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지구의 계측

 

  옛부터 많은 수학자와 지리학자들이 대피라미드가 측지지점을 나타내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말해왔다. 측지학이란 지구의 정확한 크기와 형태를 계측하는 학문인데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왔을 때 이런 방향에서 검토해보고 피라미드가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결과 피라미드는 삼각측량에 매우 편리한 거점이 되었고 피라미드의 정점을 지나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계측했다.

 잘 보면, 대피라미드의 자오선이 나일강의 델타지대의 중앙을 통과하며 반으로 분할하고 있다. 그리고 대피라미드의 정점에서 북서와 북동으로 향하는 선을 그리면 지중해에 도달하며 이 삼각형은 나일강의 델타지대를 그대로 덮어버린다. 동쪽 자오선은 동경 32。38′이고 서쪽 자오선은 동경 29。50′인데 고대 이집트 왕조시대의 공식적인 국경선이었다. 중앙의 자오선은 31。14′에 있어 양 직선의 거의 중앙에 있다. 이렇게 지구표면에 2。48′의 폭을 가진 긴 땅을 그릴 수 있다.

 남쪽국경인 북위 24。6′와 북쪽 국경선인 31。6′이므로 이 땅은 약 7도의 길이를 가진 직사각형 모양의 땅이다. 대피라미드가 델타 정점에 위치하지 않고 약간 어긋난 것은 순전히 그 땅이 이 튼튼한 건물을 짓기에 적당했던 때문인 듯하다. 이 직사각형은 그들이 위도와 경도를 알고있었던 것을 의미하진 않을까? 그럴리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봐도 이 간격과 위치는...

 인공위성으로 계측한 적도의 둘레는 40068.04킬로미터이고 북극으로부터의 반지름은 6355.42킬로미터이다. 한편 피라미드 밑변의 둘레가 921.46미터, 높이가 146.73미터이다. 이 비율을 계산해서 지구의 적도가 조금 불룩 튀어나온 타원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1/43200이라는 축척에 매우 가까워진다.

  ① 적도길이인 40068.04를 43200으로 나누면 927.5미터 ≒ 921.46미터(밑변)

  ② 지구반지름 6335.42킬로미터를 43200으로 나누면 147.11미터 ≒146.73미터(높이)  각각 0.75%와 0.2%의 오차다. 이 정도라면 대피라미드의 밑면의 둘레는 적도둘레의 1/43200이라고 할 수 있다. 피라미드 밑변의 둘레, 높이를 알고 43200이라는 축척을 알면 지구의 크기를 계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그냥 우연일까? 43200이라는 이 기묘한 숫자를 선택한 것도 우연일까?

  대피라미드는 지구 북반구을 투영한 것이 분명하다. 고대의 지도들을 연결시켜 생각하면 더욱더 이 심증을 굳힐 수 있다. 피라미드의 ㅣ편평한 각 면은 북반구의 1/4곡면이고 구형에서 90도의 1/4원을 나타낸다. 피리레이스 제독의 지도가 어디를 기점으로 하고 있을까? 이집트의 아스완이었다. 아스완에서는 중요한 천체관측소가 고대이집트 남쪽 국경선 위에 서있다. 이래도 우연이란 말인가?

 위대한 토트신의 기하학과 측량과 의학, 식물학, 수학과 문학을 물려받은 이집트 고대인들은 토트의 가르침을 42권의 형태로 보관해 계승했다.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인들이 태양년을 처음으로 발견하여 열 두 부분으로 구분했고 이것은 별의 움직임을 관측한 결과였다고 말한다. 플라톤은 이집트인들이 1만년동안 계속해서 별을 관측했다고 말한다. 무슨 필요에서 이런 오랜 항해를 계속한 것일까?

  

49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힘

    1/43200의 축척으로 만들어진 대피라미드가 북반구의 모형이며 투영도라는 것은 43200이라는 세차운동의 숫자가 증명한다. 로버트 보발은 대피라미드의 건축계획에 지금까지 알려진 것 말고도 더 다양한 의도가 있었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것은 2피라미드와 3피라미드를 포함한 대규모 계획으로 특별히 세차운동에 집착했던 고대의 건설자들이 계획한 일종의 암호다.

