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방송에도 나온 손성태 교수님 나왔어요^^멕시코 고구려인으로 증명하네요 ㅎㅎ 오늘 밤 11:40 2부도 나와요 태극모양있는 아즈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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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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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 신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관객들이 어떤 해석을 하든 나는 그 해석 모두를 지지한다” (나홍진 감독)

그래서 나는 나대로의 해석을 해보기로 한다. 

줄거리 

#영화 곡성은 마을에 연쇄 사망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시작된다. 경찰은 집단 야생 버섯 중독으로 결론을 내리지만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나타난 뒤부터 괴기한 소문과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 경찰 ‘종구’(곽도원)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여인 ‘무명’(천우희)을 만나면서 외지인에 대한 소문을 확신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딸 효진도 피해자들처럼 아파오기 시작하자 무속인 ‘일광’(황정민)을 마을로 불러들인다. 

# 평화롭기만 했던 작은 마을에 흉흉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가족을 무참하게 살해하는가 하면, 가해자의 몸에는 정체 모를 수포 자국이 가득하다. 뉴스에서는 독버섯을 잘못 먹어 벌어진 일이라며 애써 사건을 축소한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외지에서 온 일본인(쿠니무라 준)이 마을에 나쁜 기운을 퍼뜨리고 있다며 경계한다. “싹 다 그 양반이 오고 나서 생긴 일들 아녀~”

# 곡성’의 키워드는 ‘의심’과 ‘혼란’이다. 종구는 마을의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외지인이라는 소문을 듣는다. 특히 자신의 딸이 아프기 시작하자 딸의 병과 외지인이 관련돼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고, 그것은 확신으로 변한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제작 배경

영화 '황해' 개봉이 끝나고 얼마 뒤에 나홍진  감독의 가까운 가족이 유명을 달리했다. 죽지 않아야할 상황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충격을 받은 나 감독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그 이유가 이야기로 확장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곡성'이다. 
- '곡성' 나홍진 감독 "신이시여, 컴백하소서" 뉴스토마토 16.05.19 -

“이 영화는 신에 대한 불신으로 출발한 영화“ "신에게 질문하는 영화" (나홍진 감독)

"인간이 존재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죽는 데는 이유가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신의 의지는 있는 것인가? 
 신이 있다면 진짜 구할 의지가 있기는 한 거냐는 거다. 지금까지 뭐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구하려는 척 하는 거냐는 거다. 내가 바라본 신이란 그렇다. - '곡성' 나홍진 감독 "신이시여, 컴백하소서" 뉴스토마토 16.05.19 -

(답을) 하셔야 한다. 지금 신이 존재의 위협을 받고 있고, 세상도 많이 바뀌었지 않나. 어떤 대형사고가 터져도 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신이 무명 같다. 때론 초라해보이기도 하고, 실패한 자 혹은 고독한자, 외로운 자 같다. 저 멀리 어디 구석에 쭈그린 모습이 아닐까 싶다. 

감독이 던지는 질문
“내가 처음 물었던 질문은 인간이 피해자가 되는 데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 피해를 입었는지는 알겠는데, 왜 피해를 입었는지는 모르겠더라. 이건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데, 내 존재와 직결된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그 때 신에게 물었다. 선입니까, 악입니까. 진짜 존재는 합니까. 존재한다면 왜 방관합니까. 여러 참사나 이유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피해를 당하는 겁니까. 그 질문을 이 영화를 통해서 하고 있는 거다. 누구나 종구가 될 수 있다. ” - '곡성' 나홍진 감독 "신이시여, 컴백하소서" 뉴스토마토 16.05.19 -

정체모를 수포 : 천연두의 상징 , 인류 최초의 전염병. 

천연두 : 천연두는 기원전 10,000년경부터 인간을 괴롭혀 왔다.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 농포성 발진이 발견된 것이 천연두의 가장 오래된 물적 증거로 생각되고 있다.
천연두는 유럽 지역에서만 18세기 이전까지 매년 400,000 명을 죽였으며......감염자들 중 20 ~ 60%가 사망했고......프렌치 인디언 전쟁(1754년 ~ 1763년) 당시 영국군이 프랑스-원주민 동맹군에게 천연두를 생물무기로 사용했다.

천연두의 무시무시함으로 인해 구세계 곳곳에는 천연두와 관련된 신(神)들이 숭배되었다. 
천연두의 신이 존재하지 않는 문화권에서는 천연두를 일으키는 악마가 존재하여 병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러한 믿음은 일본(포창신), 유럽,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다른 곳들에서 두드러진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이러한 천연두 악마는 붉은색을 두려워한다. 하여 환자와 환자의 방을 붉은색으로 꾸미는 요법이 만들어졌고, 이 관습은 12세기에 유럽으로 전래되어 프랑스의 샤를 5세,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도 사용했다.이러한 믿음은 193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1980년 5월 8일 WHO '천연두 박멸' 선언. 

일본인이 퍼뜨리는 병? 일본과 연관되어서 다시찾아오는 병 천연두 ?

