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성도 | 개벽대장, 박공우
●본관: 밀양
●호: 인암仁庵
●가족: 부父-박순문, 모母-오묘전의 장남, 세 명의 부인과 혼인하여 5남 5녀를 두었다.
●출생: 1876년 5월 5일, 전북 전주시 교동
●순도: 1940년(65세), 전북 원평
●입도: 1907년 6월(32세)-차경석의 인도
●직업: 정읍, 고창, 흥덕 지역의 장치기꾼(장날에 장이 잘 설 수 있도록 뒤를 봐주는 사람)
성품이 소탈하고 꽃을 좋아해서 직접 집에 꽃밭을 만들기도 했다. 키가 180cm가 넘었으며 풍채가 당당하였고, 음성은 사방에 울릴 정도로 웅장하였다. 배포가 크고 뚝심이 좋았으며, 상제님께서 성격과 술버릇 등을 친히 고쳐 주시는 등의 애정을 갖고 계셨는데 특히 그의 의로움을 높이 평가하셨다.
(도기 135년 1월 9일 증산도대학교)
기도 중이던 박공우를 만나심
다시 길을 떠나시며 말씀하시기를 “대진(大陣)은 하루에 30리씩 가느니라.” 하시니 경석이 명을 받들고 일정을 헤아려 고부 솔안(松內) 최씨 재실에 사는 친구 박공우(朴公又)에게로 상제님을 모시거늘 공우 또한 동학 신도로서 마침 49일 동안 기도하는 중이더라. (道典 3:183:5~7)
인암(仁庵) 박공우의 입문
박공우는 기골이 장대하고 웬만한 나무도 뿌리째 뽑아 버리는 장사로 의협심이 충만한 인물이라. 일찍이 정읍, 고창(高敞), 흥덕(興德) 등 다섯 고을의 장치기꾼을 하면서 한창 때는 당할 자가 없는 씨름장사로 이름을 날리니라. 이후 예수교의 전도사로 수십 명을 포교하기도 하고 다시 동학을 신봉하여 혼인도 하지 않고 열렬히 구도에 정진하다가 경석의 인도로 찾아오신 상제님을 뵈니 이 때 공우의 나이 32세더라. (3:184:1~4)
‘하느님이 강림하셨다’고 믿은 박공우
하루는 신원일과 박공우, 그 외 서너 사람을 데리고 고부 살포정이에 이르시어 주막에 들어 쉬시는데 갑자기 우레가 일어나고 번개가 번쩍이며 집을 내리치려 하는지라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허둥지둥하고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 모두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거늘 상제님께서 공중을 향하여 “이놈아, 즉시 어지러운 번개를 거두어라!” 하고 큰 소리로 꾸짖으시니 번개가 바로 그치니라. 공우가 상제님께서 대흥리에서는 글을 써서 벽에 붙여 우레를 크게 일으키시더니 또 이번에는 우레와 번개를 꾸짖어 그치게 하심을 보고 비로소 상제님께서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쓰시는 분인 줄 알고 이로부터 더욱 경외하니라. (3:200:1~6)
오직 마음을 볼 뿐
공우가 상제님을 따르면서 보니 다른 성도들은 모두 머리를 길렀는데 혼자만 단발인지라 성도들과 한 물에 싸이지 못함을 불안하게 생각하여 다시 머리를 길러 여러 달 후에는 솔잎상투에 갓망건을 쓰고 다니는데 하루는 금구를 지나다가 과거의 일진회 동지 십여 명을 만나매 그들이 공우의 머리를 보고 조롱하며 달려들어 강제로 잘라 버리니라. 이에 공우가 집에 돌아와 두어 달 동안 출입을 폐하고 머리를 기르는 중에 뜻밖에 상제님께서 이르시어 그동안 나오지 않은 이유를 물으시니 공우가 강제로 머리 잘린 사실을 아뢰며 “삭발한 모습으로 선생님을 뵙기가 황송하여 집에 있으면서 머리를 다시 길러 관건(冠巾)을 차린 뒤에 찾아뵈려 하였습니다.” 하고 여쭈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오직 마음을 볼 뿐이니 머리의 길고 짧음이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 하시고 공우를 데리고 구릿골로 오시니라. (3:212:4~9)
공우에게 장군천의 기운을 붙여 보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어디를 가시다가 과교리를 지나실 때에 공우가 아뢰기를 “저 앞산에 샘이 있는데 그 이름이 장군천(將軍泉)이라 합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샘물을 떠 오라.” 하고 명하시거늘 공우가 샘물을 한 그릇 떠 오니라.
