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눈물 하늘의 상제시여 비를 내려주소서1 태종 이방원의 기우제

https://youtu.be/g216CJYIDyw


용의눈물 하늘의 상제시여 비를 내려주소서2 태종 이방원의 기우제

https://youtu.be/LFKJwQ1lY5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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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최초의 애국가를 현대곡으로 듣는다
5월 9일 오후 8시 덕수궁서 대한제국과 가비차야간음악회 http://www.brainmedia.co.kr/brainWorldMedia/ContentView.aspx?contIdx=15844 대한제국 최초의 애국가를 아십니까?
대한제국이 군악대 지휘자로 초빙한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에게 의뢰하여 1902년 작곡한 애국가이다. 가사는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의 가사로 시작된다. 이 애국가를 현대곡으로 들을 수 있는 음악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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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전봉준' 압송 사진 새로 발견


기존 사진과 구도는 동일한데, 가마꾼 얼굴 방향 달르네요.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50424060117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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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봉원사 칠성각전남 선암사 칠성탱<1895>

치성광여래 – 북극성의 화신칠성여래 – 하늘의 북두칠성이 부처님으로 화신한 모습

 

중국 후한대 화상석 - 북두칠성은 하늘의 제왕인 북극성 즉 천제가 타는 수레라 한다 <사기의 천관서>천제는 이 수레에 타고 천공을 돌며 사방을 통일하고 음양을 나누고 사계절을 정하고 오행을 조절하고24절기를 가름한다.

칠원성군 – 도교의 북두칠성신

 

28<14+14>

달이 천공을 완주하는 길백도 선상에 있는 28개 별자리=宿 머무를 숙별자리 수

 

현무<북방청룡<동방백호<서방주작<남방> - 고구려 강서대묘 사신도

북극성은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W자 모양가운데 위치해 있음.

삼태성 - 6개의 별. 2쌍이 한 별처럼 보임

 

서울 미타사 칠성탱 – 북극성의 화신인 칠성광여래가 정 가운데 위치

남극노인 – 특이한 용모머리 정수리 부분 크게 과장되어 있음.

남극노인<壽星노인 壽노인> – 남극성 또는 수성

 

이 세상에 나온 사람 뉘 덕으로 나왔나불보살님 은덕으로 아버님전 뼈를 타고 어머님전 살을 타고 칠성님께 명을 빌어 제석님께 복을 타고 석가여래 제도하사 생일신 탄생하니 <서산대사 회심곡 중에서>

 

수명연장 – 인간의 수명을 늘여주는 신앙적 기능. <실타래 국수가락>

대둔사 칠성탱<1845전남 대흥사대승암 칠성탱<1854전남 선암사

통도사 비로암 칠성탱해인사 희랑대 칠성탱

선암사칠성탱 및 그 외<1>

12강소연 북극성의 화신<선암사 칠성탱 및 그외강론 중에서

 

치성광여래제성강림도 – 비단에 금선묘. 84.8 x 66.1Cm 조선전기<1569일본교토 고려미술관 소장. <치성광 – 뻗어나가는 빛>

 

금륜<8폭의 금 수레바퀴서울 미타사 칠성탱손에 금륜을 들고 있다.

불설대위덕금륜불정치성광여래 소재일체재난다라니경<고려대장경 중에서>

조복 – 관원이 조정에 나가 하례할 때 입던 예장

 

황도 12궁 – 천구상에서 태양이 지나가는 길황도 선상의 12개 별자리.

중국식으로 정착한 12북두칠성 연명경도장 – 도교의 경전

 

일본 보주원 칠성탱

봉안사 칠성탱<1739호암 미술관 소장

경남 운문사 칠성각경남 청곡사 칠성탱<1877>

 

치성광여래왕림도 – 비단에 채색. 126.4 x 55.9Cm 고려시대미국 보스톤미술관 소재

중국 원나라 작품으로 오인기존의 인상 판단만으로 한국 작품으로 추정되어 오던 것을 국화<일본 전문 학술지>에 고려불화임을 입증한 논문 최초 발표.