가을개벽 전 시두가 대발한다 
1 하루는 최창조의 집에서 성도 수십 명을 둘러앉히시고 “각기 글 석 자씩을 부르라.” 하시므로 2 천자문의 처음부터 부르기 시작하여 최덕겸(崔德兼)이 ‘일(日) 자’까지 부르니 3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덕겸은 일본 왕도 좋아 보이는가 보다.” 하시며 “남을 따라 부르지 말고 각기 제 생각대로 부르라.” 하시니라. 

 

4 그 다음 날 밤에 담뱃대 진을 쑤셔 내시며 덕겸에게 “한 번 만에 잡아서 놓치지 말고 뽑아내어 문밖으로 내버리라.” 하시거늘 5 덕겸이 명하신 대로 하니 온 마을의 개가 일시에 짖어대는지라, 덕겸이 여쭈기를 “어찌 이렇듯 개가 짖나이까?” 하니 6 말씀하시기를 “대신명(大神明)이 오는 까닭이니라.” 하시거늘 또 여쭈기를 “무슨 신명입니까?” 하매 7 말씀하시기를 “시두손님인데 천자국(天子國)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오느니라. 8 내 세상이 되기 전에 손님이 먼저 오느니라. 9 앞으로 시두(時痘)가 없다가 때가 되면 대발할 참이니 만일 시두가 대발하거든 병겁이 날 줄 알아라. 10 그 때가 되면 잘난 놈은 콩나물 뽑히듯 하리니 너희들은 마음을 순전히 하여 나의 때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7:63) 

-천자문의 처음부터 부르기 시작하여 최덕겸(崔德兼)이 ‘일(日) 자’까지 부르니 3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덕겸은 일본 왕도 좋아 보이는가 보다. (증산도 道典 7:63) 
- 앞으로 시두(時痘)가 없다가 때가 되면 대발할 참이니 만일 시두가 대발하거든 병겁이 날 줄 알아라. (증산도 道典 7:63) 

일본인의 정체는는 일제 강점기 무라야마 지준??

기독교에 살(煞)을 날린 영화, ‘곡성’ 이영호 칼럼니스트의 글에 의하면 무라야마 지준과 유사하다고 한다. 놀라운 발견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따라서 이 영화를 제작한 카메라의 파인더를 통해 유추하건대, 이 영화에서 외지인 혹은 악마로서 비교적 비중 있게 출연하고 있는 쿠니무라 준은 꽤 기획된 배우로 파악된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실존 인물과의 유사성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이름은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 1891-1968), 다른 한 사람은 이 영화의 등장인물인 쿠니무라 준(Jun Kunimura, 1955-)이다. 60년 정도의 시대 차가 있지만, 두 사람이 각각 68세, 60세에 찍은 사진이다.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두 사람은 이름의 음가도 비슷하다.

이 영화 속 외지인의 실존 인물로 해석되는 무라야마 지준은, 서론에 언급한 프레이저(James G. Frazer)의 노작에 버금갈 만한 역작을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남겼다. 우리 한국인의 민속 내지 민속신앙에 대한 방대한 자료다. <조선의 의복>,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 <조선의 풍속>, <조선의 귀신>, <조선의 풍수>, <조선의 유사 종교>등 10여 권에 이른다고 한다.

이 자료들은 그가 조선총독부의 촉탁에 의해 한국에 와서 약 22년 동안 전국을 누비며 집대성한 것으로,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일제는 당시 식민지 한국을 대상으로 정치·행정뿐 아니라 종교에 관한 특별 정책도 가지고 있었는데, 평양대부흥운동(1907년)이 일어난 지 약 8년 뒤 제정된 '포교규정(1915)'에 따르면 종교인 및 종교시설은 총독부의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것은 불교나 기독교 등 고등종교뿐 아니라 유사종교 즉 민속신앙에 대해서도 적용됐다.그러나 고등종교는 통제가 용이했던 반면, 무속과 같은 민속신앙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조선총독부에 자료로 제공된 것이 바로 이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자료집이었다“
- 칼럼 출처 : 기독교에 살(煞)을 날린 영화 -

무라야마 지준의 사진촬영과 조사의 영향 -> 민족종교의 유사종교,사이비종교화


일제의 잔재는 사라지지 않았고 ‘유사종교’ 프레임 역시 계속해서 사용됐다. 심지어 해방 이후 종교학자들은 조선총독부 촉탁 무라야마 지준이 일제의 식민지 전략을 위해 발간한 책 ‘조선의 유사종교(1935년)’를 근거로 신종교를 정리·연구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일제가 한국의 광범위한 신종교를 파악해 통제하고 단속할 수 있었던 것은 무라야마 지준이 진행한 이 조사의 영향도 컸다.

 


무라야마 지준, 그는 누구인가? 

1938년 3월 5일, 경성 시내 태서관이라는 고급식당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기모노 차림으로 정중앙에 앉은 사람은 ‘조선 민속학계의 장로’로 불렸다고 하는 이마무라 도모입니다. 그 옆으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인물 바로, 무라야마 지준이 있습니다. 그는 일반인에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입니다. 
 

