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ung San Do Prayer from the Heart 증산도 영어 심고문

https://youtu.be/5HuqBTRgHqw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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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성도 | 상제님의 비서실장, 김갑칠


●본관: 안동
●본명: 판식判植
●족보명: 용회龍會
●출생: 1881년 전북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부 기윤과 모 황씨 사이의 차남)
●순도: 1942년
●입도: 1902년 4월(22세)

김형렬 성도의 종제(4촌)이며 김준상 성도의 동생이다. 김형렬 성도와는 19년의 나이 차이가 난다. 키는 그리 크지 않고 수염도 얼마 나지 않은 용모였다. 첫째 부인을 일찍 상처하고 하운동의 둘째 부인을 얻었다. 입문 이후 형렬과 함께 많은 공사에 수종을 들었다. 상제님의 곁에서 천지공사 시 일등 비서 역할을 하였다. 어천 시에도 행장을 챙겼으며, 어천 후 교단 생활은 하지 않고 개인 신앙을 했다. 아들인 태일泰一도 죽을 때까지 상제님을 지극히 믿었다.

김갑칠의 입문


김갑칠은 본래 이름이 판식(判植)으로 형렬과 사촌간이라. 상제님께서 자현의 고질병을 고쳐 주심을 보고 그 신이하신 권능에 감복하여 상제님을 따르니 이 때 나이 22세라. 이후 상제님께서 이름을 갑칠(甲七)로 고쳐 주시니 상제님께서 외처로 출행하실 때 담뱃대 등 행장을 들고 따르면서 일등 비서 역할을 수행하며 많은 공사에 수종 드니라. (도전 3:17:1~4)

갑칠은 무식똑똑이라


갑칠이 비록 배우지는 못했으나 말을 잘하고 경위가 발라 불의한 일을 보면 참지 못하고 평소 상제님을 수종 들 때 눈치 빠르게 일 처리를 잘 하거늘 하루는 상제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그놈 참 똠발똠발 하니 무식똑똑이로구나." 하시니라 갑칠이 목소리가 우렁우렁하고 수틀리면 해 붙이는 불같은 성미인지라 마을 사람들은 갑칠을 ‘와가리’라 부르며 두려워하니라. (3:97:7~10)

이놈아, 육갑인데 너는 어찌 칠갑이냐


하루는 갑칠이 들어오니 상제님께서 “네가 갑칠이냐?” 하고 물으시매 갑칠이 “예, 갑칠입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이놈아, 육갑(六甲)인데 너는 어찌 칠갑이냐? 옳지, 너를 합치니 칠갑이로구나. 그 문서 매우 어렵구나. 그래도 칠 자(七字)가 팔 자(八字)보다 나으리라.” 하시니라. (3:252:1~2)

네 몸에 천지공사를 띠고 가는 연고


5월에 상제님께서 밤재에 계실 때 김갑칠이 구릿골에서 와 뵙거늘 상제님께서 물으시기를 “요즘 농사짓는 형편이 어떠하더냐?” 하시니 갑칠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가뭄이 심하여 이종(移種)을 못하므로 민심이 소란합니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비를 빌러 왔도다. 네게 우사(雨師)를 붙이나니 곧 돌아가되 길에서 비를 맞을지라도 피하지 말라. 이는 네 몸에 천지공사를 띠고 가는 연고니라.” 하시니라. 갑칠이 발병이 있어 주저하며 돌아가려 하지 않거늘 상제님께서 재촉하며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구제함에 어찌 일각을 지체하랴.” 하시니 갑칠이 명을 받들어 돌아가는데 청도원에 이르러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삽시간에 냇물이 넘치는지라. 이로부터 물이 풍족하게 되어 며칠 동안에 모심기를 마치니라. 상제님께서 이후로도 종종 갑칠에게 우사 신명을 붙여 비를 부리시니 어천하신 후에 사람들이 그를 우사장(雨師丈)이라 부르니라. (4:40)

내 발자국만 보고 따라오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갑칠을 데리고 서울을 가시는데 걸어서 싸리재를 넘어 금구 둔산(屯山)쯤에 이르니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소나기가 쏟아지거늘 금세 두월천(斗月川) 물이 불어 사람들이 건너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더라. 상제님께서 갑칠에게 “너 여기 건너가겄냐, 못 건너가겄냐?” 하시거늘 갑칠이 “물살이 빠른 데다가 물이 한 길이 넘는데 어떻게 건너가겠습니까? 저 혼자서는 도저히 못 건너겠습니다.” 하니 “너는 내 허리춤을 잡고 꼭 내 발자국만 딛고 따라 와라잉. 한눈팔았다간 빠져 죽는다.” 하시며 성큼성큼 냇물로 들어가시니라. 이에 갑칠이 말씀을 따르니 마치 얕은 물을 건널 때와 같이 종아리까지만 물이 차는지라 삐적삐적 땀을 흘리며 뒤를 따르니라. 내를 건너고 보니 상제님의 미투리는 바닥께만 젖고 자신은 무릎까지 젖어 있더라. (3:157:1~7)

남조선배 도수 공사


을사년 10월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성도들을 데리고 익산 배산(舟山) 부근에 있는 만중리(萬中里) 정춘심(鄭春深)의 집에 가시어 대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성도 여덟 명을 뽑아 동서남북 사방으로 각기 두 사람씩 보내시며 명하시기를 “술을 사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대접하라.” 하시니 동은 익산(益山), 서는 만경 입석(萬頃 立石), 남은 김제(金堤), 북은 함열(咸悅)이더라.