 

치성광여래오성도 – 중국 당나라 9세기. <오성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진성 – 검은 소를 탄 노인 승려  

노자 – 중국의 고대 철학자도가의 창시자소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묘사됨.

 

서울 안양암 칠성탱

치성광여래강림도<2>

13강소연 북극성의 화신<선암사 칠성탱 및 그외강론 중에서

[출처] 601.칠성탱|작성자 Ink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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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로 우리의 역사 곳곳에는 상제문화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불과 100년전 만 하더라도 고종황제는 상제님께 천제를 지낸 기록이 있다.

이러한 상제 문화가 역사속에서 사라진 것은 불과 최근의 일인 것이다.

강화도 마니산 첨성단

가.고조선: 첨성단은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제사를 올리던 제단으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신교 제천의식 이었다.

나.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부여임천을 지나고 대전 보문산을 지나 속리산에 가서 삼신상제께 천제를 지냈다는 기록.

다.대진국(발해): 학교를 세워,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가르치고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지냈다.

라.고려: 1355년 공민왕이 행촌이암을 강화도 마리산에 보내어 삼신상제님께 직접천제를 올리게 하며, 고려말에 권근이 강화도 마리산에 가서 천제를 올린다.

고려의 원구제는 5방의 방위천신(方位天神)과 전체 위에 군림한다는 황천상제(皇天上帝)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천자국인 중국과 다름없는 제도로 시행 되었다.

하지만 고려말 우왕(禑王) 11년(1385)고려의 국가적인 의례는 제후의 의례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에 의해, 당시 친명정책(親明政策)을 펴나가던 중이어서부득이 제천의례는 폐지되었다.

※ 본래 하늘 최고신인 황천상제께 제사를 지내는 나라는 천자국에서만 행해진다.

마.조선초: 제천의례는 천자가 아닌 제후국으로서는 행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명분론과, 이와 달리 농업국가로서 전통적 기우제(祈雨祭)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의견이 갈려 설치와 폐지를 거듭하게 됐다.

원구단: 황천상제위(皇天上帝位)는 단의 제1층 북쪽 동편에서 남쪽을 향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태조3년(1394)에 제후국의 예에 준하여 조선의 동방 신인 청제(靑帝)에 제를 올리기 위한 원단이 설치되었으며,

세종원년(1419)에 실시된 원구제도 오랫동안 계속되던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시행 하였다.

조선 초 부터억제된 제천 의례는 세조2년(1456년)일시적으로 제도화되어, 제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원구제도 세조10년(1464)에 실시된 것을 마지막으로 중단 되었다.

원구단이 다시 설치되는 것은 고종34년(1897) 조선이 대한제국 이라는 황제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여 제천의식을 봉행할 수 있게 되면서 부터이다.

이해에 의정 심순택이 천신(天神)에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상소에 의해, 규모와 체제는역대의 예전(禮典)을 기초로 하여 단(壇)을 건립하였다.

<심청전 판소리 듣기>

<판소리 심청전의 한장면>

이때에 옥황상제께 옵서 남해용왕께 하교하시되, "금일 오시 초에 출천 대효심 낭자 인당수 들것이니, 팔선녀로 옹위허여 수정궁에 모셨다가 인간으로 환송허되, 시각을 조끔 어기거나, 물한 점을 묻히거나, 모시기를 잘못허면 남해용왕은 천벌을 주고, 수국제신은 죄를 면치 못하리라!" 분부가 지엄허니,

용왕이 황겁허여 수국충신 별주부와백만인갑제장이며, 각궁시녀로 용궁교자를 등대허고 그시를 기대릴제, 과연 오시에 백옥같은 한소저가 물에 풍덩 빠져 들거늘, 시녀등이고히 맞어 교자 우으 모시는구나.

