번 이 목을 절대로 놓치지 마라. 이것은 하늘에서 주는 좋은 기회다. 

이게 세상에 공개돼서 사람들이 다 알면 여기 우리 신도들에게 차례가 가지 않는다. 예전에 복부인이라고 있었다. 복부인이라는 의미 알지? 한창 복부인들이 극성일 때, 그때는 통행금지가 있어서 열두 시면 통행이 금지되고, 네 시면 해제되고 그랬다. 복부인들은 아파트 당첨권 하나 얻으려고 통행금지 해제되는 새벽부터 신문지 가지고 가서 깔고 앉아 날 새기를 기다렸다. 그건 새치기 하면 큰일 난다. 그렇게 해서 당첨을 당하면 몇 천만 원씩 생기고 그랬다. 

상제님 진리를 세상 사람이 다 알게 되면, 그런 복부인들처럼 날랜 사람들이 이 자리를 다 차지하지, 여기 우리 신도들에게 차례가 가겠는가? 

조상의 음덕으로 누구도 모르는 좋은 자리, 상제님 진리권에 들어왔으니 그런 줄들을 알고 자, 증산도 맨, 상제님 맨이 됐으니 최선을 다 해 보자.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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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조화문명이 열린다. 
세속 인간정신으로는 알 수 없는 천지조화권이 펼쳐지는 조화문명이 열린다. 
이 문명을 여는 천상의 주역 중 한 분이 여동빈이다. 
태모님께서는 여동빈으로 하여금 “세계 창생들이 모두 갱소년 되게 하라.”고 하셨다. 
그는 당팔선(唐八仙) 중의 한 분으로 스승으로부터 도를 받고 신선이 되어 다시 그 도를 전해줄 사람을 찾아 1000여 년을 누볐다. 
인간으로의 삶과 신선으로의 삶을 통해 여동빈이 보여줬던 조화의 세계와 상제님 태모님께서 여동빈을 공사에 쓰신 이유에 대해 살펴보자. 
 
 
여동빈은 누구인가?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신선을 꼽으라면 바로 여동빈(呂洞賓, 본명은 암巖, 호는 순양純陽)일 것이다. 그는 중국 도교의 정통파인 전진교(全眞敎)의 뿌리로 인식되고 있으며 흔히 여조(呂祖)라 불린다.
 
그는 종리권(鐘離權) 선인에게 도를 전해 받아 신선이 된 후, 11세기부터는 점차 세속에서 이름을 알리며 신선의 대표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그의 모습은 반드시 검을 등에 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 검은 탐진, 애욕을 비롯한 모든 번뇌를 끊는다는 진검(眞劍), 혹은 심검(心劍)이라 한다.
 
여동빈이 일반 민중의 두터운 신앙대상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민중들 속에서 살면서 그들의 소원을 이뤄주기 때문이었다. “개가 여동빈을 보고 짖다니, 좋은 사람을 몰라본다”(狗咬呂洞濱, 不識好人心)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그는 ‘사람이 진심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응하여 이루어준다’는 유구필응(有求必應)의 모범이었다. 
  
 
방랑 끝에 스승을 만나다

여동빈은 당나라 덕종(德宗) 정원(貞元) 14년(798년)에 포주(浦州) 영락현(永樂縣)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 조부, 부친 모두가 벼슬을 지냈으니 당시로서는 명문가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눈으로 보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고 마음대로 말하면 글이 되었다고 한다. 나이 20에 부친의 명을 따라 유교위(劉校尉)의 딸과 혼인했는데 비록 결혼은 했으나 가까이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후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과거급제를 바랐으나 2번의 진사시험에 낙방한 후 강주(江州)에서 방랑하였다. 세상을 떠돌며 그가 평생에 이루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10번의 시험과정을 통과하다

62세에 이르러 또 다시 장안(長安)에 과거를 치르러 갔다가 술집에 이르러 탄식하기를 “급제하여 부모 마음을 위로할 날 언제이고, 득도하여 내 마음을 달랠 날은 언제련가?” 하였다. 그때 곁에 있던 늙은 도사가 웃으며 묻기를 “젊은이, 출세할 뜻이 있는가?” 하였다. 
  
그 도사는 푸른 도건에 흰옷을 입고 허리에 큰 표주박을 차고 있었다. 이윽고 벽에 시 한 수를 썼는데 그 시정이 표연히 세속을 떠나 있었다. 여동빈은 깜짝 놀라 절을 올리고 성씨를 물었다. 도사가 말하길 “내 성은 종리(鐘離)요 이름은 권(權), 자는 운방(雲房)이네.” 하였다.
  