이에 중옷(僧服) 한 벌을 지어오게 하시어 벽에 걸어 두시고 7일 동안 불을 때지 않은 냉방에서 사명당(四明堂)을 외우시며 “산하대운(山河大運)을 돌려 남조선배 도수를 돌리리라.” 하시니라. 이어 춘심에게 명하시어 선제(船祭)에 쓸 소머리 한 개를 푹 삶아 문 앞에 놓게 하신 뒤에 “배질을 하여 보리라.” 하시더니 정성백(鄭成伯)에게 명하시기를 “마르지 않은 나무 한 짐을 가져다 부엌에서 중옷을 불사르되 그 연기가 기선 연통처럼 피어오르게 하라.” 하시니라. 성백이 그대로 행하매 문득 큰 소리로 “닻을 올렸으니 이제 배를 띄우리라!” 하고 외치시거늘 갑자기 번개가 치고 뇌성이 뱃고동 소리와 같이 크게 울리며 석탄 연기가 코를 찌르고

가옥 전체가 크게 진동하여 흡사 큰 풍랑에 흔들리는 배와 같은지라. 마당에 덕석이 날아다니고 닭들이 날다 떨어지며 개가 짖다가 나동그라져 죽고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거꾸러지고 토하며 정신을 잃고 나뒹구니 온 집 안에 살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더라. 이 때 참석한 사람은 김형렬, 김자현(金自賢), 김갑칠(金甲七), 김광찬(金光贊), 소진섭(蘇鎭燮), 김보경(金甫京)과 그의 아들 김덕유(金德有), 정춘심과 그 아들 정성백과 가족들로 그 중 덕유는 하사(下瀉)까지 하며 문밖에서 쓰러지고, 춘심의 권솔들은 집 안 여기저기에서 혼도하니라.

한편 갑칠은 인사불성이 되어 숨을 쉬지 못하고 쓰러져 있거늘 상제님께서 갑칠의 입에 청수를 흘려 넣으신 후 귀에다 대고 작은 음성으로 “갑칠아~.” 하고 길게 부르시니 갑칠도 역시 작은 음성으로 “예~.” 하고 길게 대답하매 즉시 회복되니라. 상제님께서 차례로 청수를 얼굴에 뿌리기도 하시고 혹 먹이기도 하시니 모두 정신을 차리거늘 “역사(役事)하느라고 애들 썼으니 밥이나 제때에 먹어야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갑칠에게 주시며 “부엌에서 사르라.” 하시니라. 이에 갑칠이 부엌에 들어가니 성백의 아내가 기절하여 부엌 바닥에 쓰러져 있는지라 갑칠이 급히 글을 사르니 곧 회생하여 밥을 지어 올리니라. 상제님께서 큰 그릇에 밥을 많이 비벼 여럿이 함께 먹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불사약이니라.” 하시거늘 모든 사람이 그 밥을 먹은 뒤에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을 완전히 회복하니 덕유는 말기에 이르렀던 폐병까지 완쾌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조선배가 떠나오니 어떠하냐? 이 일이 우리들의 기초니라.” 하시거늘 모두 일어나 절하며 아뢰기를 “참 무섭습니다. 선생님이 아니면 다 죽겠습니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허약한 무리들이 어찌 일을 재촉하느냐. 육정육갑(六丁六甲) 쓸어들이고 갑을청룡이 내달릴 때는 살아날 놈이 없으리라. 이처럼 급할 때 나를 부르라.” 하시니라. 이로부터 한동안 상제님께서 만중리 주막에 머무르시니 이 때 김성화(金聖化)와 그의 아들 윤칠(允七), 김광찬과 그의 조카 김병선, 김보경 부자가 함께 모시고, 그 경비는 정춘심이 부담하니라. (5:112~113)

대개벽기 49일 대공사


상제님께서 오의관에게 받은 돈 가운데 오백 냥을 갑칠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백 냥은 만경(萬頃)의 김광찬에게 전하고, 남은 것으로 구릿골에 가서 형렬, 성백과 더불어 49일 동안 날마다 종이등(燈) 한 개씩을 만들고 각기 짚신 한 켤레씩을 삼아 두라. 그 신으로 천하 사람을 신게 할 것이요, 그 등으로 천하 사람의 어두운 길을 밝히리라.” 하시니라. 갑칠이 구릿골로 돌아와 명하신 대로 행하매 그 뒤에 상제님께서 돌아오시어 짚신은 원평장에다 팔게 하시고 종이등에는 각기 ‘음양(陰陽)’ 두 글자를 쓰신 뒤에 다 불사르시고 갑칠에게 “은행 두 개를 구하여 오라.” 하시니라. 갑칠이 사방으로 구하여도 은행을 얻지 못하다가 그의 종형에게 두 개가 있음을 알고 가져다 올리니 종이등을 사른 재 속에 은행을 넣으시고 다시 갑칠에게 명하시어 “그 재를 모아 앞 내에 가서 한줌씩 물에 띄워 보내며 하늘을 보라.” 하시니라. 이에 갑칠이 명하신 대로 하며 하늘을 우러러보니, 재가 물에 떨어져 흩어지는 것처럼 구름이 무디무디 피어나더라. 공사가 끝난 뒤에 은행은 갑칠이 간직하여 두니라. (5:135)

인류 구원의 남은 조선 사람


7월 어느 날 성도들을 거느리고 제비창골 입구를 지나실 때 건너편 삼밭에서 사람들이 삼을 치거늘 상제님께서 “삼대 석 다발을 가져오라.” 하시므로 갑칠이 잘 골라서 안아다 올리니라. 이에 삼대 석 다발을 한데 섞으신 뒤에 먼저 상(上)대를 추려 뽑아 버리시고 다시 중(中)대를 추려 버리시니 가장 가늘어 쓸모없는 하(下)대만 한 줌 남는지라 그 하대를 한 손으로 들고 이리저리 재시더니 끈으로 묶고 한 발로 탁 차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들이 내 자식이니라. 가장 못나고 모자란 사람, 이리 가지도 않고 저리 가지도 않는 사람이 내 사람이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동남풍이 불면 살 수 없는 병이 오느니라.” 하시니라. 이후에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시속에 남조선(南朝鮮) 사람이라 이르나니, 이는 남은 조선 사람이란 말이라. 동서 각 교파에 빼앗기고 남은 못난 사람에게 길운(吉運)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니 그들을 잘 가르치라.” 하시니라. (6:60)