그가 남긴 한국에 관한 사진이 무려 400장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유사종교> <석존, 기우, 안택> 조선총독부 발행 잡지 <조선>등 글로 엮인 조사 자료집도 10권 가량 됩니다. 이러한 자료를 남긴 무라야마 지준은 대정 5년, 그러니까 1916년에 도쿄 제국대학 사회학과에 입학, 대정 8년인 1919년 7월에 졸업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무라야마 지준은 졸업을 한 그 해 바로 조선으로 건너왔다고 합니다. 그는 과연 조선에서 무슨 신분으로, 어떤 연구를 했을까요? 

조선에 와서 조선의 총독부 촉탁이 되어서 아마도 식민지 정책과 관련해서 그때 당시 조선인의 사상을 알고자한 것 같습니다.”(아사쿠라 토시오 교수 /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 

무라야마 지준이 벌인 조사 작업의 분야나 주제가 매우 다양해서, 그의 경력에 많은 의문이 듭니다. 실제로 한국의 민간신앙의 조사와 연구에 힘을 기울였던 무라야마 지준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당시 조선에서 태생한 종교, 특히 오늘날 민족종교라 부르는 종교들에 대한 조사 작업까지 진행했습니다. 

믿는 것만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세상
언론통제로 인하여 사이비 종교시화 되어버린 민족종교 보천교 
 
모든 종교를 합한 것보다 보천교 하나에서 독립운동한 껀수가 많았습니다. 

가장 많은 항일운동,독립운동을 한 보천교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는 현실 .

 

그렇게 만들어버린 언론을 이용한 언론플레이. 사람들은 보천교를 괴이한 종교로 여기기 시작했다. 

 

미신과 신비의 차이

이 세상에 인간처럼 편리한 동물은 없다. 자기들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한다. 그러나 때로는 동물 이하의 탈선을 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지만, 이런 것은 인간의 특권으로 간주되고 마는 것이다. 때로는 동물 이하의 무지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이런 것은 미신으로 몰아붙이면 그만인 것이다.

미신(迷信)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미개사회의 전통과 인습을 맹목적으로 믿는 미개지능의 표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좀 더 자세히 고찰해보면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는 매혹적인 상태를 미신이라고 한다. 믿으려고 하지만 자기의 머리로써는 믿을 만한 근거를 인정할 수가 없고 안 믿으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실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매혹의 상태가 시간을 경과했을 때 미신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그와 같은 미신 상태가 현실적으로 노출되었을 때에는 이것을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가 없지만, 만일 이것이 일정한 시간을 경과하여서 한 개의 역사성을 띄게 되면 그 때에는 소위 "타당성 결여"라는 조건을 붙여서 부인하여 버리기만 하면 미신으로 전락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타당성을 결정하는 인간들의 두뇌가 만일 연작(燕雀)의 수준에 불과했을 때에는 이것이 비록 홍곡(鴻鵠)의 웅도(雄圖)라 할 지라도 미신으로 전락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인식이 바로 진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미신의 흐름(流)을 전설이라고 하고, 그 정체(正體)를 신비라고 한다. 신비와 미신의 개념의 차는 다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 구별이 있을 뿐이다. 즉, 그 사실을 인정은 하지만 인간의 지능으로 알아낼 수가 없을 때에 이것을 신비라고 대우하고 그것을 전혀 인정할 수 없을 때에 이것을 미신이라고 천대한다는 구별의 차가 있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고 안하는 인간의 지능이 문제되는 한미신의 낙인이 찍혔던 미신 가운데서 오히려 더욱 위대한 진리가 뛰어나왔던 사실을 역사는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300년 가설의 역사를 가졌던 지동설 같은 것이 그의 적절한 예가 아니겠는가. 그런즉 신비라는 것은 무지인(無知人)의 동경대상으로서의 진리요, 미신이라는 것은 무지인의 망각대상으로서의 미신인 것이다.
- 한동석 "우주변화원리" 中에서 -

  
미놀타 카메라가 주는 상징성


“ 뭘 찍으려던 것일까. 구식 기종인 걸로 봐서 PPL 광고는 아닌 것 같은데, 관객들이 무심히 지나칠까 봐서인지 필요 이상으로 클로즈업하고 있다. 아래 카메라와 같은 기종이다.  
둘 다 같은 기종의 카메라지만 하나는 일본산 미놀타 정품이고, 다른 하나는 삼성에서 만든 제품이다. 이는 1979년 삼성이 일본 기업과의 기술 제휴를 통해 처음 탄생시킨 카메라 기종이었던 것이다(출처: 삼성이 걸어온 길).“ 출처 : 이영진 기호와 해석 영화 곡성 

그렇습니다. 삼성의 카메라 사업 도전기는 1979년 삼성정밀이 미놀타와 기술 제휴를 통해 내놓은 ‘하이매틱-S’가 시작이었다

 

삼성家의 전생 이야기 : 일본에서의 전생 (출처 : 전생 상담가 박진여 인터뷰 조선일보)
  
....삼성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전생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개개인별로 상당히 긴 전생 이야기였기 때문에 일상과는 약간 다른 전생 리딩 때의 그의 어투를 최대한 살리면서 축약했다.  
  “이건희 회장은 일본의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에도시대의 평화기를 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로서의 전생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한민국 사람으로 환생하게 된 데에는 그 당시의 일본이 가진 시대적 배경으로 지은 국가적 업력(카르마)과 연결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하며 국조신의 허락을 받아 최고의 위치인 쇼군(將軍)이 됐습니다. 그러한 위치에 올랐지만 그에게는 영적 책임과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때의 주군(主君)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으로 조선의 국토를 유린하고 파괴한 것에 대한 속죄입니다.”
  