그가 바로 당팔선 중의 한 사람으로 훗날 여동빈의 스승이 되는 종리권인데, 이것이 여동빈과 종리권의 첫만남이었다. 종리권은 한나라 때 사람이므로 이미 500세도 더 된 신선이었다. 여동빈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선도 배우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종리권은 여동빈의 속세의 인연이 아직 남아 있다면서 뒷날을 기약하고 나는 듯 가버렸다.
  
이후 종리권은 여동빈이 도를 받을 만한 그릇이 되는지를 보기 위해 10가지 관문의 혹독한 시험을 치르게 한다. 이것이 ‘운방십시동빈(雲房十試洞賓)’의 일화인데,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한다. 
  
첫 번째는 여동빈이 하루는 밖에서 돌아오니 집사람들이 모두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에 슬퍼함 없이 다만 후하게 갖추어 장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죽은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다.
  
또 하나는, 정월 초하루에 거지가 문에 기대어 구걸하기에 돈을 주었다. 그런데 돈이 적다고 짜증을 내기에 여동빈이 더 주었는데도 여러 가지로 트집을 잡으며 함부로 꾸짖었다. 그럼에도 여동빈이 예의를 갖추어 사의를 표하자 거지가 웃으며 가버렸다.
  
그리고 하루는 교외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집에 있는 물건들을 도적들이 싹 쓸어가 버리고 없었다. 하지만 동빈은 성내지 않았다. 이후 아침저녁으로 먹을 것이 없어 밭을 갈아 자급하는데 홀연 호미 밑에서 금 수십 덩이가 나왔다. 그러나 그는 급히 덮어버리고 이를 취하지 않았다.
  
마지막 관문으로, 밤에 야차(夜叉) 수십이 나타나서 사형수를 쥐어틀어 피와 살이 엉기었다. 그러자 사형수가 울면서 말하기를 “너는 전세에 나를 죽였으니 급히 내 목숨을 살려내라.”고 했다. 이에 동빈이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으로 보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며 칼로 자결하려 하자 홀연 공중에서 꾸짖는 소리가 나더니 귀신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후 종리권이 나타나 여동빈의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속세의 마음은 없어지기 어렵고, 선인의 재주는 만나기가 어렵다. 내가 사람을 구하는 것은 남이 나를 구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네.” 하였다. 
  
스승이 제자를 찾는 것은 오히려 제자가 스승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니 도를 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가를 느끼게 해주는 말이다.
  
종리권이 계속해서 이르기를 “내가 열 번을 시험했으나 모두 꺾이지 않으니 그대는 반드시 득도할 것이네. 세상을 구제하고 남을 이롭게 하여 3,000의 공(功)을 꽉 채워 800행(行)을 원만히 하면 바야흐로 신선이 될 것이네.” 하였다. 여동빈의 스승은 신선의 길을 감에 있어 모든 고난과 고통을 뛰어넘어 자신의 생명을 완성시키는 것[行]도 중요하지만, 자신과 함께 사는 세상사람을 구제하는 것[功]이 몇 배나 소중한 과정임을 깨우쳐주고 있다.
  
그리고 “세간에 살며 공행을 닦은 후에 나와 같이 살도록 하게.” 했다. 그러자 여동빈이 말하기를 “저의 뜻은 선생님과 다릅니다. 반드시 중생을 모두 구제하고 떳떳이 상계에 오를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종리권은 여동빈이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도를 깨닫는 신선이 될 것이라 예견했다. 여동빈이 원하던 바는 단순히 득도하여 자신만의 평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상을 등지지 않은 도세(度世)의 삶

대개 사람이 득도를 하면 답답한 몸을 벗고 천상으로 오르고자 한다. 하지만 세속의 오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중생을 구하는 큰 보살과 같은 삶을 산 신선들도 많이 있었다. 도교에서는 속세를 초탈하여 신선의 경지로 중생을 인도하는 것을 ‘도세(度世)’한다고 한다. 
  
여동빈은 종리권이 떠난 후 73세에 대도를 원만히 이루고 도세의 삶을 살게 된다. 이후 여동빈은 천상의 상제님으로부터 신선의 재목을 고르라는 선선사(選仙史)의 관직을 받고, 인간 세상에서 오래도록 활동을 하게 되었다. 훗날 여동빈은 인연있는 사람을 찾아 금단(金丹)의 도로써 영생불사(永生不死)의 선맥을 전한다. 지금껏 신선에 대한 아름다운 이미지가 남아있는 것은 한사람이라도 더 인간을 세속에서 건져내어 선맥을 전수하려는 그의 애틋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는 세상에 수시로 모습을 나타내어서 때로는 걸식하는 사람으로, 때로는 늙고 쇠잔한 영감으로, 때로는 누추한 중으로 나타나 사람들의 마음을 가름질하고 그의 공덕을 헤아린 후에 도를 전하였다. 상제님께서 언급하신 빗장수 이야기(道典 7편 84장)도 그 중 한 일화이다.
 