갱생주를 읽게 하심


상제님께서 어느 날 저녁에 갑칠을 불러 갱생주(更生呪)를 읽어 주시며 “용화동(龍華洞)에 가서 사람을 만나거든 읽어 주고 오라.” 하시니 갑칠이 명을 받고 용화동에 갔으나 어찌된 일인지 밤늦도록 아무도 만나지 못하거늘 하는 수 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갱생주를 읽으니라. 갑칠이 돌아와 상제님께 사실대로 아뢰니 “잘 하였다.” 하시며 칭찬하시니라. (9:185:1~3)

육임도꾼 지도자 출세 공사


이 때 문득 공우가 여쭈기를 “누구를 큰아들로 세우시렵니까?” 하매 상제님께서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말씀하시기를 “형렬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공우가 형렬에게 빈정대듯 농을 던지기를 “형님이요, 아우요?” 하니 상제님께서 “공우야, 너는 왜 그러냐?” 하시니라. 공우가 “저는 막고 품는 것을 좋아허요!” 하더니 다시 여쭈기를 “그럼 막내아들은 누구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갑칠(甲七)이니라. 갑칠이가 갑오갑자(甲午甲子)꼬리니라.” 하시니라. 공우가 잠시 후에 “그럼 큰아들 주신(主神)은 누구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진묵(震?)이니라.” 하시거늘 이에 공우가 “막내아들 주신은 누구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강감찬(姜邯贊)이니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을 모두 마치신 후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치성을 준비케 하시되 모두 입을 봉하게 하시고 모든 제수는 날것으로 올리되 칼을 쓰지 못하게 하시니라. 이후 수부님께서 막내 도수를 붙인 갑칠에게 스스럼없이 자주 심부름을 시키시니라. (5:337:1~10)

상제님 어천 후 일화


상제님 어천 후에 하루는 김갑칠이 남원에서 교단을 열고 있는 김광찬을 찾아가니라. 광찬이 갑칠을 반갑게 맞아 지난날을 떠올리며 도담을 나누다가 시간이 흘러 갑칠이 돌아가려 하매 광찬이 갑칠에게 여비로 얼마간의 돈을 쥐어 주며 “증산은 누구이고, 나는 누군가. 죽은 증산 믿지 말고 나를 믿게.” 하거늘 순간 갑칠이 안색이 달라지며 “에이, 산벼락 맞아 죽을 놈!” 하며 광찬의 얼굴에 그 돈을 집어던지고는 돌아와 버리니라. (10:102)

[종도사님 도훈]


상제님께서 이 제비창골을 지나실 때 건너편 삼밭에 사람들이 삼을 치고 있다. 그런데 상제님이 김갑칠 성도에게 삼대 석 다발을 가져오라고 하신다. 여기 석 다발, 김갑칠 성도의 이름에서 삼신 칠성도수가 내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도기 139년 8월 26일 의통성업군령 16호)



[종도사님 도훈]


김형렬 성도와 김갑칠 성도가 음양 짝이다. 김형렬 성도는 신명계에서 상제님의 큰아들이고 김갑칠 성도는 막내아들이다. 하나님의 큰아들과 막내아들이 음양 짝이 되어 제3변 도운에서 역사를 한다. (도기 135년 6월 4일 증산도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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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면 별이 하나씩 생기고 죽을때마다 별이 하나씩 사라진다
(증산도 道典 10:134)
https://youtu.be/zgRuNIAQ2UQ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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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패권과 한반도의 미래


냉전체제에서 동서 대립의 한 축이었던 소련이 해체되면서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탈냉전시대가 열렸다. 소련의 해체는 미국을 세계유일의 패권국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세계질서에 현저하게 나타난 현상중 하나는 중국의 급부상이다. 지금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물론 군사대국화의 길을 걸으며 국제무대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였다. 미국의 경쟁자로 떠오른 것이다. 지금 한반도의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한중간의 첨예한 감정대립으로 실제적 경제 피해가 가실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류열풍 등 한류기업에 대한 제재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미국중심의 무역의존도가 우리의 미국 수출 의존도가 16년 10월 기준 13.6%라고 한다.


중국 수출 의존도는 31.2%로 미국과 합치면 44.8%로 절반에 이른다.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미국에 비해 2배가 넘는다.중국은 대미수출 의존도가 24.9%다. 대미수출 의존도 1위는 단연 중국이다. 하지만 중국은 전체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1.2%로 절반이 안 된다. 중국은 내수가 절반 이상 차지하는 경제구조라  수출이 줄더라도  내수로 버틸 여력이 있는 상황이다. 미국 트럼프대통령은 미국 이익 중심의 보호무역시대를 선언했다.  앞으로 중국은 미국과 보호무역 전쟁을 벌이면서 피해를 최소화 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피해를 본다면 우리의 대중 수출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트럼프시대에는 고강세 달러시대가 예상되고 있다. 그리되면 증국은 위엔화가치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국채를 팔아 유동금리불안 해소를 도모할 것이다. 그러면 달러회수를 위해서 미연방은행의 금리는 오를 것이다. 그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낙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긴 하지만 결국 그 피해는 가계부채에 대한 부담과 기업도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미연방은행이 기축통화로서  달러 조폐권을 쥐고 있는 이상 중국이 아무리 무역흑자를 통해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미국의 금융지배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달러 자본제국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위엔화를 기축통화로 만들었다.


중국의 대규모 미 국채 매도가 국채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불안 요인이 될 것이란 우려도 없지 않다. 동북아에서 갈등이 고조되는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중국이 굴기하여 세계를 재패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금 동북공정 등 역사왜곡과 대국굴기를 통해 옛 영광을 다시 찾으려고 한다. 세계 1인자가 되고 싶어 한다. 미국은 이런 중국의 도전에 긴장하고 있다. 미국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이미 세계 2위 강국으로 등장한 중국이 껄끄럽기만 하다. 오바마 대통령 당시 미 국방력의 최우선 순위를 아시아에 둔다는 ‘오바마 독트린’을 발표하고  중국의 세계 패권을 저지하는 방안으로 한반도내에 사드 배치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세계 최강자인 미중의 충돌이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봉쇄 정책을 강화하고 나설 경우 G2간 충돌은 언제든 가상에서 현실이 될 수가 있다. 아직 중국의 군사력이 아무리 빨리 증강한다 해도 최대 군사 대국인 미국에는 한 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아직 중국은 미국의 GDP에서 군비 투자  대비 30%에 불과하고 기술력도 떨어진다. 그러나 중러 안보협약을 강화하면서 미일동맹에 맞서고 있다.