  그의 전생 이야기는 높낮이가 없는 톤으로 계속됐다.
    “자신의 나라에서 일으킨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현생에서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그 나라를 발전시키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영적 사명을 가지고 이번 생에 오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일본에서 유학했던 시절 앞선 일본의 기업 정신과 경영방법 등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이루어놓은 앞선 교육과 기술 등을 잘 학습한 것이 삼성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앞선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한 가장 중요한 근본이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국가적 카르마에 대한 속죄와 그에 따르는 보상이 그가 가지고 태어난 가장 큰 영적 숙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희의 전생이 무엇인지를 이 사람의 말로 믿을 수는 없다. 그러나 미놀타 카메라를 부각시켰다는 것은 그 안에 이런 상징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천우희는 산신 혹은 마을 수호신 

 

 홀연히 나타난 정체불명의 여인(천우희). 그녀에게 종구는 묻는다. “직접 본 거여?” 무명의 여인 왈, “하믄 봤제. 여기서 다 죽여뿐 거여.” 그 누구도 모르는 마을의 사건을 모두 꿰뚫어보는 듯한 태도와 소복(素服)을 입고 홀연히 출몰하는 그녀는 사람인가, 유령인가. 

천우희는 신으로 염두에 둔 건가. “아예 처음부터 그렇게 박아놓고 시작했다. 한국의 신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성경적으로 해석한 게 아니라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한 거다. 딱 천우희처럼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한국의 신이 있다면, 종구가 일본인을 유괴하는 모습을 산 위에서 바라보는 무명의 얼굴이 신의 형상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신이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의 모든 참사가 척신(隻神)이 행하는 바이니라. 11 삼가 척을 짓지 말라. 만일 척을 지은 것이 있으면 낱낱이 풀고 화해를 구하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3:188) 

1 선령신이 짱짱해야 나를 따르게 되나니 선령신을 잘 모시고 잘 대접하라. 
선령신이 약하면 척신(隻神)을 벗어나지 못하여 도를 닦지 못하느니라. (증산도 道典 2:78) 

4 이제 모든 선령신들이 발동(發動)하여 그 선자선손(善子善孫)을척신(隻神)의 손에서 건져 내어 새 운수의 길로 인도하려고 분주히 서두르나니 5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蔭德)을 중히 여기라. 
6 선령신은 그 자손줄을 타고 다시 태어나느니라. (증산도 道典 7:19) 


감독의 물음에 답한다.

신의 의지는 있는 것인가? 
 "신이 있다면 진짜 구할 의지가 있기는 한 거냐는 거다. 지금까지 뭐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구하려는 척 하는 거냐는 거다. 내가 바라본 신이란 그렇다. - '곡성' 나홍진 감독 "신이시여, 컴백하소서" 뉴스토마토 16.05.19 - 

신은 구할 의지가 있고  전 인류를 구하려고 인간세계의 일에 개입하신다. 놀고 있는게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싸질러놓은 죄악과 원한이 있어서 다 살리지는 못한다. 그게 하나님이다

흐느껴 우신 상제님
1 하루는 상제님께서 벽을 향하여 돌아누워 계시더니 문득 크게 슬퍼하시며
2 “전 인류가 진멸지경에 이르렀는데 아무리 하여도 전부 다 건져 살리기는 어려우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오.” 하시고 흐느껴 우시니라. (증산도 道典 7:47)

가을개벽의 대병겁 심판
1 한 성도가 “세상에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는 말이 있고, 또 병란(兵亂)도 아니고 기근(饑饉)도 아닌데 시체가 길에 쌓인다는 말이 있사오니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여쭈니
2 말씀하시기를 “선천의 모든 악업(惡業)과 신명들의 원한과 보복이 천하의 병을 빚어내어 괴질이 되느니라. 3 봄과 여름에는 큰 병이 없다가 가을에 접어드는 환절기(換節期)가 되면 봄여름의 죄업에 대한 인과응보가 큰 병세(病勢)를 불러일으키느니라.” 하시고
4 또 말씀하시기를 “천지대운이 이제서야 큰 가을의 때를 맞이하였느니라.
5 천지의 만물 농사가 가을 운수를 맞이하여, 선천의 모든 악업이 추운(秋運) 아래에서 큰 병을 일으키고 천하의 큰 난리를 빚어내는 것이니  큰 난리가 있은 뒤에 큰 병이 일어나서 전 세계를 휩쓸게 되면 피할 방도가 없고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7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병겁이 휩쓸면 자리를 말아 치우는 줄초상을 치른다.” 하시고
8 또 말씀하시기를 “병겁으로 사람을 솎아야 사(私)가 없다.”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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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한 마을이다. 한 마을에는 마을 수호신이 최고 댓빵이다. 댓빵인데도 다 구하지는 못한다. 결국 일가족 몰살도 막지 못한다. 그리고 슬퍼운다. 그게 신이다.

