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행이 부리는 마술(질량 변화) - 순대 접시 위




포장마차에서 순대를 먹어 본 적이 있습니까?
퍼석퍼석한 간에 맛을 들인 사람들은 주문을 할 때
"간을 많이 넣어 주세요." 하는 말은 덧붙입니다.

그런데 생간을 먹어 본 사람은 간이란 본래 야들야들하지 퍼석퍼석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야들야들한 간을 끓였더니 퍼석퍼석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간은 오행의 木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木이란 '생명력(生)'을 뜻합니다.

그러면 '죽은 나무'는 무엇일까요?
오행의 첫걸음인 生을 木이라 한 것은 나무가 그 어떤 물질보다 잘 자라기 때문이었습니다. 생명력이 강하여 잘 자라던 나무가 죽어버렸다면 그 죽은 나무는 木일까요? 아닐까요?

자!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죽은 나무는 木이 아닙니다.

나무를 오행의 木이라 한 것은 나무 속에 끊임없이 자라고 있는 생명력을 표현한 것이지 나무의 재질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은 나무는 木이 아니라 木을 담았던 그릇에 불과합니다.

생명력을 많이 가지고 있는 어린 나무는 야들야들하지만 큰 나무가 되어 생명력을 많이 소모할수록 딱딱하게 바뀝니다. 그리고 완전히 죽어 물기가 다 빠져 버린 나무는 더욱 딱딱합니다.

사람 몸 속의 간도 자신의 생명력을 거의 소진하면 딱딱해져서 간경화증이 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나무든 간이든 삼라만상은 두 가지 시각에서 관찰할 수가 있습니다.

나무의 경우,
나무의 내용을 보는 질(質)적 관찰과
그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릇을 보는 양(量)적 관찰이 있는 것입니다.

오행을 파악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에서 지금까지 설명한 오행의 개념은 질(質)적인 관찰을 위주로 설명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각의 반전을 통해 오행의 양(量)적인 관찰을 시작해 봅시다.

오행을 질과 양으로 동시에 이해할 때 천지는 자신의 모습을 숨김 없이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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