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랑의 도약을 위한 깨달음의 제전



● 일시: 도기 145년 9월 3일(토)~4일(일)
● 장소: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1, 2학년), 상생관(3, 4학년)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 청명한 가을을 맞아 9월 증산도대학교가 학년을 나누어 교육문화회관 태을궁과 상생관에서 9월 3일과 4일 이틀간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달 증산도대학교는 신입 도생들을 위한 기초반과 간부 양육을 위한 심화반, 그리고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으로 계층별, 학년별 분반교육을 실시하여 집중도와 효율성이 강조되는 교육 운영이 이루어졌다. 교육 내용과 자료 구성 등도 향상되어 참여 도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토요일 이루어진 분반교육에서는 1, 2학년 도생들을 위해 하느님이 내려주신 노래이자 깨달음의 소리인 ‘주문의 기본 뜻’과 더불어 ‘인터넷 포교 실무교육’이 진행됨으로써 하느님의 도道문화를 여는 주체인 태을랑의 영성과 관련된 심도 있는 교육이 펼쳐졌다. 그리고 3, 4학년 도생들을 위해서는 환단고기 ‘단군세기 본문’ 원전 강독과 수행의 정수가 담긴 ‘영보국 정정지법’의 핵심이 교육되어, 국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함께 행법 중심의 생활양식을 통한 태을랑의 근본 자세에 대해 논하는 시간을 가졌다. 토요일 교육의 마무리는 우주의 자궁, 태을궁에서 집중수행이 진행되어 영성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으로 매듭지어졌다.

2일차 일요일은 학년 통합교육으로 ‘증산도의 진리’ 강독 시간을 통해 천지공사 집중교육이 진행되었다. 현재 세운의 상황과 이슈의 흐름을 살펴보고 이 세운 공사에서 도운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과 의미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이 구성되었다. 이어 천지열매 태을랑으로서 4선조 조상천도식 봉행을 하는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교육이 생생한 현장 사례들과 더불어 공유되었다.

또 살릴 생生자의 성업을 집행할 의통제작창 상량식 영상을 함께 시청하면서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의 진리 은혜와 천지사업의 대의를 확인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천하사를 위한 성스러운 복록소 서약식을 가진 이후 태을랑을 위한 종도사님의 도훈 말씀을 받들면서 이번 대학교 교육이 마무리 되었다. 결실을 맺는 가을, 참여 도생 모두가 풍성한 오곡을 거두는 우주의 가을철 인존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태을랑이다!” ◎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물도깨비 대접 "물아래 김서방 ~ 물아래 박서방"


▶도깨비는 지방에 따라 도째비, 도짜비(전라도), 도까비(경상도), 도채비(제주도 및 남해 도서지역) 등으로 불린다. 영감, 생원, 서방 등  존칭이 붙기도 하는데 더 나아가 김서방, 김영감, 진생원 등과 같이 성까지 부여받기도 한다. 이는 인간과 친숙한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과거 민간에서 감기 기운이 들어 재채기가 나면 “물 아래 박서방네 집으로 확 가거라.” 하고 감기 기운을 쫓아 버리는 의식을 행했다. 호남 지방에는 지금도 어민들이 뱃고사를 지낼 때 물도깨비를 대접하는 풍습이 있는데, 도깨비를 향해 “물 위의 김서방, 물 아래 김서방!” 하고 도깨비를 높여 부른다.


▶전북 부안군 줄포면 줄포리에서는 도채비고사고 부르는 제의를 행했다. 살을 매고 나서 고기를 많이 잡기를 기원하기 위해 도채비고사를 지냈다. 도채비를 김서방이라고 부르면서 ‘물 아래 김서방, 물 위의 박서방, 고기 많이 모아서 우리 살에 넣어 주시오’라는 내용으로 축원을 했다.