전쟁으로 승부가 난다면 다시금 서양에 동양은 지배를 당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는 변수가 있게 마련이다. 동서양의 수많은 성자와 선지자들은 전염병의 대창궐이 인류역사를 바꿀 것으로 말하고 있다.


● 장차 세계 각국이 있는 재주를 다 내어 싸우리니 재주가 가장 뛰어난 나라가 상등국이 되리라.

당래에는 병겁(病劫)이 들어와 천하를 진탕으로 만들 것인데 뉘라서 활방(活方)을 얻어 멸망하는 인종을 살리리오.

이제 서양에서 넘어오는 무기에는 대항할 자가 없으니 전쟁을 멀리하고 의통(醫統)을 알아 두라.

동서양의 전쟁은 병으로 판을 고르리라.(도전 7편32)

●동양인들이 자기 고향을 떠나리라.

아페닌 산맥을 넘어 골(La Gaule)에 이르리라. 

하늘과 물과 눈을 넘어 누구나 그의 장대로 맞으리라.(노스트라다무스)

●무서운 전쟁이 서양에서 준비되면 다음해에는 돌림병이 찾아오리라.

그들의 거대한 도시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오염되리라.(노드트라다무스)

                                   

4대 강국은 동북아 한반도에서 21세기 최강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미일의 동맹강화와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우경화  중국의 봉쇄를 하려는 전략이 노골화 될수록 한반도의 긴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일본이 군사대국화와 우경화, 그리고 미일 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이유는 미중 충돌시 강자의 입지를 굳히려는 포석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본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다면 다시금 한반도는 백여 년 전 일본에 당한 아픈 역사를 다시 되풀이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한,미,소,중,일의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형국으로 펼쳐지는 오선위기 도수는 전쟁도수이다. 인류역사는 근현대사가 세 판의 오선위기 대립을 통해서 지구촌의 패권과 갈등이 세계통일을 향해 들어간다.  바둑 두는 형국으로 전개되는 근현대사 100년사는 세 판의 씨름을 거친다. 바로 애기판,총각판,상씨름판 구도다. 애기판은 한반도를 둘러싼 러일전쟁결과로 확산된 세계1차 대전이고, 총각판은 중일전쟁으로 확산된 2차 세계대전이고 마지막 상씨름판인 3차 대전은 역사의 주인끼리의 싸움인 남북전쟁이 확산되는 세계 상씨름판이다. 이 상씨름판에서 역사의 주권이 회복되고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며 세계문명을 주도하는 도주국으로 부상을 한다. 상씨름 대전쟁은 단순세계 정치 질서의 변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선천 상극 질서에서 후천의 상생의 질서로 대전환하는 통일전쟁이다. 지금의 동북방 艮方에 위치한 한반도는 인류문명의 결실과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는 지구의 혈자리이다. 



 ●“때가 되면 세계전쟁이 붙으리라. 전쟁은 내가 일으키고 내가 말리느니라. 난의 시작은 삼팔선에 있으나 큰 전쟁은 중국에서 일어나리니 중국은 세계의 오고가는 발길에 채여 녹으리라.” 하시고

 “병이 돌면 미국은 불벌자퇴(不伐自退)하리라.”...

앞으로 싸움 날 만하면 병란이 날 것이니 병란(兵亂)이 곧 병란(病亂)이니라(도전 7편 35)

●“장차 조선이 천하의 도주국(道主國)이 되리라(도전 7편83)

●한반도 위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금대접에서 금빛 액체를 쏟아 붓는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이 한국을 쓰실 것이다. 곧 북한이 해방될 것이며 자유가 올 것이다. 또한 통일 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적,경제적 강국이 될 것이다.   -베니힌-


●천사가 50년 동안 북한에서 일어난 일들을 얘기해 주며  

북한에 많은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 세대에 휴전선이 사라질 것이다.

현재 남한 사람들은 통일 후 북한 사람들이 남으로 내려와 경제가 악화될 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을 얘기했으며 하나님이 경제의 영을 남한에 주실 계획이라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남한에 세 가지 영역에서 신기술을 주시고 많은 나라에서 이것으로 인해  한국을 경제 파트너로 삼기 원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모든 것은 고비를 넘길 때 가능하다”

-미국인 예언가 샨볼츠-

 

 미.일과 중소가 각기 납,북한에 훈수하는 한국전쟁은 상씨름전의 초반이었고 현재도 남북전쟁은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일 뿐이다. 미국의 아시아로의 복귀 중국의 굴, 일본의 우경화, 러시아의 동방정책, 북핵을 둘러싼 남북갈등, 한미일과 북중러 두 진영의 대결이 맞물린 한반도의 미래는 어떤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

"AI 사람감염, 당장 내일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  2017.01.25 http://hellodd.com/?md=news&mt=view&pid=60631 


"AI 바이러스 중 사람과 결합할 수 있는 변이가능성 유전자 4곳이 발견됐다. 사람과 결합할 수 있는 형태로 변하면 사람간 감염가능성이 높아져 감염폭발을 피할 수 없다."(카와오카 동경대 의과학연구소 연구원)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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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드라마도 12화까지 했네요. 이제 4화만이 남아있습니다. 12화에서는 유덕화(육성재)가 칠성신임을 확인해주었습니다.


유덕화에게 머물다간 신은 칠성신 http://band.us/#!/band/63859805/post/1847


유덕화에게 머문신은 칠성님(칠성하느님) http://band.us/#!/band/63859805/post/1849


삼신과 칠성 http://band.us/#!/band/63859805/post/1852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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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활달한 기백을 가지라 


1 상제님께서는 항상 성도들에게 “걸음을 걸어도 활달하게 걸어라.” 하시고 
(중략)

5 또 아무리 추워도 팔짱을 끼지 말고 불도 쬐지 말라. 
천하사를 하는 자는 항상 활달한 의표를 가져야 하는 까닭이니라.” 하시니라. 
7 하루는 날이 몹시 추운지라 한 성도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거늘 
8 상제님께서 이를 보고 꾸짖으시기를 “저놈 창새기가 터져서 손에 쥐고 다니는구나.” 하시고 
9 성도들의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모두 꿰매 버려라.” 하시니니라. 
(증산도 道典 8:42)




몸과 자세가 우리 마음을 지배한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교수 에이미 커디(Amy Cuddy)의 강연을 소개합니다. 커디 박사는 2012년 TED강연에서 자세와 바디랭귀지가 인간의 심리에 끼치는 영향을 이야기했습니다.

