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상 | 진리인식에 대한 합리주의 접근방식(문계석)
1. 인식(認識, Episteme)이란 무엇일까?
2. 진리인식에 대한 합리주의 접근방식
3. 진리인식에 대한 경험주의 접근방식
로마 시대의 철학자들은 자연법사상을 비롯하여 자연의 합리적인 질서를 찾아 나섰고, 그러면서 그리스 사상을 받아들이고 보존했다. 그러나 말기에 이르자 로마 제국은 정복민의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면서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혼란을 거듭할 수밖에 없게 되자, 결국 로마인의 삶은 개인의 영적구원靈的救援에 대한 관심으로 치닫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새롭게 일어난 그리스도교가 로마에 침투해 들어가 세력을 떨치게 됐고, 중세 교황敎皇의 신권정치神權政治가 시작되었다. 중세 초기 교부철학은 그리스-로마 문화를 수용하여 그리스도 교리를 공고화하기에 이르렀지만, 중세 말기에 접어들면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 의해 절정을 이룬 스콜라철학은 사물을 파악하는 데에 인간의 이성적 사고를 부활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계시된 진리를 체계화하는 신학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즉 철학은 ‘신학의 시녀’였던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에는 확고했던 중세의 신 중심체제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유럽 문명사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14세기에서 16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일명 문예부흥文藝復興이라고 일컬어지는 르네상스Renaissance가 그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문화, 예술, 건축 등의 전반에 걸쳐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재인식과 수용이 유럽을 주름잡게 됐다. 이로써 오랫동안 유럽을 지배한 그리스도교의 사고와 정치적인 체계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일어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 의해 결정적인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결국 유럽은 르네상스로 인해 중세시대의 막을 내리게 됐고,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본성상 알기를 욕망”하는 인간 이성의 자유로운 탐구활동은 여러 분야에서 그 진가를 보이게 된다. 즉 자연과학, 수학, 생물학, 화학, 천문학, 예술 및 건축 등 여타의 학문이 우후죽순처럼 부흥하게 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성적 사고에 절대적인 신뢰를 둔 그리스 합리주의 사상이 다시 부활한 셈이다. 철학의 사유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합리주의 철학으로 근대의 문을 최초로 열어젖힌 철학자는 바로 프랑스 출신 데카르트Renē Descartes(1596~1650)이다. 그의 사상을 계승 극복하여 동일 철학을 전개한 인물로는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Spinoza(1632~1677)와 형이상학적 단자론을 주장한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쯔Leibniz(1646~1716)가 있다.
1) 합리주의 선구자 데카르트는 누구인가?
데카르트는 프랑스 지방의 귀족 가문에서 1596년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시의원이었으며, 어머니는 그가 출생한 지 14달이 채 되기도 전에 폐병으로 세상을 떴다. 갓난아기인 그도 병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웠으나 마음씨 좋은 간호사의 극진한 돌봄으로 생명을 겨우 건질 수 있었다. 그는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몸이 무척이나 허약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아침에 일찍 눈을 뜰 수 없었고 침대에 누워 휴식을 즐겨했으며, 형제들과 살가운 정을 나누지 못한 채 혼자 조용한 곳에서 사색하는 것을 좋아했다.
1606년에 그는 지방에 있는 꼴레즈(Collège la Flèche)에 입학하여 8년 동안 중세식 인본주의 교육을 철저하게 받게 되었는데, 5년간은 라틴어, 수사학, 고전작가 수업을, 3년간은 변증론을 비롯하여 자연철학, 형이상학, 윤리학 등 철학 수업을 받았다. 학교생활에서 그는 부지런했고, 내성적이지만 승부욕이 강했으며, 수학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 파리로 가서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수학, 과학, 법률학, 스콜라철학을 배우고 1616년에 졸업한다. 졸업하자 그는 지원병으로 입대하여 네덜란드로 들어가 30년 전쟁(가톨릭교회 국가와 개신교 국가 간에 벌어진 최초의 국제 전쟁)에 출정했다. 전쟁 때에도 틈만 있으면 그는 병영의 침대에 누워 조용한 사색에 잠겼는데, 천장에 붙어 있는 지도에서 파리를 보고 파리의 위치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방법을 찾으려 애쓰다가 처음으로 수학에서 사용되는 ‘좌표’라는 개념을 발견하기도 했다. 제대 후에 그는 프랑스로 돌아왔다(1620년).
1627년에 그는 다시 종군한 후, 사색의 지유를 찾아 1628년에 로마 가톨릭 교회의 지배하에 있던 프랑스를 떠나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거기에서 그는 약 20년간 은둔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 때 “정신지도의 법칙”을 집필하여 자신의 철학적 방법론 체계를 세우기 시작했다.
1637년부터 그는 존재론과 인식론의 문제를 사색하면서 프랑스어로 『방법서설(Discours de la Methode)』을 출판했고, 1641년에 라틴어로 『성찰(Meditationes)』을, 1644년에는 자신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라틴어로 『철학의 원리(Principia philosophiae)』를 출판했다. 그리고 1649년에 보헤미아 왕의 딸 팔츠의 엘리자베스에게 최고선에 관한 자신의 생각들을 편지로 보낸 것들을 모아 그의 마지막 저술 『정념론(Les passions de l'âme)』을 출간했다. 같은 해에 스웨덴 여왕 크리스티나Drottning Kristina(1626~1689)는 데카르트를 스톡홀름에 있는 황궁으로 초청하여 철학을 강의해 줄 것을 요구했다. 여왕은 일주일에 세 번 새벽 5시에 강의하도록 데카르트에게 명했기 때문에, 그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스웨덴의 찬 공기를 쏘이면서 여왕의 서재로 찾아가 철학을 강의했다. 그 때문에 늦잠을 즐기지 못한 그는 감기에 걸렸고, 1650년 2월 폐렴의 악화로 세상을 등진다.