심청이 정신차려, "나는 진세천인으로 어찌 감히 용궁 교자를 타오리까?" 시녀등여짜오되,

"상제의 분부오니, 만일 아니타시오면 우리 수궁은 죄를 면치 못허나이다." 사양타 못하여 교자우에 올라 앉으니, 시녀 등이 모시고수정궁 으로 들어갈제,

옥황상제의 영이어든 거행이 오직허리. 사해용왕이 각각 시녀 등을 보내어 조석으로 문안허며 조심이 각별헐제,그 때여 심청이 수정궁에 머무른지 어언간 삼년이라, 천상에 계시는 옥진부인과도 상봉을하였것다.

하루는 옥황상제께옵서 남해용왕께 들러 하교 허시되, "심청의 방년이 가까오니 인당수로 환송하여 어진때를 잃지 말 게 하라!" 남해용왕 명을 받고 심청을 치송헐제,

상제(上帝)난 우리 황상을 도우소서 
성수무강하샤 해옥주를 산갓치 사으소서
위권을 환영(천하란 뜻)에 떨치샤
어천만세에 복록이 무궁케 하쇼셔
상제(上帝)난 우리 황제를 도으소셔

<[한국문화대백과사전]제 14권 '애국가'>

요즈음 <애국가>에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상제>가 <하느님>으로 바뀌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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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들은 유불선이라는 얘기는 많이 들어보았어도, 신교를 들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겁니다. 놀랍게도 신교는 우리민족 7천년동안의 국교였습니다. 외래종교가 이땅에 들어오기 전 우리역사를 이루었던 정신입니다.

지금의 사람들은 근본정신인 이 신교에 대한 가르침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한민족사 부분참조). 왜 신교라는 말을 썼는가 하면, 이신설교(以神說敎) 때문에 신교라고 얘기합니다. 신을 대상으로 가르침을 베풀었다는 뜻입니다.

  온난한 기후와 적당한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중앙 아시아에 문명이 크게 번성하기 시작했고, 인류 최초의 국가가 생겨났다. 북방에서 다시 북방문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 때 처음 생긴 나라가 환국(桓國, B.C7,199~3,898)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천산(天山) 산맥과 파미르 고원의 동쪽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의 중국의 북서부 지역이다. 이것이 북방문명의 출발인 것이다.

  B.C 3,000년경의 황하문명, 인더스문명, 수메르(메소포타미아)문명, 이집트문명들이 모두 B.C 7,199~3,898년에 실제했던 중앙 아시아의 환국(桓國)의 신교(神敎)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환국(桓國)의 문명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세계 4대문명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환국의 자취>

1. 중국 신강성 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烏魯木齊) 동쪽에 소재한 천산천지 일대에서 신석기시대의 성터(北庭古城遺址)가 발굴됨 → 환국의 중심지로 추정됨.

2. 바이칼호 부근에서 신석기 유적: 배달국 홍산유적 출토물과 유사함.

3, 문헌기록: 진서(晉書) 4이전(四夷傳) - 비리국,양운국,구막한국,일군국
                   중국사고지도집(상해출판사)
                   당서(唐書) 북적전(北狄傳) - 우루국
                   삼국사기 - 구다국(句茶國), 매구곡(賣溝谷)

 <세계 최고(高)의 피라미드 발견>

  2000년 07월 03일 중국 톈진일보에 의하면, 러시아 고고학 발굴단이 티베트 서쪽의 강런보치봉 주변지역에서 세계 최고(最高)의 피라미드와 100개가 넘는 세계 최대의 피라미드군(群)을 발견했다고 한다. 
환국(桓國)이 초창기에 도읍을 정한 위치와 일치한다.

 고고학계의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해, 그 거대한 피라미드는 진시황의 무덤보다도 수 천년 앞서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이들 유적들은 중국 공안 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숨겨지고 있다. 학술적인 조사나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들 피라미드는 만주와 한반도에 널려있는 고구려의 무덤과 너무나 똑같은 모양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들 피라미드는 중국과 일본에는 찾아볼 수 없으며, 고구려의 건축 양식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상고(上古)시대의 유적지로서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는 것이다.