이에 “마시라.” 하시매 명을 받들어 마시는 순간 힘이 솟아나 태산을 져도 오히려 가벼울 것 같은지라 공우가 깜짝 놀라 “감당하지 못할 큰 힘이 자꾸 솟구칩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거두어 가라.” 하시거늘 곧 힘이 사라져 평상시와 같이 되니라. (3:213:6~11)
박공우에게 용호대사의 기운을 붙여 보심
상제님께서 문득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나와 친구로 지내자.” 하시므로 공우가 그 말씀에 황공해하며 한편으로 이상히 여기거늘 또 말씀하시기를 “기운이 적다.” 하시매 공우가 부지중에 “바람이 좀 더 불리이다.” 하니 과연 바람이 크게 부니라. 이어 상제님께서 다시 “나와 친구로 지내자.” 하시고 또 “기운이 적다.” 하시거늘 공우가 또 아뢰기를 “바람이 더 높아지리이다.” 하니 바람이 크게 일어나서 모래와 돌이 날리더라. 이윽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용호대사(龍虎大師)의 기운을 공우에게 붙여 보았더니 그 기운이 적도다.” 하시니라. (4:88:8~12)
천하 만세의 병을 다스리는 만국의원 공사
며칠 후에 상제님께서 구릿골로 돌아오시어 밤나무로 약패를 만들어
萬國醫院(만국의원)
이라 새기시고 글자 획에 경면주사를 바르신 뒤에 공우에게 명하시기를 “이 약패를 원평 길거리에 붙이라.” 하시므로 공우가 대답하고 원평으로 가려 하거늘 물으시기를 “이 약패를 붙일 때에 경관이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려 하느냐?” 하시니 공우가 아뢰기를 “‘만국의원을 설립하여 죽은 자를 다시 살리고 눈먼 자를 보게 하며 앉은뱅이를 걷게 하며 그밖에 모든 병의 대소를 물론하고 다 낫게 하노라.’ 하겠습니다.” 하니라. (5:249:6~10)
이 때는 해원시대라
하루는 공우를 데리고 태인 돌창이 주막에 들르시어 경어로써 술을 청해 잡수시고 공우에게 “술을 청해 먹으라.” 하시거늘 공우는 습관대로 낮은말로 술을 청해 먹으니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이 때는 해원(解寃)시대라. 상놈의 운수니 반상(班常)의 구별과 직업의 귀천(貴賤)을 가리지 아니하여야 속히 좋은 세상이 되리니 이 뒤로는 그런 언습(言習)을 버릴지어다.” 하시니라. (3:251)
대개벽기, 박공우에게 내린 사명
여름에 대흥리에 계실 때 28장(將)과 24장(將)을 쓰신 뒤에 공우의 손을 잡으시고 마당을 걸으시며 흥을 내어 큰 소리로 명하시기를 “만국대장(萬國大將) 박공우!” 하시니 공우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평생소원이 성취되었다.’ 하며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거리거늘 이 때 옆에 있던 경석의 안색이 문득 변하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신대장(神大將) 박공우!” 하시니 공우가 ‘혹시 죽어서 대장이 되는 게 아닌가.’ 하여 마음속으로 걱정을 하니라. (5:256)
너는 운장주를 많이 읽으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운장주를 많이 읽으라.” 하시니라. (5:363:9)
인류 구원의 의통을 전수하심
이 날 밤 성도들을 모두 물리시고 공우만 부르시어 같이 주무실 때, 밤이 깊기를 기다려 이르시기를 “이리 가까이 오라.” 하시거늘 경석이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비명(秘命)을 내리실 줄 알고 엿듣고자 마루 귀퉁이에 숨어 있었으나 공우는 이를 알지 못하니라. 상제님께서 물으시기를 “공우야, 앞으로 병겁이 휩쓸게 될 터인데 그 때에 너는 어떻게 목숨을 보존하겠느냐?” 하시거늘 공우가 아뢰기를 “가르침이 아니 계시면 제가 무슨 능력으로 목숨을 건지겠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의통(醫統)을 지니고 있으면 어떠한 병도 침범하지 못하리니 녹표(祿票)니라.” 하시니라. (10:48:1~5)
상제님을 만난 개벽대장 박공우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후 박공우는 허망함과 애통함을 이기지 못하더니 신해(辛亥 : 道紀 41, 1911)년 봄 산기도를 가는 길에 전주 장에 들러 경황없이 장터를 돌아다니는데 누가 등 뒤에서 “공우, 자네 왔는가!” 하고 등을 치매 돌아보니 천만뜻밖에도 상제님이시더라. 공우가 반가운 나머지 주저앉아 상제님의 다리를 부여잡고 한없는 서러움에 목 놓아 우니 상제님께서 “공우야, 그렇게 울지 말고 저기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자.” 하시고 주점으로 가시어 술을 사 주시니 공우가 목이 메어 술을 마시지 못하다가 여쭈기를 “무심하게 저희를 버리고 어디를 가셨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하, 이 사람 별소릴 다 하네. 내가 나중에 올 터인데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는가.”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거듭 술 석 잔을 권하시고 일어서시며 “자네, 어서 볼일 보러 가소. 나는 내 볼일 보러 가야겠네.” 하시거늘 공우가 여쭈기를 “볼일이 다 무엇이옵니까? 장보기를 작파하겠사오니 함께 가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 “자네하고 같이 가지 못하네.” 하시니라. 이에 공우가 상제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옷자락을 꽉 붙잡으니 어느새 바람처럼 장꾼들 사이로 빠져나가시거늘 공우가 온 장을 찾아 헤매다가 문득 상제님의 뒷모습이 보여 급히 쫓아갔으나 끝내 상제님의 종적을 놓쳐 버리니라. 이에 공우가 구릿골에 가서 초빈을 들춰 보니 성체도 없고 늘 있던 온기도 없거늘 공우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선생님은 우리들의 눈앞에 숨으셨을 뿐이요 별세하셨다 함은 당치 않다.” 하니라. 이후 박공우 교단에서는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날을 ‘둔일(遁日)’이라 부르니라. (10:98)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
'STB월간개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양철학사상 | 오늘날의 철학_1. 다양하게 전개된 19세기의 철학적 사유 (0) | 2017.09.16 |
---|---|
4월 증산도대학교 더욱 깊어진 우주관 교육의 열기 (0) | 2017.06.30 |
가족의 이름으로 도방을 말하다(진주도장 김진수, 전춘화 도생) (0) | 2017.06.30 |
상생칼럼 | 만물과 하나되는 세상 (0) | 2017.06.30 |
서양철학사상| 진리인식에 대한 합리주의 접근방식(문계석) (0) | 2017.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