그런데 전 인류가 진멸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해보라. 인류는 인류가 지은 죄도 있고 원한도 있다. 다 못살린다. 그래서 신은 슬프고 가슴이아프다. 그렇지만 지금도 분주히 그 아래단계의 신 마을 수호신,조상신 등과 함께 사람을 살리려고 분주하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편견에 갖쳐서 말이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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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윤)동주는 윤동주의 친구 송몽규라는 인물에 일부로 집중했어요. 대한민국 사회와 현대사가 성장주의로 달려왔잖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결과주의가 됐어요. 그리고 성장이 둔화된 시대가 도래하니 성장 동력을 찾겠다고 모두가 난리에요. 나는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성장 다음엔 성숙의 시대가 와야해요. 성숙은 결과 보다는 과정이 집중받고 존경받는 시대고요. 나는 열등감을 느끼는 윤동주 시인의 모습을 폄하한 것이 아니에요. 두 청춘이 빛나던 시대 그리고 죽음을 안긴 비극적 시대를 통해 결과물 없이 사라져간 송몽규의 삶으로 오늘날에 교훈을 주고 싶었어요." - 영화'동주' 이준익 감독, "내가 저예산 영화를 자처한 이유" http://media.daum.net/entertain/culture/newsview?newsid=20160223115307075


***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 내용중에 "성장 다음엔 성숙의 시대가 와야해요"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깊은 성찰의 말로 보입니다.

지금 이 우주도 성장의  기간을 거쳐 인류의 성숙을 원하고 있습니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   우주의 봄과 여름은 상극의 정신 즉, 싸우면서 성장하는 법칙이 주도합니다. 인류 문명이 어린아이와 청년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부딛치고 대립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바로 참다운 인간이 될 수 있는 여러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에 인류문명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겉만 화려하고 그 안의 내용은 아직 부실한 때입니다. 그리고, 완성의 단계인 열매를 맺는 때는 아닙니다. 이 원리가 여름을 지배하기에 인종과 국가, 종교, 그리고 과학과 종교등 인류의 전 분야에서 서로 경쟁하며 대립하고 분열하며 끝없는 성장을 해온 것입니다. 이제는 이 과정을 넘어 성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주의 여름(火)은 인류문명이 분열,성장하는 때이고 우주의 가을은 통일의 시대요, 성숙의 시대입니다. 우주의 가을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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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1933년 조국은 사라지고 작전이 시작된다

암살 Assassination, 2015 
평점 관람객 9.10 | 기자 평론가 6.57 | 네티즌 8.97 
개요 액션, 드라마 | 한국 | 139분 | 2015.7.22 개봉 
감독 최동훈
출연 전지현(안옥윤), 이정재(염석진), 하정우(하와이 피스톨)
등급 [국내] 15세 관람가
흥행 예매율 2위 누적관객 9,493,626명(08.12 기준)


인간은 참으로 이름 붙이는 것을 좋아하는 존재입니다. 저 하늘 위에 떠있는 별에도 이름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에도 우리는 이름을 붙입니다. 이름은 참으로 존재의 거울입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의 영혼 속에 그의 존재를 새기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하지만 70여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나라와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마음껏 쓸 수 없고 붙일 수 없었던 슬픈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름이 없어진 조국에서, 독립을 믿고 스러져간 뜨거운 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 〈암살〉의 이야기입니다. 

한국독립군의 암살 계획, 그 화려한 시작


윤봉길 의사의 상해上海 홍구虹口공원 의거 후 김구의 임시정부와 김원봉의 의열단에 대한 감시가 더욱 심해지던 1933년, 임시정부의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 분)은 김구 주석으로부터, 조선 주둔군 대장 카와구치(박병은 분)와 총독부에서 선정한 최고의 친일파 강인국(이경영 분)의 암살 계획을 실천할 3명의 투사들을 데리고 가줄 것을 부탁받게 됩니다. 

그 3명의 투사들은 바로 한국독립군 출신의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분), 마지막 신흥무관학교 출신인 속사포(조진웅 분), 폭탄전문가 황덕삼(최덕문 분)입니다. 그들은 김구와 손잡은 무장투쟁의 대부 약산 김원봉(조승우 분)을 만나기 위해 상하이에 있는 미라보 호텔로 향합니다. 거기서 목적을 전달받고 자신의 존재를 새기는 단 한 장의 사진을 웃는 모습으로 촬영하게 됩니다. [사진] 한편 상하이 뒷골목에서 어둠을 뚫고 나타난 누군가가 300달러만 주면 누구라도 죽여준다는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과 그의 동료인 영감(오달수 분)에게 3,000달러를 줄 테니 그 3인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이후 작전을 위해 배를 타고 경성에 도착한 그들은 아네모네라는 술집에서 독립군의 연락책과 자금책을 담당하고 있는 마담(김해숙 분)을 만나, 강인국과 카와구치 사령관이 사돈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이동경로를 따라 암살계획을 세우지만, 일본경찰에 전해진 정보 누출과 제3자의 개입으로 그들의 계획은 차츰 틀어지게 됩니다. 과연 독립운동가 3인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안옥윤은 실존 인물일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안옥윤[사진]은 실존인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에 목숨을 아끼지 않은 수천명의 여성독립운동가의 생애와 의지를 대변하는 대표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옥윤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분은 바로 독립군의 어머니라 불리는 남자현 열사[그림]입니다. 일제강점기에 권총을 들고 국내로 잠입해 암살을 기도했던 유일한 여성이라고 합니다. (박스기사 참조) 