송대에 이르러 여동빈이 무창(武昌)의 천심교(天心橋)에서 해진 나무빗을 팔고 있었다. 값을 1000전이라 부르니 여러 달이 흘러도 팔리지 않았다. 동빈이 이르기를 “…세상 사람들이 다 뛰어난 의견이 없으니 어찌 더불어 도를 이야기하겠는가?” 하였다. 그때 병든 노파가 구걸하며 다니는 것을 보고 불러서, 빗으로 할머니의 머리를 고르니 긴 머리가 땅에 늘어지고, 작은 조개같은 쪽머리가 높은 소반처럼 되며 모습이 변했다. 
  
이에 여러 사람들이 비로소 신이한 일로 여기고 다투어 빗을 사고자 하니, “보아도 모르고, 알아도 못 본다.” 하고는 빗을 다리 아래로 던졌다. 그러자 빗은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고 노파와 빗장수가 모두 사라지니, 사람들은 비로소 그가 여동빈임을 알았다.
  
한번은 여동빈이 기름장사로 변신하여 기름을 팔면서 악양(岳陽)에 갔다. 기름을 사는 사람들마다 더 달라고 요구했다. 다만 한 노파만 기름을 사면서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 동빈은 그녀가 신선공부를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제도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가서 한 줌의 쌀을 우물 속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당신은 이 우물물을 팔면 부자가 될 것이다.”고 하였다. 그 노파는 여동빈이 간 후 우물 속의 물이 전부 미주(美酒)로 변한 것을 알았다. 그 노파는 우물 속의 술을 팔아 일 년 후에 부자가 되었다. 
  
그 후 어느 날 여동빈은 그 노파 집에 갔는데 마침 노파가 없고 그녀의 아들이 집에 있었다. 여동빈이 “당신들 집은 지난 일 년 동안 술을 팔아 부자가 되었는데, 느낌이 어떠한가?”하고 물었다. 그 노파의 아들은 “좋기는 좋은데 단지 돼지 먹일 술 찌꺼기가 없어서 힘들다.”고 하였다. 
  
여동빈이 탄식하면서 ‘인심이 탐욕스러워 부끄러움도 모른다.’고 하면서 우물 속의 쌀을 거두어 들였다. 노파는 외출에서 돌아와서 우물 속의 술이 모두 물로 변한 것을 알았다. ‘사람의 욕심은 이렇게도 끝이 없는가?’ 여동빈은 이렇게 사람들에 실망을 하고, 또 세상 속에서 미친 사람의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천지를 집 삼아 세상에 동출우돌하는 도세의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도를 받아 신선의 길을 간 사람은 수없이 많다. 그의 자취는 당, 북, 남송, 원, 명, 청조에 이르기까지 1,000여 년이 훨씬 넘게 역사에 실려 있다. 
  
 
중국 도교를 일으킨 여동빈의 가르침

그러면 그가 중국 도교1 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자.
흔히 도교의 뿌리를 노자로 생각하지만, 노자의 철학과는 별도로 고조선에 인접한 연·제나라를 중심으로 신선사상이 넓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는 주나라의 제후로서 제나라 왕이 된 강태공이 삼신상제 신앙을 바탕으로 천지일월을 받드는 제사문화2 를 체계화하여 보급한 까닭이다. 
  
이런 신선에 대한 이야기들은 전국 말기에 퍼진 방사술(方士術)과 크게 합쳐져 마침내 단약을 먹어 신선이 되어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것을 전업으로 삼는 방사(方士)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한대에 이르러서는 위백양(魏伯陽)의 『참동계(參同契)』3를 필두로 선도(仙道)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후 종리권과 여동빈에 의해서 내단법(內丹法)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이른바 ‘종려금단도(鐘呂金丹道)’4가 성행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성명쌍수(性命雙修)를 통한 내단의 성취만이 사람이 신선으로 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광물질을 복용하는 것이나 방중술과 같은 것은 하찮게 취급되어 갔다.
  
여동빈의 가르침은 서양에도 널리 알려진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에 잘 실려 있다. 여조전서(呂祖全書) 서문에 여동빈의 가르침에 대해 말하기를 “무릇 단종(丹宗)의 비밀스런 가르침은 본래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 억지로 말로 하자면 심성을 지극히 양성하는데 있으니, 음양의 운용을 시험하고 도덕의 묘함을 추구하며 천지조화에 통하고 생사의 진리를 깨우치고, 자연의 법칙에 순종할 따름이다.”고 하였다.
  