커디 박사는 일상생활에서 허리와 가슴을 펴는 파워 자세(power pose)가 얼마나 자신감을 가져다주는지 실험을 통해 밝혀줍니다. 만약 반대로 몸을 안으로 자꾸 수그리면 마음에도 영향을 미쳐 소극적인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수많은 테드 동영상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화제와 감동을 불러일으켰던 명강의를 함께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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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빈(呂洞賓)이 사람들 중에서 인연 있는 자를 가려 장생술(長生術)을 전하려고 빗 장수로 변장하여 거리에서 외치기를 ‘이 빗으로 빗으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고, 굽은 허리가 펴지고, 쇠한 기력이 왕성하여 지고……


★ 천지 안에 있는 말은 하나도 헛된 것이 없느니라. 세간에 ‘짚으로 만든 계룡’이라는 말이 있나니 그대로 말해 주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느니라. 

또 나의 일은 여동빈(呂洞賓)의 일과 같으니, 동빈이 사람들 중에서 인연 있는 자를 가려 장생술(長生術)을 전하려고 빗 장수로 변장하여 거리에서 외치기를 ‘이 빗으로 빗으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고, 굽은 허리가 펴지고, 쇠한 기력이 왕성 하여지고,늙은 얼굴이 다시 젊어져 불로 장생하나니 이 빗 값이 천 냥이오.’ 하며 오랫동안 외쳐도, 듣는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허탄하게 생각하여 믿지 아니하더라. 

이에 동빈이 그중 한 노파에게 시험하니 과연 흰머리가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는지라. 그제야 모든 사람이 다투어 사려고 모여드니 동빈이 그 때에 오색 구름을 타고 홀연히 승천하였느니라. 간 뒤에 탄식한들 무슨 소용 있겠느냐!
(증산도 道典 7:84)

★ 도전강독 84:2 
짚으로 만든 계룡이란? 

대세의 바탕을 일러 주어도 세상 인간들이 묵은 기운과 무지와 죄업 때문에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상제님의 대도세계를 알아듣지 못하므로 허수아비나 산 송장에 불과 하다는 말씀이다. 증산 상제님의 말씀을 깊이 짚어 보면, 상제님은 창생을 지극히 생각하시면서도 대도의 근본 자리에서는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으셨다.

★ 세계 창생들로 하여금 갱소년 되게 하라…이어 태모님께서 여동빈을 부르시고 잠시 후에 “하늘을 보라.” 하시므로 모두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이 선관의 모양을 이루고 서 있거늘,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보이느냐?” 하시매 모두 “뵈나이다.” 하고 아뢰니라.
태모님께서 선관 모양의 구름을 향하여 명하시기를 “세계 창생들로 하여금 모두 갱소년 되게 하라.” 하시니, 그 구름이 머리를 숙여 명(命)을 받드는 형상을 하며 동쪽 하늘로 물러가더라. 

★태모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앞세상 에는 흰머리가 나지 않게 할 것이며 허리도 굽지 않게 하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1:298)

★ 태상 종도사님 도훈 (도기133.7.6)
앞으로 좋은 세상이 온다. 의통목 극복하고 나면 누구도 천 살 이상을 다 살아. 어떠냐? 하하하~ 의통목을 극복 하고 나면 이 쭈그럭 살도 펴진다. 이 상제님 진리, 증산도의 진리, 다시 얘기해서 이 우주원리가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 우주의 틀 자체가 그렇게 되어져 있다. 

★ 증산 상제님께서는 천하 만민에게 영원한 생명을 전해주고자 신선의 몸으로 대륙을 누볐던 여동빈의 천하사 정신을 높이 사서, 그의 조화법으로 인류의 불로장생의 신문명을 개벽시키기를 명하셨다. 앞으로 장수문명이 열린다!

★ 여동빈(呂洞賓, ?~?). 이름은 암(巖), 동빈은 자, 호는 순양자(純陽子). 당팔선(唐八仙) 중 한 사람. 당나라 천보(天寶, 742~ 755) 연간에 태어났다. 여조(呂祖)로 널리 알려져 있다. 팔선의 수장격인 종리권(鐘離權)으로부터 도를 전수받아 신선이 되었다 한다

★ 앞세상에는 지지리 못나도 병 없이 오백 세는 사느니라.” “후천에는 빠진 이도 살살 긁으면 다시 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9: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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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중곤륜산하고 심심황하수하라


口重崑崙山(구중곤륜산)하고 
心深黃河水(심심황하수)하라
입 무겁기를 곤륜산같이 하고
마음 깊기를 황하수같이 하라.

Keep your lips as heavy as the Kunlun Mountains
and your mind as deep as the Yellow River. (Sangjenim, KD 8:6)

입암산笠巖山 전라남도 장성군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정상의 바위가 사람이 갓(笠)을 쓴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골짜기 깊숙한 곳이 분지를 이루고 있어 군사적 요충지로 지목되었다. 시루산의 남서쪽에 위치하여 시루산에 배례하고 있는 형국이다. 산 정상부가 일자형으로 평탄한 모양이므로 토土체형 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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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鬼鄕

겹겹이 쌓인 원한을 푸는 날, 고향으로 돌아가자!