2015년 8월 4일부터 서대문 형무소에서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266명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행사가 성황리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시국적으로 던진 메시지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여성독립운동가 266명 ‘돌아온 이름들’ 서대문형무소 특별전 2015.8.5 경향신문기사 참조) 

1920년 8월 당시 34살 임신한 몸으로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진 안경신 의사, 미국과 조선을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하고, 2.8독립선언에 참가했던 김마리아 선생도 적극적인 독립운동가였습니다. 특히 김마리아 선생은 고문하던 일제 검사가 탄복할 정도로 의지가 강했습니다. “김마리아 같은 여성이 열명만 있었어도 한국은 독립이 되었을 것”이라고 안창호 선생이 말했을 정도로 그의 독립에의 의지는 남녀의 구분을 따질 필요가 없이 뜨거운 영웅의 기개였습니다. 

영화 속 전지현 같은 여성독립운동가가 1,900명이 넘는다는 자료도 있습니다([인터뷰]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오마이뉴스 2015.8.6 기사). 그리고 아네모네의 마담과 같이 기방과 술집의 기녀와 마담들이 독립운동가들을 숨겨주거나 연락하고 자금책으로의 역할을 매우 활발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들 수천명의 여성 열사들께서 모두 조국 광복의 순간까지 조선독립의 의지를 세계에 천명하기 위해 중국과 조선, 일본을 넘나들며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투쟁해왔던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없음을 일찍이 일러주셨습니다

남녀동권 시대를 열어 주심 (도전 2편 53장) 
1 여자가 천하사를 하려고 염주를 딱딱거리는 소리가 구천에 사무쳤나니 이는 장차 여자의 천지를 만들려 함이로다.
2 그러나 그렇게까지는 되지 못할 것이요, 남녀동권 시대가 되게 하리라.
3 사람을 쓸 때에는 남녀 구별 없이 쓰리라. 
4 앞세상에는 남녀가 모두 대장부(大丈夫)요, 대장부(大丈婦)이니라. 


9년 동안 준비한 영화


이 영화는 감독이 9년 전부터 고민하고 준비해온 작품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독립군 이야기를 품게 된 건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우당 이회영 선생의 책 때문이다. 나 같은 범인들은 갖지 못한 어떤 위대함이 느껴졌다. 물론 그 시대를 살았던 그들도 평범한 사람이었겠지만 결단이나 행동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걸 영화에 조금이나마 녹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고흥행감독 ‘암살’의 변 “친일파는 역사적 찌꺼기” [인터뷰] 최동훈 감독 2015.7.23. 오마이스타 

1930년은 내부적으로는 기미독립운동(1919) 이후 일제의 문화통치, 즉 문화적 포섭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조선 군중이 친일과 반일이라는 갈등의 기로에 놓여있었고, 외적으로는 중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괴뢰정부인 만주국, 필리핀 등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며 대동아공영권을 넓혀 나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민족의 독립의식이 약화되는 것을 걱정한 백범 김구, 약산 김원봉 등은 무장투쟁단체를 만들 것을 결심하게 되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한인애국단과 의열단입니다. 당면한 시대의 상황은 세상의 변화에 대한 타협과 반발, 안으로는 유화적인 척하면서 밖으로는 지배자들의 야만적 광기가 함께 일어나던 시기였고, 이에 맞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오로지 사진 한 장만을 존재의 흔적으로 남긴 채 산발적인 무장투쟁 과정에서 사라져갔거나 체백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무명열사들의 치열한 생애가 함께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암살에는 다양한 무장독립단체들이 등장하는데 그 모든 단체를 관통하는 뿌리지점에 있는 단체가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였습니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강점기에 갖은 역경을 뚫고 10여년에 걸쳐 3,500여명의 독립투사와 애국지사들을 길러내면서 항일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곳에서 배출된 인재들은 청산리대첩을 비롯한 독립전쟁에서 기간요원으로 참전해 공을 세웠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 조선혁명군, 의열단, 한국독립군, 고려혁명군, 한국광복군 등 독립전선 각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림] 하지만 설립 이후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주변지역의 가뭄 때문에 경영이 힘든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촌락을 돌며 구걸까지 하면서 독립운동가를 양성했다고 합니다. 

“독립운동도 돈이 있어야 하는 거지.” 

라고 말하는 속사포의 현실적인 대사는 이러한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생기게 된 경험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낙엽이 지기 전에 무기를 준비해서 압록강을 건너고 싶다’는 그의 혈서의 내용과 함께 작전이 끝나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적을 향한 응사를 놓치지 않던 그의 정신은 신흥무관학교라는 항일무장투쟁의 요람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림] 결국 신흥무관학교라는 하나의 시금석이 독립운동가라는 수많은 금맥들을 찾아냈고,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그들의 항일투쟁이 모이고 모여 마침내 광복이라는 시대의 열매로 다가오게 된 것이겠지요. 