여동빈이 송대에 왕중양(王中陽)에게 도를 전한 이래, 왕중양이 개척한 전진교(全眞敎) 교단은 마단양, 구처기(일명 장춘진인長春眞人) 등에게 전해진 후 원·명대에는 도교의 주류가 되었다.
  
 
불로장생 시대를 여는 일에 역사하다

여동빈 선인은 세상의 온갖 고난을 두루 겪고, 다시 3,000 공덕을 가득히 행하여 진선(眞仙)에 올랐다. 그러나 다시 커다란 자비심을 내어 모든 창생과 성인될 씨앗이 있는 사람들을 제도하기를 서원하였다. 
  
세상을 등지고 은둔했던 다른 신선들과 달리 세상을 제도하기 위해 바쁘게 뛴 그의 활동은 역사 속에 길이 빛나고 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천하 만민에게 영원한 생명을 전해주고자 신선의 몸으로 대륙을 누볐던 여동빈의 천하사 정신을 높이 사시어, 그의 조화법으로 인류의 불로장생의 신문명을 개벽시키기를 명하셨다. 
  
여동빈에 관한 도전 말씀을 살펴보자.
  
  천상 여동빈 선관(仙官)의 조화권능으로 머리 빗겨 갱소년(更少年)시켜 주옵소서.(道典 11:210)
  
  앞세상에는 흰머리가 나지 않게 할 것이며 허리도 굽지 않게 하리라.(道典 11:298)
 
 
여동빈 선인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천상의 생명불을 인류에게 전수하기 위해서 뛰고 있을 것이다.
  
선천문명과 후천문명의 차이는 무엇인가?

조화주 하나님이신 증산 상제님께서는 “선천은 기계선경(機械仙境)이요, 후천은 조화선경(造化仙境)이니라.”(道典 7:8)고 하셨다. 인류문명은 종교, 철학, 과학을 막론하고 근본적으로 영생(永生), 조화(造化)를 꿈꾼다. 그러나 선천에는 물질문명을 발전시켜오는 과정에서 생명의 뿌리, 정신의 뿌리를 잃어버리면서 반쪽의 문명을 발달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만물이 하나로 돌아가는 후천에는 물질문명이 낳는 모든 상극대립을 조화로써 다스리는 조화문명이 활짝 열린다.
  
조화문명은 어떻게 열리는가? 
인간이 천지의 마음을 보고 만물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만사지(萬事知) 문화를 바탕으로 해서 열린다. 
상제님은 천지조화의 주체인 상제님을 올곧게 모시어 천지의 성신(聖神)을 받는 시천주(侍天主) 신앙으로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하셨다.  

<참고서적>

『여동빈 이야기』최창록, 살림출판사
『도교사』구보 노리따다, 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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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회암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하셨는가?


주회암의 인물됨
상제님께서 “유가의 인물들이 흠이 많으나 주회암은 흠잡을 데가 없느니라.”(도전 4:14:3)고 평가를 하시고 유교의 진액을 거두기 위해서 주회암을 후천 유가의 종장으로 삼으셨다.
 
주회암(朱晦庵, 1130~1200). 주자(朱子). 남송시대 대유학자로서 북송 오현(五賢)의 학설을 계승, 종합하고 동시대의 불교, 도교 이론까지 섭렵하여 방대한 사상체계를 정립하였다. 
 
그런데,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주자는 덕망 있고 온후한 성인의 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당시 주자의 친구이며 도학자인 장남헌이 주자에게 편지를 보내어 충고한 적이 있는데, “원회, 당신의 학문과 행동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바입니다만 눈앞의 사태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당신은 평소 남을 훈계하여 고치려 들기만 하며, 남을 틀렸다 하고 자신을 옳다고 하는 면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당신을 꺼려하여 의문점이 있어도 물으려 하지 않으며, 아첨하는 자가 많고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이가 적습니다. 이처럼 성격이 치우친 것을 성찰하지 않으면 아마 언젠가는 유폐를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다른 친구인 여동래도 ‘적을 만들어 승부하기를 좋아하며 온화한 기상이 부족하다’고 평가를 하였다. 그리고 주자는 그의 제자들에게도 강직하게 대하고 잘못된 것을 직설적으로 지적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상제님께서 부유(腐儒)라고 지적하신 유가 인물의 그릇된 점은 무엇일까? 주자에 대해서는 왜 흠잡을 데가 없다고 하셨는가? 또 상제님께서 취하신 유가의 진액은 과연 무엇인가? 유가의 종장인 주자를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주회암의 생애와 사상
주자는 유학의 경전을 집대성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우주론에 관한 문제를 정리하여 자신의 사상체계를 정립하고 신유학을 완성한 인물이다.
 