*천지에 가득 찬 여자의 한(恨)
선천은 억음존양(抑陰尊陽)의 세상이라. 여자의 원한이 천지에 가득 차서 천지운로를 가로막고 그 화액이 장차 터져 나와 마침내 인간 세상을 멸망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이 원한을 풀어 주지 않으면 비록 성신(聖神)과 문무(文武)의 덕을 함께 갖춘 위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세상을 구할 수가 없느니라. (도전 2편 52장 1절~3절)

*정음정양의 남녀동권 세계를 개벽하심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때는 해원시대라. 몇 천 년 동안 깊이깊이 갇혀 남자의 완롱(玩弄)거리와 사역(使役)거리에 지나지 못하던 여자의 원(寃)을 풀어 정음정양(正陰正陽)으로 건곤(乾坤)을 짓게 하려니와 이 뒤로는 예법을 다시 꾸며 여자의 말을 듣지 않고는 함부로 남자의 권리를 행치 못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도전 4편 59장 1절~3절)

*호연의 천지 마음에 붙인 일본 내모는 대공사
기유년 어천하실 무렵에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공부해야지, 저놈들을 싹 쓸어 보내야지!” 하시거늘 호연이 “어떤 놈?” 하니 “아, 까만 놈 말여.” 하시고

“호연아! 이제부터는 앉으나 누우나 붓으로 점을 찍으며 ‘일본놈 씨도 없이 해 주십시오. 이 땅에서 개가 핥은 듯이 없애 주십시오. 우리 조선을 찾게 해 주십시오.’ 하고 항시 입에 달고 다녀라.” 하시니라.

이후로 호연이 틈만 나면 먹을 갈아 가르침대로 행하니 불을 때면서도 부지깽이로 땅에 점을 찍으며 읽고, 뒷간에 가서도 막대기로 두드리며 외우는데 기유년 섣달까지는 구릿골에서 머무르며 행하고 그 이듬해인 경술(庚戌 : 道紀 40, 1910)년부터는 전주 본집으로 돌아가 명하신 대로 하거늘 을유(乙酉 : 道紀 75, 1945)년에 해방이 되매 과연 일본 사람들이 모두 개가 핥은 듯이 깨끗하게 물러가니라. (도전 5편 404장)

*일본 사람이 제 선령신을 찾아가게 하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천지도수(天地度數)가 정리되어 각 신명의 자리가 잡히는 때라. 일본 사람이 효(孝)줄을 띠고 조선에 건너와서 임진란 때에 각 오지(奧地)에 들어가 죽은 저의 선령신들을 찾아가려 하므로 이제 조선의 의병들이 그 일을 이루어 주려고 산중 깊숙한 곳까지 그들을 이끌고 들어가느니라.” 하시니라. (도전 5편 287장)

*수부님께 내리신 일등 무당 도수
상제님께서 친히 장고를 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천지굿이라. 나는 천하 일등 재인(才人)이요,너는 천하 일등 무당(巫堂)이니 우리 굿 한 석 해 보세. 이 당(黨) 저 당(黨) 다 버리고 무당 집에 가서 빌어야 살리라.” 하시고 장고를 두둥 울리실 때 수부님께서 장단에 맞춰 노래하시니 이러하니라.
세상 나온 굿 한 석에 
세계 원한 다 끄르고
세계 해원 다 된다네.
상제님께서 칭찬하시고 장고를 끌러 수부님께 주시며 “그대가 굿 한 석 하였으니 나도 굿 한 석 해 보세.” 하시거늘 수부님께서 장고를 받아 메시고 두둥둥 울리시니 상제님께서 소리 높여 노래하시기를
“단주수명(丹朱受命)이라. 
단주를 머리로 하여
세계 원한 다 끄르니
세계 해원 다 되었다네.” 하시고
수부님께 일등 무당 도수를 붙이시니라. (도전 6편 93장 4절~9절)


귀향, 통한의 역사에 묻힌 외마디 절규


누구에게나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 온 터전은 세상 그 어디보다 안락하고 포근한 곳이다. 한 조각의 기억과 그리움마저도 싱그러운 옛적의 분신이 되어 너무도 소중하다 못해 애잔하기조차 한 소회를 던져주는 것이 바로 고향이다. 그렇게 자신 존재의 본거이자 상념의 원천과도 같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우리는 귀향歸鄕이라 부른다. 가진 것이 비록 넉넉치 않더라도 무조건 나를 포용하고 위로해 줄 것만 같은 고향은 그래서 꼭 되돌아가고픈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것일 게다. 

하지만 되돌아 가야 할 그곳에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통한의 굴레에 갇혀 잊혀져가는 수많은 어린 소녀의 영혼들이 또 다른 귀향을 청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슴 아픈 역사의 참담한 속살을 드러내며 “이제 집에 가자”는 간절한 절규를 수없이 되뇌이던 소녀들을 지금 우리 곁으로, 시리도록 그리운 고향으로 인도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귀향鬼鄕’이라 불러도 무슨 여한이 있으랴. 영화 <귀향>은 그렇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태워지는 처녀들’이 만든 국민들의 영화


이 영화는 한 장의 그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영화를 만든 조정래(43) 감독은 2002년 생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처음 만났다. 그곳에서 강일출 할머니가 미술 심리 치료 중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이란 그림을 보게 되었다. 위안부 소녀들의 시신이 산속 구덩이에서 불태워지는 현장을 본 할머니의 기억이 담겨 있는 그림이었다. 조 감독은 그때 충격을 받고 일제 치하 위안부 피해자들의 비극을 영화를 만들어 문화적 증거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완성하게 되었다. 위안부慰安婦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치욕과 잔혹의 상흔을 남긴 역사의 비극 속에 존재하는 말이다. 철저히 일본 정부와 일본군 위주의 어휘로서 이를 일본군 성노예라고 하는 게 적절할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이 단어를 쓰기로 한다. 

조정래 감독은 역사의 수렁에서 청춘의 꿈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짓밟히고 죽음을 당한 그들의 혼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의미로 영화의 타이틀을 일반적인 의미인 귀향歸鄕이 아닌 귀신 귀鬼, 고향 향鄕으로 정했다. 그는 ‘태워지는 처녀들’ 그림을 본 직후 불타 죽은 소녀들이 흰 옷을 입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2008년 완성된 시나리오를 가지고 투자자를 물색했다. 하지만 투자 유치는 쉽지 않았다. 민감하고 암울한 주제에 세간의 흥행 코드와 어울리지 않는 영화 제작에 손을 내미는 곳은 없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7만 5270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해 소규모 후원이나 투자 등의 목적으로 인터넷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다수의 개인들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행위로서 주로 자선활동, 이벤트 개최, 상품 개발 등을 목적으로 자금을 모집하는 것)으로 총 제작비 25억 중 절반가량을 조달하였고, 여러 배우들과 제작진의 재능기부 등이 모아져 14년의 제작 기간을 거친 끝에 완성된 작품으로 우리 앞에 오게 된 것이다. 