독립이 올지 몰랐다고!


살생을 돈벌이 수단으로 살아가던 상하이무법자 하와이 피스톨은 아무 이유도 없이 독립운동가 안옥윤의 작전을 돕게 되면서 자신의 출신을 털어놓게 됩니다. 그가 언급한 살부계는 친일파로 변절한 아버지를 죽이는 모임을 말합니다. 이것이 실제 존재했는지는 근거를 찾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완용의 아들로서 1909년 경술국치 이후 부끄러움에 자결한 이승구, 박제순의 손자로서 광복군에 들어가 활동했던 박승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일제의 자작 작위를 받았으나 군인으로서 평생 그것을 부끄러워하며 살았던 이종찬 장군과 같은 사람이 있었으므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과오를 자신의 과오인 것처럼 부끄러워하며 살았던 사람들도 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강인국의 실제 모델인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사진]의 경우에는 조선 경비행기공업사를 설립하여 일제의 전쟁물자 지원에 앞장섰습니다. 을사오적으로서 작위를 받은 대표적 5인과 76인의 친일파들은 한 사람당 현재의 가치로 300억원이 넘는 부동산을 축재하기도 했고(이완용), 심지어 또 다른 친일파(송병준)의 후손들은 자기 조상의 임지를 찾겠다며 소송을 걸기도 했었습니다. 친일파라기보다는 종일파라고 불려집니다. 

그리고 영화 속 밀정인 ‘그’의 경우, 젊어서부터 항일활동을 해왔던 사람이었지만 결국 암살에 대한 정보를 일본 헌병에게 넘겨 수많은 암살활동을 실패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그는 당시 3,40년대를 살아가던 수많은 변절지식인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결국 해방 후 1949년 반민특위가 유야무야 되고 이승만 정부가 친일파들을 대거 등용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이렇게 변명합니다. 

“독립이 올지 누가 알았겠냐고!”

민족을 위해, 적의 심장을 쏘다


암살이란 영화를 보고서 어떤 이는 한인애국단과 의열단이 테러단체 곧 범죄단체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안에서 그들의 활동이 단순한 테러가 아닌 강력한 정치적 어필이었음을 알게 해주는 대사가 있습니다. 속사포와 약산 김원봉은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민간인은 희생당하면 안 되겠지요?” 
“안 되네. 총알에도 눈이 있다고 생각하자고!” 

국가도 없고 정부도 없고 군대도 없는 당시의 현실에서 강력한 독립에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했던 정치적 행위였으며 생명을 다 바친 투쟁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안옥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친일파 몇명 죽인다고 독립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알려줘야지.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고!” 

저 이역만리 타국땅에서 독립운동을 해온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심정이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영화상에서 언급되는 청산리대첩의 승리에 대한 복수로 3,600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한 간도 참변, 그리고 세 손가락을 펴며 자신이 300명이나 되는 조선인을 죽였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일제강점기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선조들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수 해원 공사 (도전 4편 116장) 
4 이 다음에 때가 되어 우리가 일을 할 때는 죽었다 말고 혼이라도 애를 써라. 그리하면 네 원을 풀어 주마.” 하시니라. 
5 이에 장수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드니 다시 말씀하시기를 “아무리 죽었다 해도 넌들 몸뚱이에 쓸개가 없을 것이냐? 
6 네 부하들이 다 죽은 것을 애석하게 여겨 한을 품지 말아라.” 하시니 장수가 도로 벌떡 드러눕거늘 땅을 다시 다독거려서 덮어 주시니라.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은 수없이 많은 무명지사無名志士들에 의해서 지켜졌습니다. 그들은 온몸을 전장에 내던지는 뜨거운 심장으로 이 한 많은 역사의 땅을 지켜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그 희생정신과 가치를 다독여주심으로써 그들의 원을 풀어주셨습니다. 

이렇게 한민족의 역사는 수백만명의 무명無名 독립열사들이 이뤄온 무명武名으로 인해 광복의 길을 얻었습니다.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해서, 먼저 조국을 위해서 희생한 그들의 존재 자체가 어둠을 불사르는 광명의 총알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혼돈의 시대 속에서 생명의 불꽃으로 새 시대를 연 주인공들입니다. 

역사 전쟁의 끝은 어디일까


뜨거운 청춘의 열정을 바쳐 후손들에게 선물한 이 세상의 가치를 과연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살고 있을까요? 

우리에게 역사는 단순한 과거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존재의의를 확인하는 자아의 거울입니다. 한중일 역사전쟁이 극점을 향해 치달아가고 있는 이때,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우리말을 쓰고 우리의 이름을 쓸 수 있게 해준 것은 역사 속에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무명열사들의 희생 덕분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독립활동의 근간이 되어주고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준 보천교 같은 민족종교의 대대적인 자금지원과 계연수, 홍범도, 오동진 장군께서 사재를 털어 편찬한 환단고기와 같은 민족의 경전 역시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조국을 위해 바친 뜨거운 열혈의 배경에는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나이는 불과 2,30대에 불과했습니다. 영화 속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선물한 이 세상의 가치를 우리에게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해줍니다. 