우선 주자학의 창시자인 주자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서 살펴보자. 
 
주희는 1130년 송나라 때 복건 남검주 우계현에서 아버지 주송, 어머니 축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선의 송시열이 자신의 호를 ‘우암’이라 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한다는 뜻도 들어가 있지만, 주희가 태어난 우계현에서 따다 쓴 것이다. 주희의 자는 원회다. 호는 많은데 대표적으로 회암을 든다. 시호는 문공이다. 문공이란 시호는 최고의 존칭에 해당한다.1
 (1. 본래 시호는 두 글자를 쓰는 것이다. 게다가 학자에게 있어서 글월 문자를 쓰는 건 가장 극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공은 학자로서는 최고의 시호를 받은 것이다) 
 
 
주자가 4세 때, 아버지 주송이 하늘을 가리키며 “보아라. 저것이 하늘이란다”라고 하자, 보통 아이들과는 달리 주자는 하늘 위에 무엇이 있냐고 되물어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후에 그때를 회상하며 “나는 이미 5, 6세 때부터 생각에 잠겨 괴로워했다. 대체 천지사방의 바깥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 나는 꼭 끝이 있는 것만 같았다.”라고 하였다. 
 
더불어 그의 논적(論敵)인 육상산도 비슷한 일화가 있는데 3, 4세 때 천지의 끝이 어디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어서 그 때문에 식사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아버지가 꾸지람을 하자 더 이상 그 문제를 입밖에 안 내놓았는데, 이론과 심론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철학의 문제를 천지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유소시에 “하늘 천 자에 하늘 이치를 알았고, 땅 지 자에 땅 이치를 알았으면 되었지 더 배울 것이 어디 있습니까?…”(道典 1:19:7)라 하셨고, 사부님께서도 ‘대도세계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생명의 부모인 하늘과 땅에 대한 본질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도전 1:19:7 미주)는 말씀으로 학문의 시작, 도의 근본뿌리가 천지에서부터 비롯됨을 말씀해주신 바 주자는 철학의 근본을 바르게 보았던 것이다. 
 
주자의 아버지 또한 도학을 계승하였고 주자는 어려서부터 과거급제나 출세, 명리를 위해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버지로부터 전해 받았을 것이다. 
 
14세 때, 아버지가 죽자 그 유명(遺命)에 따라 호적계(胡籍溪) 유백수(劉白水) 유병산(劉屛山)에게 사사하면서 불교와 노자의 학문에도 흥미를 가졌으나, 24세 때 이연평(李延平)을 만나 사숙(私淑)하면서 유학에 복귀하여 그의 정통을 계승하게 되었다. 그의 강우(講友)로는 장남헌(張南軒) 여동래(呂東萊)가 있으며, 또 논적(論敵)으로는 육상산(陸象山)이 있었다. 
 
그는 19세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71세에 생애를 마칠 때까지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약 9년 정도만 현직에 근무하였을 뿐, 그 밖의 관직(사록)은 학자에 대한 일종의 예우로서 반드시 현지에 부임할 필요가 없는 명목상의 관직이었기 때문에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다. 
 
주자의 사상의 형성은 40세와 61세를 시점으로 나눠 볼 수 있다. 40세 때, 이발미발미발설(已發未發說)2이 정립된 것이 제 1차 각성이라고 한다면, 61세에 제2차 각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에 주자는 “긴 여정 끝에 『시경』과 『주역』에 관해서는 겨우 성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하였고 이 해 10월부터 『서경』, 『시경』, 『주역』과 『춘추』를 간행하였다.
(2. 미발(未發)과 이발(已發)은 중(中)을 말하는 것인데, 미발의 중은 마음속에 있는 치우침이나 편벽됨이 없는 성(性)으로서, 아직 사물을 접촉하지 않아 희로애락이 발생하기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이 성에서 온갖 도리가 나오기 때문에 대본이라고 한다. 이발의 중은 이미 사물에 접촉하여 마음속에서 도리가 겉으로 발생할 때, 당연히 기뻐해야 할 때에 기뻐하고, 화를 내야 할 때에 화를 내어 도리에 어긋남이 없이 절도에 맞는 중절의 상태를 말한다. 이 때의 중(中)을 곧 화(和)를 말한다)
 
 
 


 1. 근사록 1175년 주희(朱熹:주자)와 여조겸(呂祖謙)이 주돈이(周敦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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