다른 상업 영화와 같은 기준을 이 영화에 들이댈 필요는 없다. 다소 지루하고 부족한 연출은 한 많고 지난했던 할머니들의 삶을 되새겨 보는 의미로 넉넉히 상쇄가 되는 일이고, 다소 풋풋한 배우들의 연기는 진정성과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마음으로 충분히 자리매김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독일의 2차대전 때 만행을 담은 영화를 할리우드를 통해 끊임없이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이제야 그러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마운 일이며, 한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필요한 영화로 의미를 부여해도 결코 어색하지 않을 내공이 이 작품에 깃들어 있는 점에 한번쯤 주목해 보기 바란다. 

<귀향>포스터가 전하는 메시지


<귀향>의 포스터는 영화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슴을 울리는 두 개의 카피 문구와 함께 두 소녀가 손을 잡은 채 웃음을 머금은 모습이 담겨 있다. 그 웃음이 밝고 아름다운 의미의 미소라면 더 바랄 게 뭐가 있을까. 어느 순간 그 웃음이 슬픔과 원통함이 깊게 배인 희미하고도 아픈 미소라는 것을 알아채면서 가슴이 너무도 뜨겁고 먹먹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혼자만의 감상이 아니라 관객들이 같이 공감하는 공통된 감성의 파장이라는 것도 함께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다수의 느낌들이 <귀향>을 ‘공감의 영화’로 만든 것이다. 

‘무엇이 소녀들을 지옥으로 보냈나’

이 문구는 극 전반을 아우르는 문제의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에 강제로 점령당한 후 우리 민족은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과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1938년 전쟁의 광기에 치달았던 일제는 소위 ‘국가 총동원법’을 발표하면서 ‘일본군 위안부’가 생겨나게 되었다. 대대적인 조선 처녀 사냥이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1945년 8월 광복이 되기까지 약 20만 명의 조선 여성이 일본군의 성 노예가 되었다. 이는 공식기록이 없어 추산한 인원으로,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여성이 일제의 마수에 희생되는 고통을 겪었다. 

아무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들은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능욕을 당해야 했다. 그들 옆에는 부모 형제도 없었고, 조국도 없었다. 그들을 위해 우는 사람도 없었다. 현지에서 일찍 죽은 이들이 오히려 행복할 정도로 육신과 영혼은 갈가리 찢겨져 나갔다. 

하지만 그들을 지옥보다 못한 그곳으로 몰아넣은 것이 과연 일본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정작 죽음보다 더한 치욕과 고통을 안겨준 것은 그들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 자신들이었다. 이제야 꺼내기 쉽지 않은 작은 기억 하나를 꺼내 놓았을 뿐인데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진실과 아픔을 외면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겪은 지난함과 우리 정부의 태도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들이다.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

이 문구는 이 영화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나타내는 카피이다. 

영화 속의 한 장면을 가져와 보자. 패전에 임박한 1945년 8월, 일본군은 위안부 여성들(조선 사람만이 아니라 일본군이 점령했던 지역의 여러 여성들) 70~80명을 한곳에 모았다. 수로처럼 긴 구덩이가 이미 파여져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도망가지 못했다. 그들은 그 수로 언덕에 세워졌고 앞에는 일본군 트럭이 서 있었다. 엄습하는 두려움에 떠는 그들에게 뒤로 돌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연이어 요란한 총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그들은 낙엽처럼 구덩이로 떨어졌다. 일본군은 시체 위에 기름을 부었고, 불을 질렀다.

지옥 같은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었으리라. 따뜻한 봄날 감시병으로부터 잠깐의 허락을 얻어 다 같이 나란히 앉아 ‘가시리’ 노래 한 자락으로 시름을 잊던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10대 소녀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희망은 꺾였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한 많은 생들이 툭 떨어져 버렸다. 그 외로운 혼들이 이제야 긴 시간을 돌아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순간 전투가 벌어진 틈을 타 죽음의 현장에서 피해 나온 14살 소녀 정민은 “이제 고마 우리, 집에 가자.”고 한 살 많은 언니 영희에게 말한다. 하지만 정민은 “언니야 잘 가라.”는 외마디를 영희에게 남겼을 뿐 결국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영희는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혼자 왔다는 죄책감을 짊어지고서 집을 잊은 채, 세월을 잊은 채 살아야 했다. 이 이야기가 실화이기에 우리는 더 마음이 아프다. 켜켜이 쌓인 원한의 무게가 한층 무겁게 다가온다.

괴불노리개와 모시나비


영화에는 두 개의 상징 소품이 등장한다. 바로 괴불노리개와 모시나비이다. 

괴불노리개는 우리 어머니들이 즐겨 쓰던 장신구다. 괴불은 본래 연뿌리에 생기는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열매를 말한다. 괴불노리개는 삼재와 액厄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방색을 주로 쓰고 부녀자와 어린아이가 주머니 끈에 차고 다니는데 대개 아이들의 생일에 만들어 채워 주었다. 이 괴불노리개는 영화의 또 다른 주역이었다. 주인공 정민이 일본군에게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갈 때 어머니가 손에 쥐어준 게 괴불노리개였다. 이는 정민과 영희를 이어주었고, 다른 소녀들도 함께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했다. 그 어떤 것도 소녀들의 슬픈 운명을 지켜주지 못할 때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건 괴불노리개 덕이었다. 