이상 내가 본 영화 〈암살〉편이었습니다. (정리 권혁필) 

■[안옥윤의 실제 모델]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열사


1919년 만주로 망명하여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서 활약하는 한편,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각 단체와 군사기관, 농어촌을 순회하면서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또한 남만주 각지를 순회하면서 동포간의 단합과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활약하였다. 1925년 채찬蔡燦, 이청산李靑山 등과 총독 사이토(齋藤實) 암살을 계획하였으나 미수에 그치고 만주로 돌아갔다. 

1933년 이규동 등과 주만일본대사 부토(武藤信義)를 죽이기로 하고, 연락 및 무기운반 등의 임무를 띠고 걸인노파 차림으로 하얼빈 교외 정양가正陽街를 지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6개월 동안 갖은 혹형을 받다가 단식투쟁을 전개하고 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라는 말을 남기고 하얼빈에서 사망.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 

또 한 인물을 더 소개하면 윤희순 의사가 있다. 적극적으로 의병을 돕기 위해 〈안사람 의병가〉를 지어 여성들의 독립운동을 독려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모든 집안이 의병활동에 뛰어들어 활동했던 명문가의 안주인이었다. 다음은 그녀로 인해 한국 여성독립운동사를 연구하게 되었다는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의 심옥주 소장의 이야기다. 

“윤희순 의사는 79세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쳤습니다. 집안의 시아버지, 남편, 아들도 독립운동을 했고, 손자분이 얼마 전에 작고한 광복회 강원도지부장이었어요. 집안의 4대가 독립운동의 맥을 이어오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입니다. 이 부분을 연구하면서 여성독립운동가가 과연 조력자에 불과했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단지 수동적인 역할에 머물렀으리라는 기존의 추측은 실제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죠.” 

■[최동훈 감독 인터뷰 중에서] 
광복 70주년, 우리의 무의식이 반영되고 있다

“재밌는 사실은 곧 광복 70주년이라는 거다. 나도 몰랐다. 흐름이란 게 있고,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계속 거부하려고 해도 영화는 결국 동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게 된다. 〈암살〉 말고도 1930년대 전후를 다룬 작품들이 기획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무의식이 지금 반영되고 있는 거다.” [중략] 
“역사문제에 있어서 일본이 제대로 된 사과를 안 하고 있잖나. 나도 한국 사람이니 불만이 있다. 또 국내 역사교육도 부실해지는 것 같고. 어떤 나라건 자국의 역사교육은 중요하다. 집밥을 먹는 것과 비슷한데 그걸 잘 안 챙기고 있다. 거기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친일파에 대한 매듭을 못 지었고,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찌꺼기가 남아 있잖나. 그런 눈으로 1930년대를 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영화 암살의 제작, 각본, 연출의 최동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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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문학> 우주일년과 후천개벽

◈일시 : 3월 7일(토) 오후 3시 ~ 6시
◈장소 : 아카데미 라운지(교대역,지도→ http://goo.gl/g50I8A )
◈강사 : 기하(충격대예언 카페지기)
◈회비 : 1만원
◈주최 : 다음 충격대예언/충격대예언스토리채널
◈신청하기 → http://goo.gl/g1uJoL
*장소가 아담하여 신청하지 않으면 오실 수 없습니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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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색 네 개의 욕망 2편 The RED, 불멸의 마법 경면주사 제작과정
http://youtu.be/d9UEqoycCz8

경면주사의 역사와 제작과정에 대한 다큐네요.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경면주사(鏡面朱砂) 삼천 근(三千斤)이라야 내 일이 다 끝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248) 


공주에서 보신 의통 집행 공사 

임인(壬寅 : 道紀 32, 1902)년 초가을에 하루는 공주(公州)에 사는 한 사람이 찾아와 ‘부친이 죽게 생겼다.’며 살려 주시기를 애원하거늘2 상제님께서 형렬과 호연을 데리고 공주로 가시니라.  그 집에 이르시어 바가지에 물을 떠다가 문턱 가운데에 놓게 하시고 호연에게 명하시어 약지에 물을 묻혀 방의 네 구석에 튕기게 하신 뒤에 4 그 손가락에 경면주사(鏡面朱砂)를 묻혀 인당(印堂)을 찍으며 “어(御)!” 하고, 명치를 쿡 찌르며 “명(命)!” 하게 하시니 5 병자가 진저리를 치며 깜짝 놀라 깨어나거늘 이로부터 병이 완쾌되니라. (道典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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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맨이 고프로를 머리에 달고 날면 어떻게 될까?

수퍼맨 맨오브스틸과 유사한 장면 ㅋ

티비에도 나온 영상인데 정말 대단하다.


헬리캠으로 찍고 나중에 합성한 거겠지만 멋져.

손모양은 바람을 가르는 동작도 좋고

저 불난 장면은 CG처리를 진짜 잘했네.

꼭한번 카피해서 만들어보고 싶은 영상 ㅋ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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