데카르트가 아침 늦도록 침대에 누워서 끊임없는 사색을 통해 이루어낸 가장 뛰어난 업적은 무엇일까? 그는 철학, 수학, 물리학, 생물학 분야에서 탁월함을 선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학의 분야에서 그의 업적은 순수 이성적 사유를 근간으로 해서 근대철학의 새로운 틀을 확립한 비조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철학이란 바로 전통적인 존재론과 대비되는 인식론 분야이다. 그의 인식론은 영국에서 경험주의가 우세했던 것과는 달리 유럽 대륙에서 우세한 합리주의적 방식이라 불린다. 극단적인 경험주의는 모든 앎이 외적인 감각과 내적인 감각을 통해 얻어낸 관념이라 보기 때문에, 지식이 본질적으로 경험으로부터 나온다는 관점이다. 반면에 합리주의는, 수학과 기하학에서 자명한 원리가 보여주듯이, 인식론 상의 근본원리에 대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원칙들로부터 나머지 모든 지식들을 연역적으로 추론한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쯔의 철학에 계승되고 있다. 철학사에서 이들을 묶어 대륙의 합리주의 철학자라 부른다.
수학의 분야에서 데카르트의 빛나는 업적은 해석기하학을 창시한 것이고, 수학적 방정식의 미지수에 최초로 ‘x{displaystyle x}’를 사용하였고, 좌표계(직교 좌표계)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숫자 위에 작은 숫자(지수)를 씀으로써 거듭제곱을 간단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발명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수학을 ‘불연속적인 양의 과학’으로, 기하학을 ‘연속적인 양의 과학’으로 보았으나, 해석기하학을 창시함으로써 이 둘 간의 장벽이 간단하게 해결됐다. 또한 그가 창안한 직교좌표계는 이전까지 독립적으로 다루어졌던 대수론과 기하학을 융합하여 체계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를 했고, 뉴턴 역학을 비롯한 근대수학과 과학의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
물리학 분야에서 그의 업적은 현대물리학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물의 본질을 연장(extension)으로 정의하는데, 이는 감각적 특성들을 하나하나 지우게 되면 결국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무색, 무취, 무미의 어떤 것이라고 하는 데서 나왔다. 그가 말하는 기하학적 공간은 물질적인 원소로 ‘꽉 차 있는 공간(plenum)’이다. 그에 의하면 실제적인 사물의 크고 작은 운동변화란 기하학적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원소들이 충돌하고 이동하고 위치가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틀은 데카르트가 제시한 기계론적 세계관의 기초가 된다. 특히 자연계가 물체의 위치와 운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그의 기계론적 운동관은 중세의 신 중심적 자연관을 밀어내는 데에 막강한 영향을 주었다.
생물학 분야에서 그의 업적은 생리학의 기초가 되는 ‘대가적 가설’을 도입한데 있다. 그는 다양한 동물의 머리를 해부해 봄으로써 해부학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상상력과 기억이 위치하는 곳을 찾아 연구를 계속했다. 또한 그는 가설적 방법을 통해 육체 전체를 일종의 정교하게 작동하는 기계로 간주하고, 우리가 의지에 따라 자동적으로 걷는 현상과 눈의 깜빡임과 같은 자율적인 동작을 기계적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기계론적 설명방식은 생리학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근대 생리학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2) 근대 합리주의 전통은 어떻게 출범하게 될까?
인간의 이성에 절대적인 권위를 둔 데카르트는 청년기부터 끊임없는 이성적 사고를 통해 새로운 학문을 탐구하겠노라고 결심하게 된다. 새로운 학문이란 다름이 아닌 새로운 철학을 일컫는다. 그것은 인식론(epistemology)으로 수학과 기하학적 방법을 모범으로 하는 단순하면서도 엄밀한 철학을 의미한다. 데카르트가 이러한 사고를 하게 된 까닭을 우리는 어디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을까?
데카르트는 진리 탐구에 관한 한 오늘의 진리가 내일에는 거짓이 되고, 이렇게 말했다가 저렇게 말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거부한다. 그것은 잘못된 인식으로 말미암아 신뢰할 수 없는 거짓을 말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그래서 “필연적으로 참인 확실한 앎”의 탐구에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런 앎이야말로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참된 진리에 대한 인식을 제공함에 틀림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확실성의 인식만이 진리의 반열에 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사상적인 배경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철학의 전통에서 볼 때 그것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은 진리인식을 ‘형상形相(eidos)’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게 되는데, 형상이야말로 참된 인식을 제공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형상은 지속적으로 자기 동일성을 가지는 것이어야 하고, 영원히 불변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인식은 가장 확실하고 참된 진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각적인 대상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불변적인 형상을 찾아낼 수가 없다. 왜냐하면 감각의 대상들은 항상 가고 오는 것이어서 그 형상들이 수시로 변형이 되므로 불변적이고 항구적인 형상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각에 주어지는 경험 세계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 저렇게 말할 수도 있어서 확실한 진리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이에 대해서는 상대주의 지식론을 전개한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가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는 명구에서 명백히 제시한 바 있다. 즉 개별적인 감각에 주어지는 경험 세계란 항시 유동 변화하는 것이므로, 이를 기반으로 하여 얻어내는 인식은 때로는 참이지만 때로는 거짓으로 판명되어 결과적으로 인간을 쉽게 기만하게 된다. 또한 개별적인 감각 세계는 엄밀하게 말해서 감각하는 주체가 각자의 주관적인 구미에 맞는 앎을 갖게 되므로 보편적인 지식을 제공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플라톤은 고정적인 형상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디에서 찾으면 될까 하고 고민한 끝에 언어로 표현되는 보편적인 개념槪念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면 ‘이 인간’, ‘저 인간’, ‘그 인간’과 같은 경험적인 대상이 되는 개별적인 인간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쓰이는 보편 개념인 ‘인간’을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는 얘기다. 플라톤에 의하면 보편 개념인 ‘인간’은 현실적인 감각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너머에 자체로 존재하는 실재, 즉 이데아에 대한 개념이다.