소녀들을 괴불노리개가 이어주었다면, 우리와 소녀들을 연결시켜 준 것은 모시나비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15살 옥분이는 정민이에게 “나 죽으면 나비가 될 텨. 집에 돌아갈 때 나가 앞장서 갈텡께 나만 따라오면 된다, 알긋냐”라고 말한다. 차라리 나비가 되겠다는 옥분이의 슬픈 희망이 나타난 것일까. 조 감독은 ‘태워지는 처녀들’ 그림을 재현하는 장면을 촬영 중 있었던 가슴 뭉클한 일화를 전했다. 구덩이에서 소녀들이 불에 타는 장면을 찍기 전에 그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간단한 제를 올렸다. 이어 카메라 초점을 소녀들(‘더미’라 불리는 배우들의 실물 모형)을 쌓아놓은 구덩이에 맞추고 있을 때 갑자기 진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나비는 더 잘 태우려고 소녀들 사이에 끼워둔 나뭇가지에 한 번 앉았다가 날아가더니 이윽고 다시 날아와 구덩이에 쓰러져 있는 소녀의 상처 난 다리와 몸을 몇 차례 더듬고 날아갔다. 험하고 아픈 장면을 재현하면서 심적으로 두렵고 힘들었던 감독과 모든 스태프들은 그 광경을 보고서 펑펑 울음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육신으로 찾을 수 없는 고향을 수많은 나비가 되어 날아가 찾는 마지막 부분의 영상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소녀들이 무자비하게 유린당하는 위안소의 충격적인 부감俯瞰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소녀들에 대한 학대 장면에서 가슴 아프고 분노했던 마음은 이 부분에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사실 묘사된 장면은 증언집 사례들에 비하면 1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는 더욱 잔인하고 참혹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피해자들 앞에 드리워진 운명의 무게는 커다란 원한으로 화해서 가슴에 응어리졌을 것이다. 그 원혼들이 나비로 변해 귀향하는 장면은 깊게 맺힌 한들이 풀려나가는 상징이다. 자유롭게 훨훨 가고 싶은 그곳으로, 고향으로 향하는 외로운 넋들의 모습을 한국의 토종 나비인 모시나비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해원解寃의 귀향 굿


영화 <귀향>은 정치적인 부분을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황군(일본군)을 위한 암캐’라는 모멸적 언사로 능욕한 일제의 만행에 대해 애써 규탄하기보다는, 일단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외로운 울부짖음과 아픔을 치유하는 데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서로 다른 듯 비슷한 아픔을 겪은 과거와 현재의 소녀를 병치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불행한 사고를 당하며 무녀의 길을 걷고 있는 은경과 현재의 영희가 함께 손녀와 할머니처럼 서로의 아픔을 알아가면서, 끔찍한 고통과 아픔의 기억도 함께 드러내게 된다. 이를 풀어가는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우리 본래의 신교神敎문화 양식의 한 갈래인 굿이었다. 

신교 문화에서는 본래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림으로써 믿음과 공경을 표현했다. 이런 제사문화는 공동체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푸는 제전의 장으로 발전하였다. 비단 인간들 사이뿐만 아니라 인간과 신명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원한 맺힌 신명들의 한恨을 풀어주는 제의의 형태가 바로 굿인 것이다.

일제의 폭압에 의해 초경도 지나지 않은 소녀는 여성으로서 가장 모멸적인 폭력을 당해야 했고, 그 사실을 드러내는 데에도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감내해야 했다. 마음대로 유린하고 쓸데없다고 여겨지면 흔적을 없애기 위해 죽여버리는 일본군의 야만적 폭압 앞에 제대로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차가운 현실을 감당해온 그들에게는 망한 나라와 민족의 슬픈 운명 이전에 인간 존엄성 상실의 문제가 있었다. 그렇기에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원한을 푸는 과정으로 해원解寃의 굿 한 판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영화에서 귀향 굿을 벌인 장소가 두물머리다. 서로 다른 두 갈래에서 오는 물줄기가 만나 오롯이 하나의 물줄기로 화하여 바다로 향하는 그 곳, 외로운 혼들이 살아있는 이들과 만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곳으로 가장 좋은 장소가 아니었을까. 

영화에서는 한 판의 굿으로 겹겹이 쌓인 소녀들의 한이 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깊은 한恨에 비해 그 제의는 너무 쉬운 치유와 해결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가질 법도 하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 할 역사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아직은 진행 중인 역사의 문제가 이제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 외로운 영혼들이 온전하게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필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아리랑. 
적막 속에서 두 주인공이 포옹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느덧 민정은 고향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부모는 마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중이었다. 
‘인제 왔나’ 
천천히 다가가 꼬옥 안은 민정의 등 뒤에서 
한 줄기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가 말을 했다.
‘맞나’ 
민정은 더없이 환하게 웃으며 답한다. 
바라보던 아버지는 ‘밥 묵었나?’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민정은 ‘묵자’ 하며 세 식구가 다정하게 밥을 먹는다. 
언제나처럼 행복하게 둘러앉은 가족의 모습 위로
노을 진 하늘 너머, 흰 모시나비들이 훨훨 날았다. 


제발 그것이 꿈이 아니었으면... 마지막 장면을 보다가 움켜쥔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오열하는 관객들의 안타까운 심정이 꼭 그러했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부모와 자식의 그 모습이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이며 근본임을 공감했기 때문이리라.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날의 일을, 그들의 이야기를 결코 잊지 말기를! 

가해국인 일본이 전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임은 맞다. 하지만 자신들의 선조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 제대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적절한 배상 등이 없다면 그들은 절대 지도적인 국가의 지위를 영속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인간의 기본 도리인 어짐(仁)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비단 우리와 일본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여성과 인권에 대해 중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문제작이 될 것이다.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오면서 후원해 준 75,270분들의 명단이 오르며 위안부 할머님들이 그린 그림들도 같이 올라왔다. 깊은 묵상 속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며 그림들을 바라보던 관중들은 끝없는 눈물과 감동에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이 영화가 제작되고 상영될 수 있도록 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다. 조정래 감독의 말처럼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한 분, 한 분의 넋이 돌아오리라는 마음을 함께 지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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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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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한반도 배치 곧 결정된다 http://www.jsd.or.kr/?c=culture&uid=18425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한·미 간 실무 협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1~2개월 안에 공식 발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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