전남의 도깨비고사는 신안군, 무안군, 완도군, 여수시 등지에서 지내고 있다. 개펄에 덤장을 설치해 놓고 고기를 잡는 무안군 해제면 일대의 어민들은 도깨비가 고기를 많이 몰아다 준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덤장고사, 대발고사, 도깨비고사, 개맥이고사 등으로 불리는 도깨비를 모시는 제의를 행한다. 고사는 어장의 주인과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진다. 고사를 지내는 장소는 어장이 설치된 곳에서 가까운 해안가이다. 제의 일시는 매달 물이 새로 드는 서무날(12·27일)과 열무날(4·19일)의 만조 때 초저녁이다. 고사 장소에 도착해서 먼저 짚으로 간단한 도깨비집을 만든 다음 제물을 진설하여 잔을 올리고 재배를 하는 것으로 제의는 끝이 난다. 메밀(피고물)은 반드시 올려야 하는 제물이다. 축원은 ‘물 건너 김서방 ○○○의 어장 재수 많이 봐 주시오. 고기 많이 잡게 해주시오.’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 하루는 태모님께서 공사를 행하시며 김수열을 불러 명하시기를 “너는 지금 내려가 마당 한가운데에 서라.” 하시니  수열이 마당 중앙에 서 있으매 태모님께서 “물 아래 박서방(朴書房), 물 아래 박서방!” 하고 부르신 다음 3 수열에게도 이와 같이 시키시니 수열이 명하신 대로 “물 아래 박서방, 물 아래 박서방!” 하고 외치니라. (증산도 道典 11:293)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어머니 신’, 삼신할머니 1-2 



(사진: ezday/활짝핀날개) 


II.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요?"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요?" 어릴 때 흔히 하는 질문이다. 내가 살던 고장 (부산에서도 시내 중심과 다리 하나로 연결된 섬, 영도) 에서는"영도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했다. 이 얼마나 서러운 말인가! 어둡고 이상스런 다리 밑이 바로 내 출생의 근원지라니. 그러면 진짜 우리 엄마는 누군데... 사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아직 6.25 전쟁의 기억과 전후의 핍박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영도다리는 부산으로 몰려온 무수한 피난민들이 이 다리 위에서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고 찾았던 곳으로, 그 시대를 회상하게 하는 부산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어른들이 반은 위협용으로 반은 농담으로 아이에게 한 소리였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불행히도 나는 어린 시절 나의 출생에 대해 어떠한 신비한 상상도 해 본 기억이 없다. 


"엄마, 난 어떻게 태어났어?" 나의 어린 딸아이도 내게 똑같은 질문을 해왔다. 글쎄... 하고 뜸을 들이며 궁색한 답변을 찾고 있으면, 아이가 먼저 유치원과 책에서 배웠다며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해서 태어난 것이라고 아는 척을 한다. 생물학적으로 아기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쉽게 풀어놓은 동화책들을 통해 아이는 스스로 궁금증을 해소하는 듯하다. 그러나 너무도 분명하게 제시되는 사람의 탄생과정에서 과연 우리 아이는 어떤 상상을 갖게 될까? 어쨌든 나보다는 나은 상상을 할 것 같다. 딸아이는 우리 민족의 설화를 동화책을 통해 접하면서 아기를 점지해주는 삼신할미에 대한 상상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이가 묘사한 삼신할미 상은 재밌게도 한국적인 요정의 모습에 가깝다. 




(서정오 삼신할미 표지) 


"내가 생각하는 삼신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니고 아가씨이다. 머리는 고동색이고 치렁치렁해서 묶었다. 치마는 명주치마이고 그 위에 진달래 모양으로 오색실로 수를 놓고 신은 곱디고운 꽃신을 신고 기다란 하늘색의 진주 목걸이를 하고 연꽃으로 만든 왕관을 쓰고 있다. 손오공처럼 구름도 타고 있고 금빛의 지팡이도 들고 있다. 아기를 점지할 때는 금지팡이로 허공에 원을 그리면 되고 낳게 할 때는 진주목걸이를 산모 배에 대고 손으로 문지르면 아기를 낳게 된다." 