  우리민족은 독특해서 그냥 상제라고 하지 않고 접두사를 붙여서 삼신상제(三神上帝)라고 합니다. 이 천제가 과연 막연한 하늘에 대한 제사였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였습니다. 인간과 모든 만물을 지배하는 상제께 천제를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신교에 등장하는 삼신상제>

태시에 위 아래 사방은 일찍이 아직 암흑으로덮여보이지않더니 옛 것은 가고 지금은 오니 오직 한빛이 있어 밝더라. 상계로 부터 또 삼신이 계셨으니 곧 한분의 상제시라.

주체는 곧 일신이니 각각 신이 따로있음이 아니나, 쓰임은 곧 삼신 이시라. 삼신은 만물을 끌어내시고 전세계를 통치하실 가늠할수 없는 크나큰 지능을 가지셨더라. 그 형체를 나타내지 않으시고 최상의 꼭대기의 하늘에 앉아 계시니 계신 곳은 천만억토요 항상 크게 광명을 발하시고 크게 신묘함을 나타내시며 크게 길한 상서를 내리시더라.

숨을 불어 만물을 만드시고 열을 뿜어 만물의 종자를 키우시며 신묘하게 행하여 세상일을 다스리시니라.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통틀어 말하자면 삼신산이라 하는 산이니 삼신은 곧 상제인 것이다....인간의 생사는 반드시 삼신이 주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 삼신은 곧 우주를 창조하고 만물을 만드신 천일신(천주天主)이시다. [신시본기]

  옛부터 우리민족은 무생물에도 신이 내재해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나라만큼 신을 섬기는 나라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문화 속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기를 잡으러 나가기 전에 용왕(龍王) 또는 용신(龍神), 수신(水神)에게 풍어제를 지내거나, 산에 나무를 하러 들어가면 산신제를 지내고, 묘자리 하나를 파도 산신제를 지내는 것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애니미즘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민족에게 있어 우주의 절대자에 대한 신앙이 바로 신교입니다. 그러니까 7500년동안 우리민족의 국교로서 자리잡아왔던 근본적인 가르침이 신교입니다.

  초대 환인천제께서 천산(天山)에 내려와 장생불사하면서 삼신상제께 천제를 지냈습니다. 그 때는 제정일치(祭政一治) 시대로서 환인 자신이 정치적인 군장이면서 성직자의 역할을 동시에 했습니다. 그는 전 백성들을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아 통치를 했는데, 그 구심점이 바로 삼신상제(三神上帝)님께 드리는 천제(天祭)였습니다. 천제는 3월 16일과 10월 3일 두번에 걸쳐서 지냈습니다.

  그러면 이 신교의 맥이 언제부터 끊어졌는가, 대진국이 망하면서 끊어졌습니다. 고려의 복원관과 조선의 소격서에서 태을제(太乙祭)를 지내 왔으나, 조선왕조로 넘어오면서 초기에는 그 전통이 조금 살아있다가 유교사회가 본궤도로 진입하면서 그 위상이 격하되다가 기어코 사대주의 사상에 영혼을 팔아버린 유생들과 그 선봉인 조광조에 의해 삼신상제님과 천지신명에게 제사 올리던 제기(祭器)와 신위(神位)까지 모조리 파묻혀 버리고 소격서가 폐지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환인 환웅 단군의 삼성조시대 이래 수 천년동안 지속되어온 신교 신앙의 자취는 여전히 민중의 삶 속에 뿌리 깊이 남아있었습니다. 불과 수십년 전만 하여도 어촌에서는 풍어제(豊漁祭)를 지냈으며 마을에서는 성황당(城隍堂)이 곳곳에 남아 있었습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세계화의 거센 바람 속에 농경사회가 몰락하고, 도시화가 급진전되며, 서양 과학 물질문명이 확산되는 가운데 이제 신교 신앙의 자취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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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의미로는 종교에서 믿음(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절대자.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서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하여 다스리며, 인류의 선악을 가려 재앙이나 복을 내린다고 믿어 숭배하는 대상을 말한다.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우주의 창조자이며 전지 전능한 신으로서 하나님이라 부르고, 카톨릭교에서는 하느님 또는 천주라고도 한다. 그리고 천도교에서는 한울님이라 하고, 민속 신앙에서는 상제上帝 또는 천제天帝라고 한다.