 1960년대에 왕의 방 남쪽 환기구멍이 피라미드 시대(기원전2600년에서 기원전2400경)에 오리온 자리의 세 별에 정확히 조준되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로버트 보발은 이 방 말고 여왕의 방의 남쪽 환기구멍을 조사했는데 이 환기구멍은 시리우스 별을 향해있었다. 보발이 왕의 방의 환기구멍을 재조사한 결과 오리온 세 별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알 니탁별에 정확하게 조준되어 있었다. 기원전 2475년 경의 일이다. 피라미드를 기원전 2520년 경에 지었다고 하니, 더 이후의 일인 셈이다.

  그러나 보발은 세 별이 은하수를 축으로 해서 남서방향으로 비스듬히 사선을 따라 줄지어 서있고 자세히 보면 세 별 가운데 가장 작은 별이 사선의 동쪽에서 비켜나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기자의 세 피라미드는 바로 그것을 지상에 옮겨놓은 것이었다. 보발은 컴퓨터를 이용해 가장 근접한 시대를 찾아냈는데, 바로 1만4백5십년의 하늘이었다!

 기원전 1만450년에 기자에서 보인 은하수는 나일강 유역과 완벽하게 중첩한다. 이 시기에 오리온 자리의 세 별이 세차주기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는데 대피라미드에 해당하는 알니탁은 남쪽하늘 11도8분에 있었다.

 자, 세차운동을 생각해보자. 춘분점에 태양이 떠오를 때 보이는 별자리가 황도대에 있는 12성좌 사이에서 차례로 변한다. 이 현상은 모든 별과 마찬가지로, 오리온 자리에서도 아주 서서히 위도를 변화시킨다. 알니탁별이 가장 높은 위도에서 가장 낮은 위도(11°8′)로 내려오는 기간은 1만3천년이다. 다시 서서히 올라가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까지 1만3천년이 걸린다. 기자와 오리온의 가장 완벽한 일치는 기원전 1만450년이었다.

  그러나 환기구멍은 기원전 2450년에 맞추고 별의 위치를 나타내는 땅의 배치는 기원전 1만450년을 가리키고 있다는 행콕의 질문에 대해 보발은 이렇게 말한다.

 “피라미드가 2450년과 기원전 1만450년을 가리키는 「별의 시계」라면, 세차운동에 따라 오고가는 별의 위치를 가리키는 진자의 흔적이라면, 이 건축물을 언제 만들었는지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아니라면 “기원전 1만450년에 짓기 시작해 기원전 2450년에 완성했던, 아주 끈질긴 종파가 이것을 이룩했다고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자연의 시계를 설계한 이들은 어떤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틀림없다. 이것은 결코 무덤이 아니며 자신들의 생각과 지식을 전달하는 매개로 피라미드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 진리를 파헤치도록 끌어당기는 엄청난 힘을 지닌 이 건축물들을 통해 그들은 “진실을 찾으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스핑크스는 항상 정동을 쳐다보며 이 위대한 계획의 일부를 거든다. 춘분과 추분을 알려주는 이 거대한 표식이 왜 사자모습일까? 만약 지금 누군가 이런 것을 만든다면 물고기형태가 맞을 것이다. 물고기자리는 그리스도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표식이 물고기였다. 그 이전은 양자리였다. 구약의 종교적 상징, 이집트에서 크게 번성한 아몬신은 양이었다. 양자리 이전은 황소자리였다. 미노아문명은 황소를 숭배하는 종교를 가졌다.

  만약 카프레왕이 이것을 만들었다면 황소가 적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태양이 춘분에 사자자리를 배경으로 떠오른 시기는 기원전 1만970년부터 기원전 8810년까지다. 그로부터 2만6천년이 지나지 않으면 다시 사자자리가 오지 않는다.

  ① 태양이 춘분에 사자자리로 떠오른다. 기원전 1만970년 ∼ 기원전 8810년

  ② 오리온자리의 세 별이 가장 낮은 위치에 뜬 시기. 기원전 1만450년
       이 시기가 왜 그리 중요했을까? 그들은 무엇을 알리려고 했을까?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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