딸아이가 상상하는 삼신할머니는 꼭 서양 동화나 만화 속의 예쁜 여주인공 같다. '오색'과 '구름', '꽃'처럼 삼신할미와 관련된 전통적인 상징들이 서양 신화의 요정이 지니는 (금)지팡이와 뒤섞여 혼재한다. 아기를 점지하는 삼신할미의 모습은 요정과 같았다가 다시 산모의 출산을 도울 때면 배에 대고 손으로 문지르는 것은 전통적인 삼신할미 상에 부합해 보인다. 진주목걸이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이가 그려낸 삼신할미는 우리 신화와 서양의 신화, 일본 만화 등에서 가져온 여러 요소가 혼합된 형태를 띤다. 이런 삼신할미 그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좋을까? 내가 민속신앙의 전승에서 갈등과 단절을 경험한 세대라면, 딸아이는 완전히 서구화된 삶 속에서 전통문화를 동화나 신화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추상적이고 허구적인 상으로서. 


우리 어머니의 세대는 다르다. "가난했지. 그리고 옛날에 무신 약이 있어야지." 삼신 신앙에 대한 질문을 받자 어머니는 이 말부터 앞세우지만, 자손을 내려주는 삼신에 대한 경외심은 변함없다. 어머니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삼신할미 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신령한 힘을 지닌 삼신이라 알고 있을 따름이다. 여기에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 온 삼신께 기도드리는 큰어머니의 모습과 시집을 간 후로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충북 옥천으로 시집을 와서 대개 농사를 짓고 살았던 어머니가 들려 준 삼신신앙은 이렇게 정리된다. 


안방 시렁에는 일년 사시사철 쌀 두 되 정도를 넣은 '삼신주머니'를 매달아놓았다. '삼신주머니'는 바로 삼신의 신체(神體)로서, 아기의 잉태와 순산, 무병장수, 자손 번성과 가내 평안 등을 관장하는 가신(家神)을 모신 것이다. 산모의 산통이 시작되면 시할머니나 시어머니가 목욕재계한 뒤 삼신의 신체 앞에서 정성어린 기도를 드렸다. 삼신상에는 미역과 쌀, 정한수를 올려놓고 두 손바닥을 마주 대고 비비면서 아기의 순산을 빌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삼신할머니께 비나이다..." 이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삼신할머니께 드리는 축원기도 자료를 찾아보니 내용이 이러하다.


"삼신할머니가 입을 복도 많이 붙여 주고, 먹을 복도 많이 붙여 주고, 짧은 명은 길게 하고, 긴 명은 쟁반에다 서리서리 서려 놓게 점지하시고, 앉아서 천 리 보고, 서서 구만 리 보시는 삼신할머니가, 섭섭한 일 있더라도 무릎 밑에 접어놓고 어린 유아를 치들고 받들어서 먹고 자고, 먹고 놀고, 아침 이슬에 외붇듯이, 달 붇듯이, 더럭더럭 붇게 점지하여 주십사. 명일랑 동방삭의 명을 타고, 복을랑 석승의 복을 타고, 남의 눈에 꽃으로 보고, 잎으로 보게 점지하오소사."

(서정오 삼신할미 中) 


아기를 출산하면 즉시 삼신상에 올려진 미역과 쌀로 국과 밥을 지어 삼신할머니에게 고맙다고 상을 차려 올리고 다시 산모와 아기의 무탈함을 빌었다. 아무리 빈궁한 때라도 삼신상에는 반드시 쌀로만 지은 흰밥과 미역국을 올렸다. 하루에 세 번, 끼니때마다 삼신상을 차렸는데, 산모에게는 이 상에 올렸던 밥과 국을 그대로 먹게 했다. 삼신상은 기도를 드리는 시할머니나 시어머니가 차렸는데, 출산 후 삼일 동안은 한번도 거르지 않고 끼니때마다 하루 세 번씩 올렸고, 