이데아에 대한 탐구 작업은 보편적인 개념에 대한 명확한 경계를 확정하는 정의(definition)이다. 정의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요컨대 누군가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묻게 되면, ‘인간’에 대한 인식을 가진 사람은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고 대답하게 된다. 여기에서 ‘인간 자체’는 이데아에 실재하고, 인간에 대한 보편적 형상은 ‘이성적 동물’(이성적은 종차, 동물은 최근 유개념)로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는 경험적인 감각 대상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이성적 사고를 통해서 따지고 분석하여 공통적인 본성을 찾아낸 후, 이성의 직관을 통해 얻어낸 것이다. 이러한 인식 과정을 플라톤은 이데아에 대한 상기想起(anamnesis)라 했다.
플라톤이 제안한 형이상적 탐구는 최고의 보편 개념으로부터 최하위 개념에 이르기까지 종차를 가지고 쪼개내어(diairesis) 정의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방식은 수학이나 기하학학적 탐구 방식에서 기원한다고 볼 수 있다. 수학이나 기하학에서는 “선제”(hypotheseis)로서 자명한 원리에 대한 ‘공리(axiom)’를 설정하고, 이를 가지고 ‘정리(definition)’를 내세운다. 공리 및 정리와 같은 근본 원리가 설정이 되면, 이로부터 수학이나 기하학의 복잡한 지식들을 연역 추리해 낼 수 있게 된다.
수학이나 기하학에서 근본 원리가 되는 ‘공리’와 ‘정리’들에 대한 인식은 물론 감각적인 세계에서 찾아낼 수 없는 “선천적”(apriori)인 것들이다. 반면에 감각적인 경험을 통하여 얻어낸 인식은 “후천적”(posteriori)인 것들이라고 한다. 선천적인 인식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눠볼 수 있겠는데, 하나는 순수 이성을 통해 자명한 것으로 직접(직관적으로) 얻어낸 지식이다. 그 예들로 “전체는 그 어느 부분보다 더 크다”고 하는 기하학적 원리라든가, “A는 A이면서 동시에 B일 수 없다”(즉 이 자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개일 수 없다)는 논리적인 원리와 같은 것들이다. 다른 하나는 “논증적”(demonstrative)인 지식인데, 이는 오직 논리적인 사고의 과정을 통해서 결정지을 수 있는 지식, 즉 유클리드Euclid(BCE 330~275) 기하학의 정리와 같은 지식을 말한다. 이들은 모두 선천적인 지식들로서 가장 확실하고 필연적인 진리들이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형상에 대한 “상기설”(anamnesis)을 인식을 근거로 삼아 자신의 형이상학을 전개하게 되었고, 이러한 탐구 방식은 데카르트의 인식론으로 전수되어 부활한다. 플라톤이 제시한 탐구 방식을 이어받아 그 단초를 마련한 합리주의가 수학을 여타의 학문의 범형範型으로 삼으려 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제 수학과 기하학적 탐구 방법론을 신봉하는 합리주의가 내세우는 선천적인 진리관은 그 정당성이 확립될 필요가 있다. 이에 데카르트는 자명한 진리를 인식해 낼 방법론을 찾아야 하는 기로에 서 있게 된 것이다.
플라톤의 전통을 계승한 근대의 합리론자 데카르트는 수학이나 기하학을 모범으로 하여 엄밀하면서도 아주 단순하게 철학을 하기 시작한다. 수학이이나 기하학적 탐구방식으로 철학을 한다면, 이는 매우 단순하고 쉬운 논리의 꼬리를 더듬어 착실하게 사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쉬운 것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쉬운 철학은 전적으로 선명하고 분명한 진리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는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자명한 원리가 되는 선천적 진리를 탐구해 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탐구된 것을 가장 확실하고 필연적인 진리라고 주장하는지가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먼저 이렇게 새롭게 학문하는 방법으로 누구나 탐구에 착수하기 전에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고 한다. 그 규칙은 명증성의 규칙, 분석의 규칙, 종합의 규칙, 매거의 규칙으로 4가지인데, 이를 데카르트는 자신의 주요 저서 『방법 서설』에서 설정하고 있다.