  최남선 선생은 한민족의 하나님을 중심으로한 밝은 문화는 우주의 최고 원리요, 인류의 최고 이상이라 했다. 
  그리고 한민족의 하나님 문화는 아득한 옛날부터 일관되게 전승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 되어 온 문화 계통이 분명하며, 그 분포의 구역이 아시아의 북방 전체를 뒤덮으니 세계최대의 문화권이라고 밝혔다.

천산의 전경

  한민족이라는 말자체가 하나님을 중심으로한 민족공동체라는 말로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이다. 
(Han → Khan:하늘을 의미 → 몽고어:Tengri, 터어키어:Tangri, 우리말:당골, 한문: 檀君)

 우리 민족이 최초로 세운 국가가 중앙아시아의 천산天山아래에서 한인桓因께서 세운 한국桓國이며, 이 천산을 지금도 현지인들은 Han-Tengri산이라고 부르며, 지금도 지도에는 그렇게 명시되어 있다.

Han은 大이며, Tengri는 단군이다. 따라서 Han-Tengri는 대단군大檀君이며, 그 분이 곧 한인桓因 할아버지이며, 우리의 출발점이 곧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수와 천산일대 이다.

  이 사실을 신라때 최치원 선생이 삼국사기 진흥왕전 난랑비서에서 이른바 현묘지도, 풍류도라는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알렸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교敎를 만든 근원은 신사神史에 자세히 실려 있거니와 핵심은 삼교(유불선)를 포함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집에 들어가서 효도하고, 나가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공자)의 지旨이요, 무위로 일을 함에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주사(노자)의 종宗이며, 모든 악한 일을 만들지 않고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석가)의 화化이다.』

  이 내용은 고구려때 을밀선인이 지은 다물 흥방가의 내용을 단순 복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다물 흥방가는 천부경, 삼일신고, 366사(참전계경), 단군팔조교등 십수권의 경전의 내용을 알기 쉽게 압축한 내용이다. 

  신라이후 한국인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던 난랑비서에서 말하는 현묘지도는 곧 한국, 배달국, 단군조선과 부여, 삼한, 고구려등으로 단절없이 이어지는 한민족 고유의 하나님사상에 털끝만큼도 다름이 아니다.

이와같은 한민족의 하나님 사상은 단절없이 전해졌고 그 형태로는 다음과 같다.

신라 화상의 모습

  부여 대천교(代天敎), 삼한 천신교(天神敎), 고구려 경천교(敬天敎),  신라 숭천교(崇天敎), 발해 진종교(眞宗敎), 만주 주신교(主神敎), 요와 금는 배천교(拜天敎), 고려 왕검교(王儉敎) 

  이와같이 이름은 다르나 동사류고에서는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가르침인 단군 설교檀君設敎라고 했다.

  이 단군Tangun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행하던 사람들을 부여에서는 천왕랑天王郞, 고구려에서는 조의, 백제에서는 수사, 신라에서는 화랑이었다.

  그러나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이래 백제의 수사도는 일본으로 건너가 수험도가 되고, 싸움애비는 사무라이가 되었다.

  그러나 소위 삼국을 통일했다는 신라의 화랑들조차 통일이후 대대적으로 몰락하여 급기야 화랭이라는 이름으로 무당 남편이 되고마는 형편이 되었다. 

  또 유라시아 전체에 그 이름을 남긴 Tengri 즉, 단군을 따르는 사람들인 당골네들은 마을의 천민들로 전락했으며, 이같은 와중에 개화기를 맞아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우리의 하나님 사상은 결정적으로 사라져 갔던 것이다.