그리고 나면 첫 이렛날, 둘째 이렛날, 셋째 이렛날(삼칠일)에 새로 국과 밥을 떠놓았다. 좁은 안방에서 오가는 사람의 발에 걸려 엎어 질까봐 상 대신 깨끗한 짚을 깔아 사용하기도 하였단다. 삼신할머니께 드리는 기도는 삼칠일이 지난 후에도 계속된다. 특히 어린아이가 아플 때면 삼신 앞에 그 어머니와 할머니가 맑은 물 한 그릇을 떠놓고 빌었다. 옛날 예방주사나 치료약이 귀하던 때에 동네에서 홍역으로 죽은 아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아이가 홍역을 치를 때도 삼신할머니에게 빌었다. 


귀한 자손을 내려주고 무탈하게 자라도록 보살펴 줄 때는 삼신할미가 자애롭기 그지없는 신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 만은 않았다. 삼신할미는 또한 무서운 신이기도 하다. 당시 사람들은 삼신을 노하게 하면 아이를 잡아간다고 믿었다. 아이에게 병이 생기면 어른의 행실이 잘못되어 "부정타서" 그런 것이라 여기고 아이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삼신에게 받는 "벌"로서 물을 10대접 정도 마시고 삼신할머니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다. 또 아이가 홍역과 같은 병에 걸리면, 부모는 한 겨울이라도 홑바지 홑저고리에다 소멍에를 뒤집어쓰고 자신이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니 잘못을 용서해주고 부디 아이를 살려달라고 삼신할머니께 빌었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유아가 정상이 아닐 때는 삼신에 대한 두려움과 자책감이 얼마나 심하였을까. 


어머니가 안방에서 삼신의 신체를 걷어 내린 것은 1960년대 중반 무렵이다. 일곱 남매 중에 막내딸을 낳기 직전인데, 이때는 같은 동네 여러 집에서도 삼신의 신체를 치웠다고 한다. 의료혜택과 전기, 라디오와 TV, 도로 등의 문명시설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추정되지만 자세한 자료조사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다. 끝으로 다음 편의 글에도 연결되는 성찬경의 시 <삼신할머니>를 소개한다. 이 시에는 민간에서 믿어온 삼신의 두 모습이 희화적으로 묘사된다. 



화통처럼 늠름한 모습에도

구렁이 담 넘듯이 은근한 기질에도
대개는 수수하게 지나치는 삼신할머니.


그런가 하면, 무슨 과시 때문인지 별안간 
수수께끼처럼 의미 심장한 트집을 잡을 때는
무섭다. 여섯 발가락 애꾸눈에 언청이에
얼룩이에, 심하면 곱추 따위.


"일곱째도 딸로 해 두자." 


이렇게 심술을 부릴 때도 있다.


삼신할머니는 인간파 예술가.
뒤적뒤적하다가 크고 작은 틀에 집어 던지는
꿈은
순전히 할머니의 기막히는 창조이다. 


(서정오 삼신할미 中) 



----------
참고도서: 
- 삼신할머니와 아이들, 정하섭 글. 조혜란 그림, 창비사, 1999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서정오 지음, 현암사, 2003 

- 한국문화 상징사전, 동아출판, 1992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어머니 신’, 삼신할머니 1-1

 



I. 우리의 잊혀진 탄생신화 

 

"삼신께서 천지만물을 낳으시니라."(도전 1:1:3)

 "자손을 둔 신은 황천신(黃泉神)이니 삼신(三神)이 되어 하늘로부터 자손을 타 내리고 ..."(도전 2:118:5) 

"조종리에 사는 강칠성이 아들이 없음을 늘 한탄하며 지내거늘 하루는 태모님께서 칠성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고 정성껏 심고하라.' 하시고 사흘 밤을 칠성의 집에 왕래하시며 칠성경을 읽어 주시니 그 뒤에 칠성의 아내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라." (도전 11:57:4-6)