① 내가 분명한 진리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 경우라도 사실로 받아들이지 말 것, 다시 말하면 속단과 편견을 피하고, 그리고 조금의 의심을 품을 여지가 없을 정도로 “선명”(clara)하고 “분명”(distincta)하게 나의 정신에 나타나는 것 이외는 결코 나의 판단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 명증성의 규칙
② 내가 검토하려고 하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필요한 만큼의 많은 부분들로 분할하여 검토할 것 - 분석의 규칙
③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인식하기 쉬운 것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단계를 밟아 복잡한 것을 인식하도록 할 것이며, 자연적으로 나의 사고를 질서 있게 인도해 갈 것 - 종합의 규칙
④ 분석하고 종합하는 과정에서 하나라도 빠진 것이 없는가를 충분하게 재검토하여 완벽하게 열거할 것 - 매거枚擧의 규칙
확실한 진리인식을 위해 이상의 규칙들을 정신이 잘 준수하면서 차근차근 진행해 간다면, 그는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그래서 가장 선명하고 분명한, 자명한 진리의 인식을 얻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3)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진리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지식을 기억의 창고에 쌓아 두고 이를 활용하면서 생을 이어 가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 태아 시절의 태교로부터 시작하여, 유아원과 유치원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대학의 전문적인 교육과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교육을 통해 너무도 많은 지식을 짊어진 채 지식의 인도 하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렇게 많은 지식들 중에 어느 것이 거짓일까? 그리고 진정한 진리인식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탐구의 규칙들을 설정한 까닭은 많은 지식들 중에서 진정한 진리 인식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진리 인식을 가려내기 위해 그는 우선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지식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 작업을 진리 인식을 위한 ‘방법적 회의’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만, 과연 이것들이 과연 참된 진리 인식인지 아니면 그릇된 것인지를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방법적 회의를 통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들 중 하나라도 의심할 여지가 있으면 가차 없이 버리고, 오직 추호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가장 확실하고 자명한 명증적인 인식이 있다면 이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일 것이고, 가장 명확한 진리를 바탕으로 여타의 모든 진리를 연역 추리하겠다는 심산이 깔려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자신의 철학적 탐구의 주요 저서 『성찰』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진리라고 믿어 왔던 지식들을 우선적으로 철저한 검토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데카르트 자신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지식들이란 셀 수 없이 많아서 이들을 하나하나 검토함은 평생을 해도 끝이 날 수 없는 작업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이들을 쉽고 간단하게 검토할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을 모색한다. 그것은 수십 층으로 지어진 고층빌딩을 단숨에 허무는 방식과 같다. 그는 그 방법을, 고층빌딩이 전적으로 기초에 의존하여 존립하기 때문에, 기초가 무너지면 건물 전체가 무너진다는 사실에서 착안한 것이다. 진리 인식을 위한 방법적 회의는 바로, 많은 지식들이 결정적으로 의존해 있는 기초적인 지식을 확실하게 검토하면, 거기에 의존해 있는 수많은 지식들이 단번에 검토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지식이 확실한 진리라면 거기에 의존해 있는 많은 지식 또한 진리이고, 진리가 아니라면 거기에 의존해 있는 수많은 지식 또한 진리가 아니다. 이 방법적 회의를 위해 데카르트는 가장 기초적인 지식에 의존하는 것들을 각기 정리해 본 결과 세 가지로 분류한다. 즉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감각을 통해 들어온 지식, 감각적 지식으로부터 일반화된 지식, 그리고 누구나 진리로 믿고 있는 보편적 지식이 그것이다. 이제 이 세 가지만 의심하여 철저하게 검토해 보면 되는 것이다.
첫째, 감각적인 지식에 대한 회의 :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하는 대부분의 지식은 시각이나 청각, 촉각 등 오감五感 내지는 내부 감각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얻은 것들이거나, 혹은 감각으로부터 형성된 관념들을 여러 방식으로 결합하여 나온 것들이다. 이런 지식을 우리는 진리라고 믿고 있고, 또한 이를 편리한 방식으로 일상에서 유익하게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감각을 통해 형성된 지식에 대하여 조금만 반성해 본다면, 감각적 지식은 대체로 우리를 기만하고 있다. 즉 감각 지각의 기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감각을 통해서 나온 지식은 조금이라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그런 확실한 지식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 예로 평상시에는 달콤하던 꿀맛도 감기에 걸렸을 적에는 미감을 잃게 되어 쓰게 감각되기도 하며, 물속에 비스듬하게 꽂혀 있는 곧은 막대기는 굴절 현상 때문에 항상 휘게 보임을 안다. 또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은 그대로 정확하게 감각되지 않고 달리 보인다. 더욱이 세밀한 관찰을 통하여 우리가 사물들을 아무리 정확하게 파악했다 하더라도 이들로부터 직접적으로 얻은 지각뿐만 아니라 이들의 복합들로 이뤄진 지식들은 모두 확실하지 않다.
둘째로 일반화된 감각적 지식에 대한 회의 :
우리가 직접적으로 감각하는 ‘이 손’ ‘이 머리’ 등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들로부터 일반화된 지식, 즉 ‘이 손’이 아닌 ‘손’ ‘이 머리’가 아닌 ‘머리’ 등의 일반적인 지식은 어떠한가? 어떤 화가가 “사튀로스Satyros”(반은 인간의 머리이고 반은 양으로 이루어진 숲의 신)를 그릴 때, 우선 그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으로부터 사람의 일반적인 ‘머리’와 ‘입’이 어떻게 생겼고, 개별적인 양들을 감각함으로써 양의 일반적인 ‘발’ ‘꼬리’ 등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한다. 만일 그가 이런 것들을 모른다면 그는 신화에 나오는 가상적인 사튀로스를 그려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지식은 우리가 개별적으로 감각하는 부분들을 가지고 상상을 통해 쪼개고 결합하여 인위적으로 만든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개별적인 감각 물들의 결합으로부터 이뤄진 상상적인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가 상상하여 그려낼 수 있는 ‘외눈박이 귀신’, ‘도깨비’, ‘인어 공주’, ‘스핑크스’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유형의 것들이 사실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확실한 진리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이는 얼마나 허황된 것이겠는가?
셋째로 보편적인 지식에 대한 회의 :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장 확실하고 객관적인 진리라고 믿고 있는 보편적인 지식은 어떤가? 보편적인 지식에 속하는 것들은 물체의 연장, 형태, 수, 공간, 시간 등을 말하거나, “1 + 2 = 3”과 같은 수학적인 지식, 또는 누구나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자기 자신의 실재” 등과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확실한 진리 인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일 세상 어딘가에 전능하고 사악한 그런 악령惡靈이 있고, 그가 사람들의 정신을 꿈의 환상으로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마치 장자莊子가 어느 날 홰나무 밑에서 잠들어 꿈을 꾸었고, 꿈속에서 자신은 나비가 되어 우주를 훨훨 날아다녔는데, 꿈을 깬 후 내가 지금의 나인지 꿈속의 나비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한 것처럼, 우리의 현실적인 삶이 꿈속에서 사는 환각적인 것인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존재도 원래 꿈의 환상인데 사악한 악령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믿게 한다던가, ‘1 + 2’는 원래 ‘3’이 아니고 ‘5’ 인데 사악한 악령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1 + 2’를 계산할 때 항상 ‘3’ 이라고 믿도록 배후에서 정신을 조작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이런 근거에서 본다면 우리가 실제로 누구나 다 인정하는, 그래서 확실한 진리라고 믿고 있는 보편적인 지식조차도 의심할 수 없는 명증적인 진리로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렵게 된다. 이 점에서 진리 탐구에 대한 방법적 회의는 극치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는 명증적인 진리 인식이라는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진술은 과연 없는 것인가? 다행히도 아직 하나가 남아 있다. 위에서 바로 언급한 사악한 악령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고, 그가 나를 항상 속이기 때문에 내가 기만을 당하고 있고, 항상 그릇된 것에로 이끌리고 있다고 치자. 그렇지만 나를 속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가 나의 존재조차도 꿈의 환상으로 속이고 있다 할지라도, 그 속임이 참인 것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속임을 당하는 나의 존재가 참인 것으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비록 나의 생각이 전부 속임을 당하기 때문에 그릇된 것일지라도 속임을 당하는 나는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카르트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한, 나는 존재하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의미에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고 확고하게 주장한다. 이 진술만은 필연적인 진리 인식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여기로부터 데카르트는 최초로 진리 인식의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내가 사유하는 한에서 존재한다는 진술은 자명한 명증적 진리이고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필연적 진리가 되는 셈이다. 즉 사악한 악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정신을 조작하여 속일지라도 속임을 당하는 사유 주체만큼은 진정으로 실재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데카르트가 말하는 “사유 실체”이다.
