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외부의 기로 동물은 자신의 운으로 살아간다




기립지물(氣立之物)이란 '氣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으로 식물을 이름이고, 
신기지물(神機之物)이란 '몸에 정신이 있는 것'으로 동물을 이름입니다.

동물과 식물을 비교할 때 동물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어 능동적 성격으로 그 주인을 양(陽)이라 하고, 식물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수동적 성격으로 그 주인을 음(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동물과 식물을 통해 음과 양의 이치를 밝혀 봅시다.

먼저 식물을 봅시다.

식물이 살 수있는 3대 조건은 물, 토양, 햇빛입니다.
식물은 땅에 뿌리를 박고 살고 있으며 한번 뿌리내린 곳에서 평생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목이 말라도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식물은 항상 적당한 수분과 적당한 햇빛이 내리쬐기를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식물의 이러한 상황을 내경(內經)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根於外者를 命曰氣立이니 氣止卽化絶
  생명의 근원이 외기(外氣)에 의해 지배되는 것을 기립이라 하는데 외기의 공급이 중단되면 죽는다.

근(根)이란 생명의 근원을 뜻하는 것으로, 생명의 근원이 외부에 있다는 말은 식물의 목숨이 전적으로 햇빛과 기후 조건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기(外氣)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식물을 일컬어 '기립지물'이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동물을 봅시다.

동물은 식물이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이 있는데, 스스로 움직여 장소를 이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이 마르면 물가로 가서 목을 축이고 햇볕이 뜨거우면 그늘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기후가 나빠지면 보다 좋은 조건의 장소로 옮기기도 합니다.

동물의 이러한 상황을 내경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根於中者를 命曰神機니 神去卽機息이라.
  생명의 근원이 몸 속에 있는 것을 신기라 하는데  정신이 육체를 떠나면 죽는다.

근어중(根於中)이란 생명의 근원이 몸 가운데 있다는 말로서, 인간이나 동물은 정신[神]이 몸[機] 속에 있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내재되어 있으며 목숨 역시 외부에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신(精神)에 의해 살아가는 동물을 일컬어 '신기지물'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볼 때,

기립지물인 식물은 기(氣)에 의해 살아가며 신기지물인 동물은 정신을 통해서 자기 스스로의 운(運)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기립지물의 경우 자연의 질서에 절대적으로 순응하며 환경에 지배되어 환경과 음양의 짝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하등식물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역시 신기지물도 하등동물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러 나타나는데 점점 고등동물로 갈수록 환경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환경과 음양의 짝을 이루지 않습니다. 즉 고등동물이 되면 자기의 운(運)이 강해지는데, 운이 강하면 강할수록 환경을 초월하게 되며 자기 내부의 독자적 음과 양을 형성하여 스스로 소우주가 되어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그림에서 보듯 선인장을 예로 들면, 사막의 건조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잎마저 가시 형태로 바꾸어 수분을 증발시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렇게 외부 환경인 기후가 건조(乾燥)한 만큼 자신은 반대로 수분을 많이 함유하여 다습(多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즉 식물은 외기(外氣)가 조(燥)하면 자신이 습(濕)해져서 환경과 음양의 짝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곰을 보세요. 바깥에 눈이 내리고 먹이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아예 굴속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 버립니다. 외기(外氣)에 지배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고등동물이 될수록 자기 스스로 음양의 균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항상성(homeostasis)'이라는 표현으로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동물이 생리적 항상성을 유지하는 자체가 음양의 조화이며 태극체(太極體)의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변온동물에 비해 항온동물이 고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양의 자연과학에서는 생물 시계의 개념을 확립하여 연구 중인데 기립지물과 신기지물의 이치에 밝다면 생물 시계의 개념을 소상히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생물의 내부에는 시계가 없습니다.정확히 표현하면 대우주 자체가 거대한 시계입니다.
지구상의 생물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태양계라는 소우주의 시계로도 충분합니다. 태양계 역시 하나의 시계이기 때문입니다.

앞의 설명에서 보듯 기립지물은 해와 달의 외기(外氣)에 의해 지배되므로 당연히 태양계의 시간적 순환에 완전히 적응합니다.
신기지물 역시 자기의 운(運)이 약한 하등동물은 이러한 태양계의 시간적 순환에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점점 고등동물이 될수록 자기 스스로의 강한 운(運)을 가지게 되며, 환경과 짝을 이루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인 음양 사이클을 유지합니다. 결국 생물 중 가장 고등한 인간에게는 태양 시계가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인간은 삼라만상 중 자기의 운(運)이 가장 강하기 때문입니다.

운이 강하다는 것은 충양(充陽)이 많이 되어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과 같은 뜻인데, 그 생명력을 바탕으로 대자연의 질서를 위배 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가지게 됩니다.즉, 인간이 교만해질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강한 자율성을 획득해서 스스로 이상적인 소우주를 이루는 순간, 대우주의 질서에서 멀어질 수 있는 이율배반적 상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인간의 교만을 버리고 대우주의 질서에 순응하기를 가르칩니다. 인간이 이상적인 소우주라 할지라도 또한 천지의 소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기립(氣立)을 통한 타율(他律)의 의미와 신기(神機)를 통한 자율(自律)의 의미를 배우고 타율의 주인은 음이며 자율의 주인은 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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