 "한번은 한 산모가 난산으로 심한 고통을 겪다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게 생겼거늘 태모님께서 그 산모의 배를 어루만지시니 순간 고통이 멎고 순산을 하니라." (도전 11:240:8-10) 



 '삼신할머니'는 '삼신'(三神)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떠올린 테마이다. '삼신'은 우주의 본체와 변화원리, 그리고 한민족과 인류의 시원 문명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대한 의미를 내포하기에 접근이 쉽지 않다. 반면, 삼신할머니는 민간신앙에서 오래전부터 전승되고 섬겨온 생명을 점지하는 신으로서 친근하게 받아들여진다. 『도전道典』에 있는 '삼신(三神)' 정의를 살펴보면(1편의 특각주와 3편16장7절의 측주), 삼신할머니는 삼신의 네 가지 정의 가운데 '자손줄을 태워주는 조상신'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런 삼신할머니가 '우주의 조화성신'으로서, 천지를 다스리는 '삼신 상제님'으로서의 삼신과는 어떤 연관성을 지닐까? 서두에 인용된 『도전』성구에서 보듯이 자식이 없는 성도들과 사람들에게 자손줄을 태워주고 난산 중인 산모의 배를 어루만지며 순산하게 만드는 태모님은 아기를 점지해주는 여신인 삼신할머니와 닮았다.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삼신할머니는 아기를 점지해주고 산모의 순산과 아기의 무병을 관장하는 여신일 뿐 아니라 생명을 탄생시키는 '어머니 신'으로서의 면모를 지닌다.

 

 부아산 삼신할미약수터에 있는 삼신할머니 조형물 (인천항만공사 블로그)


이 글에서 필자는 민간신앙으로, 설화와 민담으로 전해지는 삼신할머니의 내력과 전래되는 삼신할머니의 상(像)을 살펴보려 한다. 자료들을 찾고 정리하면서 받은 인상과 주목한 점은, 오랫동안 "미신"이라고 홀대받아 왔던 한국의 전통 신들이 최근 들어 '무속'이나 '주술신앙'의 분류에서 탈피하여 잃어버린 우리 신화로 새롭게 발굴되어 거듭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미 이에 대한 연구결과들이 일반인과 특히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풀이한 신화해석과 옛이야기의 형식으로 많이 출판되어 있다. 한국의 신들 가운데 특히 삼신할머니는 "아기의 신", "출산신" 혹은 "생명신"으로서 어린아이들의 관심을 잡아끌며 우리 고유의 정서와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치는 중요한 신화적 인물로 부각된다. 서울과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2003년 초부터 지속적으로 공연되었던 가족뮤지컬 <삼신할머니와 일곱아이들>(이강백 원작, 최종혁 작곡)은 삼신할머니 신화를 바탕으로 생명탄생의 신비스러운 과정을 일깨우며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남아선호사상을 비판한다. 삼신할머니 신화를 우리의 현대적인 삶에 밀착시켜 해석한 좋은 예가 아닌가 싶다.

 

다음으로 삼신할머니 테마에 접근하며 새삼스레 느낀 점은 전통문화 또한 세대에 따라 그 이해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필자는 1960년대 대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한 세대로서 어릴 때 일상적 삶의 공간에서 전통문화의 관습과 양식을 많이 접해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팔순이신 시어머니는 나와는 전혀 다른 문화적 공간에서 살아오셨다. 어머니의 지나온 삶 속에는 삼신(할머니) 신앙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고 조왕신과 터주신과 같은 가신(家神)들과 병을 치유해주었다는 보문산 바위신에 대한 이야기도 살아있다. 그런 한편 아홉 살 된 딸아이는 동화책을 통해 한국의 신들에 대해 배우고 있다. 두 해 전이던가?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어린이들에게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만화 북유럽 신화』, 『만화 이집트 신화』 또한 널리 읽혀졌다. 여기에 푹 빠져있던 아이의 관심을 한국의 신화로 돌릴 수 있어 다행이지만, 삼신할머니 상처럼 우리 신화 속의 주인공인 신들의 이미지는 매우 빈약하다. 삼신할머니에 대한 이 글은 필자의 이런 개인적인 관찰들과 느낌에서 출발한다.