4) 사유실체를 보증하는 무한실체로서의 신神
夫三神一體之道(부삼신일체지도)는 在大圓一之義(재대원일지의)하니,
造化之神(조화지신)은 降爲我性(강위아성)하고
敎化之神(교화지신)은 降爲我命(강위아명)하고
治化之神(치화지신)은 降爲我精(강위아정)하나니,
故(고)로 惟人(유인)이
爲最貴最尊於萬物者也(위최귀최존어만물자야)라.
(무릇 삼신일체의 도는 ‘무한히 크고 원융무애하며 하나 되는 정신’에 있으니, 조화신이 내 몸에 내려 나의 성품이 되고, 교화신이 내 몸에 내려 나의 목숨이 되며, 치화신이 내 몸에 내려 나의 정기가 된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가 된다.)
夫性者(부성자)는 神之根也(신지근야)라.
神本於性(신본어성)이나 而性未是神也(이성미시신야)오
氣之炯炯不昧者(기지형형불매자)가 乃眞性也(내진성야)라.
(무릇 성이란 신의 뿌리다. 신은 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성이 곧 신인 것은 아니다. 기가 환히 빛나 어둡지 않은 것이 곧 참된 성이다.)
是以(시이)로 神不離氣(신불리기)하고 氣不離神(기불리신)하나니
吾身之神(오신지신)이 與氣(여기)로 合而後(합이후)에
吾身之性與命(오신지성여명)을 可見矣(가견의)오.
(그러므로 신은 기를 떠날 수 없고, 기 또한 신을 떠날 수 없으니, 내 몸 속의 신이 기와 결합한 후에야 내 몸 속의 본래 성품과 나의 목숨을 볼 수 있게 된다.)
-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 서檀君世紀 序」) -
나의 주체가 사유하는 한에서 꿈의 환상이 아니라 실재한다는 실체 관념은 확실한 진리 인식이다. 이제 사유 실체인 자신이 사유하여 획득하는 다른 관념이 참된 인식인가 아니면 거짓된 것인가를 검토해 가면 진리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어떤 사악한 악령이 있어서 나를 속여 나의 생각들을 만들어 내고 있지나 않을까 하고 의심이 솟구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나의 사유가 모두 꿈의 환상이라면, 사유를 통해 더 이상의 탐구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여기로부터 데카르트는 그러한 사악한 악령 따위란 없다는 것, 설혹 있다 하더라도 나의 사유에 대한 영향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한다.
만일 우리가 진리 탐구를 수행할 때 사유를 기만하는 어떤 연원적인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 존재가 사유를 통해 인식을 획득하는 우리의 능력에 절대적이고 영속적인 영향력을 행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논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사유를 통해 우리가 수행하는 탐구가 진리임을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길은 사악한 악령의 영향력을 차단시키고, 사악한 악령에 의해 우리가 기만을 절대로 당하지 않도록 하는, 어떤 전능全能하고 전지全知하며 전선全善한 존재가 있음을 추호의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증명하는 것이다.
탐구하는 나의 올바른 사유가 거짓이 아니라 참된 것임을 입증해 주는 절대적으로 선善한 존재(신)에 대한 증명은 감각적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 사실을 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때처럼 오직 순수한 이성만을 사용하여 명증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데카르트는 증명의 단계를 다음과 같이 6단계에 걸쳐 연쇄적으로 진행해 간다. :
(1)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관념적 지식을 가지고 있음은 확실하다. 이들 관념을 분류하여 묶어 보면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감각적 경험을 통해 외부로부터 들어와 형성된 “외래 관념”, 내 자신이 이런 관념들을 근거로 해서 마음대로 상상하여 만든 “인위적 관념”, 그리고 외부의 감각들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고 나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지만, 내가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구비하고 있었던 “본유 관념本有 觀念”(innata idea)이 그것이다.
“외래 관념”은 우리가 통상 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부터 형성된 경험적인 관념들의 총체를 지칭한다. “인위적 관념”은 감각으로부터 형성된 관념들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조작한 관념들이다. 인어(머리와 팔다리는 사람이고 몸과 다리는 물고기로 이루어진 형상)나 스핑크스(머리는 사람, 팔은 날개, 몸과 다리는 동물로 이루어진 형상)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본유 관념”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으로, ‘완전한 인격자’에 대한 관념, 논리학의 ‘동일률’이나 “전체는 항상 그 부분보다 크다”는 기하학적 관념, 또는 ‘크다’, ‘같다’와 같은 비교 관념들이다.
세 종류의 관념들 중 본유 관념에는 ‘완전한 인격자’에 대한 관념이 있다. 데카르트는 분명히 ‘완전한 인격자’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여기에서 ‘완전한 인격자’는 전적으로 선한 존재로서의 신을 말한다. 이제 ‘완전한 인격자’의 관념을 논증의 대상으로 삼아보자.
