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죠
홍민(48) / 익산신동도장 / 도기 145년 음 11월 입도
우선 이렇게 참 하느님의 진리를 만나 입도수기를 작성해 올릴 수 있어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저는 무신년(1968년) 음력 3월 그믐날 지금의 전남 광양제철소 바로 앞 태인도라는 섬에서 4남매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태인도는 우리나라 김의 원산지인데 지금은 광양제철소 때문에 김 수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에 김 생산을 할 때 양식이 아닌 자연생산 방식으로 했기에 굉장히 맛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 도와드리던 생각과 반쯤 말라가는 김을 뜯어 먹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저의 부모님께서는 그 섬에서 김 생산도 하시고 여러 가지 장사도 하시면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습니다. 그 결과 전남 순천에 집을 사셔서 저희 4남매가 순천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할머니께서 저희 4남매를 키워 주셨습니다. 그 때 할머니께서는 아침 일찍 정화수를 떠 놓으시고 천지신명님들과 조상님들께 부모님과 저희 4남매가 잘될 수 있도록 매일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마쳤을 때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부모님 하시는 일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고향으로 갔었습니다. 그 당시는 광양제철소가 준공되어 부모님께서도 여러 가지 사업을 확장한 터라 너무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제가 알기에 장남으로서 편안히 돈만 쓰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사업이 너무 하고 싶어 대학교 진학 포기를 결심하였고 결국은 반대하는 부모님도 설득을 시켰습니다. 그러던 중 OO전자에서 이 지역에 대리점을 개점하고자 하였는데, 여러 사람들의 개점 요청 쇄도에도 불구하고 OO전자 관계자는 ‘우리는 사장님 아니면 절대로 대리점을 허락할 수 없다’면서 저희 집에 방대한 자료뭉치를 가져와서 아버지께 권유를 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지금 있는 일도 다 하지 못하니 안 된다고 돌려보내기를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결국 그들의 집요한 설득 끝에 대리점을 개점하였고 그곳을 제가 맡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OO전자에서 목표한 월 매출을 훨씬 넘기는 실적으로 새벽까지 열심히 일하면서 돈 버는 보람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습니다. 대학에서 배울 수 없는 여러 가지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하고 싶은 분야를 연구하며 재밌게 살아왔었습니다. 그때 대리점을 같이 관리해 줄 안사람의 필요성을 느껴 23세의 나이에 일찍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무조건 결혼은 빨리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렇게 살아오던 중 아버지께서 무리한 투자와 회사 창업을 계획한 것이 잘못되어 부도가 나게 되었고, 저의 명의로 된 대출과 보증, 이서 등으로 엄청난 금전적인 시련이 닥쳐오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애들 엄마하고도 헤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때 마음의 위안을 삼고자 어머니가 다니시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그때부터 기독교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가며 성경공부를 하였지만 그곳에 나갈수록 멀어지는 마음만 생길 뿐이었습니다. 왜 교인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일까?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교리인 너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조차도 모르니 그것이 어떻게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단 말인가? 왜 교회 성당은 비싼 땅에 많은 돈을 들여서 건물을 세워야 하며 진정 하느님께서는 그 돈으로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봉사하는 것을 바라진 않을까? 성경에도 나와 있듯 인간들이 왜 지구 종말 같은 현상을 겪어야만 되는가? 고등학교 때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를 즐겨 읽고 성경에서도 언급이 되는데 성경에서 조차 명확한 답은 없는 것인가? 교인들 스스로가 모범이 되는 언행은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기도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왜 과학이 발달할수록 창조론이 아닌 진화론을 주장하는가?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기독교에서는 찾을 수 없어서 교회를 더 이상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문득문득 하느님이 생각날 때마다 하느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느님 저는 분명히 하느님이 계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진정으로 참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문득 하느님이 생각날 때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이들은 다 출가를 시키고 아내와 헤어지고 나서 저는 혼자였는데 우연한 인연으로 전북 익산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익산에서 혼자 방을 잡아 놓고 생활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려고 채널을 돌리는데 언뜻 ‘환단고기’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 채널에서 스포츠를 보고 난 후 잠깐 스쳐들은 환단고기를 찾아 채널을 찾으니 상생방송이었습니다. 안경전 종도사님께서 일본에서 환단고기 북 콘서트를 하고 계신 장면을 상생방송을 통해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역사에 대한 관심이 좀 있었던 터라 제가 듣도 보지도 못한 말씀에 집중하여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상생방송에 흥미가 느껴져서 시간만 되면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의 가을개벽에 대한 귀중한 말씀을 듣게 되었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를 읽고 그동안 너무 궁금했던 부분과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아 더욱더 관심을 가지고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종도사님의 독일 환단고기 북 콘서트까지 보고 나서 잘하면 ‘내가 진정으로 찾던 참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겠다.’라는 희망으로 집에서 가까운 증산도 도장을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무작정 찾아간 곳이 익산신동도장이었습니다. 도장을 방문하여 포정님을 만나 뵙고 상생방송을 보고 관심이 있어서 찾아오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리니 반갑게 맞아 주시면서 증산도에 대해서 친절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책자를 주시면서 읽어 보라고 권하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길로 집에 와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포정님께 전화해서 물어보곤 했었습니다. 그때마다 포정님께서 친절하게 자세히 말씀을 해주신 것에 지금도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포정님과 함께 대구 개벽문화콘서트에 참가하여 종도사님을 처음으로 뵙고 말씀을 들었고, 태전 태을궁에서 봉행하는 천지보은대천제에도 참석하여 너무나 뜻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입도시험을 3일 앞둔 날, 그날 저녁에 팔관법 기본교리책을 공부하고 밤 12시30분이 넘어 아침 일을 위해서 잠을 자려고 누웠습니다. 그때 얼굴 밑에서 하얀 불빛이 휙 지나가면서 젊은 청년의 목소리로 “공부해”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너무 신기한 체험을 해서 저는 상제님께서 저를 상제님의 일꾼으로 받아 주시려는 것 아닌가 해서 너무 기뻤습니다.
지금은 입도를 하기 위해서 팔관법을 배우고 있으며 아침, 저녁으로 증산 상제님과 태모 고수부님, 태상종도사님, 천지신명님들 그리고 조상님들께 청수를 올리며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미천한 저는 거룩하신 증산 상제님의 진정한 일꾼이 되고자 합니다. 꼭 개벽기에 사람을 많이 살릴 수 있도록 일심으로 상제님의 도를 잘 닦아 부모님과 형제들, 자식들 그리고 열심히 포교를 통해서 알게 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필코 거룩하신 증산 상제님께서 열어주신 후천 선경세계에서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종도사님과 익산신동도장 포정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상생방송의 모든 관계자 여러분들과 익산신동도장의 포감님 이하 여러 성도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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