(삼신할미 무속화)  


자료를 찾으면서 우리의 잊혀진 탄생신화를 꿈꾸게 하는 멋진 그림을 한 장 발견했다. 각 민족마다 아기의 탄생과정에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우리에게도 알에서 태어난 주몽의 신화가 있지만, 이것은 신적인 영웅의 탄생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삼신할머니로부터 자기 생명과 운명의 꽃을 받아들고 이승으로 둥둥 떠내려오는 아기들의 그림은 인간 생명의 아름다운 근원을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에게도 정말 이렇게 신비로운 탄생신화가 있었다니... 다음 편에서는 생명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며 전래되어 온 삼신할머니 상(像)과 삼신신앙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

참고자료:

 

『도전』, 증산도 도전편찬위원회, 태전 2003년 판.

「삼신사상」[문계석 박사 도전 세미나 발표문] 2004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증산도 도전은 어떤 책인가

https://youtu.be/0citWZTv74A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증산도대학교 및 태을랑교육 / 대학생포교회 여름수련회 / 태상종도사님 성탄치성

7월 증산도대학교 교육 및 태을랑 교육
함께 가자! 우리는 태을랑이다!



● 일시: 도기 146년 7월 3일(일)
● 장소: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상생관

7월 3일, 증산도 교육문화회관에서는 7월 증산도대학교 교육 및 태을랑 교육이 있었다. 이번 달 교육 역시 지난달에 이어 하루 일정의 짧은 시간으로 진행되었지만 알찬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증산도 도생들의 진리함양에 큰 도움이 되었다. 

태상종도사님께서 “인류의 생사를 가늠하는 증산도”라는 제하로 내려주신 도훈 말씀을 받드는 것으로 시작된 증산도대학교 일정은 6월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있었던 <환단고기 북콘서트>의 핵심내용 중 하나인 신라의 뿌리, 진국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는 시간과 STB 시청자 상담실 사례공유로 이어졌다.

‘한사군과 진국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가진 역사바로 알기 교육 시간에는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거대한 동방의 나라, 진辰국이 한반도 남부에 위치한 작은 소국으로 둔갑된 내용을 통해 아직도 광복되지 못한 우리 역사 교육 현실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잃어버린 뿌리를 되찾기 위한 노력의 중심에 바른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한 만큼, 많은 도생들은 진지한 자세로 열심히 내용을 경청했다. 이어서 올바른 뿌리 역사 문화를 밝혀주는 유일한 방송 매체인 ‘STB상생방송’ 전국 시청자들의 전화 상담사례가 공유되었는데, 참된 진리와 역사 문화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참석한 도생들에게 많은 힘을 불어넣기도 했다. 

증산도대학교 교육의 마지막 시간에는 종도사님의 도훈 말씀이 있었다. 종도사님께서는 우주대권, 의통을 실현시킬 수 있는 말복운의 이 때, 그 운을 크게 타라는 말씀과 더불어 대학교 도수에 대한 말씀을 내려주시며 맑은 영靈을 내려 받는 영신이 되기를 거듭 당부하셨다. 가장 큰 진리언어인 태을랑, 천지와 인간의 꿈을 이루는 주인공 태을랑으로서 의통제작의 신유술 시간대에 태을주 도공문화를 강력하게 뿌리내릴 것을 다짐받으시며 함께 가자, 함께 살자, 함께 잘되자는 구호로 말씀을 매듭지으셨다. 