(2) 결과로서 생겨난 것은 무엇이든지 완전히 없는 것, 즉 무無에서 나올 수 없다. 또한 결과로서 갖고 있는 모든 관념에는 어떤 원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결과로서 확실히 가지고 있는 ‘완전한 인격자’에 대한 관념도 반드시 어떤 원인이 있다. 이 원인은 결과보다도 더 크고, 의심할 수 없는 확실성의 원리이다. 이 원리로서의 원인을 데카르트는 가장 “선명하고 분명한” 명증적인 관념이라 부른다.
(3) 그런데 결과로서 가지고 있는 ‘완전한 인격자’에 대한 관념의 원인은 어디에서 연원하는 것일까? 이 원인은 부모로부터 나온 것일까? 아니면 자연 또는 유한한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으로부터 나온 것일까? 그러나 모두 아니다. ‘완전한 인격자’에 대한 관념은 오직 ‘완전한 존재’, 즉 절대적인 신神으로부터 나온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결과로서 가지고 있는 ‘완전한 인격자’에 대한 관념의 원인은 질적인 의미에서 적어도 결과와 같은 것이어야 하거나 결과보다 더 커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래서 결과가 그 원인보다 크다면, 우리가 어떻게 결과로서의 그런 관념을 가질 수 있었는지를 분명하고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인격자’에 대한 관념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진리이며, (2)의 단계에서 언급한 원리와 같이 선명하고 분명하며 자명한 원리이다.
(4) ‘완전한 인격자’에 대한 관념의 원인으로서의 ‘완전한 존재’는 어떠한 한계도 없는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여야 한다. 이러한 추리는 (3)의 단계에서 주장된 자명한 원리에 의해 가능하다. 만일 ‘완전한 인격자’라는 관념이 완전한 인격자 자신 이외에 다른 것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면, 이는 (3)의 단계에서 설명된 “원인이 더 크다”는 원리에 오류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전성이라는 관념의 원인은 그 관념 자체와 마찬가지로 완전해야 하며, 완전하게 실재해야 한다. 이러한 존재는 우리의 정신을 넘어서 실재하는 자이고, 또한 우리의 정신에 그런 완전성의 관념을 넣어 줄(산출할) 수 있는 자이기 때문에, ‘완전한 인격자’는 관념에서뿐만 아니라 실재로도 존재한다.
(5) 그러므로 ‘완전한 인격자’는 사유실체를 있게 하는 유일한 가능적 원리인 것이다. 왜냐하면 지속적으로 생존하고 있는 생명의 힘은 바로 창조의 힘과 맞먹는 것이고, 다른 유한적인 어떤 것으로부터 유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어떻게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가장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앞서 증명해 보였듯이 ‘나는 생각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물론 나는 감각적인 것들을 수용하는 신체를 가지고 있음을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사유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음을 의심할 수는 없다. 그런데 나의 정신은, ‘완전성’의 관념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른 물질들과는 달리 어떤 유한성을 지닌 자에 의해 창조됐을 리가 없다. 즉 ‘완전성’의 관념을 가지고 있는 나의 정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전지하고 전능한 능력을 가졌으며 또한 완전한 정신을 가진 자(신神)가 실재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정신을 가진 자는 완전한 존재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부모는 나의 신체가 생겨날 수 있도록 하는 어떤 원인을 제공했을런지는 모르지만, 나의 지속적인 생명력으로서의 나의 정신을 있게 한 원인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정신 속에 ‘완전한 인격자’에 대한 관념의 원인은 완전한 존재에 의해서만 존립 가능한 것이다.
(6) 완전한 존재가 나를 창조할 적에 여러 가지 능력들을 함께 주었는데, 이들 중 하나는 내가 감각적 지각을 믿게 하는 강한 경향성이다. 완전한 인격자는 전지하고 전능할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선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는 나에게 항상 기만을 당함으로써 빚어지는 신뢰할 수 없는 그런 능력을 부여했을 리가 만무하다. 그리고 또한 나를 항상 기만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이끌려는 사악한 악령이 있다 해도 전적으로 선한 완전한 인격자는 내가 악령의 속임수에 끌려가도록 창조하지도 허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때로 내가 만일 실수를 범한다면, 나의 잘못이지 결코 ‘완전한 인격자’ 즉 절대적인 신의 잘못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완전한 인격자가 부여한 순수한 이성을 잘 사용하기만 한다면 결코 실수를 범할 리 없을 것이며, 의심할 수 없는 확실성의 인식에 얼마든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5) 연역 추리의 빛과 그림자
데카르트가 제시한 합리주의적 방식의 진리 탐구는, 인식을 획득하는 데에 있어서 상식이나 감각적 경험의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수학이나 기하학의 진리 탐구와 같은 방식으로 연역적 추리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정신(사유) 실체를 찾아냈다. 사유 실체는 의심할 여지가 추호도 없는 명증적인 것이었다. 이 원리를 기반으로 하여 다른 진리들을 연쇄적으로 연역하여 증명해 나가기만 하면 된다.
첫째,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증적인 사유 실체를 기반으로 하여 참이라고 여겨지는 다른 것, 즉 ‘완전한 인격자’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그는 이런 관념의 원인이 틀림없이 있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확신이 타당성을 갖는 근거는 바로 모든 결과란 반드시 원인을 가져야 한다는 데에 있다. 여기로부터 각 단계의 논의는 사슬의 고리와 같이 타당한 추리의 규칙에 의거하여 서로 연결되어 있다.