 단군Tangun은 곧 절대신 하나님의 인격적 존재(이 개념은 유대 기독교 문명에서는 여호와가 하나님이 되는 이치와 같음)로서 한인, 한웅, 단군할아버지를 칭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세계적인 용어이다. 
  이 개념은 우리 민족과 함께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함께 출발한 식구로서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이면서 세계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몽고족, 터어키족, 항가리족(마쟈르족), 만주족 등에 의해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수메르 문명의 점토문자 
가림토문자와 동일하다.

  근래에 유대 기독교 문명의 바탕 중 상당부분이 고대 슈메르문명의 복사판이었음이 밝혀지고 있으며, 그 슈메르 문명을 세운 슈메르인이 알타이어의 가장 큰 특징인 교착어를 사용했고 검은 머리카락의 민족임이 밝혀졌다.

  슈메르라는 용어 자체가 몽고어로 우주산宇宙山을 뜻하며, 이는 우리 민족이 천산, 태백산, 백두산을 우주산으로 삼아온 내용과 정확히 부합한다. 그들이 산과 같은 지규랏을 세운 것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평지라서 인공적으로 천산, 태백산, 백두산과 같은 우주산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수메르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서양 기독교 사상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하나님 사상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같이 출발한 우랄알타이어족의 여러 식구들에 의하여 아득한 고대에서부터 최근까지 전세계를 돌아다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중심이 되는 풍습과 경전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정통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관련자료: 한민족사>수메르 문명 ]

성경에 번역된 God는 상제

  기독교에서 바이블을 한글로 처음 번역한 것은 스코틀랜드의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에 의해서인데, 1882년과 1883년 그는 누가복음전서를 처음으로 한글로 번역했다. 
그 중 1882년본에는 "...... 두사람이하느님의압페셔올운쟈라.........." 와 같이 하느님을 사용했다. 1883년본에는 "..... 두사람이 하나님의 압페셔 올은쟈라......"와 같이 하나님을 사용했다.

  다음으로 바이블을 번역한 사람은 이수정으로, 이수정은 박영효와함께 일본에 수신사로 건너가 일본인 목사 야스가와에게 세례를 받았고 1885년 신약마가복음서언해를 일본에서 출간했다.
신 자예슈크리슈도스 복음 (神의 子耶蘇基督의 福音이니)
그 책은 위와 같이 하나님 대신 신(神)으로 번역하고 한글 토를 달았다.

그 다음 1887년 서울에 있던 5명의 선교사인 언더우드, 아펜젤러, 알렌, 스크랜튼, 헤론이 한국어 바이블 번역위원회를 발족했다.
여기서 언더우드는 1893년 찬양가를 펴내면서 하나님이나 샹뎨(上帝),텬주(天主)를 사용하는대신 참신,여호와를 채택하여 사용하였으나 그 반응은 극히 미미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1894년 번역자회는 신의 명칭에 대하여 표결에 부쳤고 투표결과 천주:하나님=4:1 로 나타났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선교사들은 선교활동에 다른 용어와 비교할 수 없이 효과적인 하나님 명칭을 사용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게된다.여기서 표결 결과는 유명무실해지고 천주와 하나님의 명칭은 한동안 공존하게된다.

 기독교의 신에 대한 한글 번역에 있어서 이 복잡하고 치열한 논쟁에서 1906년부터 더 이상 천주는 사용되지 않고 하나님이 채택되었다. 

  이제 정리해보면, 세계에 전해진 우리의 하나님 사상이 신라이후에 유불선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에게 다시 들어왔고, 근대화 이후에는 기독교의 옷을 입고 다시 우리에게 들어온 것임도 알 수 있다.
결국 우리 한민족의 고유한 가르침은 유불선과 기독교를 모두 근원적으로 포함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외래 사상들은 알고 보면 외래 사상이 아니니 미워할 이유도 없고 또 새삼스러울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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