이어진 태을랑 교육 시간에는 인터넷 실무교육과 함께 전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태을랑 세 분을 초청하여 사례를 공유하는 좌담회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열매 맺는 신유술 시간대에서는 태을랑으로서의 하루하루가 너무도 소중하기에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과 현장 사례에 담긴 메시지는 모든 도생들에게 좋은 참고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7월 증산도대학교 교육과 태을랑 교육은 다시 한번 천지 대역자로서의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결의를 새롭게 다지는 시간이었다. 태을랑으로서 빛나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기원드린다. 함께 가자! 우리는 태을랑이다! ◎

상제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태을핵랑이 되자



● 일시: 도기 146년 7월 1일(금)~3일(일)
● 장소: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상생관, 제3교육장, 전라도 일대

도기 146년 7월 1~3일 대학생포교회(이하 대포) 여름수련회가 열렸다. 이번 수련회는 상제님의 삶과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전라도 일대 성지순례, 태을랑 포교 실무교육과 더불어 진리강연 경연대회인 ‘나는 법사다’(제5회), 그리고 조별 미션 및 토론발표 등 대포들이 함께 참여하는 일정이어서 일찍부터 기대하는 대포 신도들이 많았다.

첫째 날 일정의 출발은 수련회마다 이어온 ‘나는 법사다’ 진리강연이었다. ‘나는 법사다’는 회를 거듭할수록 참여율과 열기가 높아져 이번에는 20명의 대포가 참가했다. 수련회 전 6박 7일 합숙기간 동안 대포 간부들의 전폭적인 코칭이 진행되어, 그 어느 때보다도 경쟁이 치열했고 전반적으로 참여자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조별 모임을 가진 뒤 전라도 정읍에 있는 야외 숙소로 이동하여, 가이드 성도님과 함께 이번 성지순례 관련 도전 성구를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1일차 밤에는 도전 성구 및 환단고기 암송대회, 조별 게임 및 대포 성도님들의 사연과 편지를 대신 전해주는 상생라디오 코너가 마련되어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2일차 일정은 본격적인 전라도 일대 성지순례로 이어졌다. 이번 성지순례에서는 각 성지마다 조별 미션이 주어졌는데, 미션을 수행하면서 관련 도전 성구에 대해 좀 더 체험적으로 느끼는 기회를 가졌다. 순례의 일정은 시천주 신앙의 출발점인 돌무지개문을 지나 상제님께서 김형렬 성도에게 굳게 지키라 명하신 금산사를 경유하여 수부님의 셋째 살림 내용과 관련된 용화동을 찾아갔다. 이어 신비한 기운을 뿜어내는 제비산을 지나, 구릿골에 모셔져 있는 상제님 천지공사의 증언자 김호연 성도님의 묘소를 찾아뵈었다. 구릿골을 떠나 동학혁명기념관을 관람하였고, 시루산 답사를 거쳐 정읍시립박물관을 들른 다음 마지막 코스인 대흥리에서 일정을 매듭짓는 코스였다. 

마지막 날은 대포 태을랑 집중 교육 시간으로, 인터넷 포교 교육과 활동전략 조별 토의에 이어 종도사님 현장 도훈이 있었다. 종도사님께서는 이날 도훈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은 인사권이 절대권이니 매인이 6임을 짜서 상제님의 의통을 전수받아 태을핵랑 사령관이 될 것을 강조하셨다. 초기 도운 역사에서 보천교가 360명의 간부들을 길러내며 3년 만에 600만 대세몰이를 한 것처럼, 모든 대포 일꾼들이 상제님 천지사업의 주춧돌이 되어 상제님의 진리를 온 천하에 선포하는 강력한 태을핵랑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

감사의 은혜와 보은의 정신으로 충만하였던 
태극제 태상종도사님 95주기 성탄치성



● 일시: 도기 146년 7월 19일(음 6월 16일) 화요일 저녁 8시
● 장소: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태을궁

지난 7월 19일(음력 6월 16일) 오후 8시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태을궁에서는 전국 각 지역의 간부 도생 및 태전충청, 전라 지역의 도생들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태극제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의 95주기 성탄치성이 봉행되었다.