데카르트가 방법적 회의를 통하여 이끌어 낸 의심할 수 없는 명증적 진리는 보다 진전된 어떤 명제를 끌어내기 위한 논리적인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그가 제시한 추리가 만일 규칙을 전혀 어기지 않고 타당하게 진전되고, 추리의 진행 과정에 거짓된 진술이 끼어들지 않는다면, 그는 결과적으로 확실성의 진리 인식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둘째, 중요한 것은 데카르트가 진리 탐구에 관한 한 확실성의 인식을 위해서는 감각적 관찰로부터 들어오는 경험적인 지각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관점이 그렇듯이 합리주의적 인식론은 명확한 증명을 위해 조금이라도 의심스럽거나 불확실한 것들을 마땅히 배제하고 있고, 경험적인 지각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라 볼 수 있다.
셋째, 다른 합리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데카르트도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유 관념”설을 주장한다. 플라톤 철학의 학통을 이어받은 근대 합리주의의 인식 방법에 의거해 보면, ‘완전한 인격자’의 관념이라든가 ‘자아 실체’ 관념, 수학과 기하학적 진리에 대한 관념들은 사람이 태어날 때 창조주에 의해 사람의 정신 속에 ‘선천적’으로 이미 심어진 상태이다. 또한 원인과 결과에 관련된 개념도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유 관념들인데, 이러한 관념들은 감각적인 경험의 세계에서 발견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본유 관념들은 어떻게 하면 명확하게 인식될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이러한 관념들은 원래부터 정신 속에 갖고 태어난 것들이기 때문에, 흩어짐이 없는 일심의 경계(사유 실체 자체)에서 정신 안에 있는 관념들을 온전히 “상기想起(anamnesis)”하기만 하면 진리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데카르트가 제시한 합리주의 진리 인식에 문제가 전적으로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사유 실체가 명증적인 ‘제1원리’로 확립되고, 이로부터 ‘생각하는 자아’가 이성의 규칙을 잘 순수順守하여 사유의 연역적 추리의 사슬을 밟아 탐구해 나아가면 필연적인 진리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사악한 악령이 속일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사유를 통한 연역이 사악한 정신에 의해 기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증해 줄 수 있는 전지하고 전능한 선한 ‘완전한 인격자’의 존재를 논증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논증에 결정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
첫째, 데카르트의 논의가 순환론循環論에 빠졌다는 점을 지적해 볼 수 있다. 순환 논법이란 A임을 증명하기 위해 B를 가지고 논의하고, B를 증명하기 위해 A를 가지고 논의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성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이다’와 같이 말하는 것을 순환 논법이라고 한다.
데카르트의 순환 논증 과정은 이렇다 : 그는 ‘사유하는 자아 실체’가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필연적이고 명증적인 진리라고 확정했다. 그리고 이것이 명증적 진리임을 보증하기 위해 ‘완전한 인격자’의 존재 끌어들인다. 그러나 그는 사유하는 자아 실체의 정신에 선험적으로 있는 본유 관념, 즉 ‘완전한 인격자’의 관념이 명증적으로 실재하고 있음을 논증하고 있다. 이는 ‘완전한 인격자’의 존재를 증명하기도 전에 ‘완전한 인격자’가 ‘생각하는 자아의 추리’가 정당하다는 것을 보증한다고 주장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그는 증명하려는 진술을 확실성 인식의 기초로 사용했기 때문에, “순환 논법”의 오류를 피할 수 없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둘째,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연역 추리의 과정에서 그는 관념의 “원인이 최소한 그 결과만큼 커야 한다.”는 원리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원인’이 어떤 근거에서 ‘결과’보다 커야만 하는지, 또한 이 원리가 어떤 근거에서 확실한 원리일 수 있는지가 불명확하다. 원인이 그 결과만큼 커야 한다는 것 또한 사악한 정신의 조작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고, 나아가 이 원리를 사용하여 증명하는 여타의 진술들이 진리임을 어떻게 보증받을 수 있을지 또한 상당히 의심스럽게 된다. 따라서 ‘완전한 인격자’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원인이 그 결과만큼 커야 한다.’는 사용된 원리의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히 밝힌 후에 사용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이 원리의 진술이 선명하고 분명한 논증적인 것이 아니라면, 이를 통하여 ‘완전한 인격자’의 존재가 증명되는 각 단계의 인과적 역할은 완전히 무의미한 것으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셋째, 정신의 외부로부터 들어온 감각적인 관념들과 정신의 내부에서 생겨난 인위적인 관념들 외에 정신 안에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유 관념”이 있다는 전제를 문제 삼을 수 있다. 이들 본유 관념은 ‘자아’라는 실체 관념이나 ‘완전한 인격자’의 관념, ‘크다와 작다’와 같은 비교 관념, ‘인과 법칙因果法則’이나 ‘추론 법칙’ 등인데, 이런 본유 관념설이 전적으로 타당하다면, 한 살 박이 어린 애도 이런 본유 관념을 가지고 있어야 마땅하다. 한 살 박이 어린 애는 말도 못하는데, 우리는 어린애가 본유 관념을 이해한다고 볼 수 있을까? 설사 어린애가 이해하고 있으니까 마음속으로는 다 알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주장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데카르트는 어린애가 본유 관념을 ‘실제로’ 가지고 있다고는 주장할 수 없고, 어느 정도 지적인 성숙이 있을 때까지 아마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본유 관념이 이런 방식으로 설명된다면 더욱 더 불투명해진다. 왜냐하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본유 관념이 평생 동안 현실적으로 알지 못하고 마냥 ‘잠재적’으로만 가지는 것만으로 생이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카르트가 ‘완전한 인격자’에 대한 본유 관념이 정신 안에 명백히 존재한다는 주장은 별로 신빙성이 없을 것이다.