이날 치성은 김남운 수석수호사의 집전으로 대치성의 의례에 맞추어 경건하게 진행되었으며, 봉독된 축문에 실린 ‘증산도 세계화’의 염원이 태상종도사님께 보은하는 모든 도생들의 과업임을 깊이 상기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본치성이 끝난 뒤, 태상종도사님 추모 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을 가졌다. 태상종도사님께서 개척하신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과 오직 천하사로 일관된 백절불굴의 한 생애를 지켜보면서, 도생들은 도운의 역사에 담긴 깊은 의미와 천하사 신앙의 대의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었다. 특히, 8.15 해방과 더불어 2변 도운 개척을 시작하신 태상종도사님의 거룩한 행보 개척과정에서 “눈밭에서 10분간 수면을 취하니 하늘이 훤하게 열려...”라는 도훈 말씀 부분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도생들도 많이 있었다. 

이날 치성을 위해 사흘 전부터 국내외 각지로부터 여러 봉사자들이 모여들어 제물 준비와 사후 정리로 분주한 일정을 소화해냈다. 태사부님께서 평소 크게 외치셨던 ‘보은’의 정신으로 정성과 감동의 소중한 시간들을 만들어 주신 도생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  증산도의 전신인 보천교의 항일운동 -1


증산도 제1 부흥시대는 일제시대에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렸던 민족종교 보천교입니다.


보천교는 조선총독부기록으로 600만명이 증산상제님을 신앙했고, 청수를 모시며 태을주를 읽었습니다.

(언론에서는 보천교를 태을교, 훔치교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당시의 조선총독부는 보천교를 포함한 민족종교를 유사종교, 사이비종교, 사교로 매도하였고, 1936년 보천교 교주인 차경석성도의 죽음과 함께 일제는 군대와 경찰 등의 총칼을 동원하여 민족종교 교단해체령으로 일본제국주의자들이 가장 골치아파하던 존재였던 보천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해방이 된지 68년이 지났지만 일제가 왜곡한 보천교의 진실은 바로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종교와 보천교에 대한 재조명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당시 600만의 신도는 왜 보천교를 선택했을까?

조선총독부는 왜 민족종교를 철저히 말살시키려 했을까?

변화와 고난과 두려움이 지배하던 일제강점기에 식민지극복은 물론 앞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래되었다고 해서 모든게 낡은 채 사라지는게 아닙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민족은 미래의 활로를 잃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시 민족지도자와 수많은 민중들이 걸어 왔던 길, 친일이냐 항일이냐는 단편적인 잣대만으로 판단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일제강점기 망국의 한에 빠져 있는 국민에게 커다란 정신적 지주역할을 했고, 민족의 통합에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했던 민족종교에 대한 재조명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보천교에 대한 내용

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라

http://blog.daum.net/greatopennet/14592170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보천교 건물이었던 것을 이전에 사두었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금전이무로 특별하신 용단을 내려주시길 바란다.”(1937년 3월19일) 월정사 주지인 이종욱스님이 경봉스님에게 보내는 편지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195 2016.10.19 조계사 대웅전 건립 과정 담긴 편지글 확인돼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지난 10월 29일 뉴욕 맨하탄 중심부 뉴욕타임즈 빌딩의 더 타임 센터(The Time Center)에서 열린 ‘태을주 강연회’. 이날 강사로 초청된 안경전 증산도 종도사는 세 시간여에 걸친 강연을 이렇게 끝맺었다. 자리를 가득 메운 파란 눈의 현지인들과 한인 교포 등은 밝은 얼굴과 우레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동방 역사문화의 정수와 천지조화 태을주 콘서트’(Primordial Healing Sound Meditation Concert - Experiencing the Essence of Eastern Spirituality)라는 공식 타이틀로 열린 이날 행사는 고대 동방에서 발원해 한민족과 9천 년 역사를 함께 해온 영성수행법이 서구세계에 처음 소개되는 자리로 행사 전부터 현지 언론 등의 주목을 받았다.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html?no=403750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지구 공동설과 지하문명인의 예언 1편 道典으로 보는 지하신 

https://youtu.be/PskF4H2Z8Lk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