6)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의 선구자
데카르트의 기본 사상은 실체實體(substantia)의 철학이다. 그가 말하는 실체는 존재성에 있어서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이며, 자체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완전한 신神만이 독립적으로 자존하며, 자기원인自己原因(causa sui)으로서의 실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데카르트는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두 유한한 존재, 즉 정신(사유)과 사물(연장)도 실체라고 주장한다. 정신과 사물은 신으로부터 창조되었고, 비록 신에 의존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자체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실체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가 말하는 실체는 무한 실체(substantia infinita)로서의 신과 유한 실체(substantia finita)로서의 정신 실체와 사물 실체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철학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이원론二元論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스피노자의 “신즉 자연”이라는 사상과 라이프니쯔의 “단자 형이상학”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 실체란 무엇인가? 정신은 유한한 존재로서 사유하는 실체를 말한다. 정신의 본성은 완전히 비물질적이며, 독립적인 존재다. 정신 실체의 본성은 사유이고, 그 속성(attributum)은 의식 작용(cogitans)이다. 만일 정신의 본성인 사유가 전혀 없다면 정신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정신에서 의식 작용이 일어날 때, 감정, 욕구, 의지 등이 쏟아져 나온다. 즉 “나는 생각한다(cogito)”와 함께 주어지는 사유 작용은 결국 사유된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의 주체로 존재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나온 것들은 모두 정신 실체의 부차적인 성질들, 즉 사유의 양태(modus)가 되는 셈이다.
사물 실체란 무엇인가? 사물도 유한한 존재로서 연장되어 있는 실체이다. 사물의 본성은 완전히 물질적이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사물 실체의 본질은 연장(extensa, 퍼져 있음)이고, 그 속성은 크기, 모양, 넓이이다. 만일 사물의 본성인 연장이 없다면, 사물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연장 실체는 사유 실체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정신이 사유 활동으로 드러나듯이, 사물은 연장으로 드러난다. 사물은 항상 모양에 의해 한계가 지어지고 장소에 의해 둘러싸여 있으며, 사물들 간에 서로 배타적으로 존재하는 채워진 공간(plenum)이다. 그러므로 사물은 본질적인 속성으로 길이, 넓이, 부피라는 성질을 필연적으로 가진다. 그리고 사물의 위치, 상태, 운동 등은 사물 실체의 양태들이다. 사물의 본질적인 속성들과 양태들을 통하여 우리는 사물의 실체를 인지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물체의 운동은 데카르트에게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유 실체와 사물 실체가 완전히 다르듯이, 영혼과 물체는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생명의 원리인 영혼은 데카르트의 사유에서 볼 때 물체의 운동 원리가 될 수 없게 된다. 여기로부터 데카르트는 물체의 운동이 기계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치게 되는데, 기계적인 운동은 마치 누군가가 벽시계에 태엽을 감아 놓으면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러면 우주 자연의 물질적인 세계가 기계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운동의 최초 원인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 데카르트는 무한 실체로서의 신神을 말한다. 태초에 전지전능한 신이 있어 우주 자연의 물질 세계가 자동적으로 돌아가도록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데카르트가 내놓은 자동적인 기계론은 고대 원자론자들이 제시한 원자들의 필연적인 운동 방식과 다르다. 왜냐하면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텅 빈(vacum) 공간이란 없고, 오직 물질로 채워진 공간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채워진 공간에서 물체들은 서로 접촉해서 빼곡하게 채워져 있고, 이것들의 운동은 서로의 위치 이동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는 마치 물로 채워진 어항 안에 있는 물고기가 헤엄쳐서 이동하는 방식과 같다.
데카르트의 주장에 의하면, 우주 자연에는 텅 빈 공간이 없이 물질적인 것과 에테르(aether)로 꽉 차 있다. 여기에서 물체가 움직인다는 것은 위치 이동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오직 수학적인 점과 그 경계선이 옮겨갈 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운동은 사물의 활동이 아니라, 오직 수학적인 함수가 우주 전체에 그려져 있고, 언제나 위치 이동에 의한 새로운 함수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경계선으로서의 좌표계의 이동이 바로 운동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데카르트의 기계론적인 운동은 기하학적인 기계론이지 원자론자들이 주장하는 질량質量의 기계론이 아니다. 기하학적인 기계론에서 운동은 공간을 점유한 물체의 좌표가 다른 곳으로 옮겨짐으로써 자동적으로 서로서로의 영향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동물들과 식물들 모두의 운동은 좌표 상에서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기계들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문제는 정신과 사물이라는 완전히 다른 성질들로 결합되어 있는 존재에서 발생한다. 특히 인간의 경우에서 비물질적인 정신(心)과 물질적인 신체(身)는 본질적으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신체에 강한 자극을 주면 정신에서 고통을 느끼게 되고, 정신이 목적하는 의지가 있게 되면 의지에 따라 신체가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질적으로 다른 ‘마음과 신체’ 간의 상호 관계 작용의 문제를 데카르트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정신과 신체가 상호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양자를 연결하는 관계의 끈이 필수적이다. 관계의 끈은 물질적이면서 동시에 비물질적인 특성을 가져야 한다. 해부학에 능통했던 데카르트는 이것이 인간 두뇌頭腦 안에 있는데, “송과선(anarium)”이라고 불렀다. 정신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송과선을 통해 신체의 모든 부분들에 전달될 수 있고, 정신의 의지에 따라 신체를 지배하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반면에 신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신경계神經系로 전달되어 송과선을 통해 정신이 느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가 말한 “심신 상호작용설”이다.
그러므로 데카르트의 철학은 정신 실체와 사물 실체, 즉 영혼과 신체라는 이원론二元論적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인간의 경우에서 영혼과 신체라는 대립된 두 실체 때문에, 합리적인 체계를 구축하려는 데카르트의 철학은 결정적인 취약점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서 후대에 스피노자Spinoza가 등장한다. 스피노자는 사유와 연장이 진정한 의미에서 실체가 아니라 무한 실체인 신의 본질적인 속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정신과 신체가 조화 통일된 동일철학同一哲學을 전개하게 된다. 또한 심신이원론으로 말미암아 유물론과 기계론이 짝이 되어 사물 실체만을 인정하거나, 관념론과 심리주의가 짝이 되어 정신 실체만을 인정하는 철학이 등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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